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폐쇄 인공 생태계와 평등한 생태계 관리 본문
[외계 개척에는 폐쇄 생태계가 필수적일 겁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폐쇄 생태계를 관리할지 고민해야 할 거에요.]
구글링 이미지에서 사람들이 인공 생태계(artificial ecosystem)를 검색한다면, 사람들은 여러 그림들을 구경할 수 있을 겁니다. 텃밭이나 정원이나 농장은 가장 흔하고 대표적인 인공 생태계일 겁니다. 이런 것들이 워낙 흔하기 때문에 정원이나 농장을 인공 생태계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고구마 텃밭 따위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규모가 작다고 해도, 분명히 고구마 텃밭은 인위적인 자연이고 인공 생태계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어항은 인공 생태계가 될 수 있고, 거대한 수족관은 훨씬 그렇습니다. 어항이나 수족관은 그저 다양한 동물들을 전시할 뿐이나, 일부 어항들과 수족관들은 영양분들이 순환하는 체계를 갖춥니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삼림은 야생과 쉽게 맞닿을 수 있어요. 어쩌면 국립 공원을 인공 생태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지 모르나, 국립 공원 역시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국립 공원 레인저들이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관리하지 않는다면, 국립 공원은 존재하지 못해요. 숱한 해양 동물들에게 바다에 침몰한 선박은 피난처가 될 수 있고, 그래서 사람들은 일부러 선박들을 가라앉힙니다. 해양 동물들에게 산호초들이 숲이 되는 것처럼, 침몰한 선박들은 인공적인 산호초 숲이 될 수 있어요. 이런 것들은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인공 생태계들입니다.
하지만 인공 생태계는 훨씬 거시적인 것들을 뜻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인류 문명이 지구 궤도에 거대한 거울을 올려놓거나 수많은 입자들을 뿌린다면, 인류 문명은 기후를 조절할 수 있을 겁니다. 기후가 바뀐다면, 식생 역시 바뀔 테고, 바뀐 식생은 인공 생태계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우주 개척자들이 달이나 화성이나 다른 외계 행성들 및 위성들을 지구화한다면, 그것들 역시 인공 생태계가 될 수 있어요. 행성 공학이 너무 거창하기 때문에 이런 행성 공학을 인공 생태계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드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행성 공학을 인공 생태계라고 부른다고 해도, 이건 별로 틀리지 않을 겁니다. 바이오스피어 2 실험실 같은 것들 역시 인공 생태계에 속할 겁니다.
우주 정거장이나 궤도 거주지나 오닐 원통이나 소행성 내부에서 인류가 농장이나 숲을 조성한다면, 그것들 역시 인공 생태계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인공 생태계들은 행성 공학과 다소 다를 겁니다. 바이오스피어 2 실험실, 우주 정거장의 농장, 오닐 원통의 숲은 폐쇄 생태계(closed ecosystem)라고 불릴 수 있어요. 인간이 우주선이나 궤도 거주지 같은 인위적인 폐쇄 공간을 만들고, 인간이 그 공간 안에 자연 생태계를 집어넣는다면, 이건 폐쇄 생태계가 될 거에요. 만약 인류가 우주에 생명의 씨앗을 뿌리거나 아주 멀리 항해하고 싶다면, 이런 폐쇄 생태계는 꽤나 중요할 겁니다. 외계 행성을 지구화하기 전까지, 인류는 이런 폐쇄 생태계에 의지해야 할 겁니다.
광대하게 열린 생태계보다 이런 폐쇄 생태계는 훨씬 섬세할 겁니다. 폐쇄 생태계는 다른 순환 체계들과 교류하지 못합니다. 폐쇄 생태계는 거의 완벽하게 자급자족해야 하고, 만약 작은 뭔가가 하나 잘못된다면, 전체 체계는 크게 망가질지 모릅니다. 만약 망가진 폐쇄 생태계가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영원히 망가진 생태계는 복원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만약 우주 정거장이나 궤도 거주지가 행성이나 위성과 가깝다면, 이런 폐쇄 생태계는 빨리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장거리 우주선이 아득하고 머나먼 우주를 혼자 항해한다면, 아무도 장거리 우주선을 도와주지 않을 겁니다.
