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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시대>, 부유함은 빈곤에게 기생한다 본문

사회주의/이윤 극대화 비판

<탐욕의 시대>, 부유함은 빈곤에게 기생한다

OneTiger 2022. 12. 16. 12:20

◈ 장 지글러와 스티븐 핑커는 대립한다. 둘 중에서 누가 옳은가?

한때, '오늘부터 1일'은 유행어였습니다.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오늘부터 1일'을 유행어라고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오늘부터 1일'은 연인이 탄생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연인이야. 우리가 연인이 된 이후, 오늘은 첫 번째 날이야." '오늘부터 1일'은 이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단어는 두근두근 심쿵심쿵~합니다. '오늘부터 1일'이 두근두근 심쿵심쿵하기 때문에, 이 단어는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이 단어와 부정적인 단어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설레는 연인과 부정적인 단어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연인, 탐욕, 기아가 어울리나요? 그건 아닙니다. 연인, 탐욕, 기아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탐욕, 기아가 부정적인 단어이기 때문에, 연인과 탐욕, 기아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연인과 탐욕, 기아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오늘부터 1일'과 탐욕, 기아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1일>은 실수일 겁니다. 케이윌은 <오늘부터 1일>을 불렀습니다. 이 뮤직 비디오는 두근두근 심쿵심쿵~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설레는 청춘은 이 뮤직 비디오를 장식합니다. <오늘부터 1일>에는 설레는 분위기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심쿵~ 분위기가 가득하다고 해도, 이 뮤직 비디오에서 남자 주인공은 <탐욕의 시대>를 집습니다. 장 지글러는 <탐욕의 시대>를 썼습니다.



<탐욕의 시대>는 엄청난 빈곤을 분석합니다. 거대 다국적인 민간 기업들이 너무 탐욕스럽기 때문에, 세계화 남반구(글로벌 사우스)는 엄청난 빈곤에 빠집니다. 이 빈곤은 너무 끔찍합니다. 출판사 홍보 문구는 "인류 문명 역사에서 인류가 처한 비참함의 정도는 그 어떤 시대에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참담하다."라고 주장합니다. 비단 세계화 남반구만 아니라 다른 가난한 사람들 역시 너무 끔찍한 기아에 빠졌습니다. 거대 다국적인 민간 기업들은 이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끔찍한 기아에 빠뜨립니다. 두근두근 심쿵심쿵 분위기와 엄청난 빈곤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늘부터 1일>은 실수입니다.

 

아무리 <오늘부터 1일>이 설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고 해도, 이 설레는 분위기와 <탐욕의 시대>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오늘부터 1일>은 실수입니다. 뮤직 비디오 제작자들은 소품(<탐욕의 시대>)에게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엄청난 빈곤 앞에서 남자 주인공이 설레는 분위기를 연출하기 때문에, <오늘부터 1일>은 실수입니다. 만약 엄청난 빈곤이 사라졌다면, 장 지글러는 <탐욕의 시대>를 쓰지 않았을 겁니다. 만약 장 지글러가 <탐욕의 시대>를 쓰지 않았다면, 남자 주인공은 <탐욕의 시대>를 집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엄청난 기아는 현실입니다. 이 비극은 현실입니다.



엄청난 기아가 현실이기 때문에, 장 지글러는 <탐욕의 시대>를 썼습니다. 그래서 남자 주인공은 이 서적을 집습니다. 엄청난 빈곤 앞에서 남자 주인공은 두근두근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이건 <오늘부터 1일>이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비록 뮤직 비디오 제작자들이 <탐욕의 시대>에게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해도, 이건 그저 실수에 불과합니다. 이 실수는 범죄가 아닙니다. <오늘부터 1일>은 좋은 노래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노래를 좋아할 겁니다. <오늘부터 1일>이 실수이기 때문에, 이게 그저 실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이 심쿵심쿵한 노래를 좋아할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1일>과 <탐욕의 시대>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엄청난 빈곤은 현실입니다. 거대 다국적인 민간 기업들이 너무 탐욕스럽기 때문입니다. 거대 다국적인 민간 기업들은 세계화 자본주의에게 기반합니다. 만약 세계화 자본주의가 사라진다면, 거대 다국적인 민간 기업들 역시 사라질 겁니다. 거대 다국적인 민간 기업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엄청난 빈곤에서 세계화 남반구는 벗어날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계화 자본주의를 타파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오직 급진적인 혁명만 세계화 자본주의를 타파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급진적인 혁명은 부담스러울 겁니다.



