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공룡 백과>, <슈퍼맨 리턴즈>, <고지라> 본문
[어떻게 슈퍼맨보다 고지라와 이 서적이 비슷한 위상이 되나요?]
"Kiss~. Kiss~. Kiss me, darling. Kiss me. Kiss me tonight. Kiss me, darling, kiss an' you'll be alright~♬" 이 노래처럼, 인간은 입을 맞춥니다. 만약 인간에게 입이 없다면, 입을 맞추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비단 인간만 아니라 키싱 구라미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키싱' 구라미는 입을 맞춥니다. 만약 이 물고기에게 입이 없다면, 입을 맞추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인간과 달리, 키싱 구라미와 달리, 장미에게는 입이 없습니다. 아무리 이 꽃송이가 아름답다고 해도, 입을 맞추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인간과 장미는 다릅니다. 키싱 구라미와 이 꽃송이는 다릅니다.
"Kiss me, darling. Kiss me. Kiss me tonight~♬" 이 노래처럼, 장미보다 인간과 키싱 구라미는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비단 키싱 구라미만 아니라 재규어, 장수 거북, 물수리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입이 있는 것처럼, 재규어, 장수 거북, 물수리에게는 입이 있습니다. 이 동물들처럼, 소, 돼지, 닭에게는 입이 있습니다. 비록 장수 거북이 야생 동물이라고 해도, 비록 돼지가 가축이라고 해도, 동물로서, 장미보다 장수 거북과 돼지는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양쪽이 비슷한 것처럼, 장미보다 인간, 장수 거북, 돼지는 비슷한 위상입니다. 인간과 달리, 돼지와 달리, 해바라기에게는 입이 없습니다.
비단 해바라기만 아니라 소나무, 느타리 버섯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소나무에게 입이 없기 때문에, 느타리 버섯에게 입이 없기 때문에, 입을 맞추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Kiss me, darling. Kiss me. Kiss me tonight~♬" 이 노래처럼, 해바라기, 소나무, 느타리 버섯보다 인간과 돼지는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양쪽이 비슷하기 때문에, 만약 인간이 돼지를 죽인다면, 으음…, 이건 비극일 겁니다. 이게 비극이기 때문에, 동물 권리는 돈까스를 권유하지 않을 겁니다. 음…, 이 먹거리는 인간이 돼지를 죽인다는 뜻입니다. 돈까스와 달리, 낫토는 동물을 죽이지 않습니다. 낫토처럼, 후무스는 다르지 않습니다.
비록 동물이 죽지 않는다고 해도, 낫토를 먹기는 가능합니다. 낫토처럼, 후무스는 다르지 않습니다. 이 이유 때문에, 동물 권리는 돈까스보다 낫토를 권유할 겁니다. 낫토처럼, 동물 권리는 후무스를 권유할 겁니다. 동물 권리가 권유하는 것처럼, 돈까스보다 낫토와 후무스는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이건 양쪽이 100% 고정된 관계라는 뜻이 아닙니다. 돈까스는 일본 먹거리 문화에 속합니다. 돈까스처럼, 낫토는 다르지 않습니다. 낫토와 달리, 전통적으로, 후무스는 일본 먹거리 문화에 속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어떤 일본 사람들이 후무스를 좋아한다고 해도, 이 콩 먹거리는 아라비아 문화에 속합니다.
만약 일본 문화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면, 후무스보다 낫토와 돈까스는 비슷할 겁니다. 이 기준과 달리, 만약 동물 권리가 커다란 가치를 얻는다면, 돈까스보다 낫토와 후무스는 비슷할 겁니다. 일본 문화가 중요한 기준이 되거나 동물 권리가 커다란 가치를 얻기 때문에, 낫토는 돈까스와 비슷하거나 후무스와 비슷합니다. 이 사례처럼, 분류보다 기준은 우선합니다. 기준(동물 권리, 일본 문화)보다 분류(낫토와 후무스, 낫토와 돈까스)는 우선하지 않습니다. 후자보다 전자가 우선하기 때문에, 만약 어떤 것과 어떤 것이 비슷하다면, "어떻게 기준이 커다란 가치를 얻는가?", 이 물음은 중요할 겁니다.
