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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고지라: 괴수왕> 예고편의 신성한 세뇌 본문

SF & 판타지/크고 작은 괴수들

<고지라: 괴수왕> 예고편의 신성한 세뇌

OneTiger 2018. 7. 25. 20:07

[이렇게 장엄하고 우아한 거대 괴수 이야기가 계급 투쟁을 간과한다면, 그건 너무 안타까울 겁니다.]



얼마 전에 영화 <고지라: 괴수왕> 예고편이 나왔군요. 예고편은 지구가 멸망하는 분위기를 한껏 강조하고, 어떻게 인간들이 지구 멸망에 대처하고, 어떻게 괴수들이 깨어나는지 보여줍니다. 특히, 지구가 멸망하는 분위기와 네 괴수들이 선사하는 압도감은 가히 전율입니다. <콩: 해골섬>이 다소 현실적이고 희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반면, <고지라: 괴수왕>은 초자연적이고 암울하고 장대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콩: 해골섬>에서 킹콩과 스컬 크롤러들은 그저 거대 괴수였으나, <고지라: 괴수왕>에서 괴수들은 걸어다니는 자연 재해입니다.


이번 영화는 <콩: 해골섬>의 분위기를 이어오지 않고, 곧바로 <고지라>에서 더욱 암울하고 거대하게 파고드는 것 같아요. 게다가 주연 네 괴수들은 각자 다른 자연 재해들을 상징하는 것 같아요. 고지라는 해일, 라돈은 화산 폭발, 킹기도라는 천둥이나 벼락이나 폭풍. (선역이기 때문에) 모스라는 자연 재해보다 생명력이 넘치는 태양열에 가깝군요. 영화가 뚜껑을 열기 전까지, 아무도 함부로 추측하지 못하겠으나, 네 괴수들은 저런 측면들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분위기와 규모 덕분에 괴수 팬들은 환호성을 지를 것 같아요.



<고지라: 괴수왕> 예고편의 특징들 중 하나는 예고편이 꽤나 우아하고 아름답다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대형 상업 영화들은 격렬하고 빠른 분위기를 강조합니다. 대형 상업 영화계에서 이런 지구 멸망 아포칼립스들은 격렬하고 빠른 액션으로 이어지죠. 이런 예고편들은 관객들에게 신나고 강렬한 액션을 보라고 초청합니다. 반면, <고지라: 괴수왕> 예고편은 격렬하거나 빠르지 않습니다. 대신 이 예고편은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배경 음악인 드뷔시의 <달빛> 덕분에 몇몇 장면은 아예 신성에 근접합니다. 더 이상 괴수들은 그저 파괴적인 괴수들이 아니라 고대 신들 같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전작 <고지라>와 비슷할지 모르겠어요. 전작 <고지라>는 액션을 절대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고지라>에는 일반적인 액션 영화들이 자랑하는 총격 교전이나 자동차 추격이 나오지 않았어요. 그것 때문에 여러 관객들은 <고지라>가 지루하고 졸린 영화라고 평가하나, 저는 그게 압도적인 묵시록 분위기를 유지했다고 생각합니다. 총격 교전이나 자동차 추격 장면은 재미를 보탰을지 모르나, 묵시적인 분위기를 많이 해쳤을 거에요. 게다가 영화 중반부터 고지라와 무토가 싸움박질을 벌였다면, 관객들은 멸망하는 분위기보다 신나는 싸움박질에 시선을 집중했겠죠. <고지라>는 액션을 버리고 분위기를 취했어요. 저는 그게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고지라: 괴수왕>이 얼마나 액션에 비중을 둘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지라: 괴수왕>이 액션보다 분위기로 계속 승부했으면 좋겠습니다. 액션을 강조하는 대형 상업 영화들은 많습니다. 아니, 거의 대부분 지구 멸망 아포칼립스 영화들은 액션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지라: 괴수왕>이 신성하고 압도적인 분위기를 강조한다면, 그건 독특한 차별성이 될 수 있겠죠. 뭐, 흥행은 떨어지겠으나, 저는 이런 괴수 영화가 <트랜스포머>나 <어벤저스> 같은 영화를 따라잡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트랜스포머>나 <어벤저스>에는 관객들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인간형 영웅들이 나옵니다. 변신 로봇들과 초인들 모두 인간형 영웅이죠.


