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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학 사이언스 픽션과 하위 장르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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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학 사이언스 픽션과 하위 장르들

OneTiger 2019. 11. 11. 20:27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Ecology Science Fiction) 울타리에서 비경 탐험은 가장 흔한 하위 장르일 겁니다.]



*규정: 사이언스 픽션들은 서구 근대 과학을 이용해 비일상적인 상상력을 펼칩니다. 만약 사이언스 픽션이 생물학, 생태학, 환경 사회학을 이용하거나 사이언스 픽션에서 생물학, 생태학, 환경 사회학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거나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면, 이건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사이언티픽 로망스들에도 생태학 SF 요소들이 있었습니다. 19세기 서구 문명에서 사이언티픽 로망스가 나타나는 동안, 진화 이론은 과학을 대표합니다. 박물학자들은 자연 환경을 탐험하고 새로운 생명체들과 만납니다. 산업 자본주의는 엄청난 환경 오염들을 일으키고 하늘을 시커멓게 채웁니다.


이런 상황들은 사이언티픽 로망스에 영향을 미치고, 이것들은 초기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으로 이어집니다. 사이언티픽 로망스 이후, 본격적인 사이언스 픽션이 자리를 잡는 동안,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들 역시 형틀을 갖춥니다. 이건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이 공식적인 하위 장르라는 뜻이 아닙니다.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은 비공식적인 분류이고, 어떤 SF 평론가들은 생태학 SF 장르를 인정하지 않거나 생태학 SF 장르에 반대할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수많은 사이언스 픽션들은 생물학, 생태학, 환경 사회학을 중요하게 다룹니다. 사이언스 픽션에서 생물학, 생태학, 환경 사회학은 필수적인 소재들입니다.



*의의: '자연'은 원초적이고 생생합니다. 생물 다양성에서 인류는 비롯했습니다. 자연 생태계 없이, 인류 문명은 먹고 살지 못합니다. 지구가 어머니 행성인 것처럼, '자연'은 원초적인 풍요로움입니다. 우리가 동물, 생명체이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있는 생명 현상에 감탄합니다. 우주에는 수많은 항성계들이 있으나, 우리는 지구 이외에 또 다른 어머니 행성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행성을 바라볼 때, 자연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이렇게 자연이 중요하기 때문에, 많은 문학들은 자연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런 문학들은 자연을 과장하지 못하고 자연 환경 변화를 거시적으로 파악하지 못합니다.


이런 문학들과 달리,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은 웅장한 자연을 우주적으로 과장하고 장대한 생명 진화 역사를 파악합니다. 생태학 SF 장르에게 '자연과 문명'은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주제입니다. 무엇보다 21세기 초반 오늘날, 기후 변화는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기후 변화를 일으켰고, 기후 변화는 행성급 환경 오염입니다. 과학자들은 어떻게 기후 변화가 심각해질지 구체적으로 예측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예상보다 기후 변화는 가벼울지 모르나, 그렇다고 해도, 오늘날, 분명히 기후 변화는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을 이용해 기후 변화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명칭: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은 생물학, 생태학, 환경 사회학에 기반합니다. 하지만 왜 명칭이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인가요? 왜 명칭이 생물학 사이언스 픽션이나 환경학 사이언스 픽션이 아닌가요? 생태학은 체계를 강조합니다. 생태학은 수많은 생명체들이 상호 작용하고 체계를 조성한다고 설명합니다. 생물학은 개별 생명체를 가리킵니다. 환경 사회학은 생물 다양성과 상호 작용보다 자연 환경과 인류 사회를 가리킵니다. '자연'에서 생물 다양성은 가장 핵심이고, 그래서 생물학과 환경 사회학보다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은 훨씬 어울리는 명칭입니다. 게다가 '생태'는 상당히 포괄적인 용어입니다.


개별 생명체부터 거시적인 환경까지, 오늘날, '생태'는 많은 것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생물학 사이언스 픽션, 환경학 사이언스 픽션보다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은 훨씬 시대 상황에 부합합니다. 물론 생물학과 환경 사회학 역시 생물 다양성과 상호 작용을 중시합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보다 생물학 사이언스 픽션이나 환경학 사이언스 픽션이 훨씬 나은 명칭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무엇이 훨씬 나은 명칭이든, 명칭보다 중요한 것은 장르 특성일 겁니다. 21세기 초반 오늘날, 자연 생태계 파괴, 생물 다양성 감소는 가장 심각한 문제이고,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은 이것을 지적합니다.