급진적인 혁명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사회 민주주의를 지지할 수 있습니다. 사회 민주주의는 자본주의를 통제하기 원합니다. 만약 모든 국가 정부가 사회 민주주의라면, 사회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통제하기 때문에, 세계화 자본주의는 약해질 겁니다. 세계화 자본주의가 약해지기 때문에, 거대 다국적인 민간 기업들은 약해질 겁니다. 거대 다국적인 민간 기업들이 약해지기 때문에, 엄청난 빈곤에서 세계화 남반구는 벗어날 겁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사회 민주주의보다 급진적인 혁명을 선택하기 원합니다. 지금까지, 자본주의에서 사회 민주주의가 절대 독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회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통제하기 원한다고 해도, 자본주의에서 사회 민주주의는 독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회 민주주의에게는 커다란 한계들이 있습니다. 비록 사회 민주주의에게 커다란 한계들이 있다고 해도, 사회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통제하기 원하기 때문에, 우파 지식인들은 사회 민주주의를 환영하지 않을 겁니다. 스티븐 핑커는 토마 피케티를 비난합니다.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을 썼기 때문입니다. 토마 피케티는 비단 <21세기 자본>만 아니라 <자본과 이데올로기>, <사회주의 시급하다> 역시 썼습니다. 우파 지식인들에게 세 서적들은 반가운 손님들이 아닙니다.



◈ 엄청난 빈곤이 줄어드는 중인가? 이게 전부인가? 오직 이것만 전부인가?

스티븐 핑커가 토마 피케티를 비난하는 것처럼, 우파 지식인들에게 <21세기 자본>, <자본과 이데올로기>, <사회주의 시급하다>가 반가운 손님들이 아닌 것처럼, 우파 지식인들은 사회 민주주의를 싫어할 겁니다. 만약 사회 민주주의가 훨씬 왼쪽을 향한다면, 우파 지식인들은 사회 민주주의를 비난할 겁니다. 사회 민주주의보다 공산주의는 훨씬 왼쪽입니다. 그래서 스티븐 핑커는 공산주의를 비난합니다. 우파 지식인들에게 토마 피케티보다 공산주의는 훨씬 불쾌한 손님일 겁니다. 공산주의가 훨씬 불쾌한 손님인 것처럼, 우파 지식인들은 자본주의를 떠받들기 원합니다. 우파 지식인들은 자본주의가 좋다고 주장합니다.

 

스티븐 핑커는 절대적인 빈곤이 줄어드는 중이라고 설명합니다. 세계화 자본주의는 엄청난 부유함을 자랑합니다. 세계화 자본주의가 엄청난 부유함을 자랑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빈곤은 줄어드는 중입니다. 이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스티븐 핑커는 많은 통계 자료들을 제시합니다. 만약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만약 이 통계 자료들이 사실이라면, 세계화 자본주의가 좋은 것인가요? 만약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만약 이 통계 자료들이 사실이라면, 세계화 자본주의가 좋은 것이기 때문에, 인류 문명이 세계화 자본주의를 타파(통제)해서는 안 되나요? 인류 문명이 세계화 자본주의를 유지해야 하나요? 자본주의가 최선인가요? 정말?