후무스보다 낫토와 돈까스가 비슷한 위상이 되기 전에, 일본 먹거리 문화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돈까스보다 낫토와 후무스가 비슷한 위상이 되기 전에, 동물 권리는 커다란 가치를 얻습니다. 그 자체로서, 낫토와 후무스는 비슷하지 않습니다. 이 관계처럼, 그 자체로서, 낫토와 돈까스는 비슷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어떤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이라고 해도, 이 사람들은 돈까스보다 낫토와 후무스가 비슷하다고 분류하는지 모릅니다. 이 사람들은 일본 문화보다 동물 권리에게 커다란 가치를 부여하는지 모릅니다. 이 철학이 구속, 억압, 죽음을 비판하기 때문입니다. 이것들은 부정적인 단어들입니다.
동물 권리는 구속, 억압, 죽음을 타파하기 원합니다. 이 철학은 (동물들을 위한) 해방 철학입니다. 동물 권리와 달리, 일본 먹거리 문화는 해방 철학이 아닙니다. 이 문화는 어떤 존재들이 해방한다고 의도하지 않습니다. 일본 문화보다 동물 권리가 부정적인 것들을 타파하고 어떤 존재(동물)들이 해방한다고 의도하기 때문에, 아무리 어떤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이라고 해도, 이 사람들은 일본 문화보다 동물 권리에게 커다란 가치를 부여하는지 모릅니다. 일본 문화보다 동물 권리가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처럼, 어떤 것들을 분류하기 위해 "어떻게 기준이 가치를 얻는가?", 이건 중요한 물음이 됩니다.
비단 이 사례만 아니라 다른 사례들 역시 비슷합니다. 비단 일본 문화, 동물 권리만 아니라 다른 분류들에서도 "어떻게 기준이 가치를 얻는가?", 이 물음은 중요합니다. <슈퍼맨 리턴즈>는 2006년 실사 영화입니다. <고지라>는 2014년 실사 영화입니다. 양쪽은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슈퍼맨 리턴즈>와 달리, <고지라>와 달리, <똑똑한 어린이를 위한 공룡 백과>는 실사 영화보다 서적입니다. 서적으로서, 실사 영화로서, <똑똑한 어린이를 위한 공룡 백과>보다 <고지라>와 <슈퍼맨 리턴즈>는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슈퍼맨 리턴즈>는 비단 실사 영화만 아니라 블록버스터 영화이기도 합니다.
[슈퍼맨은 압도적인 존재입니다. 고지라는 비슷합니다. 스테고사우루스는 어떤가요?]
<슈퍼맨 리턴즈>처럼, <고지라>는 비단 실사 영화만 아니라 블록버스터 영화이기도 합니다. <슈퍼맨 리턴즈>와 달리, <고지라>와 달리, <똑똑한 어린이를 위한 공룡 백과>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닙니다. 이 관점에서 <공룡 백과>보다 <고지라>와 <슈퍼맨 리턴즈>는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제목이 뜻하는 것처럼, <슈퍼맨 리턴즈>에서 슈퍼맨은 주된 주제입니다. 이 초인은 허구(픽션)에 속합니다. 현실에서 슈퍼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단 이 초인만 아니라 클라크 켄트 역시 허구에 속합니다.) 슈퍼맨처럼, 고지라는 똑같습니다. 제목이 뜻하는 것처럼, <고지라>에서 이 거대 괴수는 주된 주제입니다. 고지라는 허구에 속합니다. 현실에서 이 괴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목이 뜻하는 것처럼, <공룡 백과>에서 중생대 공룡들은 주된 주제입니다. 스테고사우루스는 중생대(쥐라기) 공룡입니다. 슈퍼맨과 달리, 고지라와 달리, 스테고사우루스는 허구(픽션)에 속하지 않습니다. 비록 이 골판 공룡이 사라졌다고 해도, 한때, 지구 생물권은 이 생명체를 키웠습니다. 비록 스테고사우루스가 사라졌다고 해도, 이 골판 공룡은 현실에 속합니다. 고생물학자들은 허구보다 현실(사실)을 연구합니다. 고생물학 덕후들은 허구보다 사실(현실)을 좋아합니다. 이 관점에서 <공룡 백과>보다 <고지라>와 <슈퍼맨 리턴즈>는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비단 허구, 현실만 아니라 압도적인 존재 역시 <공룡 백과>보다 <고지라>와 <슈퍼맨 리턴즈>가 비슷하다고 분류합니다.
