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왜 액션과 SF 장르가 엮여야 하나 본문
"액션이나 SF 장르가 아닌 고작 드라마 장르의 162분을 졸지 않고 버티기란 얼마나 버거운가." 잡지 <시사 IN>에서 어떤 영화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드라마 장르의 영화가 세 시간 가량 상영한다면, 그걸 참고 보기 지루할 수 있다는 뜻이죠. 그런데 저 말은 뭔가 좀 이상합니다. 드라마 장르를 액션이나 SF 장르와 대조했기 때문입니다. 즉, 액션이나 SF 장르는 신나게 볼 수 있다는 뜻이죠. 사실 액션 영화의 목적은 그겁니다. 흥분, 쾌감, 스릴 등이죠. 하지만 왜 SF 장르가 액션 장르와 함께 묶여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SF 장르가 액션 장르와 똑같나요? SF 장르가 액션 장르처럼 흥분과 쾌감과 스릴을 추구하나요? 물론 SF 장르는 화려하고 현란한 블록버스터 영화로 자주 나옵니다. <어벤저스> 같은 초인 영웅 영화나 <트랜스포머> 같은 변신 로봇 영화는 신나고 빠릅니다. 액션이 휘몰아치고 시각 효과가 난무하고 뭔가가 쾅쾅 터지죠. 그래서 저 영화 평론가는 액션 장르와 SF 장르를 동일하게 바라봤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SF 장르의 본질이 아닙니다.
<어벤저스>나 <트랜스포머>만이 SF 장르의 전부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그쪽은 그냥 블록버스터 영화의 한 종류일 뿐입니다. SF 소설에는 <스타 메이커>나 <솔라리스>, <노변의 피크닉> 같은 작품들도 있습니다. 이런 소설들이 액션을 추구하나요. 흥분과 쾌감과 스릴이 가득한가요. 전혀 그렇지 않죠. 하지만 저런 소설들은 SF 장르를 대변합니다. 아마 <솔라리스>를 제치고 <트랜스포머>를 사이언스 픽션의 전형으로 꼽는 평론가나 독자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는 <솔라리스> 같은 소설만이 사이언스 픽션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트랜스포머>와 <솔라리스>는 양쪽 모두 똑같이 SF 울타리에 들어갈 수 있어요. <솔라리스>가 SF 울타리 안에 당당히 들어갈 수 있다면, <트랜스포머> 역시 그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어느 쪽이 더 SF의 본질이나 시초에 가깝느냐는 겁니다. SF 소설가들은 예전부터 뭔가 다른 존재나 다른 세상을 상상했고, 그것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솔라리스>가 <트랜스포머>보다 SF의 매력을 잘 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 영화 평론가처럼 사람들은 곧잘 SF 장르를 액션 장르로 취급합니다. SF 장르가 무조건 신나고 화려하고 뭔가 때려부순다고 생각하죠. 사실 SFX와 SF를 헛갈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SFX는 시각 효과를 가리키지만,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워낙 시각 효과를 남발하는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SF와 SFX를 동일하게 여깁니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좀 안타깝고 한숨도 나옵니다. 뭐, 저도 SF 소설을 결코 그리 많이 읽거나 잘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SF의 진짜 매력은 그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