반다나 시바는 <누가 지구를 망치는가>를 썼습니다. <탐욕의 시대>처럼, <누가 지구를 망치는가>는 엄청난 빈곤을 분석합니다. 1% 상위 금융 자본가 계급은 엄청난 빈곤을 유발합니다. 1% 상위 금융 자본가 계급은 세계화 자본주의에게 기반합니다. 하늘에서 갑자기 자본주의는 뚝~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누가 지구를 망치는가>는 갑자기 자본주의가 뚝~ 떨어지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어떻게 자본주의가 나타났나요? 대답은 식민지 수탈입니다. 서구에서 자본주의는 나타났습니다. 왜 서구에서 자본주의가 나타났나요? 서구 제국주의가 아메리카 대륙을 수탈했기 때문에, 아메리카 수탈은 자본주의를 위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만약 서구 제국주의가 아메리카를 수탈하지 않았다면, 서구에서 자본주의는 나타나지 않았을 겁니다. 아메리카 수탈처럼, <누가 지구를 망치는가>는 동인도 회사가 자본주의를 위한 계기였다고 설명합니다. 동인도 회사는 자본주의가 식민지 수탈에게 기생한다고 증명합니다. 자본주의가 식민지 수탈에게 기생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는 다르지 않습니다. <누가 지구를 망치는가>는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라고 암시합니다. 동인도 회사처럼, 세계화 자본주의는 엄청난 빈곤을 유발했습니다. 세계화 자본주의는 엄청난 빈곤을 책임져야 합니다. 아무리 절대적인 빈곤이 줄어든다고 해도, 세계화 자본주의는 좋은 것이 되지 못합니다.



아무리 절대적인 빈곤이 줄어든다고 해도, 세계화 자본주의가 엄청난 빈곤을 유발했기 때문에, 세계화 자본주의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스티븐 핑커가 많은 통계 자료들을 내세운다고 해도, 아무리 이 통계 자료들이 객관적인 사실들이라고 해도, 이 통계 자료들은 세계화 자본주의를 떠받들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빌 게이츠를 칭찬합니다. 빌 게이츠가 많은 돈들을 기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1% 상위 금융 자본가 계급에 속합니다. 빌 게이츠는 세계화 자본주의에게 기반합니다. 세계화 자본주의 없이, 빌 게이츠는 1% 상위 금융 자본가 계급에 속하지 못합니다. 세계화 자본주의는 악랄한 수탈입니다. 이 수탈은 엄청난 빈곤을 유발합니다.

 

세계화 자본주의가 엄청난 빈곤을 유발했기 때문에, 빌 게이츠가 세계화 자본주의에게 기반하기 때문에, 아무리 빌 게이츠가 많은 돈들을 기부한다고 해도, 이 기부는 선행이 아닙니다. 스티븐 핑커는 이 기부를 선행이라고 포장하지 못합니다. 비단 빌 게이츠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례들 역시 똑같습니다. 많은 사례들은 절대적인 빈곤이 줄어드는 중이라고 증명합니다. 세계화 자본주의가 엄청난 부유함을 자랑하기 때문에, 이 엄청난 부유함은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이 관점에서 자본주의는 긍정적입니다. 그래서 우파 지식인들은 자본주의를 떠받듭니다. 우파 지식인들에게는 자본주의를 떠받들기 위한 명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인가요?



아무리 세계화 자본주의가 엄청난 부유함을 자랑한다고 해도, 아무리 이 엄청난 부유함이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어떻게 이 엄청난 부유함이 나타났나요? 왜 세계화 자본주의가 엄청난 부유함을 자랑하나요? 대답은 식민지 수탈입니다. 식민지 수탈에서 이 엄청난 부유함은 비롯했습니다. 자본주의는 제국주의와 다르지 않습니다. <누가 지구를 망치는가>는 자본주의를 제국주의에 비유합니다. 이 비유는 문학적인 비교가 아닙니다. 자본주의가 식민지 수탈에게 기생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가 수탈하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악랄한 강도입니다. 아무리 강도가 기부한다고 해도, 이 기부가 선행인가요? 만약 기부가 수탈에게 기생한다면, 어떻게 이게 선행일 수 있나요?

