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노변의 피크닉>과 이상한 구역의 스토커들 본문
[기이하고 울창한 자연과 적막한 폐허와 위험한 동물들. SF 창작가들은 계속 이런 설정을 사랑하겠죠.]
소설 <노변의 피크닉>은 아르카디와 보리스 스트루가츠키 형제가 썼습니다. 장르를 규정하기가 좀 애매하군요. 아마 우주적 공포로 부르면 좋을까요. 하지만 일반적인 우주적 공포와 달리 이 소설에서 공포나 광기보다 비극이나 암울함이 두드러집니다. 하워드 러브크래프트 같은 작가는 비슷한 소재를 이용해 공포와 광기를 강조하겠으나,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 전>처럼 스트루가츠키 형제는 (종종 유머나 개그를 곁들이지만) 공포보다 무력함이나 비극성을 드러냅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어느 날, 외계인들이 지구에 방문합니다. 그들은 금방 떠나고, 그들이 머물렀던 자리는 '존'이라고 불립니다. 이 구역 안에서 굉장히 기이한 현상들이 벌어집니다. 만약 누군가가 여기에 들어간다면, 그 사람은 괴물에게 목숨을 잃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구역 안에는 진귀한 물품들이 있고, 만약 누군가가 그 물품을 가지고 무사히 구역을 빠져나온다면, 그 사람은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어요. 그래서 도굴꾼들은 그 구역 안으로 들어가고, 기이한 세상에서 이런저런 모험이 펼쳐집니다.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이런 설정은 여러 후대 창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왜냐하면 존이라고 불리는 이상 구역은 신나고 짜릿한 모험의 무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창작가는 주인공을 모험 속으로 몰아넣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고로 모험을 떠나는 주인공은 자력으로 다양한 위기에 맞서야 합니다. <노변의 피크닉>에서 군대나 경찰은 이상 구역 안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구역 외부를 지킬 뿐입니다. 군대나 경찰이 구역 안으로 들어간다면, 자칫 아까운 병력들이 무모하게 죽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도굴꾼들만 구역 안으로 들어가고, 그들은 온갖 괴악한 현상이나 위기에 맞서 자력으로 생존해야 합니다. 이 이상 구역은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미궁인 동시에 지극히 비현실적이고 위험이 난무하는 장소입니다. 주인공의 짜릿한 모험을 위해 이만큼 좋은 무대는 또 없을 겁니다. 이 이상 구역은 (문명 안에 존재하지만) 고립된 장소입니다. 아무나 함부로 들어가거나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기괴한 현상들은 연이어 발생하고, 멋진 보물과 보상은 그 안에서 기다립니다. 그래서 뭔가 기이한 모험 이야기를 쓰기 원하는 창작가는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설정을 변주하곤 합니다.
가령, <메트로 2033> 같은 소설은 어떨까요. 이 소설은 핵 전쟁 아포칼립스입니다. 전면 핵 전쟁이 벌어졌고, 그래서 지상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단순히 방사능 낙진만 떨어졌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방사능 낙진은 엄청난 돌연변이를 일으켰고, 지상에는 온갖 돌연변이 괴물들이 설칩니다. 만약 인류 문명이 온전했다면, 군대나 경찰이 이런 괴물들을 쓸어버렸겠으나, 인류 문명은 전쟁으로 망했습니다. 방사능 낙진과 괴물들 때문에 더 이상 사람들은 지상에서 살지 못합니다. 다들 지하철로 도망쳤고, 지하철에 새로운 문명을 꾸렸죠.
하지만 지하철 문명은 너무 초라하고 비참합니다. 누군가는 지상으로 올라가고 생활 필수품들이나 기타 물품들을 가져와야 합니다. 스토커라고 불리는 이들은 그런 역할을 자청합니다. 스토커들은 위험이 가득한 지상으로 올라가고, 온갖 괴물들과 싸우고, 중요한 물품들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지하철 아이들은 스토커를 영웅으로 생각하고, 스토커가 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스토커의 삶은 쉽지 않죠. 겉보기는 영웅이지만, 그들은 지상에서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릅니다. 실수로 방독면을 벗거나 괴물들에게 습격을 당한다면, 스토커는 다시 지하철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지상의 방사능 폐허 위에 시체를 하나 더할 뿐이죠.
<노변의 피크닉>과 <메트로 2033>은 이런 부분에서 닮았습니다. <메트로 2033>은 러시아 소설이고, 그래서 <노변의 피크닉>을 오마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노변의 피크닉>에는 외계인들이 머물렀던 이상 구역이 등장하고, <메트로 2033>에는 지상의 방사능 폐허가 등장합니다. 거기에는 온갖 위험들과 괴물들이 우글거립니다. 아무나 함부로 거기에 들어가거나 나오지 못합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귀중한 물품들이 있고, 그래서 스토커들은 목숨을 걸고 그 안에 들어갑니다.
<노변의 피크닉>에 등장하는 도굴꾼 역시 스토커라고 불리죠. (저는 프리피야트에 이런 스토커들이 돌아다닌다고 들었습니다.) 비단 <메트로 2033>만 아니라 여러 SF 소설이나 게임 속에서 이와 비슷한 상황이나 설정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이런 설정, '기이한 구역'이라는 설정이 매력적이라는 뜻이겠죠. 왜 아니겠습니까. 독자들은 신나고 짜릿한 모험을 원하고, 작가는 그런 모험이 펼쳐지는 무대를 구상해야 합니다. '기이한 구역' 설정은 모든 것을 제공합니다. 위험, 괴물, 보상, 고립, 공포, 비극, 스릴, 비극적이고 우울한 분위기까지. 덕분에 '기이한 구역'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요.