*하위 장르 위상들: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은 SF 하위 장르입니다. SF 하위 장르에는 스페이스 오페라, 사이버펑크, 시간 여행, 포스트 아포칼립스, 우주적 공포, 우주 탐사물 같은 여러 하위 장르들이 있습니다. 이런 여러 하위 장르들과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은 어느 정도 비슷한 위상이 될 수 있습니다. 위상은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다른 하위 장르들과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은 공존할 수 있습니다.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은 다른 하위 장르들과 겹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사이버펑크입니다. 동시에 <블레이드 러너 2049>에는 환경 아포칼립스, 인공 생태계, 외계 개척이 있습니다.


사이버펑크로서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유명하나, 환경 아포칼립스, 인공 생태계로서 이 영화는 생태학 SF 울타리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다른 하위 장르들과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 사이는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에게 여러 하위 장르들이 있는 것처럼,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에게도 여러 하위 장르들, 소재들이 있습니다.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에서 장르들과 소재들은 뒤섞일 수 있습니다. 만약 SF 소설이 유전 공학, 기후 변화, 환경 운동가를 이야기한다면, SF 소설 속에서 바이오펑크, 환경 아포칼립스, 생태 유토피아는 뒤섞이고 서로 영향들을 미칠 겁니다. 생태학 SF 하위 장르들은 상호 작용할 수 있습니다.



*비경 탐험: 19세기 소설 <해저 2만리>부터 21세기 초반 비디오 게임 <서브노티카>까지, 생태학 SF 울타리에서 비경 탐험은 커다란 흐름을 차지합니다. 비경 탐험은 가장 흔한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인간은 친숙한 문명에서 벗어나고 낯설고 머나먼 오지를 향해 떠납니다. 낯설고 머나먼 오지에서 인간은 새로운 자연 환경을 만납니다. 인간은 새로운 생명체들, 새로운 생태계를 탐구합니다. 그래서 비경 탐험은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이 쉽게 될 수 있습니다. 우주 탐사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외계 행성에서 우주 비행사가 외계 생명체를 만난다면, 생물학, 생태학, 환경 사회학은 핵심적인 소재가 될 겁니다.


생태학 SF 울타리에서 비경 탐험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서구 자연 철학자들이 사이언티픽 로망스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이 보여주는 것처럼, 사이언티픽 로망스가 나타났을 때, 이미 서구 문명은 비경들을 탐험하는 중이었습니다. 비경 탐험은 <종의 기원>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자연 생태계 탐사 덕분에, 서구 근대화 과학은 진화 이론을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비경 탐험이 서구 제국주의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입니다. 서구 제국주의에게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동남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는 비경입니다. 이런 장소들은 문명이 되지 못합니다.


서구 제국주의는 자신이 이런 장소들을 개척할 수 있다고 간주합니다. 이건 식민지 수탈이 됩니다. 만약 서구 제국주의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식민지 수탈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서구 제국주의 속에서 비경 탐험은 식민지 수탈을 미화할지 모릅니다. 비경 탐험이 이것을 의도하지 않는다고 해도, 식민지 수탈이 지배적인 관념이기 때문에, 비경 탐험은 저도 모르게 식민지 수탈을 미화할지 모릅니다. 특히, 우주 탐사물은 새로운 문명 건설로 이어지고, 이건 식민지 개척이 됩니다. 식민지 개척은 서구 제국주의를 (저도 모르게) 모방할지 모릅니다. 언제나 비경 탐험은 식민지 수탈을 경계해야 합니다.



[21세기 초반 오늘날은 기후 변화 시대이고, 안타깝게도 환경 아포칼립스는 시대 상황에 가장 부합할 겁니다.]



*환경 아포칼립스: 이미 오래 전부터 인류 문명은 각종 신화들, 전설들, 민담들을 이용해 세계 멸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서구 근대화 이후, 세계 멸망은 근대 과학을 만나고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됩니다. 이제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천벌이나 신의 분노를 떠들지 않습니다. 우주적인 자연 재난과 위험한 과학 기술은 자연 환경을 파괴하고 인류 문명을 무너뜨릴지 모릅니다. 특히, 19세기 서구 근대화, 산업 자본주의는 시커먼 매연들을 뿜었고, 산업 폐기물들을 함부로 버렸고, 강물들을 오염시켰고, 농지들을 사막화시켰습니다. 20세기 산업 자본주의는 자연 생태계에 훨씬 심각한 피해를 미쳤습니다.


