SF 생태주의
깊이를 추구하지 못하는 자연 생태계 게임들 본문
[이런 생태계 게임들은 교육 소프트웨어에 가깝습니다. 이런 게임들이 좀 더 깊이를 추구한다면?]
<웨이킹 마스>나 <어스텅>은 생태계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이런 게임들은 외계 행성의 자연 생태계를 이야기합니다. 플레이어는 각종 식물들이나 동물들, 미생물들을 관찰하고, 이런 생물들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자연 생태계는 체계적으로 순환하고, 다양한 생물들은 서로만 아니라 자연 환경과도 상호 작용합니다. 플레이어는 이런 사실들을 종합하고 생물 다양성을 늘릴 수 있도록 자연 생태계를 관리해야 합니다. 비록 플레이 방식은 단순하나, 저런 게임들은 나름대로 커다란 장점이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자연 생태계가 어떻게 순환하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자신이 직접 생산자와 소비자와 포식자와 분해자를 배치하고, 그것들이 어떻게 맞물리는지 연구할 수 있습니다. 생태학 서적들이 설명하는 내용을 자신이 직접 실험할 수 있죠. <어스텅> 같은 게임은 매우 단순하기 때문에 복잡하고 다채로운 진짜 생태계를 모방하지 못하나, 대략적인 얼개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게임이 생태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피터 칸 같은 학자는 기술적 자연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자연 다큐멘터리나 생태계 게임을 가리키는 용어죠.
피터 칸 같은 학자는 사람들이 자연 다큐멘터리나 생태계 게임에서 어떤 자연 친화적인 감수성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비단 감수성만 느끼지 않을 겁니다. 자신이 직접 생태계를 꾸밀 때, 어떻게 생태계가 순환하는지 배울 수 있겠죠. 게임이 단순하기 때문에 깊은 지식을 배우지 못하겠으나, 적어도 플레이어는 생태계가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만약 더 깊은 지식을 쌓고 싶다면, (단순한 비디오 게임이 아니라) 더 사실적인 생태계 시뮬레이션을 돌리거나 더 학술적인 생태학 서적을 참고할 수 있겠죠.
사실 저만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과거부터 수많은 생태계 게임들은 교육적 효과를 주장했습니다. 뭐, 정말 게임 제작진들이 교육적 효과를 생각하고 저런 게임들을 만들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학부모들이 비디오 게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런 선입견을 부수기 위해 일부러 교육적 효과 운운했을지 모르죠. 어쨌든 덕분에 예전부터 생태계 게임들은 많이 등장했고, 그런 전통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는 중입니다.
고전적인 생태계 게임으로는 <오델 언더 다운>이나 <다이노파크 타이쿤>, <심파크> 등을 언급할 수 있을 겁니다. 좀 더 깊이가 있는 게임으로는 <밸런스 오브 더 플래닛>이나 <심라이프>, <에볼루션> 등을 언급할 수 있겠죠. <에코퀘스트>나 <아마존 트레일>, <다이노사우루스 사파리> 같은 어드벤처 게임도 있고요. <크리쳐스>처럼 생태계가 아니라 지능적인 생물에게 집중한 게임도 있고요. (누군가는 <46억 년 이야기>를 생태계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언급하더군요. 흠, 이건 액션 게임일 뿐이고, 시뮬레이션과 거리가 멀 겁니다.)
저는 저런 게임들을 볼 때마다 뭔가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저런 게임들은 단순하고 그리 복잡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심라이프>나 <에볼루션>은 깊이가 있고 내용이 풍부한 게임이나, <오델 언더 다운>이나 <다이노사우루스 사파리> 등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아이들에게 자연 생태계를 가르치기 위한 게임일 뿐이죠. 플레이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그런 게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좀 더 생각해보면, 깊이가 있고 풍부한 생태계 게임은 꽤나 드문 것 같습니다. 시뮬레이션 게임들은 많고 많으나, 깊이가 있는 게임들은 생태계를 주목하지 않아요. 문명이나 도시나 역사에 치중하죠.
요즘에 오픈 월드 게임이 인기를 끌기 때문에 드넓고 신비로운 외계 대자연을 묘사하는 게임들이 많은 듯합니다. <서브노티카>는 긍정적인 사례이고, <노 맨스 스카이>는 부정적인 사례겠죠. 하지만 평가에 상관없이 현재 <서브노티카>나 <노 맨스 스카이> 같은 게임들은 큰 인기를 끄는 중입니다. 하지만 이런 게임들이 자연 생태계를 묘사한다고 해도 에너지가 흐르는 과정이나 생물들이 상호 작용하는 과정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서브노티카>와 <노 맨스 스카이> 같은 게임들이 선보이는 가장 큰 특징은 열린 세계입니다. 오픈 월드죠. 아주 거대하고 광활한 외계 자연 환경이 존재하고, 플레이어는 그 대자연 속을 마음껏 누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저런 게임들은 그저 오픈 월드만 추구하지 않습니다. 샌드 박스 또한 강력합니다. 플레이어는 자연 환경에서 수많은 재료들을 얻고, 그 재료들을 조합해 다양한 장비들과 건물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건물을 자신이 원하는 위치에 지을 수 있고, 내부를 자신이 좋아하는 장식물들로 꾸밀 수 있죠. 사실 플레이어들은 외계 행성에서 대자연 속을 누비지만, 그런 탐사는 건물을 짓기 위한 선행 작업입니다. 그리고 각종 식물들과 동물들과 자연 환경은 건축 자재를 헌납하는 배경들입니다.
저런 게임들은 아주 신비롭고 다채롭고 진귀한 생물들을 공들여 묘사하나, 생태계 자체를 중시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플레이어가 생존하고 건물을 짓는지 중시합니다. 그게 우선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생태계 자체를 중시하는 게임들은 교육적 게임들로 흘러가곤 합니다. 물론 <스포어>처럼 깊이가 있는 게임도 있고, 공룡 게임들이나 사파리 게임들은 풍부한 내용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그게 한계죠. 어쩌면 대부분 플레이어들이 자연 생태계보다 인류 문명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동물들을 관찰하는 것보다 인간들이 뭔가 행동하기 바라는 플레이어들이 더 많겠죠. 플레이어들은 어떻게 식물들이 자연 속에서 자라는지 관찰하는 것보다 그 식물을 키우거나 베거나 먹는 것에 더 관심이 많은 듯해요. 저는 이런 상황이 좀 아쉽습니다. 자연 생태계에 중점을 두면서 깊이를 갖추는, 그런 게임들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