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괴수왕>은 핵 마피아에게 방사열선을 뿜을 수 있는가 본문
[자고로 고지라는 핵 발전소를 까야 제맛이죠. 하지만 <괴수왕>이 제대로 깔 수 있을지…?]
영화 <고지라: 괴수왕>은 2019년을 바라보는 중입니다. 2014년에 개봉한 <고지라>의 속편이죠. 2017년에 <콩: 해골섬>이 개봉했기 때문에 속편이 5년 후에 나오는군요. 전작과 달리 <고지라: 괴수왕>에는 친숙한 토호 괴수들이 등장하고, 모스라, 라돈, 킹기도라가 대기하는 중입니다. 이 괴수들을 봤을 때, 저는 한 가지가 궁금했습니다. 과연 모스라와 라돈, 킹기도라가 방사능 영양분을 섭취할까요. 전작 <고지라>에서 무토 부부와 고지라는 방사능 영양분을 섭취했습니다.
만화 <고지라: 어웨이크닝> 역시 방사능 영양분을 노리는 괴수 시노무라를 묘사했죠. 따라서 시노무라, 무토 부부, 고지라 등등 다양한 괴수들이 방사능 생태계를 구성했습니다. 원래 1954년 <고지라>는 핵 발전이나 핵 무기를 무섭게 바라봤고, 영화 제작진은 그런 주제를 2014년 <고지라>에 담기 원했을 겁니다. 그래서 영화 제작진은 방사능 생태계를 구상했고, 괴수들이 핵 발전소에 이끌린다고 설정했죠. 1998년 <갓질라> 역시 악평을 받았으나, 1954년과 2014년 영화들처럼 핵 발전이나 핵 전략을 부정적으로 묘사했고요. 하지만 속편에서 모스라와 라돈, 킹기도라도 그렇게 핵 발전소를 집요하게 노릴까요.
영화 제작진은 아주 간단한 줄거리만 공개했고, 따라서 뭐라고 확신하기가 힘듭니다. 핵 발전소가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한다고 확신하지 못해요. 아마 영화 속에서 모나크 조직은 거대 괴수들, 고지라와 모스라, 라돈, 숙적 킹기도라와 만나겠죠. 거대 괴수들은 쌈박질을 벌일 테고, 도시는 아수라장이 될 겁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핵 발전소가 끼어들지 잘 모르겠습니다. <콩: 해골섬>은 <고지라>와 똑같은 세계 설정을 공유하나, <콩: 해골섬>에는 핵 발전소가 등장하지 않았죠. 시노무라나 무토 부부와 달리 킹콩이나 스컬 크롤러들은 방사능을 섭취하지 않는가 봅니다.
사실 <고지라: 괴수왕>에 핵 발전소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관객들은 별로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관객들은 고지라와 모스라와 킹기도라가 대판 싸우기 원할 뿐이고, 핵 발전소에 별로 관심이 없겠죠. 적어도 1954년에 핵 발전은 일본 사회를 자극할 수 있는 소재였으나, 21세기 현재 (<괴수왕>이 판촉하려고 노리는) 미국이나 중국 관객들은 핵 발전소 따위에 별로 관심이 없을 겁니다. 지금 미국이나 중국은 재생 에너지를 열심히 확장하는 중이나, 그건 방사능 폐기물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재생 에너지 사업이 잘 나가는 중이기 때문이죠.
설사 핵 발전소가 등장한다고 해도 <고지라> 같은 영화는 핵 발전을 근본적으로 부정하지 못합니다. 영화 속에서 무토 부부는 핵 발전에 이끌렸고, 어마어마한 참사를 일으켰습니다. 만약 인류 문명이 계속 핵 발전소를 유지한다면, 또 다른 괴수가 지하나 심해에서 올라올지 모릅니다. 고지라는 그 괴수를 두들겨 팰 테고, 그 와중에 도시는 잿더미가 되겠죠. 하지만 <고지라>는 그저 거기까지 묘사할 뿐입니다. 핵 발전소를 완전히 폐쇄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만약 핵 발전소를 폐쇄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이 영화는 거대 자본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들을 겁니다.
다른 산업들과 마찬가지로 핵 개발 역시 자본주의 체계와 떨어지지 못합니다. 핵 발전소는 건설 회사나 에너지 회사, 관련 직종들에게 막대한 수익을 안겨줍니다. 핵 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역시 발전소가 밥줄이라고 생각하고요. 기업이 이윤만을 추구하고 임금 노동자들이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구조가 문제입니다. 물론 구조만 문제라고 말한다면, 그건 꽤나 환원적인 주장일 겁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계는 이른바 핵 마피아들에게 지대하게 공헌하는 중이죠. <고지라>가 정말 핵 발전소를 부정하고 싶다면, 자본주의 체계를 부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영화가 빨갱이 소리를 감수할 수 있을까요.
뭐, <고지라>를 이용해 생태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완전히 불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적어도 이 영화는 거대 자본들을 대놓고 추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지간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지배 계급을 열심히 추종하는 것과 달리 <고지라>는 그렇게 지배 계급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완전히 부정하지도 않으나 맹목적으로 열광하지도 않죠. 오히려 함대 제독으로 대표되는 지배 계급은 삽질만 반복하고, 그런 삽질은 시민들을 더욱 위기로 몰아넣습니다. 그래서 세리자와 박사는 "인류는 자연 현상을 놔둬야 한다."고 주장했고요. 그래서 저는 <고지라>가 다른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들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블록버스터는 블록버스터일 뿐입니다. <고지라>는 핵 마피아와 자본주의 체계를 부정할 마음이 없을 테고, <고지라: 괴수왕>에서 핵 발전소는 쏙 빠질지 모릅니다. 설사 빠지지 않는다고 해도 이 영화가 자본주의 체계를 크게 성토할 수 있을까요. 환상 장르를 이용해 생태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고지라>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보다 <메타트로폴리스> 같은 소설들이 훨씬 나을 겁니다. 적어도 이런 소설은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죠.
※ 개인적으로 속편에서 가장 보고 싶은 괴수는 모스라입니다. 모스라는 상당히 특이한 괴수죠. 절지류 괴수임에도 자상한 엄마이고, 평화를 사랑하고, 치유 능력이 있고…. 하지만 과연 블록버스터 영화가 몇 십 m짜리 거대 나방을 현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을지 궁금하군요. 솔직히 영화의 내용이야 예상이 가능하고, 모스라의 능력이나 외모가 훨씬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