산업 자본주의는 반영구적인 핵 폐기물을 버리고, 핵 탄두를 제조하고, 온실 가스를 뿜습니다. 결국 산업 자본주의는 행성급 환경 오염을 일으킵니다. 환경 아포칼립스는 환경 오염이 인류 문명을 무너뜨린다고 경고합니다. 자원 고갈과 돌연변이 생명체 역시 전형적인 환경 아포칼립스 소재입니다. 환경 아포칼립스가 기후 변화를 강조하기 때문에, 종종 환경 아포칼립스는 Cli-Fi, 기후 장르(Climate Fiction)가 됩니다. 행성 생태계가 대대적으로 바뀌기 때문에, 환경 아포칼립스는 상당히 거대한 규모를 제시합니다. 그래서 환경 아포칼립스는 거대 괴수 같은 다른 대규모 사건들과 쉽게 어울립니다.


21세기 초반 오늘날, 기후 변화가 가장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다른 생태학 SF 소재들보다 환경 아포칼립스는 시대 상황에 가장 부합하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사이언스 픽션에 친숙하지 않다고 해도, 사람들은 환경 아포칼립스를 머릿속에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가렛 앳우드는 자신이 SF 소설을 쓰지 않았다고 말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이미 환경 아포칼립스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중인지 모릅니다.



*생태 유토피아: 만약 환경 아포칼립스가 세상을 무너뜨린다면, 인류 문명은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인류 문명은 대안을 찾고, 자연 환경을 관리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이룩해야 합니다. 전반적으로 이런 이야기들은 생태 유토피아에 들어갑니다. 오래 전부터 인류 문명이 세계 멸망을 걱정한 것처럼, 이미 오래 전부터 인류 문명은 이상향을 꿈꿨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움을 기원했습니다. 이상향과 유토피아 문학 그 자체는 엄청난 역사를 자랑합니다. 19세기 이후, 생태 유토피아는 환경 사회학을 이용해 이상향을 건설하고 자연 생태계를 보호/관리합니다.


유토피아 문학이 엄청난 역사를 자랑하기 때문에, 사이언티픽 로망스 역시 생태 유토피아를 쉽게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환경 아포칼립스와 생태 유토피아는 대조적이나, 파괴가 창조로 이어지는 것처럼, 환경 아포칼립스는 생태 유토피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환경 보호를 강조하기 위해 종종 생태 유토피아는 환경 아포칼립스를 끌어들입니다. 만약 환경 아포칼립스와 생태 유토피아가 대립한다면, 생태 유토피아는 자신의 가치를 훨씬 빛낼 수 있을 겁니다. 특히, 엘리너 아나슨은 생태 유토피아가 희망을 전파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환경 아포칼립스는 비극이고, 암울한 세상에서 비극은 상황을 악화시킬지 모릅니다.


암울한 세상에는 비극보다 희망이 필요합니다. 생태 유토피아는 희망, 서광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나친 낭만주의는 좋지 않으나, 우리에게는 희망이 필요합니다. 고전적인 <에코토피아 뉴스>와 <Moving the Mountain>부터 오늘날의 여러 솔라펑크 소설들과 생태적인 건설 게임들까지, 생태 유토피아는 희망을 노래합니다. 환경 아포칼립스는 경각심을 자극할 수 있으나, 만약 사람들이 너무 힘들고 지친다고 느낀다면, 생태 유토피아는 위로가 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바이오스피어/바이오 돔 건물: 인류보다 자연 생태계는 원초적입니다. 인류가 나타났을 때, 이미 자연 생태계는 존재했습니다. 인류는 그저 자연 생태계를 이용할 뿐입니다. 하지만 20세기 인류 문명은 생태학을 연구합니다. 이제 인류 문명은 자연 생태계를 훨씬 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생태학 지식들이 훨씬 많이 쌓인다면, 인류 문명이 새로운 자연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지 않나요? 심지어 생명체가 없는 공간에서 인류 문명이 자연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지 않나요? 만약 이게 가능하다면, 우주에서 먹고 살기 위해 사람들은 걱정하지 않을 테고, 인류 문명은 우주로 진출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폐쇄 인공 생태계를 상상합니다. 미래 인류 문명이 거대한 우주 정거장을 짓고 자급자족할 수 있을까요? 자급자족하기 위해 우주 정거장은 방대한 자연 생태계를 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우주 정거장이 거대하다고 해도, 우주 정거장 규모는 제한적이고 폐쇄적입니다. 제한적이고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자연 생태계가 원활하게 순환할 수 있나요? 이런 실험이 첨단 로봇 공학이나 첨단 유전 공학을 요구하지 않나요? 우리가 자연 생태계 일부를 뚝 떼어놓고 이것을 우주 정거장에 단순하게 집어넣는다고 해도, 이게 전부인가요? 바이오스피어 건물은 이런 상황들을 이야기합니다.


