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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이상한 바닷속의 잠수함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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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바닷속의 잠수함들

OneTiger 2017. 7. 22. 20:00

[영화 <젠틀맨 리그>에 나오는 노틸러스. 바다의 시미터. 고증은 다소 어설프나, 모양은 독특합니다.]



흔한 스페이스 오페라는 우주 함대를 해군 체계처럼 구성하곤 합니다. 함재기, 고속정, 호위함, 구축함, 순양함, 전함, 모함 등이 우주 함대를 이루죠. 때때로 우주 고속정이나 구축함은 '어뢰'를 쏩니다. 우주의 발사체를 그저 미사일이라고 부르지 않고 어뢰라고 부릅니다. 저는 그게 뭔가 해군다운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우주 함대가 해군의 체계를 모방한다고 해도 '잠수함'이라는 이름을 우주선에 붙일 수 없을 겁니다.


잠수함의 주된 역할은 말 그대로 잠수이지만, 우주에서 잠수할 수 없기 때문이죠. 아무리 우주가 또 다른 바다처럼 보여도 우주는 바다처럼 수중과 수면으로 나뉘지 않아요. 따라서 고속정이나 호위함, 구축함은 존재할 수 있지만, 잠수함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설사 적의 탐지기에 걸리지 않는 은신 우주선이 등장한다고 해도 그걸 잠수함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은신 우주선을 잠수함이라고 부르는 스페이스 오페라가 있을지 모르죠. 세상에 스페이스 오페라는 많고 많아요. 하지만 그게 대세는 아닌 듯합니다.



이처럼 다른 수상함들과 달리 잠수함은 매우 특별한 배입니다. 잠수함은 물 밑으로 이동할 수 있고, 덕분에 모습을 숨기거나 해저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바다 밑바닥에 내려가고 싶다면, 잠수함이 제일 유용한 수단이죠. 게다가 심해의 잠수함은 행성 사이의 우주선만큼 폐쇄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긴장감을 형성하기 좋습니다. 잠수함은 비대칭 전략 병기가 될 수 있고, 덕분에 군사 테크노 스릴러 작가들이 아주 좋아하는 소재입니다. SF 작가들도 잠수함의 이런 특징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SF 소설들도 잠수함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이용합니다. 이미 <해저 2만리>는 SF 초창기부터 잠수함을 묘사했습니다. 게다가 노틸러스는 그저 일반적인 잠수함이 아니라 거의 만능 병기에 가까워요. 네모 선장은 노틸러스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틸러스는 19세기 과학을 뛰어넘는 병기이고, 수많은 스팀펑크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더군다나 어떻게 인간이 바다 밑바닥을 관찰할 수 있는지 논리적으로 상상했죠. <해저 2만리>는 심해를 여행하는 스팀펑크의 이미지를 만들었고, 이후 수많은 후배 작가들이 이런 소재를 갈고 닦습니다.



<해저 2만리>는 잠수함을 이용해 수많은 것들을 시도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바다는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그래서 인간은 여러 신화와 전설을 지었습니다. 거대한 바다 괴수, 해저 왕국, 보물선, 미지의 대륙…. <해저 2만리>는 그 모든 것을 써먹습니다. 노틸러스는 향유 고래나 커다란 오징어들과 싸웁니다. 노틸러스는 아틀란티스를 방문하고 신비로운 바다 소풍을 떠납니다. 한편으로 네모 선장은 엄청난 보물선을 수집하고, 그래서 세계 최고의 갑부입니다. 노틸러스는 극지방을 마다하지 않고 남극점에 깃발을 꼽습니다.


노틸러스는 바다의 전설과 신화 속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가고, 그래서 상상 과학과 전설이 만납니다. 이런 '상상 과학과 바다 전설의 만남'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고, 인류가 해저 도시에 살지 않는다면 이런 로망은 앞으로 계속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만약 작가가 잠수함을 상상할 수 없었다면, 이런 상상 과학적인 해저 탐험기를 쓸 수 없었겠죠. 이 소설에서 노틸러스는 모습을 감추는 병기가 아니라 신세계를 안내하는 탐험가에 가깝습니다. 물론 네모 선장은 노틸러스를 이용해 제국주의 함선들을 침몰시키죠.



