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고지라가 정말 '자연의 힘'을 상징할 수 있는가 본문
※ 이 게시글에는 2014년 영화 <고지라>의 치명적인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웅장하게 승리를 포효하는 고지라. 하지만 오직 고지라만 '자연의 힘'일까요.]
영화 <고지라>에는 (제목처럼) 고지라가 나옵니다. 하지만 고지라는 유일무이한 거대 괴수가 아닙니다. <고지라>는 고대 지구에 수많은 거대 괴수들이 존재했다고 이야기하고, 그들이 여전히 건장하게 살아있다고 보여줍니다. 만화 <고지라: 어웨이크닝>은 이런 설정을 좀 더 확대하고, 이른바 거대 괴수 생태계를 묘사합니다. 그 덕분에 <고지라>에서 고지라는 그저 도시를 때려부수는 재앙이 아닙니다. 고지라는 장대하고 경외적인 자연 생태계에 속하고, 자연의 힘을 상징합니다. 자연 생태계는 생물 다양성과 먹이 그물망이고, 먹이 그물망은 고지라 이외에 다른 거대 괴수들을 보여줘야 합니다.
만화 <고지라: 어웨이크닝>은 시노무라를 보여주고, 영화 <고지라>는 무토 부부를 보여줍니다. 고지라 팬들이 예상한 것과 달리, 영화 <고지라>에 이른바 비슈누 괴수는 나오지 않습니다. 2012년 코믹콘이 <고지라> 예고편(이른바 오펜하이머 예고편)을 보여줬을 때, 예고편에는 여러 다리들이 달린 붉은 괴수가 나왔습니다. 붉은 괴수가 나올 때,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비슈누를 언급했기 때문에, 괴수 팬들은 여러 다리들이 달린 붉은 괴수를 비슈누 괴수라고 불렀죠. 다들 고지라가 이 놈을 때려잡을 거라고 예상했고요.
하지만 영화 <고지라>는 비슈누 대신 무토 부부를 이야기합니다. 누가 나오든, <고지라: 어웨이크닝>에서 시노무라가 그랬던 것처럼, 고지라는 적대 괴수를 사냥했을 겁니다. 거대 괴수 생태계에서 고지라는 알파 프레데터, 최상위 포식자이고, 다른 괴수들을 사냥합니다. (하지만 킹기도라는 고지라보다 훨씬 상위 포식자 같군요. 뭐, <고지라>가 나왔을 때, 영화 제작진은 킹기도라를 염두에 두지 않았겠죠.) 고지라가 그것들을 사냥하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계속 번식할 테고, 생물 다양성을 무너뜨릴 겁니다. 그래서 세리자와 박사는 고지라가 자연의 균형을 잡는다고 말하죠.
그래서 어떤 평론가들이나 관객들은 <고지라>가 가이아 이론에 기반한다고 평가하고요. 이런 평가가 옳지 않다고 해도, 분명히 <고지라>는 자연 생태계가 스스로 균형을 잡는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인류가 개입하지 않는다고 해도, 장대한 자연 생태계는 스스로 번성하고 균형을 잡을 수 있어요. 고지라는 그런 논리를 상징하고요. 이런 관점에서 2014년 영화는 1954년 원작 영화와 많이 다릅니다. 1954년 영화는 공포를 전달합니다. 1954년 영화를 장악하는 가장 커다란 감성은 공포입니다. 전략 병기가 일본을 무참하게 공격했기 때문에 1954년 영화는 전략 병기가 공포라고 강렬하게 이야기합니다.
2014년 영화는 다소 다릅니다. 2014년 영화에서 핵 발전소는 여전히 위험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걸 공포로 몰고 가지 않습니다. 인류는 온갖 삽질들을 저지르나, 자연 생태계는 인류보다 위대하고, 따라서 자연 생태계는 스스로 균형을 잡을 수 있습니다. 인류는 그저 자신들이 저지른 뻘짓들을 수습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핵 발전소는 모두를 학살하는 공포가 아니라 인류가 저지르는 뻘짓입니다. 그런 뻘짓은 슬픈 비극들을 부릅니다. 하지만 슬픈 비극들이 나타난다고 해도, 결국 자연의 힘은 그것들을 덮을 겁니다. 위대한 자연의 힘(고지라)은 그런 뻘짓들을 능가합니다.