 

강도는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많은 돈들을 강탈합니다. 강도는 이 많은 돈들 중에서 일부를 기부합니다. 그래서? 그래서 이 기부가 선행인가요? 그 자체로서 기부가 선행인가요? 그 자체로서 기부가 선행이기 때문에, 비록 강도가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많은 돈들을 강탈한다고 해도, 이 기부가 이 살인들, 강탈들을 정당화할 수 있나요? 그건 아닙니다. 아무리 악랄한 강도가 기부한다고 해도, 이 기부는 악랄한 범죄들을 정당화하지 못합니다. 세계화 자본주의 역시 똑같습니다. 아무리 세계화 자본주의가 부유하다고 해도, 아무리 절대적인 빈곤이 줄어드는 중이라고 해도, 본질적으로 자본주의가 제국주의이기 때문에, 우파 지식인들은 자본주의를 정당화하지 못합니다. 우파 지식인들은 틀렸습니다.



◈ 세계화 자본주의에서 엄청난 부유함은 엄청난 빈곤에게 기생한다

장 지글러는 <탐욕의 시대>를 썼습니다. "인류 문명 역사에서 인류가 처한 비참함의 정도는 그 어떤 시대에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참담하다." 이 문장은 절대적인 빈곤이 줄어든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이 문장은 인류가 가장 비참한 빈곤에 빠졌다고 주장합니다. 장 지글러가 가장 비참한 빈곤을 주장하기 때문에, 스티븐 핑커가 절대적인 빈곤이 줄어든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장 지글러와 스티븐 핑커는 대립합니다. 둘 중에서 누가 옳은가요? 만약 장 지글러가 옳다면, 스티븐 핑커는 틀릴 겁니다. 만약 스티븐 핑커가 옳다면, 장 지글러는 틀릴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엄청난 빈곤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엄청난 빈곤을 목격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엄청난 빈곤은 스티븐 핑커가 틀렸다고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스티븐 핑커가 온갖 통계 자료들을 내세운다고 해도, 분명히 엄청난 빈곤을 목격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심지어 수구 꼴통들조차 이 엄청난 빈곤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수구 꼴통들은 가난한 흑인들을 깜둥이들이라고 무시합니다.) 만약 스티븐 핑커가 옳다면, 왜 여전히 우리가 엄청난 빈곤을 목격할 수 있나요? 만약 세계화 자본주의가 긍정적이라면, 왜 엄청난 빈곤이 사라지지 않나요? 아무리 절대적인 빈곤이 줄어든다고 해도, 왜 이 속도가 너~무 느린가요? 왜 이 속도가 빠르지 않나요? <누가 지구를 망치는가>가 주장하는 것처럼, 자본주의가 제국주의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는 식민지 수탈에게 기생합니다. 세계화 자본주의는 엄청난 식민지 수탈에게 기생합니다. 20세기 중반 이후, 신자유주의 확장 이후, 식민지 수탈은 바뀌었습니다. 군사적인 침략은 경제적인 종속이 되었습니다. 군사적인 침략이 경제적인 종속이 되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후기 식민지를 운운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식민지 수탈이 끝났다고 착각조차 합니다. 하지만 식민지 수탈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세계화 자본주의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식민지 수탈 역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군사적인 침략이 경제적인 종속이 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경제적인 종속은 악랄한 수탈입니다.

 

세계화 자본주의가 엄청난 식민지 수탈에게 기생하기 때문에, 세계화 자본주의는 엄청난 빈곤을 유발합니다. 만약 세계화 자본주의가 엄청난 빈곤을 유발하지 않는다면, 세계화 자본주의는 엄청난 부유함을 자랑하지 못할 겁니다. 그 자체로서 엄청난 부유함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필연적으로 엄청난 부유함은 엄청난 빈곤을 동반합니다. 바늘이 실을 동반하는 것처럼, 세계화 자본주의에서 엄청난 부유함은 엄청난 빈곤을 동반합니다. 실과 바늘이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세계화 자본주의에서 엄청난 부유함과 엄청난 빈곤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엄청난 부유함은 엄청난 빈곤에게 기생합니다. 문제는 이겁니다.



