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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괴수물 작가가 피해야 하는 함정 한 가지 본문

SF & 판타지/크고 작은 괴수들

괴수물 작가가 피해야 하는 함정 한 가지

OneTiger 2018. 9. 15. 18:57

[거대 괴수 이야기에서 괴수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괴수보다 훨씬 중요할지 모릅니다.]

 

 

평론가들이 소설 <백경>을 비평한다고 가정하죠. 평론가들이 무슨 이야기들을 늘어놓을까요? 제목과 표지 그림이 시사하는 것처럼, <백경>은 고래 이야기입니다. 소설 속에는 다양한 고래들이 나오고, 특히, 향유 고래는 위험한 적수입니다. 소설 후반부에 하얀 향유 고래 모비 딕은 포경선 피쿼드를 들이받고 바닷속으로 수장시킵니다. 소설 속에서 향유 고래는 바다뱀이나 드래곤이나 레비아탄 같은 바다 괴수들과 비슷한 위상입니다. <백경>은 향유 고래를 단순한 해양 동물이 아니라 바다 괴수라고 추켜세웁니다.

 

바다 괴수들 중 모비 딕은 절정에 다다른 존재이고, 아무도 모비 딕을 쓰러뜨리지 못합니다. 어떤 포경선도 모비 딕의 숨통을 끊지 못합니다. 모비 딕에게 도전하는 포경선들은 불행한 최후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포경선 선원들은 수많은 풍문들로 하얀 향유 고래가 숱한 포경선들을 들이받았다고 듣습니다. 그래서 모비 딕은 단순히 하얀 고래가 아니라 전설적인 바다 괴수가 됩니다. 에이허브 선장은 그런 바다 괴수에게 복수심을 품었고, 선원들과 포경선 피쿼드를 불행한 최후로 이끕니다. 거대한 바다 괴수는 포경선을 무참하게 공격하고, 선원들은 난리법석과 아비규환에 빠집니다.

 

 

따라서 <백경>은 19세기 해양 모험 소설이고 동시에 괴수물입니다. 흠, 누군가는 왜 <백경>이 괴수물인지 물을지 모르겠습니다. <백경>을 이야기하는 논문들이나 비평들이나 해설들은 괴수물이라는 장르를 언급하지 않겠죠. 일반적으로 괴수물은 압도적인 거대 괴수가 인간들을 깔아뭉개는 이야기를 뜻합니다. 좁은 관점에서 괴수물은 일본 특수 촬영 영화들을 가리키나, 왜 괴수물이라는 용어가 이런 좁은 관점에 갇혀야 할까요. 괴수물이라는 단어는 훨씬 넓은 의미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분명히 <백경>은 압도적인 거대 괴수가 인간들을 깔아뭉개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비록 이 소설은 사이언스 픽션으로 나가지 않으나, 온갖 전설들을 끌어들이고 향유 고래가 바다 괴수라고 치장합니다.

 

사실 어설픈 3류 괴수물보다 <백경>은 훨씬 처절한 전율을 자랑합니다. <백경>은 후대 괴수물들에게 영향을 미쳤을지 모릅니다. 영화 <콩: 해골섬>을 보세요. <콩: 해골섬>은 <백경>과 비슷한 구도를 따라갑니다. 영화 감독이 일부러 그랬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콩: 해골섬>과 <백경>은 비슷합니다. 외딴 지역에서 일련의 병사들은 거대 괴수와 맞부딪힙니다. 병사들의 지휘관은 거대 괴수에게 복수심을 품습니다. 지휘관은 거대 괴수를 죽이기 원하고, 병사들을 불행한 최후로 끌고 갑니다.

 

 

영화 <콩: 해골섬>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괴수물입니다. 소설 <백경>은 <콩: 해골섬>과 비슷한 구도를 보여주고요. 따라서 <백경>은 괴수물이 될 수 있습니다. 적어도 <백경>은 괴수물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죠. <백경>이 괴수물 이웃집에 놀러간다고 해도, 이웃 괴수물들은 친절하게 <백경>에게 차와 과자를 대접할 겁니다. 이 세상에는 숱한 3류 괴수물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3류 괴수물들이 드러내는 쌈마이한 감성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런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런 3류 괴수물들보다 <백경>은 훨씬 압도적인 감성을 선사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자체로서 <백경>은 훌륭한 괴수물이 되거나 괴수물의 대체재가 되거나 괴수물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자, 그래서 평론가들이 <백경>을 비평할 때, 그들이 괴수에게 주목할까요? 평론가들이 향유 고래 이야기를 열심히 늘어놓을까요? 평론가들이 향유 고래의 생태나 습성을 자세히 떠들까요? 그들이 향유 고래와 대왕 오징어가 싸우는 장엄한 광경으로 이야기 꽃을 피울까요? 아니, 그렇지 않을 겁니다. <백경>을 언급하는 여러 논문들과 비평들과 해설들은 에이허브 선장과 스타벅과 화자 이스마엘을 이야기할 겁니다. 평론가들은 피쿼드 선원들을 이용해 논문 하나를 채울 수 있을 겁니다. 에이허브 선장은 꽤나 복잡하고 입체적이고, 평론가들은 에이허브 선장을 열심히 탐구하겠죠.

