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우주 전략 게임의 사회 체계 구성 본문
[게임 <HoMM>의 실반 도시. 이런 장면은 자연 친화적이나, 이게 정말 생태적인 사회일까요.]
<문명>,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마스터 오브 오리온>은 4X 전략 게임의 대표로 불리곤 합니다. <문명>은 역사적 게임, <히마매>는 검마 판타지 게임, <마스터 오브 오리온>은 스페이스 오페라 게임을 대표하죠. 4X 게임의 설정 배경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크게 분류한다면 이렇게 3가지로 분류되나 봅니다. 대부분 4X 게임들은 역사, 검마 판타지,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아요. <로드 오브 렐름>, <임페리얼리즘>, <토탈 워> 등은 유명한 역사 전략 게임입니다. <마스터 오브 매직>, <에이지 오브 원더스>, <엔드리스 레전드> 등은 검마 판타지 전략 게임으로 널리 알려졌죠.
<데드록: 플래네타리 컨퀘스트>, <디스턴트 월드>, <스텔라리스> 등은 웅장한 스페이스 오페라 전략 게임이고요. 아마 이 외에 다른 설정 배경도 있을 것 같지만, 그리 대중적이지 않은 듯합니다. 왜 4X 전략 게임들이 저렇게 3가지로 나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4X 게임은 거대한 문명을 이야기해야 하고, 그런 문명을 이야기하기 위해 역사, 검마 판타지, 스페이스 오페라가 제일 어울리는지 모르죠. 영웅 서사시, 거대 제국의 흥망, 대륙의 위기와 정복 등은 저런 장르들의 특기잖아요.
이런 게임들은 워낙 규모가 크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어는 자신만의 문명을 자유롭게 꾸밀 수 있습니다. 때때로 SF 소설의 설정을 이런 게임에 대입할 수 있어요. 가령, <빼앗긴 자들>의 설정을 <마스터 오브 오리온>에 집어넣을 수 있겠죠. 만약 게임 플레이어가 <빼앗긴 자들>을 <마스터 오브 오리온>에서 구현하고 싶다면, 우선 통합 정부(Unification Government)를 고를 겁니다. 물론 <빼앗긴 자들>의 무정부 조합주의는 <마스터 오브 오리온>의 통합 정부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습니다. 무정부 조합주의와 통합 정부는 모두 계급을 없애고 조화를 강조하지만, 그 사상적 배경은 전혀 다릅니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통합 정부를 선택한다면, 적어도 무정부 조합주의를 그럴 듯하게 모방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마스터 오브 오리온>은 무정부주의나 공산주의를 직접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무정부주의를 원한다면 통합 정부를 골라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빼앗긴 자들>의 아나레스 사람들은 척박한 행성에서 살아가고 대기근 때문에 굶주릴 때가 있어요. 플레이어는 농업에서 -1 목록을 찍고, 산업에서도 -1 목록을 찍어야 할 겁니다. 행성 조건도 가난한 행성으로 골라야 할 테고요.
아나레스 과학자들은 나름대로 여러 결실을 거뒀습니다. 풍성한 해양 생태계도 연구하고 무엇보다 앤서블의 전신을 만들었죠. 연구 조사에서 +1점을 받을 수 있겠군요. 아울러 아나레스 사람들은 먹고 살기 바쁘기 때문에 군사나 전쟁, 확장 특성을 고를 수 없을 겁니다. 그보다 내정과 사회 발전에 주력해야죠. 만약 플레이어가 이렇게 종족 특성을 만든다면, (어설프게 보일지라도) <빼앗긴 자들>을 구현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개인적으로 이처럼 SF 소설의 설정을 4X 게임에 대입하는 것에 흥미가 있습니다. 어떻게 SF 소설이 다른 매체에 영향을 주는지 보여주는 것 같거든요. 해외의 유명 SF 소설을 일일이 접하기 힘들기 때문에 비디오 게임으로 대리 만족할 수 있고요.
그래서 <디스턴트 월드>나 <스텔라리스>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 게임을 볼 때, 저는 어떤 종족이 있고 어떤 종족을 창작할 수 있는지 살펴봅니다. 모든 우주 4X 게임이 그렇다고 할 수 없지만, <마스터 오브 오리온>의 선구적인 역할 덕분에 스페이스 오페라 게임들은 플레이어가 사회 체계를 스스로 구성할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하지만 검마 판타지 게임에서는 이런 면모가 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가령, 게임 플레이어가 <에이지 오브 원더스>나 <엔드리스 레전드>를 플레이한다고 해도 사회 체계를 직접 창작할 수 없습니다. 왕과 귀족을 몰아내고 무정부주의 사회를 만든다거나 할 수 없죠. 애초에 주인공들부터 왕족이나 귀족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검마 판타지 게임은 사회 체계를 바꿀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지 않아요. 물론 저는 비디오 게임을 잘 모릅니다. 어쩌면 사회 체계를 창작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검마 판타지 게임도 있을 수 있죠. 플레이어가 검마 판타지 게임에서 왕족과 귀족을 몰아내고 무정부주의 체계를 만들 수 있는 게임도 있겠죠.
음, 제가 무지하기 때문에 뭐라고 확신할 수 없으나, 그런 판타지 게임은 대세가 아닌 듯합니다. 플레이어는 대부분 검마 판타지 게임에서 엘프, 드워프, 언데드, 악마 종족 등을 고를 수 있을 뿐이고, 무정부주의 같은 시스템은 등장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는 검마 판타지 자체가 왕족이나 귀족의 서사시이기 때문일지 모르겠군요. 검마 판타지는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삼고, 그 시절에는 군주제나 봉건제가 최고였으니까요.
저는 4X 검마 판타지 게임도 좋아하지만, 저런 부분이 좀 아쉽습니다. 그냥 왕이나 귀족 따위를 몰아내고 다들 계급 없이 평등하게 산다면 참 좋을 텐데요. 뭐, 하긴 민주주의를 중시한다는 현실 국가들도 죄다 왕이나 귀족을 그냥 내버려두는군요. 아무리 전통이라고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