만약 우주 정거장이 자급자족할 수 있다면, 바이오스피어 우주선 역시 가능할 겁니다. 장거리 세대 우주선이 머나먼 외계 항성계를 향해 떠난다고 해도, 먹고 살기 위해 우주선 승무원들은 걱정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폐쇄적이고 제한적이기 때문에,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민감한 소재입니다.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작은 행성, 작은 자연입니다. 이건 일종의 세계입니다.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행성 환경 변화를 간단하게 비유할 수 있습니다. 생태학자들이 생태학 모식도를 만드는 것처럼, 사이언스 픽션은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이 생태학 모식도라고 간주할 수 있습니다.



*초거대 고리 건축물: 우주에는 중력이 없습니다. 만약 우주에서 사람들이 살기 원한다면, 사람들은 인공 중력을 생성해야 합니다. 어떻게 사람들이 인공 중력을 생성할 수 있나요? 원심력은 가장 간단한 방법입니다. 만약 우주 건축물이 빙글빙글 돌아간다면, 인력은 바깥 부분에 영향을 미칠 테고, 여기에는 중력이 존재할 겁니다. 만약 우주 건축물에 안정적인 원심력 조속기가 있다면, 불편 없이 사람들은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스탠포드 토러스부터 이른바 링월드까지, 여러 우주 건축물들은 고리 형태입니다. 종종 항성에게서 에너지를 받기 위해 우주 고리 건축물은 항성을 둘러쌉니다.


만약 이런 우주 고리 건축물에서 사람들이 자연 생태계를 조성한다면, 이건 정말 엄청난 대규모 인공 생태계가 될 겁니다. 바이오스피어 우주선과 우주 고리 건축물은 똑같이 인공 생태계이나,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은 감히 우주 고리 건축물에게 까불지 못합니다. 어쩌면 생태학 SF 울타리에서 링월드는 가장 거대한 소재인지 모릅니다. 행성 테라포밍 역시 어마어마한 상상력을 자랑하나, 행성 테라포밍은 맨땅에 헤딩하지 않습니다. 행성 테라포밍에는 이미 행성이라는 '기반'이 있습니다. 하지만 막막한 우주 공간에는 '기반'이 없습니다. 링월드를 만들기 위해 지적 문명은 맨땅에 헤딩해야 합니다.


링월드가 너무 압도적인 상상력이기 때문에, 링월드는 과학 만능주의로 이어질지 모릅니다. 링월드가 압도적인 인공 생태계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과학이 자연을 통제하고 지배한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하지만 미래 인류나 다른 지적 문명이 링월드를 만들 수 있을까요? 이게 가능한가요? 만약 미래 인류가 링월드를 건조한다고 해도, 과학 만능주의는 링월드를 무너뜨릴지 모릅니다. 21세기 초반 인류 문명에게는 첨단 과학 기술이 있으나, 세계화 자본주의 때문에, 첨단 과학 기술은 그저 돈벌이 수단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지적 문명에게 첨단 과학 기술이 있다고 해도, 첨단 과학 기술은 장땡이 아닙니다.



[생태계 시뮬레이션 게임이 바이오 돔을 이용하는 것처럼, 바이오 돔은 유사 지구, 작은 지구가 될 수 있습니다.]



*테라포밍: 사막화에 저항하기 위해 생태학자들은 녹지화 작업을 진행합니다. 만약 황폐한 불모지가 싱그럽고 울창한 녹색 삼림이 된다면, 생태학자들은 기립 박수를 보낼 겁니다. 비단 생태학자들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은 기립 박수를 아끼지 않을 겁니다. 사막에서 우리는 살아가지 못합니다. 풍요로운 생물 다양성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야 합니다. 녹지화 작업은 메마른 사막을 울창한 삼림으로 바꿉니다. 만약 이게 우주적인 규모로 확장한다면, 만약 불모지 외계 행성에서 개척 과학자들이 자연 생태계를 조성한다면, 이건 테라포밍이 될 겁니다. 화성 테라포밍은 가장 대표적입니다.