엄청난 부유함이 엄청난 빈곤에게 기생하기 때문에, 아무리 세계화 자본주의가 엄청난 부유함을 자랑한다고 해도, 아무리 이 엄청난 부유함이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아무리 절대적인 빈곤이 줄어든다고 해도, 이 속도는 너~무 느립니다. 이 속도는 절대 빠르지 않습니다. 이 속도가 너~무 느리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는 엄청난 빈곤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 속도가 너~무 느리기 때문에, 아무리 스티븐 핑커가 옳다고 해도, 장 지글러는 엄청난 빈곤을 비판합니다. 아무리 스티븐 핑커가 온갖 통계들을 내세운다고 해도, 아무리 이 통계들이 옳다고 해도, 자본주의는 악랄합니다.

 

엄청난 빈곤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이 속도가 너~무 느리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스티븐 핑커는 자본주의를 긍정적이라고 주장하지 못합니다. 다른 우파 지식인들 역시 자본주의를 긍정적이라고 주장하지 못합니다. 특히, 가장 위험한 문제는 이상 기후들입니다. 19세기 산업 혁명 이후, 자본주의는 많은 화석 연료들을 태웠습니다. 자본주의가 많은 화석 연료들을 태웠기 때문에, 기후 변화 그래프는 상승했습니다. 특히, 신자유주의 확장 이후, 이 그래프는 훨씬 가파른 곡선을 그렸습니다. 세계화 자본주의는 이상 기후들을 책임져야 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이 책임을 외면합니다.



12월 12일 게시글이 파르바티를 설명했던 것처럼, 그 어떤 예외 없이, 모든 살아있는 인간은 먹습니다. 먹거리는 근본(기본)입니다. 먹거리가 근본이기 때문에, <누가 지구를 망치는가>는 먹거리를 주목합니다. <누가 지구를 망치는가>는 비단 환경 사회학 서적일 뿐만 아니라 먹거리 서적이기도 합니다. 생물 다양성은 먹거리들을 선사합니다. 기름진 대지에서 식물들이 성장하는 것처럼, 농장에서 곡물들이 성장하기 때문에, 인간은 차타피를 먹을 수 있습니다. 생물 다양성이 먹거리들을 선사하기 때문에, <누가 지구를 망치는가>가 먹거리들을 주목하기 때문에, 이 서적은 생물 다양성을 주목합니다.

 

이상 기후들은 생물 다양성을 파괴합니다. 이상 기후들이 생물 다양성을 파괴하기 때문에, 먹거리들은 줄어듭니다. 몇 백 년 이후, 만약 이상 기후들이 훨씬 위험한 수준을 넘어선다면, 훨씬 많은 먹거리들은 줄어들 겁니다. 살인적인 폭염은 대표적인 이상 기후입니다. 살인적인 폭염 때문에, 농사를 짓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농사를 짓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먹거리들은 줄어듭니다. 비단 살인적인 폭염만 아니라 대규모 로커스트 스웜(메뚜기 무리) 역시 커다란 문제입니다. 세계화 자본주의는 살인적인 폭염, 대규모 로커스트 스웜을 유발했습니다. 그래서 세계화 자본주의가 이 재앙을 책임지나요?



[세계화 자본주의는 생물 다양성(먹거리들)을 파괴합니다.]