만약 슈퍼맨이 원한다면, 메트로폴리스를 파괴하기는 가능할 겁니다. 아무리 전투기들이 미사일들을 날린다고 해도, 슈퍼맨을 죽이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슈퍼맨이 메트로폴리스를 파괴하는 것처럼, 전투기들이 이 초인을 죽이지 못하는 것처럼, 슈퍼맨은 압도적인 존재입니다. 비단 이 초인만 아니라 고지라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만약 이 괴수가 원한다면, 도쿄를 파괴하기는 가능할 겁니다. 아무리 전투기들이 미사일들을 날린다고 해도, 고지라를 죽이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고지라가 도쿄를 파괴하는 것처럼, 전투기들이 이 괴수를 죽이지 못하는 것처럼, 고지라는 압도적인 존재입니다. 이 존재로서, 고지라는 방사 열선을 날립니다. 이건 아주 강력한 무기입니다.
고지라처럼, 슈퍼맨은 파괴적인 안광을 날립니다. 이건 아주 강력한 무기입니다. 아무리 전차들이 튼튼하다고 해도, 슈퍼맨은 안광을 날리고 전차들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슈퍼맨처럼, 고지라는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전차들이 튼튼하다고 해도, 고지라는 방사 열선을 날리고 전차들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압도적인 존재로서, 고지라와 슈퍼맨은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심지어 스파이더맨조차 이 위상이 되지 못합니다. 슈퍼맨이 초인 영웅인 것처럼, 스파이더맨은 다르지 않습니다. 초인 영웅으로서, 슈퍼맨은 아주 유명합니다. 슈퍼맨처럼, 초인 영웅으로서, 스파이더맨은 아주 유명합니다. 슈퍼맨과 달리, 스파이더맨과 달리, 고지라는 전형적인 초인 영웅이 아닙니다.
초인 영웅으로서, 슈퍼맨에게는 또 다른 자아, 훨씬 평범한 자아가 있습니다. 이 자아는 클라크 켄트입니다. 다른 평범한 인간들과 함께, 클라크 켄트로서, 슈퍼맨은 살아갑니다. 슈퍼맨처럼, 초인 영웅으로서, 스파이더맨에게는 훨씬 평범한 자아가 있습니다. 이 자아는 피터 파커입니다. 다른 인간들과 함께, 피터 파커로서, 스파이더맨은 살아갑니다. 슈퍼맨과 달리, 스파이더맨과 달리, 고지라에게는 훨씬 평범한 자아가 없습니다. 다른 평범한 인간들과 함께, 훨씬 평범한 자아로서, 이 괴수는 살아가지 않습니다. 초인 영웅으로서, 고지라보다 슈퍼맨과 스파이더맨은 비슷합니다. 아무리 양쪽이 비슷하다고 해도, 스파이더맨은 압도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아무리 스파이더맨이 원한다고 해도, 뉴욕을 파괴하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만약 전투기들이 미사일들을 날린다면, 이 초인 영웅은 죽을 겁니다. 아무리 스파이더맨이 거미줄들을 날린다고 해도, 이건 파괴적인 무기가 아닙니다. 거미줄들은 전차들을 파괴하지 못합니다. 이 관점에서 스파이더맨보다 슈퍼맨과 고지라는 비슷합니다. 아무리 스파이더맨이 초인 영웅이라고 해도, 심지어 이 영웅조차 슈퍼맨과 고지라가 비슷하다고 강조합니다. 양쪽과 달리, 스테고사우루스는 압도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아무리 이 골판 공룡이 원한다고 해도, 도시를 파괴하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만약 전투기들이 미사일들을 날린다면, 스테고사우루스는 죽을 겁니다.