<소멸의 땅>을 비롯한 서던 리치 시리즈 역시 '기이한 구역'을 이야기하죠. 이 소설에는 'X 구역'이 등장합니다. 예전에도 말한 것처럼 음모론자들이 좋아할 이름이군요. 아무도 왜 이 X 구역이 나타났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X 구역으로 건너간다면, 그 사람은 원시적이고 희한한 숲과 초원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군대는 구역 외부를 경계하나,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미 뭔가가 X 구역 안에서 군대를 도륙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정부는 몇 차례 탐사대를 보냈으나, 탐사대 역시 무사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X 구역 안에서 현대적인 전자 장치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그 이유를 모릅니다. X 구역은 그야말로 의문투성이 장소입니다. <노변의 피크닉>의 이상 구역보다 훨씬 기이한 장소입니다. 소설 주인공은 탐사대의 일원이고, 탐사대는 다시 울창한 숲과 원시적인 초원 속으로 들어갑니다. 만약 탐사대가 구역 안으로 들어간다면, 그 이후 그들은 함부로 나오거나 문명의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탐사대는 마치 오지에서 표류하는 생존자들 같습니다. 분명히 X 구역 밖에 문명 세계가 존재하지만, 탐사대는 구역 안에서 문명의 도움을 절대 받지 못합니다.
저는 이런 '기이한 구역' 설정이 검마 판타지의 던전 탐험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검마 판타지 작가들은 모험가 일행을 위기에 빠뜨리고 싶어합니다. 그들은 모험가 일행이 위험하고 짜릿한 모험을 펼치기 원합니다. 그래서 작가들은 모험가 일행을 던전 속에 집어넣습니다. 던전은 폐쇄적이고 복잡하고 위험한 장소입니다. 던전은 외부 세계와 단절된 곳입니다. 위풍당당한 군대가 성채에 주둔한다고 해도 그들은 던전 안에 함부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던전은 너무 비좁고 함정이 가득하고 비비 꼬인 장소입니다.
사실 군대가 그 안에 들어가면, 다들 목숨을 잃을지 모릅니다. 던전을 탐색하는 행위는 모험가들의 몫입니다. 모험가들은 어둠컴컴하고 예상하기 힘든 통로와 복도를 돌아다니지만, 위기의 순간에 그들을 도와주는 손길은 없습니다. 모험가들이 어느 깊숙한 통로 속에서 괴물들과 싸운다고 해도 문명 세계의 군대는 그들을 돕지 못합니다. 그래서 모험가들의 삶은 위태롭습니다. 하지만 모험가들이 던전을 탐색하고 보물을 챙긴다면, 그들은 막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어요. 그래서 다들 던전 속으로 들어가죠.
던전을 헤매는 모험가 일행과 지상의 방사능 폐허를 헤매는 스토커 일행은 비슷합니다. 모험가 일행과 스토커 일행은 위험한 무대로 뛰어듭니다. 던전과 방사능 폐허는 고립되고 단절된 장소입니다. 그 안에는 괴물들이 우글거리지만, 동시에 진귀한 보상이 기다립니다. 짜릿한 모험을 이야기하고 싶은 창작가는 '기이한 구역' 설정으로 던전 탐험 같은 모험 이야기를 묘사할 수 있습니다. 스투르가츠키 형제는 인간의 한정적인 인식과 우주의 거대함을 노래했으나, 어떤 창작가들은 거기에서 사변을 발라내고 신나는 모험을 집어넣습니다.
사실 수많은 게임들이 이런 '기이한 구역'을 활용합니다. 가령, <스페이스 헐크> 같은 미니어쳐 게임에서 우주 해병대는 기이한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 우주선은 워프 공간 안에서 오염이 되었고, 비좁은 우주선 안에 온갖 외계 괴물들이 득실거립니다. 우주 해병대는 그런 괴물들을 물리치고, 우주선의 자료나 첨단 기술을 가져와야 합니다. 이 오염된 우주선 설정은 <노변의 피크닉>과 매우 유사하지 않나요. <스페이스 헐크>가 <노변의 피크닉>을 모방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기이한 구역'이 사랑을 받는 설정이라는 뜻입니다.
비디오 게임 <스토커>는 <노변의 피크닉>을 대놓고 오마쥬하는 게임입니다. 이상한 구역 존이 등장하고, 거기에는 괴물들이 우글거리고, 이상 현상이 발생합니다. 군대는 구역 외부를 지키지만,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 진귀한 물품들이 있기 때문에 스토커들은 발바닥이 닳도록 그 안에 들락거립니다. 온갖 용병들, 조직 폭력배들, 도둑들이 구역 안에서 이상 현상들이나 괴물들과 함께 난리법석을 부리죠. 스트루가츠키 형제는 자신들의 소설이 이런 게임으로 변주될 거라고 예상했을까요.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조작이나 전술이기 때문에 소설과 달리 이런 게임들은 깊은 사변을 고민하지 않습니다. 사실 창작가들이 사변을 고민하고 싶었다면, 게임을 만들지 않고 소설을 썼을 겁니다. 게임을 만든다는 행위는 사변보다 조작이나 전술에 치중하겠다는 뜻이죠. 그게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 역시 그런 게임들을 좋아합니다. 저는 그저 이런 SF 소설과 SF 게임의 관계가 재미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사변이 모험으로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뭐, 허버트 웰즈 역시 <우주 전쟁>이 그 숱한 3류 외계 침략자들에게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