노틸러스가 커다란 오징어들과 싸운 것처럼 잠수함과 바다 괴수의 싸움은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킬 겁니다. <메그>는 그런 열광을 노리는 소설 중 하나입니다. 이 소설은 거대한 상어 메갈로돈을 대중적으로 알렸고, 그래서 메갈로돈은 일약 스타가 되었죠. 육지에 티라노사우루스가 있다면, 바다에 메갈로돈이 있습니다. 예전에 모사사우루스가 그 위상을 차지했으나, (상어가 바다 도마뱀보다 폼이 나기 때문에) 메갈로돈이 더 많은 인기를 끄는 것 같아요. 소설 속에서 미 해군은 메갈로돈을 처치하기 원했습니다. 허허, 군대가 상어를 걱정하다니….


하지만 환경 보호론자들이 반발하기 때문에 해군은 쉽게 최신 잠수함을 파견할 수 없었죠. 하지만 노틸러스(이 소설의 잠수함도 노틸러스군요.)라는 비장의 카드가 있었습니다. 노틸러스는 낡은 함선이지만, 그만큼 많은 인기를 끌었고 여론도 호의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낡은 잠수함이 출격하고 거대 상어와 잠수함의 해전이 펼쳐집니다. 아마 최신 잠수함이 출격했다면 별 어려움 없이 메갈로돈을 처치했겠죠. 아무리 상어가 거대하다고 해도 동물에 불과해요. 하지만 노틸러스는 낡은 함선이고, 그래서 상어와 잠수함의 싸움은 일방적으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소설 <바다 밑>은 잠수함이 나옴에도 잠수함이 별로 활약하지 않는 괴수 이야기입니다.]



메갈로돈이 정말 노틸러스 같은 (낡은) 잠수함의 상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잠수함이 낡았다고 해도 감히 동물이 기계 병기와 싸울 수 있을까요. 어쨌든 고증에 상관없이 소설의 저 대목은 흥미로운 장면입니다. SF 소설에서 잠수함과 바다 괴수의 싸움은 빠질 수 없는 소재이죠. 한편, <바다 밑> 같은 소설도 있습니다. <바다 밑>은 괴수 소설이고, 커다란 갑각류들이 등장합니다. 이 갑각류들은 사람만큼 크고, 엄청나게 많은 무리를 짓습니다.


갑각류 떼가 일본의 해군 기지를 습격한 이후 일대는 혼란에 빠지고 다들 기지 밖으로 도망치거나 대피소를 찾습니다. 그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하필 잠수함 안으로 대피합니다. 정치적 문제 때문에 일본 자위대는 군사력을 투입하지 못하고, 그 동안 주연 생존자들은 잠수함 속에서 농성합니다. 당연히 생존자들은 잠수함을 몰고 기지 밖으로 떠나거나 안전한 장소로 이동하지 못합니다. 생존자 중 해군 장교는 얼마 되지 않고, 나머지는 모두 민간인들이기 때문이죠. 잠수함이 용맹무쌍하게 갑각류 괴물들과 싸우고 그런 거 없습니다.



희한하게 이 소설에서 잠수함은 제대로 출격하지 못합니다. 소설은 잠수함 속의 대피 상황만 보여줄 뿐입니다. 잠수함의 출격을 기대하는 독자는 실망할지 모르겠군요. 작가 역시 후기에서 그런 소감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잠수함은 잠수함이고, 그래서 대피 생활은 일반 대피소와 다릅니다. 잠수함 내부를 대피실로 이용한다는 관점에서 <깊은 바다속 파랑> 같은 소설을 언급할 수 있겠죠. <깊은 바다속 파랑>에서 대대적인 재앙이 벌어지고, 재앙은 지상을 덮칩니다. 깊은 바닷속의 잠수함은 그 재앙을 피할 수 있었으나, 이후 지상과 연락이 끊깁니다.


사실 이 잠수함은 깊은 바닷속에 고립되었죠. 당연히 승무원들은 폐쇄적인 상황과 불안에 시달리고, 이는 심각한 내부 갈등으로 이어집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이기 때문에 흥미진진한 바다 탐험 따위는 없습니다. 소설 속의 잠수함은 깊은 지하 대피소와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바다라는 공간은 막연하고 기이한 공포로 변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깊은 바닷속에서 오랜 동안 고립된다면, 그 사람은 제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요. (사례로 언급했으나, 솔직히 <깊은 바다속 파랑>은 그리 인상적인 책이 아닙니다. 정체성 고민이 너무 얄팍하더군요.)