 

 

포경선 피쿼드가 광기로 휘몰리는 상황에서 스타벅은 유일하게 광기에 저항합니다. 스타벅은 1등 항해사이고, 어쩌면 포경선 피쿼드를 광기에서 구할 수 있었는지 몰라요. 하지만 결국 스타벅은 에이허브에게 맞서지 못했고, 불행한 최후로 끌려가야 했죠. 이 소설에서 스타벅은 광기에 맞서는 저항을 상징하나, 결국 그런 저항은 침몰했습니다. 스타벅이 에이허브에게 굴복할 때, 독자들은 산이 무너진다고 느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타벅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론가들은 에이허브 선장과 스타벅 이외에 스텁, 플라스크, 퀴퀘그, 여러 선원들 그리고 이스마엘을 이용해 신나는 비평들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이스마엘이 누구일까요. 이스마엘은 자신을 이스마엘이라고 불러달라고 요청합니다. 그건 진짜 이름이 아닐 겁니다. 미국의 수많은 이주 노동자들처럼, 이스마엘이 이주 노동자를 상징할까요. 포경선 피쿼드가 미국이나 미국과 비슷한 가상의 나라가 될 수 있을까요. 결국 피쿼드는 침몰하고 이스마엘은 혼자 살아남습니다. 이스마엘이 국적 없는 이주 노동자가 느끼는 설움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소설 초반부는 남자 선원들을 두들겨패는 괄괄한 여자 여관 주인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소설 초반부 이후, 여자들은 절대 등장하지 않습니다. <백경>은 오직 남자들만 이야기합니다. 여자 등장인물을 집어넣기 위해 허먼 멜빌이 약간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했을까요? 평론가들은 이런 것들을 신나게 떠들 겁니다. 사실 수많은 논문들과 비평들과 해설들은 이런 것들을 떠듭니다.

 

 

흔히 우리는 괴수물이 괴수를 이야기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커다란 착각일지 모릅니다. 괴수물은 괴수가 아니라 괴수와 맞서는 사람들을 이야기합니다. 괴수는 중요하나, 괴수 이외에 괴수와 맞서는 사람들 역시 중요합니다. 이건 괴수물이 보편적인 인간 군상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저는 '결국 SF 소설은 보편적인 인간들을 이야기한다' 운운하는 감상이 헛다리를 짚는다고 생각합니다. 보편적인 인간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왜 구태여 SF 소설이 괴수를 언급하겠어요?

 

괴수와 맞서는 사람들이 보편적인 인간들이 될 수 있습니까? SF 소설은 그런 인간을 그려서는 안 될 겁니다. SF 소설은 괴수와 맞서는 특수한 인간들을 그려야 합니다. SF 소설은 특수성에 주목해야 하고, 특수성을 인간들에게 불어넣어야 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런 특수성이 오직 괴수에게만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직 괴수에게만 주목하고 괴수와 맞서는 사람들을 간과해요. <프래그먼트> 같은 소설을 보세요. 이 소설은 지치지 않고 종이짝처럼 얄팍한 등장인물들을 열심히 떠듭니다. 괴수물로서 이건 최악의 사례일지 모릅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갯가재 호랑이가 뭐 어쨌다고요? 중요한 것은 그런 갯가재 호랑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괴수물은 다른 소설들보다 훨씬 등장인물들을 중시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거대 괴수라는 다소 황당한 상상력을 파고들기 위해, 괴수물은 등장인물들을 중요하게 활용해야 할 겁니다. 좋은 괴수물은 압도적인 괴수와 깊이 있는 등장인물들을 함께 갖추어야 할 겁니다. 등장인물들이 괴수보다 훨씬 많은 분량을 차지하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은 괴수보다 훨씬 중요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작가들조차 거대 괴수라는 어마어마한 위상에 눌리고, 결국 등장인물들을 제쳐두는 것 같습니다. 그건 괴수물 작가가 피해야 하는 함정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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