세계화 자본주의가 기후 지옥을 막을 수 있나요? 아니면 세계화 자본주의가 기후 지옥을 막지 못하나요? 이 블로그에서 저는 세계화 자본주의가 기후 지옥을 막지 못한다고 예상했습니다. 과거 게시글들은 기후 지옥이 찾아온다고 예상했습니다. 한편으로, 11월 14일 게시글(링크)처럼, 저는 세계화 자본주의가 기후 지옥을 막을 수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구체적인 미래를 장담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후 지옥이 필연적이라고 장담하지 못합니다. 저는 오직 현실만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핵 융합 동력처럼, 어쩌면 첨단 기술들은 기후 지옥을 막을 수 있습니다. 첨단 기술들은 놀랍습니다.

 

핵 융합 동력처럼, 오오~, 기술 진보는 놀랍습니다. (그래서 이 블로그는 스페이스 오페라를 떠듭니다.) 어쩌면 첨단 기술들은 기후 지옥을 막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첨단 기술들이 기후 지옥을 막는다고 해도, 이미 기후 피해자들은 현실입니다. 이미 기후 책임은 현실입니다. 세계화 자본주의는 기후 책임을 외면합니다. 미국 바이든 정부가 기후 보상을 외면하는 것처럼, 세계화 자본주의는 기후 책임을 외면합니다. 기후 변화는 세계화 남반구를 커다란 고통들에 빠뜨립니다. 이 고통들은 미래가 아닙니다. 세계화 자본주의가 기후 변화를 유발했기 때문에, 이건 식민지 수탈과 다르지 않습니다.



2022년 오늘날, 기록적인 홍수는 파키스탄을 습격했습니다. 이 기록적인 홍수는 미래가 아닙니다. 어떤 기후 소설들은 미래를 묘사하나, 이 기후 소설들과 달리, 파키스탄 홍수는 미래 재앙이 아닙니다. 파키스탄 홍수는 현실입니다. 파키스탄 홍수처럼, 이미 기후 재앙들, 이상 기후들은 현실입니다. 세계화 자본주의가 이상 기후들을 유발했기 때문에, 세계화 자본주의는 기후 피해자들을 책임져야 합니다. 하지만, 미국 바이든 정부가 기후 보상을 외면하는 것처럼, 철면피 세계화 자본주의는 오직 돈, 돈, 돈, 돈벌이만 부르짖습니다. 그래서 스티븐 핑커가 세계화 자본주의를 비판하나요?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에서 마리아 미스는 기술 진보가 만능 열쇠, 황금 열쇠가 아니라고 비판합니다. <누가 지구를 망치는가> 역시 기술 중심주의를 경계합니다. 핵 융합 동력처럼, 첨단 기술들이 진보하기 때문에, 마리아 미스, 반다나 시바가 틀린가요? 기술 중심주의가 옳은가요? 아니, 살인적인 폭염이 많은 사람들을 엄청난 기아에 빠뜨리는 것처럼, 첨단 기술들은 황금 열쇠가 아닙니다. 아무리 핵 융합 동력이 가능하다고 해도, 여전히 마리아 미스, 반다나 시바는 타당합니다. 여전히 에코 페미니즘은 타당합니다. 첨단 기술들과 상관없이, 이윤 극대화가 제국주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부터 1일>은 좋은 노래입니다. 애석하게도, 이 뮤직 비디오는 실수했습니다. 설레는 분위기와 엄청난 빈곤이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엄청난 빈곤이 사라졌다면, 남자 주인공은 <탐욕의 시대>를 집지 않았을 겁니다. 스티븐 핑커는 엄청난 빈곤이 줄어드는 중이라고 설명합니다. 아무리 이 설명이 옳다고 해도, 남자 주인공은 <탐욕의 시대>를 집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누가 지구를 망치는가>가 설명하는 것처럼, 자본주의가 식민지 수탈에게 기생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세계화 자본주의는 행성급 오염이기조차 합니다. 환경 아포칼립스는 절대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 사진 <… Vegetable Salad on Plate> 출처: Ella Olsson,
https://www.pexels.com/photo/vegetable-salad-on-plate-1640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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