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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스타십 트루퍼스>와 <호빗>의 거미 괴물들 본문

SF & 판타지/비경 탐험

<스타십 트루퍼스>와 <호빗>의 거미 괴물들

OneTiger 2017. 9. 23. 20:00

[아라크니드처럼 SF 작가들과 판타지 작가들은 절지류들에게 부정적인 측면들을 쉽게 덮어 씌웁니다.]



판타지 소설답게 <호빗>에는 여러 동물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판타지 소설답게 이런 동물들은 말을 하고 사람만큼 똑똑하고 자기 성향이 있습니다. 곰이나 수리는 정의로운 자유민들을 도와줍니다. 소설 속에 곰이 직접 등장하지 않으나, 베오른은 곰으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곰이 진짜 모습이고 사람은 눈속임인지 모르죠. 빌보와 간달프와 소린 일행은 베오른을 인간으로서 만났으나, 빌보는 곰들이 회합하는 광경을 지켜봤죠. 수리들은 발라들을 상징하는 의롭고 신성한 동물들이고, 그래서 자주 간달프를 도와줍니다.


수리들은 상당히 여러 사건들에서 활약합니다. 1시대에는 날아다니는 화룡들과 싸웠고, 3시대에는 오상크에서 간달프를 구출했고, 검은 문으로 날아왔죠. <호빗>에서 역시 수리들은 간달프와 빌보와 소린 일행을 구했고, 다섯 군대 전투에 마지막으로 참가했습니다. 반면, 늑대들이나 거미들은 사악한 동물들입니다. 늑대들은 오크들과 협력하고, 거미들은 사우론을 돕습니다. 이 거미들은 웅골리안트의 후예이고, 그 중에서 쉴롭은 꽤나 유명합니다. 웅골리안트는 1시대부터 온갖 악행들을 저질렀죠.



예전에 말한 것처럼 이런 판타지 설정은 다분히 인간 중심적입니다. 수리가 멋지게 등장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수리를 멋진 동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수리는 멋진 동물입니다. 크고 날카로운 두 눈망울, 위협적으로 휘어진 발톱들, 구부러진 부리, 위풍당당한 몸매. 게다가 수리는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기 때문에 뭔가 강하고 힘이 있어 보입니다. 거미는 그렇지 않습니다. 거미 역시 수리처럼 포식동물이나, 수리와 달리 사람들은 거미를 상당히 싫어합니다.


아예 거미를 혐오하는 전문 용어마저 존재하죠. 거미는 우리와 너무 다르게 생겼습니다. 내골격이 없고 겉은 단단합니다. 몸은 머리와 몸통으로 나뉘었습니다. 눈은 8개이고, 기이한 두 독니가 달렸습니다. 다리는 8개이죠. 대부분 독을 품었고, 먹이의 체액을 쪽쪽 빨아먹습니다. 깡충거미 같은 사냥 거미든 호랑거미 같은 정주성 거미든, 사람들은 거미를 싫어합니다. 일부 애호가들은 타란튤라가 멋지다고 칭찬하나, 그런 취향은 그리 대중적이지 않죠. 그래서 거미는 고블린이나 언데드에게 협력하는 악당으로 등장합니다. 비단 <호빗>만 그렇지 않겠죠.



사실 이는 판타지 소설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나중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으나, SF 소설들 역시 거미 괴물을 꽤나 강조합니다. 로버트 하인라인은 <스타십 트루퍼스>를 쓸 때, 일반적인 인간형 외계인을 상상하지 않았습니다. 거미처럼 생긴 아라크니드를 설정했죠. 왜냐하면 거미가 징그럽기 때문에. 주인공 후안 리코 역시 거미를 끔찍하게 여기죠. 사이언스 픽션은 인간적이고 주류적인 관점을 뛰어넘는 장르이나, <스타십 트루퍼스>는 거미를 혐오하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 방식을 효율적으로 써먹었습니다.


이런 시각은 다른 매체에 영향을 끼치고, 그래서 <워해머 40K>나 <스타크래프트>가 타이라니드나 저그를 내놨을 겁니다. 타이라니드나 저그는 절지류 괴물들처럼 보입니다. 거미를 연상하기에 좋죠. 게다가 게임 속에서 타이라니드나 저그는 천인공노할 악당으로서 등장하고요. 로버트 하인라인처럼 SF 비평가들이 호평하는 작가마저 거미 혐오라는 인간 중심적인 발상을 요긴하게 써먹었다는 뜻입니다. 아니, 그 원류를 따진다면, 허버트 웰즈까지 올라가야 할 겁니다. 웰즈 역시 거미 괴물을 써먹었어요.



사실 이런 방식으로 많은 판타지들과 사이언스 픽션들은 동물들에게 악당이라는 개념을 부여합니다. 뭐, 겨울에 늑대 떼가 마을을 습격한다는 이야기는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충돌하곤 하고, 그런 과정을 그리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호빗> 같은 소설은 거미를 완전히 악당으로 둔갑시킵니다. 이 소설에서 거미는 단순히 누군가를 잡아먹는 육식동물이 아닙니다. 언데드에게 충성하고 복종하는, 적어도 착실하게 협력하는 악당입니다. 존 로널드 톨킨은 거미에게 완전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웠죠.


어쩌면 이런 판타지를 자주 접하는 사람은 저도 모르게 거미를 부정적으로 생각할지 모릅니다. 이런 판타지가 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정말 바꾸는지 저는 확신하지 못하나, 어쩌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모르죠. <호빗>을 읽은 사람과 <샬롯의 거미줄>을 읽은 사람은 거미를 다르게 바라볼 겁니다. 저는 이런 것들이 대중적인 자연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을 무조건 아름답고 이상적으로 그리거나, 거미를 무조건 악당으로 그리거나. 사실 거미는 자연계에서 가장 중요한 포식동물 중 하나이고, 거미 역시 자연계에 속했어요. 이런 판타지나 사이언스 픽션을 좋아한다면, 실제 자연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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