반면, <고지라: 괴수왕>에서 주역을 맡은 네 괴수들은 유사 인간이 아닙니다. 그들은 야생 동물처럼 생겼고, 우리에게 말을 건네지 않아요. 따라서 관객들은 괴수들에게 감정을 덜 이입할 테죠. 아무리 모스라가 신성한 선역이라고 해도, 관객들은 말도 하지 못하는 거대 나방보다 스파이더맨이나 아이언맨이나 옵티머스 프라임이나 범블비에게 더 감정을 이입할 수 있을 겁니다. <트랜스포머>와 <고지라>를 비교한다면, 우리는 그런 점을 감안해야 할 겁니다.



한편으로 <고지라: 괴수왕> 예고편은 전형적인 오해 하나를 저지릅니다. 예고편에는 인간이 지구 생태계를 망친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저는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하겠으나, 그건 인류가 자연 환경을 파괴했다는 뜻 같습니다. 이는 흔히 우리가 마주칠 수 있는 형이상학적인 자연관입니다. 인류는 자연 환경을 파괴하지 않았습니다. 기후 변화는 인류 문명이 저지른 범죄가 아닙니다. 인류 문명에는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이 있습니다. 캐나다의 남자 재벌 사장과 볼리비아의 가난한 여자 원주민은 서로 똑같은 인간이 아니죠. 하나는 지배 계급이고, 다른 하나는 피지배 계급이죠.


캐나다의 남자 재벌 사장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막대한 이득을 얻으나, 볼리비아의 가난한 여자 원주민은 자본주의에게 착취를 당합니다. 그렇게 자본주의 기득권들이 이윤을 축적하는 동안 기후 변화는 발생했습니다. 대기업들이 계속 산업을 발전시키고 산업 폐기물들을 버리기 때문에 자연 환경은 파괴되었습니다. 왜 이게 인류의 탓입니까? 이건 자본주의의 탓입니다. 빈곤선에서 30억 명의 사람들은 허덕입니다. 그 30억 명의 빈곤선 역시 인류입니다.



왜 우리가 이런 약자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웁니까? 우리는 지배 계급, 자본주의를 비판해야 할 겁니다. 이미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자본주의는 열대 우림 파괴라는 근대적인 환경 오염을 저질렀습니다. 21세기의 각종 환경 오염들과 기후 변화는 그런 일환이고요. 하지만 <고지라: 괴수왕> 예고편은 그런 사실을 지적하지 않고, 물귀신처럼 약자들까지 끌고 들어가는군요. 아무리 모스라를 신성하게 연출한다고 해도, <고지라: 괴수왕>은 그런 영화겠죠. <고지라: 괴수왕>은 계급 투쟁을 간과하고 지배 계급을 옹호하는 영화겠죠.



※ 어쩌면 이 영화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라돈을 로단이라고 부를지 모르겠습니다. 으음, 어렸을 때부터 라돈이라는 이름을 들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그런 상황이 꽤나 어색할 것 같아요. 아마 저 같은 사람은 한둘이 아니겠죠. 국내 한국어 자막 역시 로단이라고 나올지 모르고…. (배우가 로단이라고 발음하기 때문에 자막 역시 로단이라고 표기하겠죠.) <고지라: 괴수왕> 같은 영화 자체는 반가우나, 이런 이름 설정은 부작용이 아닌 부작용 같군요. 앞으로 사람들과 <고지라: 괴수왕>을 이야기할 때마다 이름 논쟁을 벌여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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