스테고사우루스에게는 날카로운 꼬리 가시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이 골판 공룡이 이 가시들을 휘두른다고 해도, 전차들을 파괴하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게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스테고사우루스는 압도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이 골판 공룡은 평범한 야생 동물입니다. <슈퍼맨 리턴즈>에서 압도적인 존재가 주된 주제이기 때문에, <고지라>에서 압도적인 존재가 주된 주제이기 때문에, <공룡 백과>에서 평범한 야생 동물이 주된 주제이기 때문에, <공룡 백과>보다 <고지라>와 <슈퍼맨 리턴즈>는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비단 이 특성만 아니라 사이언스 픽션(SF)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슈퍼맨 리턴즈>는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적어도, <슈퍼맨 리턴즈>는 사이언스 판타지입니다. 이 영화처럼, <고지라>는 사이언스 픽션(사이언스 판타지)입니다. <슈퍼맨 리턴즈>와 달리, <고지라>와 달리, <공룡 백과>는 사이언스 픽션이 아닙니다. 문자 그대로, 사이언스 픽션은 픽션(허구)입니다. 고생물학자들이 허구보다 현실(사실)을 연구하는 것처럼, <공룡 백과>는 허구보다 사실(현실)을 설명합니다. 현실과 사이언스 픽션은 다릅니다. 블록버스터 영화부터 사이언스 판타지까지, <공룡 백과>보다 <고지라>와 <슈퍼맨 리턴즈>는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아무리 양쪽이 비슷하다고 해도, 이건 100% 고정된 관계가 아닙니다. 돈까스보다 낫토와 후무스가 비슷한 위상이 되는 것처럼.
[이 장면과 공룡은 아무 관계가 아닙니다. 고지라와 공룡이 아무 관계가 아닌가요?]
만약 블록버스터 영화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면, 만약 압도적인 존재, 사이언스 판타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면, <공룡 백과>보다 <고지라>와 <슈퍼맨 리턴즈>는 비슷할 겁니다. 아무리 양쪽이 비슷하다고 해도, 분류보다 기준은 우선합니다. 기준보다 분류는 우선하지 않습니다. 그 자체로서, 낫토와 돈까스는 비슷하지 않습니다. 일본 먹거리 문화가 커다란 가치를 얻기 때문에, 양쪽은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만약 기준이 바뀐다면, 만약 일본 문화보다 동물 권리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면, 돈까스보다 낫토와 후무스는 비슷한 위상이 될 겁니다. 전자보다 후자는 동물들이 해방된다고 의도합니다.
일본 먹거리 문화보다 동물 권리는 부정적인 것(구속, 억압, 죽음)들을 타파한다고 의도합니다. 이 의도로서, 일본 문화보다 동물 권리는 커다란 가치를 얻습니다. 이 가치 때문에, 아무리 어떤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이라고 해도, 이 사람들은 돈까스보다 낫토와 후무스가 비슷한 위상이 된다고 분류하는지 모릅니다. 이 사람들처럼, 아무리 <공룡 백과>보다 <고지라>와 <슈퍼맨 리턴즈>가 비슷하다고 해도, 이건 고정된 분류가 아닙니다. <고지라>에서, 샘 브로디가 텔레비전을 시청할 때, 이 장면은 스테고사우루스(티라노사우루스)를 보여줍니다. 어라~, 왜 이 영화가 이 골판 공룡을 보여주나요?
비단 이 장면만 아니라 도입부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고지라>에서 도입부는 스테고사우루스(선사 생명체들)를 보여줍니다. 어라~, 왜 이 영화가 이 골판 공룡을 보여주나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고지라는 공룡들을 반영합니다. 특히, 이 거대 괴수는 티라노사우루스, 스테고사우루스, 이구아노돈을 반영합니다. <고지라>는 이 거대 괴수에게 커다란 골판들이 있다고 묘사합니다. 왜 고지라에게 이 골판들이 있나요? 대답은 스테고사우루스입니다. 이 쥐라기 공룡에게 커다란 골판들이 있기 때문에, 고지라가 이 공룡을 모방하기 때문에, 오호라~, 이 거대 괴수에게는 커다란 골판들이 있습니다.