만약 장거리 우주선 속의 폐쇄 생태계가 망가진다면, 승무원들은 스스로 생태계를 복원해야 합니다. 그들이 복원하지 못한다면, 우주 항해는 끝장일 겁니다. 이런 위험 때문에 행성 공학이나 다른 인공 생태계보다 폐쇄 생태계는 훨씬 흥미로운 설정이 될 수 있습니다. 분명히 행성 공학은 거창하고 미래적인 설정이고, 그래서 많은 SF 작가들은 행성 공학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아무리 장거리 우주선이 거대하다고 해도, 행성보다 우주선은 작습니다. 그래서 SF 작가가 뭔가 거대한 규모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싶다면, SF 작가는 장거리 우주선보다 행성 공학을 선택할 겁니다.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들과 우주 탐사 소설들은 폐쇄 생태계보다 행성 공학을 훨씬 많이 이야기할지 모릅니다.
규모가 작기 때문에 폐쇄 생태계는 훨씬 민감할지 모릅니다. SF 소설이 그런 민감함을 관찰하고 논의한다면, 폐쇄 생태계 역시 충분히 흥미로운 설정이 될 수 있어요. 게다가 폐쇄 생태계는 이색적인 사회 구조와 맞물릴지 모릅니다. 만약 우주 정거장이나 궤도 거주지나 장거리 우주선에서 사람들이 살아간다면, 그들은 특별한 사회를 이룩할 겁니다. 우주 정거장은 일상적인 장소가 아니고, 따라서 일상적인 사회 구조는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누군가는 독재 정치를 지지할지 모릅니다. 우주 정거장이 폐쇄적인 장소이기 때문에 엄격하고 철저한 독재 정치는 우주 정거장과 어울릴지 모릅니다.
하지만 흔한 오해들과 달리, 독재 정치는 별로 엄격하거나 철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누군가는 훨씬 평등한 사회를 지지할지 모릅니다. 문자 그대로 우주 정거장 사람들이 한 배를 탔기 때문에, 우주 정거장 사람들은 서로 연대하고 평등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주 정거장 주변에 존재하는 행성이 억압적이라면, 행성은 우주 정거장 사회에 함부로 간섭할지 모릅니다. 이런 사건들은 폐쇄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제국주의가 식민지 사회에 간섭하는 것처럼, 주변 행성 역시 우주 정거장에게 간섭할 수 있을 겁니다.
제국주의는 식민지 사회에 간섭하고 식민지 생태계를 황폐화시킵니다. 21세기 오늘날 역시 우리는 제국주의가 무슨 짓거리를 저지르는지 볼 수 있어요. 폐쇄 생태계 소설은 이런 생태계 파괴를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자체로서 폐쇄 생태계는 흥미로운 소재입니다. 하지만 자연과 문명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요. 폐쇄 생태계와 미래 문명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Erik Wernquist가 만든 짧은 SF 동영상 <방랑자 Wanderers>에는 소행성 거주구가 등장합니다. 댄 드리지 콜이 고안했기 때문에 이건 흔히 콜 버블이나 버블월드라고 불리는 우주 주거지입니다. 전반적인 모습은 유명한 오닐 원통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오닐 원통과 달리, 버블월드는 소행성을 뚫고 그 속에 원통을 설치합니다. <방랑자>가 4분짜리 짧은 동영상이기 때문에, <방랑자>는 버블월드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나, 그 광대한 모습은 탄성을 일으킵니다. <방랑자>에서 빛은 원통의 끝에서 들어오고, 그 빛은 원통 내부에 열을 공급하는 것 같습니다. 원통 내부에는 대기가 있고, 지형들과 물이 보입니다. 여기에는 인공적인 자연 생태계가 있을 겁니다. 자연 생태계는 빛을 이용해 순환 체계를 이룩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인공적인 자연 생태계가 지속 가능할까요?
