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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HoMM>의 삼림 도시보다 <블록후드>의 삼림 도시 본문

생태/상호 작용으로서 사회와 환경

<HoMM>의 삼림 도시보다 <블록후드>의 삼림 도시

OneTiger 2019. 3. 20. 17:57

[사이언스 픽션과 중세 유럽 판타지는 모두 삼림 도시를 말할 수 있으나, 양쪽은 서로 다릅니다.]



SF 장르와 판타지 장르에서 '삼림 도시'는 서로 다른 측면을 드러냅니다. SF 장르와 판타지 장르에게 삼림 도시는 상상의 영역입니다. 현대 인류 문명에서 삼림 도시는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류 문명에서 삼림 도시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SF 장르와 판타지 장르가 그리는 삼림 도시는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삼림 도시는 자연 친화적인 문명을 나타낼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장치입니다. 흔히 우리는 도시가 자연과 대비된다고 여깁니다. 도시는 자연이 침범하지 못하는 구역입니다. 도시가 나타날 때, 도시는 자연을 훼손합니다. 자연은 쉽게 도시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온갖 포스트 아포칼립스들은 멸망 이후 자연이 도시를 침범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앨런 와이즈먼이 쓴 <인간 없는 세상>을 보세요. <인간 없는 세상>의 한국어 번역본 표지 그림은 도시에 침투한 자연입니다. 녹색 식물들은 건물들을 덮었고, 야생 조류는 도시를 날아다닙니다. 리처드 제프리스가 쓴 포스트 아포칼립스 제목은 <런던 이후 혹은 야생 영국>입니다. 런던이 멸망했기 때문에 영국은 야생이 되었습니다. 비디오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 역시 이런 사고 방식을 보여줍니다. <런던 이후>와 <인간 없는 세상>처럼, 인류 멸망 이후 녹색 수풀은 도시를 뒤덮습니다.



윌 스미스가 주연한 <나는 전설이다> 역시 다르지 않아요. <나는 전설이다>에서 가끔 주인공과 탐지견은 야생 동물과 마주칩니다. 심지어 탐지견은 사냥 충동을 느끼고 야생 동물을 쫓아다닙니다. 인류 문명이 멸망했기 때문에 야생 동물들은 마음대로 도시를 활보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정말 인류 문명이 멸망한다면, 동물원에서 야생 동물들은 탈출할지 모릅니다. 아무르 호랑이가 동물원을 탈출하고 도시를 누빈다면, 그건 정말 장관일 겁니다. 어쩌면 인간 생존자들은 이런 도시 호랑이를 두려워할지 모릅니다. 제임스 발라드가 쓴 소설 <불타버린 세계>는 그런 장면을 암시합니다.


비록 이 소설은 가뭄 아포칼립스이고, 자연은 도시를 침범하지 않으나, 야생 동물은 멸망한 도시를 차지할지 모릅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멸망한 도시, 동물원에서 탈출한 아무르 호랑이, 도시 호랑이와 대치하는 소수 인간 생존자들. 이건 괜찮은 SF 이야기가 될지 모릅니다. 이런 이야기는 현대 산업 문명과 환경 오염과 생물 다양성을 고찰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19세기 사이언티픽 로망스부터 21세기 비디오 게임까지, SF 장르는 도시와 자연이 대립한다고 말합니다. 정말 도시와 자연이 대립할까요. 도시와 자연이 서로 어울리지 못할까요. 제이 레이크가 쓴 <밤의 숲 속에서>는 풀뿌리 생태주의자들의 산맥 도시를 보여주고 어떻게 도시와 자연이 어울리는지 이야기합니다.



이런 산맥 도시는 도시와 자연이 어울리는 사례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산맥 도시는 일반적인 도시가 아닙니다. 도시라는 공간적인 개념은 있으나, 도시라는 실체는 흐릿합니다. 오히려 산맥 도시는 임시 거주지에 가깝습니다. 풀뿌리 생태주의자들은 유목민들에 가깝습니다. 도시가 위기에 처할 때, 그들은 빨리 짐들을 챙기고 다른 곳으로 튈 수 있습니다. 풀뿌리 생태주의자들은 오래 눌러앉지 않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떠날 수 있고, 언제나 정착할 수 있고, 다시 언제나 떠날 수 있죠. 그들에게 도시는 더 이상 지리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도시는 물리적인 부동산이 아닙니다.


풀뿌리 생태주의자들에게 도시는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모이는 공동체입니다. 도시는 공동체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동산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입니다. 그래서 풀뿌리 생태주의자들이 함께 모인다면, 언제나 그건 도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풀뿌리 공동체에서 도시와 자연은 대립하지 않겠죠. 물론 이건 꽤나 피상적인 도시 개념입니다. <밤의 숲 속에서>는 도시라는 공간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물리적인 공간 없이, 어디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정착할 수 있나요? 폭력적인 자본주의가 풀뿌리 사회 구성원들을 내쫓고 내쫓고 내쫓고 다시 내쫓는다면, 그들은 영원히 정착하지 못할 겁니다. 결국 도시라는 물리적인 공간은 중요합니다.



전통적인 도시 안에서 자연과 도시가 어울릴 수 있을까요? 부동산을 부정하지 않는 도시에서 자연과 도시가 어울릴 수 있을까요? 게임 <블록후드>는 그게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블록후드>는 건설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당연히 부동산, 건물들은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블록후드>는 다른 건설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제시하지 않는, 새로운 건물을 보여줍니다. 그건 삼림 건물이죠. 이 게임에서 게임 플레이어는 삼림 건물을 지을 수 있습니다. 발코니에는 풀밭들이 있고, 옥상에는 작은 숲이 있습니다. 높고 낮은 건물들은 서로 다리들을 연결하고, 다리들은 작은 숲이나 풀밭이 됩니다.