고지라가 스테고사우루스를 반영하기 때문에, 이 골판 공룡은 이 거대 괴수를 좋아하기 위한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고생물학 덕후들이 스테고사우루스를 좋아한다면, 이 덕후들은 고지라에게 관심을 기울일 수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이 거대 괴수를 외면한다고 해도, 분명히, <고지라>는 스테고사우루스를 빠뜨리지 않습니다. 샘 브로디에게 이 골판 공룡 장난감이 있는 것처럼, 고생물학 덕후들은 다르지 않을 겁니다. 이 덕후들에게는 스테고사우루스 장난감들이 있을 겁니다. 이 장난감 때문에, 샘 브로디와 고생물학 덕후들은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전자는 <고지라>에 속합니다.
고생물학 덕후들에게는 스테고사우루스 장난감들이 있을 겁니다. (흠, 작은 플라스틱 인형부터 커다란 봉제 인형까지, 저에게는 여러 스테고사우루스 인형들이 있습니다.) 이 덕후들처럼, 샘 브로디에게는 이 골판 공룡 장난감이 있습니다. 샘 브로디와 고생물학 덕후들은 비슷합니다. 전자는 <고지라>에 속합니다. 샘 브로디와 고생물학 덕후들이 비슷하기 때문에, 전자가 <고지라>에 속하기 때문에, 오호라~, 이 영화와 고생물학 덕후들은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이 관계와 달리, 슈퍼맨은 공룡을 반영하지 않습니다. 에이…, 이 생물종은 이 초인 영웅을 좋아하기 위한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의도적으로, <고지라>는 스테고사우루스를 보여줍니다. 의도적으로, <슈퍼맨 리턴즈>가 이 골판 공룡을 보여주나요? 그건 아닙니다. 샘 브로디와 달리, 제이슨 화이트에게는 스테고사우루스 장난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이 아이에게 이 장난감이 있다고 해도, <슈퍼맨 리턴즈>는 이 장난감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샘 브로디와 제이슨 화이트는 다릅니다. 양쪽이 다른 것처럼, 에이…, 스테고사우루스와 슈퍼맨을 연결하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이건 너무 어렵습니다. 슈퍼맨과 달리, 샘 브로디에게 스테고사우루스 장난감이 있는 것처럼, 고지라와 이 공룡을 연결하기는 쉽습니다.
적어도, 고지라와 스테고사우루스를 연결하기는 가능합니다. 이게 가능한 것처럼, <슈퍼맨 리턴즈>보다 <고지라>와 <공룡 백과>를 연결하기는 가능합니다. 일본 먹거리 문화가 후무스보다 낫토와 돈까스가 비슷하다고 분류하는 것처럼, 블록버스터 영화부터 사이언스 판타지까지, 이 특성들은 <공룡 백과>보다 <고지라>와 <슈퍼맨 리턴즈>가 비슷하다고 분류합니다. 아니면, 동물 권리가 돈까스보다 낫토와 후무스가 비슷하다고 분류하는 것처럼, 스테고사우루스는 <슈퍼맨 리턴즈>보다 <고지라>와 <공룡 백과>가 비슷하다고 분류합니다. 어떤 쪽이 커다란 가치를 얻을 수 있나요?
대답은 전자보다 후자입니다. 블록버스터 영화보다 스테고사우루스는 커다란 가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블록버스터 영화와 생물 다양성을 연결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슈퍼맨 리턴즈>에서 생물 다양성은 커다란 부분이 아닙니다. 비단 <슈퍼맨 리턴즈>만 아니라 다른 블록버스터 영화들 역시 비슷합니다. 이 영화들과 달리, 스테고사우루스와 생물 다양성을 연결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만약 생명 진화 역사에서 이 다양성이 진화하지 않았다면, 만약 자연 생태계에서 이 다양성이 번성하지 않았다면, 스테고사우루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생물 다양성은 중요합니다.