<해변에서>는 잠수함을 이용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 중에서 제일 유명할지 모릅니다. 잠수함 승무원들은 세상을 둘러보기 위해 떠나지만, 그들은 적막하고 썰렁한 세상을 마주합니다. 비참하고 쓸쓸한 항해죠. 잠수함은 물 속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지상의 재난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고, 그래서 작가가 잠수함을 소설 속에 집어넣은 듯하군요. 잠수함 승무원들이 그 사실을 반길지 모르겠지만, 만약 정말 대대적인 재앙이 터진다면, 잠수함 승무원이 수상함 승무원보다 더 잘 살아남을지 모르죠.


물론 잠수함 승무원의 평소 생활은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군사 잠수함은 은밀함을 위해 많은 것들을 희생해야 하고, 승무원들의 복지 역시 허공으로 날아갑니다. 군사 테크노 스릴러들은 이런 묘사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지만, 이 글에서는 SF 소설들을 논의하는 만큼 그런 군사 소설들까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어쨌든 2차 세계 대전에서 잠수함들은 많은 역할을 했고, 덕분에 하워드 러브크래프트 같은 작가 역시 잠수함을 이용했습니다.



<신전>은 단편 소설입니다. 유보트 하나가 해저로 가라앉고, 승무원들은 기이한 해저 건축물을 목격합니다. 하워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이 언제나 그랬듯 어떤 불경한 미지의 힘이 잠수함 승무원들을 엄습합니다. 그 불경한 힘은 알 수 없는 해저 건축물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에 훨씬 으시으시합니다. 지상의 폐가 역시 무섭지만, 해저의 신전만큼 이질적이지 않을 듯합니다. 흔한 소문과 달리 하워드 러브크래프트는 해저 공포물을 그리 많이 쓰지 않았습니다. <다곤>이나 <인스머스의 그림자>, <크툴루의 부름> 이외에 해저 공포물은 그리 많지 않아요.


하지만 <신전>은 왜 러브크래프트가 해저 공포 소설로 유명한지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해저 공포물을 좋아하는 독자는 인상 깊게 읽을 수 있을 듯합니다. 이렇듯 SF 소설들은 다양하게 잠수함을 활용하지만, 때때로 우주선도 잠수함이 될 수 있습니다. <스타타이드 라이징>에 나오는 스트리커는 우주선입니다. 하지만 소설 내내 바다 밑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솔직히 잠수함이나 다름이 없어요. <스타타이드 라이징>은 우주보다 바다에 주목하고, 그래서 우주선은 잠수함이 되었죠.



[소설 <레비아탄> 시리즈에 나오는 베헤모스와 크라켄. 이것들 역시 살아있는 잠수함이 될 수 있을까요?]



<스타타이드 라이징>은 여러 모로 독특한 소설입니다. 우주선은 우주를 날지 못하고, 내내 바다 밑바닥에 머뭅니다. 게다가 여기는 지구의 바다가 아닙니다. 외계 행성의 바다입니다. 당연히 승무원들은 희한한 바다 생물들을 만나고, 기이한 자연 환경을 탐험합니다. 흠, 무엇보다 승무원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 승무원들도 많지만, 돌고래 승무원들도 많습니다. 심지어 함장은 돌고래입니다. 덕분에 스트리커는 우주선이 아니라 정말 잠수함처럼 보입니다. 소설의 재미를 떠나서 <스타타이드 라이징>은 정말 독특한 발상들로 무장한 듯합니다.


물론 이런 독특한 소설이 <스타타이드 라이징> 하나만은 아니겠죠. 지금까지 언급한 소설들 이외에 훨씬 더 많은 소설들이 이렇게 저렇게 잠수함을 활용하겠죠. <세계 대전 Z>처럼 잠수함이 좀비 떼를 피해 바다 밑으로 들어가거나, 견인 도시 연대기처럼 스팀펑크 잠수함이 나오거나, <레비아탄>처럼 크라켄을 생체 잠수함(!)으로 사용하거나…. (이야, 생체 잠수함은 정말 로망이지 않습니까.) 여러 탑승물들 중에서 잠수함은 정말 매력이 넘치는 탑승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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