이런 우주 거주지를 볼 때마다, 많은 사람들은 우주 거주지가 인공적인 순환 체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묻습니다. 자연 생태계는 치밀하고 복잡한 체계이고, 인공적인 생태계는 절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심지어 사람들은 작은 어항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합니다. 작은 어항은 사소한 문제 같습니다. 하지만 심지어 우리가 작은 어항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버블월드 같은 거대한 인공 생태계를 계속 유지하지 못할 겁니다. 버블월드는 어항이 상대조차 하지 못하는 아주 거시적인 생태계이고, 따라서 인공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오만 가지들을 고려해야 할 겁니다.
작은 실수 하나는 치명적인 부작용으로 커질지 모르고, 이런 부작용은 다른 문제들을 연이어 부를지 모릅니다. 이런 문제들이 뒤섞인다면, 인공 생태계는 무너질 테고, 사람들은 버블월드를 떠나야 할 겁니다. 만약 사람들이 버블월드를 떠나지 못한다면? 소행성 원통은 아비규환이 될 겁니다. 소행성 내부는 아주 거창한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될 겁니다. 버블월드가 실패한다면, 사람들은 훨씬 더 큰 공황에 빠질 거에요. 이런 공황은 엄청난 폭력이나 학살을 부를지 모르고, 우주 거주지는 비참하게 실패할 겁니다. 세대 우주선이나 오닐 원통이나 버블월드는 로망이 될 수 있으나, 문제가 쉽지 않기 때문에 로망은 로망이 될 겁니다.
한편으로 인공적인 자연 생태계가 무리하지 않고 순환한다고 해도, 폐쇄 인공 생태계에는 여전히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연 생태계를 마음껏 사용하기 원할지 모릅니다. 자연 생태계가 순환할 때, 사람들은 자연 생태계가 무한하다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함부로 쓰레기들을 버리거나 자원들을 낭비하거나 재화들을 과다 생산합니다. 하지만 자연 생태계는 무한하지 않습니다. 자연 생태계는 계속 쓰레기들을 받아주는 무한한 배출구가 아닙니다. 분명히 자연 생태계에는 한계가 있어요.
우리가 그런 한계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자연 생태계가 붕괴할 때, 우리 역시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연출할 겁니다. 따라서 어떻게 자연 생태계를 관리해야 할지 우리는 평등하게 논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수직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사람들이 평등하게 논의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21세기 인류 사회를 보세요. 21세기 인류 사회는 세계화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지배적인 경제 현상은 대량 상품 시장과 막대한 (생산 수단의) 개인적인 소유와 자본가가 임금 노동자를 고용하는 구조를 인정합니다. 이 세 가지는 자본주의를 이루는 중요 요소들입니다.
자본주의 속에서 평등한 논의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자본가는 막대한 생산 수단을 소유했고, 임금 노동자는 그렇지 못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 임금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매달려야 합니다. 자본가는 비용을 낮추기 원하고 임금 노동자를 비인간적으로 취급해요. 실업과 취직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런 자본주의 시장 경제 때문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 임금 노동자는 상품으로서 자신을 포장해야 하고 자본가에게 팔아야 합니다. 먹고 사는 것이 당연한 권리임에도, 임금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자신을 팔아야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 한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굽신거려야 합니다. 게다가 가부장적인 자본주의는 돌봄 노동이 노동이라고 인정하지 않아요.
가부장적인 자본주의에게 돌봄 노동 사회화는 지옥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본주의가 돌봄 노동들을 착취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못할 겁니다. 돌봄 노동들을 착취할 때, 자본주의는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불평등한 사회 구조 속에서 사람들이 평등하게 논의할 수 있나요?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등한 논의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버블월드 같은 우주 주거지가 자본주의를 방치한다면, 자본주의는 인공 생태계를 깎아먹고 결국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연출할 겁니다. 이미 지구라는 자연 생태계는 기후 변화와 핵 폐기물 문제에 부딪혔어요. 버블월드 같은 우주 주거지 생태계는 예외가 되지 못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