[슈퍼맨과 달리, 이 서적은 허구보다 현실(사실)을 설명합니다.]
초인 영웅으로서, 슈퍼맨과 생물 다양성을 연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비단 슈퍼맨만 아니라 블록버스터 영화 역시 비슷합니다. 이 영화와 생물 다양성을 연결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블록버스터 영화와 달리, 만약 생명 진화 역사에서 생물 다양성이 진화하지 않았다면, 스테고사우루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 공룡에게 생물 다양성은 중요합니다. 아니, 본질적으로, 스테고사우루스는 생물 다양성에게 의지합니다. <공룡 백과>는 이것을 인정할 겁니다. 만약 <슈퍼맨 리턴즈>보다 <고지라>와 <공룡 백과>가 비슷하다면, 이건 생물 다양성이 커다란 가치를 얻는다는 뜻일 겁니다.
비단 스테고사우루스만 아니라 인류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인류가 자연(야생)보다 문명에 속한다고 해도, 자연(야생)과 인류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적어도, 만약 자연이 커다란 위기에 빠진다면, 비단 야생만 아니라 인류 역시 안전하지 않을 겁니다. 스테고사우루스는 야생 동물입니다. 이 골판 공룡처럼, 재규어는 야생 동물입니다. 삼림 파괴가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에, 재규어는 커다란 위기에 빠집니다. 왜 이 재앙이 이 수준을 넘어섰나요? 대답은 세계화 자본주의입니다. 인류 문명은 이 경제에게 종속됩니다. 세계화 자본주의는 돈, 돈, 돈, 돈, 돈, 돈벌이에게 집착합니다.
야생 서식지로서, 열대 밀림은 많은 돈들을 벌지 못합니다. 이 환경보다 대규모 산업은 많은 돈들을 법니다. 세계화 자본주의가 돈벌이에게 집착하기 때문에, 이 경제는 야생 서식지들보다 대규모 산업들이 증가하기 원합니다. 세계화 자본주의 때문에, 대규모 산업들은 증가합니다. 이 산업들과 달리, 야생 서식지들은 감소합니다. 야생 서식지들로서, 열대 밀림들은 감소합니다. 재규어에게 이 환경은 중요한 고향입니다. 세계화 자본주의 때문에, 재규어는 중요한 고향을 잃습니다. 이 경제와 이 야생 동물은 대립적인 관계입니다. 재규어처럼, 가난한 사람들은 다르지 않습니다.
세계화 자본주의가 돈벌이에게 집착하기 때문에, 대규모 산업들은 너무 많은 석탄들, 석유들을 태웁니다. 이건 지구 가열화입니다. 21세기 초반, 지구 가열화는 위험한 수준입니다. 이 행성급 재앙 때문에, 극단적인 기후들은 발생합니다. 기록적인 폭우부터 살인적인 폭염까지, 가난한 사람들은 커다란 위기에 빠집니다. 세계화 자본주의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기후 피해자들이 됩니다. 비록 이 사람들이 커다란 위기에 빠진다고 해도, 세계화 자본주의는 이 위기를 외면합니다. 기후 피해자들과 세계화 자본주의는 대립적인 관계입니다. 이 악랄한 경제가 재규어를 몰아내는 것처럼.
21세기 초반, 지구 가열화는 아주 커다란 화제입니다. 이 화제는 환경 운동에 속합니다. 기후 정의가 환경 운동에 속하기 때문에, 이 운동은 커다란 가치를 얻습니다. 환경 운동은 비단 기후 정의만 아니라 생물 다양성 역시 고민합니다. 이 운동이 커다란 가치를 얻기 때문에, 생물 다양성은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이 기준으로서, <슈퍼맨 리턴즈>보다 <고지라>와 <공룡 백과>는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아무리 <공룡 백과>보다 <고지라>와 <슈퍼맨 리턴즈>가 비슷하다고 해도, 기후 정의보다 블록버스터 영화는 커다란 화제가 되지 않습니다.
※ 영화 <Superman Returns> 스틸샷 출처:
http://www.imdb.com/title/tt0348150/mediaindex/?ref_=tt_mv_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