건물 벽면 역시 덩굴이나 다른 식물들을 키울 수 있는 공간입니다. 옥상들과 다리들에서 작은 숲이 자랄 때, 작은 숲은 야생 동물들을 부릅니다. 건물 옥상은 사슴이 살아가는 서식지가 될 수 있습니다. 이건 다소 비현실적인 상상일지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는 삼림 건물을 지을 수 있을 겁니다. 건물 옥상에서 우리는 작은 숲을 키울 수 있겠죠. 하지만 거기에서 야생 동물들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사슴이나 멧돼지처럼 커다란 야생 동물들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건 어렵겠죠. 그렇다고 해도 <블록후드>가 보여주는 삼림 건물들은 정말 환상적입니다. 옥상과 발코니와 가교에서 숲과 풀밭을 키우는 도시?



게다가 <블록후드>에서 삼림 건물들은 환경 오염들을 정화합니다. 삼림 건물들이 환경 오염들을 정화할 때, 도시 주변에는 야생이 자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도시 주변에서 숲은 울창한 나무들을 가꿀 수 있고, 야생 동물들은 숲으로 몰려듭니다. 이건 현실적인 상상력입니다. 비록 삼림 건물 옥상에서 멧돼지가 살지 못한다고 해도, 삼림 건물들이 늘어난다면, 야생 지대에서 동물들은 숨통을 틀 수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삼림 건물을 짓기 위해 시민들은 서로 소통하고 지식들을 쌓아야 합니다. 하늘에서 삼림 건물은 뚝 떨어지지 않습니다. 시민들이 평등하게 소통하고, 지식들을 쌓고, 산업 자본주의에 매달리지 않을 때, 시민들은 삼림 건물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블록후드>는 맹목적인 산업 개발을 부정하고 인간과 야생이 소통하기 바랍니다. 단편 소설 <밤의 숲 속에서>는 꽤나 공상적이나, <블록후드>는 훨씬 낫습니다. 현실 속에서 우리가 정말 산업 자본주의에 반기를 들고 서로 평등하게 소통한다면, 우리 역시 삼림 건물들을 짓고 야생 지대를 보호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SF 장르에서 삼림 건물은 생태주의와 평등한 사회와 환경 보호를 이야기할 수 있죠. 반면, 판타지 장르는 다소 다릅니다. 판타지 장르에서 삼림 도시는 우드 엘프들의 영역입니다. 숱한 중세 유럽 판타지들에서 우드 엘프들은 삼림 도시들을 보여줍니다.



소설 <호비트>부터 비디오 게임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까지, 중세 유럽 판타지들에는 우드 엘프들과 삼림 도시들이 있습니다. 숲에는 아주 거대한 나무들이 자라고, 굵은 나뭇가지들 위에 우드 엘프들은 유려한 건물들을 짓습니다. 종종 나뭇가지들은 건물들을 가로지르나, 우드 엘프들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나뭇가지가 건물을 가로지른다고 해도, 우드 엘프들은 그게 건축 미학이라고 여깁니다. 나무들과 건물들은 서로 수많은 다리들을 잇고, 숲 천장에는 다양한 다리들이 있습니다. 종종 우드 엘프들은 아예 나무 그 자체를 건물로 만듭니다.


그들은 마법으로 나뭇가지를 키우거나 나무를 다듬습니다. 그래서 나뭇가지가 건물을 가로지른다고 해도, 우드 엘프들은 걱정하지 않아요. 만약 나무 뿌리가 인간이 지은 건물을 파고든다면, 인간들은 빨리 나무 뿌리를 자르기 원할 겁니다. 언제 나무 뿌리가 건물을 무너뜨릴지 아무도 그걸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드 엘프들은 그런 사태를 걱정하지 않죠. 설사 나무 위에 건물을 짓지 않는다고 해도, 우드 엘프들은 유려하고 화사한 녹색 건물들을 지을 테고 그런 건물들은 숲을 방해하지 않겠죠. 안토니 가우디는 곡선 미학이 두드러지는 우드 엘프 건물들이 정말 자연적이라고 감탄할지 모릅니다.



삼림 건물과 생태주의 공동체를 강조하는 <블록후드>처럼, 우드 엘프들 역시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기 원합니다. SF 장르와 판타지 장르에서 삼림 도시는 자연 생태계와 어울리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블록후드>의 삼림 도시와 <HoMM>의 삼림 도시는 서로 다릅니다. <블록후드>에서 시민들은 평등하게 소통하고 삼림 건물을 짓습니다. 우드 엘프들에게는 이런 평등한 소통이 없습니다. 어떻게 왕족과 귀족과 신분 차별이 있는 사회가 평등해질 수 있어요?


만약 우드 엘프들이 평등하게 소통한다고 해도, 판타지 삼림 도시는 우리에게 아무 교훈도 주지 못합니다. 우드 엘프들은 산업 자본주의와 대적하지 않죠. 현실 속에서 삼림 도시를 짓기 위해 우리는 산업 자본주의와 싸워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HoMM>의 삼림 도시보다 <블록후드>의 삼림 도시는 우리에게 훨씬 많은 교훈들을 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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