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엔들리스 스페이스 2>의 뻥튀기된 자연 환경 본문
[이런 외계 심해 풍경은 과장된 지구 생태계입니다. 우리는 그 '과장'을 즐기는지 모르죠.]
비디오 게임 <엔들리스 스페이스 2>는 여러 자연 풍경들을 보여줍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다양한 행성들을 방문할 때마다 게임은 극지, 사막, 밀림, 초원, 한대, 심해에 걸맞는 그림들을 선사해요. 그런 자연 풍경들은 장엄하고 신비롭습니다. 가스 행성이나 황무지 행성 같은 그림들 역시 웅장하나, 역시 외계 행성에는 외계 생명체들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외계 생명체들은 지구 생명체들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극지에는 커다란 눈표범을 닮은 동물이 삽니다. 한대에는 날카로운 말처럼 생긴 동물이 삽니다. 숲에는 희한한 머리가 달린, 하지만 지구의 새와 별로 다르지 않은 새가 삽니다.
밀림의 식생 역시 지구와 많이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만약 이게 <엔들리스 스페이스 2>에 나오는 그림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저는 그 그림이 그저 지구의 열대 밀림을 묘사했다고 오해했을 겁니다. 우기를 묘사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머리가 딜로포사우루스와 비슷한 새가 등장하나, 전반적인 풍경은 지구와 다르지 않습니다. 심해? 심해는 뭔가 이질적이나, 그건 인간적인 이질감입니다. 이 게임의 심해는 인간이 수용할 수 있는 낯선 풍경입니다.
눈이 덮인 지역도 비슷합니다. 뭔가 영양 같은 하얀 동물들이 살아갑니다. 거대한 고리 같은 구조물이나 지형이 뭔지 잘 모르겠군요. 거기에 뭔가 특별한 설정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식생이나 동물상은 별로 특별하지 않아요. 초원 역시 전반적으로 지구의 스텝과 다르지 않아요. 늪에는 희한한 공룡 같은 동물이 삽니다. 그저 그뿐입니다. 사바나는 지구의 사바나를 살짝 바꾼 것 같습니다. 따라서 <엔들리스 스페이스 2>가 묘사하는 외계 자연 풍경들은 지구의 자연 풍경들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게임 제작진은 그저 지구의 자연 풍경들에 몇몇 상상력을 덧붙였을 뿐입니다.
비단 <엔들리스 스페이스 2>만 아니라 숱한 스페이스 오페라들은 뻔한 외계 자연을 묘사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 창작물들은 지구의 식물과 동물과 균류에게 몇몇 상상력만 덧붙이고, 외계 생명체라고 우깁니다. 일부 모던 스페이스 오페라들은 정말 독특한 상상력을 보여주나, 대부분 스페이스 오페라들은 모습이 조금 다른 지구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죠. 그건 스페이스 오페라의 관행이고, 따라서 저는 그걸 비판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왜 구태여 우리가 스페이스 오페라를 읽거나 봐야 할까요.
스페이스 오페라가 그저 모습이 조금 다른 지구를 묘사한다면, 사람들은 구태여 스페이스 오페라를 볼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구를 이야기하는 창작물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훨씬 깊이가 있는 현실입니다. <엔들리스 스페이스 2>는 여러 극지, 사막, 밀림, 초원, 심해 풍경들을 선사하나, 어떻게 그런 자연 생태계들이 순환하는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설명한다고 해도 진부한 수준에서 머무를 겁니다. 따라서 자연 생태계를 탐구하고 싶다면, 구태여 스페이스 오페라를 들여다볼 필요가 없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그런 동물상이나 식생은 그저 신비로운 분위기를 보조할 뿐이겠죠. 그것 자체는 소재가 되지 못할 테고, 소재가 된다고 해도 별로 깊이가 없겠죠.
스페이스 오페라 작가가 외계 야수를 설명한다고 해도, 외계 야수를 둘러싼 상황들을 넌지시 알릴 수 있을 뿐입니다. <엔들리스 스페이스 2>는 우주 전쟁에 치중하는 스페이스 오페라죠. 우주 전쟁이 아니라 자연 생태계에 치중하는 스페이스 오페라, <듄>이나 <아바타>는 좀 더 다를까요. 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샤이-훌루드나 타나토어 역시 지구의 야생 동물을 부풀렸을 뿐이에요.
100m짜리 모래벌레는 정말 멋지게 보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듄>의 모래벌레와 <백경>의 향유 고래는 비슷한 위상입니다. 양쪽 모두 거대한 야수이고, 모래 밑이나 바다 밑을 헤엄치고, 사람들을 습격하고, 무엇보다 귀중한 자원(멜란지 스파이스와 고래 기름)을 생산하죠. 멜란지는 모래벌레의 응가이고, 용연향은 향유 고래의 토사물입니다. 어쩌면 양쪽은 정말 똑같을지 모르겠군요. <아바타>의 타나토어는 좀 더 거대하고 강력한 밀림 호랑이일 뿐입니다. 이렇듯 통상적인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아무리 작가가 외계 야수를 멋지게 포장해도, 그건 그저 지구 생태계를 부풀리거나 뻥튀기한 결과일지 몰라요.
<백경>의 향유 고래와 <듄>의 모래벌레와 <엔들리스 스페이스 2>의 이상한 심해 생명체는 비슷한 위상이 될 겁니다. 모래벌레는 새로운 뭔가가 아니라 뻥튀기일 뿐이에요. 그렇다면 스페이스 오페라는 현실의 뻥튀기일 뿐이고, 아무 가치가 없을까요. 누군가는 그렇다고 주장할지 모르겠어요. 저도 어느 정도 그런 의견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뻥튀기는 분명히 뻥튀기이고, 거기에는 사람들을 자극할 수 있는 힘이 있어요. 그게 그저 지구를 과장하는 행위에 불과하다고 해도, 그건 나름대로 가치가 있을 겁니다.
※ <엔들리스 스페이스 2>에서 제일 멋진 자연 풍경은 밀림이나 우기, 심해 같습니다. 거기에 숲이 있기 때문이죠. 숲은 자연을 대표하지 않으나, 저는 숲에 제일 시선이 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