따라서 2014년 영화는 경외를 선사합니다. 고지라는 공포가 아니라 경외이고, 자연의 힘을 이야기하는 존재로서 고지라는 승화합니다. 1954년 영화와 2014년 영화는 각자 다른 감성과 주제를 늘어놓습니다. 이건 시대적인 차이, 문화적인 차이, 사회적인 차이겠죠. 1954년 일본은 전략 병기나 핵 발전소를 이용해 위대한 자연의 힘을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겠죠. 일본이 공포에 질렸기 때문에. 어쨌든 이런 차이들을 고려한다고 해도, 관객들은 서로 다른 영화를 좋아할 겁니다. 누군가는 1954년 영화를 좋아할 테고, 누군가는 2014년 영화를 좋아하겠죠. (저는 2014년 영화를 더 좋아합니다. 1954년 영화는 비극적이고 강렬하나, 2014년 영화는 정말 경외적이죠.)
하지만 이런 경외에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문제는 후반부 전투 장면에서 인간이 고지라를 돕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때 무토 부부는 고지라를 신나게 때리고 들이받고 물어뜯고 할퀴는 중이었습니다. 고지라는 저항하나, 무토 부부를 제압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인간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폭발물 처리반이 무토 둥지를 날리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폭발물 처리반이 무토 둥지를 날려버렸기 때문에 무토 부부는 둥지로 주의를 돌렸습니다. 고지라는 체력을 회복할 수 있었고, 방사열선을 내뿜을 수 있었어요. 방사열선은 암컷 무토를 쓰러뜨렸고, 고지라는 수컷 무토를 처리할 수 있었죠.
1:1 싸움에서 고지라는 압도적으로 무토를 제압합니다. 거대한 암컷 무토조차 고지라에게 일방적으로 밀리죠. 하지만 폭발물 처리반이 무토 둥지를 날리지 않았다면, 무토 부부는 번갈아 고지라를 공격했을 테고, 결국 고지라는 죽었을 겁니다. 고지라가 죽었다면, 무토 부부는 알들을 깠을 테고, 무토들은 지구 생태계를 점령했겠죠. 이게 자연의 균형일까요? 이게 자연이 균형을 잡는 과정일까요? 세리자와 박사는 이게 자연의 균형이라고 생각할까요? 무토 부부가 고지라를 죽인다면, 그것 역시 자연의 균형일까요?
따라서 '자연의 힘'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고지라가 정말 '자연의 힘'이라면, 폭발물 처리반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해도, 고지라는 무토 부부를 제압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았어요. 물론 관객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고지라는 하나가 아닐지 모릅니다. 심해 어딘가에는 또 다른 고지라가 있고, 그 고지라는 다시 무토들을 처치했을지 모릅니다. 아니면 고지라 이외에 다른 괴수들은 무토 부부에게 영향을 미칠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설사 무토 부부가 지구 생태계를 점령했다고 해도, 자연 생태계 그 자체는 붕괴하지 않습니다.
무토 생태계 역시 자연 생태계입니다. 모습이 다르다고 해도, 자연 생태계는 사라지지 않아요. 이미 지구에 다섯 멸종들이 있었던 것처럼, 무토 부부는 여섯째 멸종을 일으키는지 모르죠. 하지만 생명체들이 모습을 바꾸고 사라진다고 해도, 장엄한 자연 생태계(무토 생태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거대한 공룡들이 사라지고 포유류들이 득세했다고 해도, 이게 자연의 균형이 깨지는 사건인가요? 그렇지 않죠. 그것처럼 고지라와 무토 부부와 다른 괴수들 역시 총체적으로 자연 생태계에 속할 겁니다. 비록 <고지라>는 고지라를 많이 띄워주었으나, 관객들은 이런 시각으로 괴수 생태계를 바라볼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