어떤 관점에서 행성 테라포밍은 바이오스피어 건물의 확장 판본입니다. 바이오 돔과 테라포밍 작업에서 과학자들은 직접 자연 생태계를 퍼뜨립니다. 과학자들이 새로운 자연 생태계를 조성하기 때문에, 바이오스피어 건물과 행성 테라포밍 사이에는 긴밀한 연결 고리가 있습니다. 바이오스피어 건물이 폐쇄 생태계인 것처럼, 어떤 테라포밍들은 폐쇄 생태계입니다. 만약 개척 과학자들이 소행성을 굴착하고, 소행성 내부에서 개척 과학자들이 자연 생태계를 조성한다면, 이건 열린 생태계보다 폐쇄 생태계가 될 겁니다. 다행히 소행성 테라포밍은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고, 바이오스피어 우주선보다 소행성 테라포밍은 나을지 모릅니다.


테라포밍은 행성 공학을 반드시 가리키지 않습니다. 훨씬 국지적인 자연 환경 변화 역시 테라포밍입니다. 생태학 녹지화 작업들은 국지적인 테라포밍입니다. 그래서 생태계 시뮬레이션 게임들 역시 '테라포밍'을 이야기하나, 일반적으로 테라포밍은 행성 공학입니다. 하지만 행성 테라포밍이 윤리적으로, 경제적으로, 과학적으로 옳은가요? 아무리 테라포밍이 성공적이라고 해도, 이건 장땡이 아닐 겁니다. 미래 인류 문명이 화성을 성공적으로 테라포밍한다고 해도, 화성에서 세계화 자본주의, 아니, 태양계 자본주의는 제2의 기후 변화를 일으킬지 모릅니다. 만약 미래 인류 문명이 화성 테라포밍을 정말 원한다면, 세계화 자본주의는 사라져야 할 겁니다.



*바이오펑크 생물상: 소설 <물고기 인간>부터 비디오 게임 <쥬라기 월드: 에볼루션>까지, 바이오펑크는 여러 생물상들을 조성합니다. 종종 이런 것들은 생태계보다 동물원에 가깝습니다. 사실 <물고기 인간>과 <쥬라기 월드: 에볼루션> 역시 생태계보다 동물원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쥬라기 공원: 폴른 킹덤>이 보여주는 것처럼, 통제에서 동물원은 벗어나고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습니다. 유전 공학이 개입하기 때문에, 바이오펑크 생태계(동물원)와 일반적인 생태계(동물원)는 다릅니다. 바이오펑크 생태계(동물원)에는 온갖 기이하고 희한하고 신기한 동물들이 있고, 이것들은 훌륭한 볼거리가 됩니다.


사람들이 동물원을 구경하는 것처럼, 바이오펑크 생물상은 훌륭한 볼거리입니다. <쥬라기 공원>이 <잃어버린 세계>를 오마쥬하는 것처럼, 비경 탐험 역시 온갖 기이하고 희한하고 신기한 동물들을 늘어놓을 수 있으나, 비경 탐험과 바이오펑크 생물상은 다릅니다. 유전 공학이 개입하기 때문에, 바이오펑크 생물상은 인공 생태계에 속합니다. 비경 탐험에서 기이한 생태계는 식민지 수탈을 고발합니다. 반면, 바이오펑크 생물상은 과학 만능주의를 경고합니다. 생명 창조가 신의 영역이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바이오펑크 생물상을 조성하고 "이제 나는 신이 되었다."라고 오만하게 외칠지 모릅니다.


바이오펑크는 비단 생태계, 동물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생명 창조들/변형들로 이어집니다. 바이오펑크는 거대 괴수를 만들거나 거대 생체 탈것을 만들 수 있습니다. 거대 괴수는 다른 생물상들과 함께 자연 생태계에 속할지 모릅니다. 그 자체로서 거대 생체 탈것은 생물 다양성, 생태계를 이룰지 모릅니다. 생체 잠수정 단편 소설 <표면 장력>이 보여주는 것처럼, 어떤 관점에서 바이오펑크 생물상과 거대 생체 탈것은 겹칩니다.



*거대 생체 탈것: 이 하위 장르에는 생체 우주선, 생체 비행선, 생체 잠수정을 비롯해 여러 생체 탈것들이 있습니다. 생체 비행선 소설 <레비아탄>은 이 하위 장르를 대표할 수 있습니다. 비경 탐험, 환경 아포칼립스, 테라포밍, 거대 괴수 같은 소재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거대 생체 탈것은 인기를 끌지 못합니다. 이미 현실 속에는 비경 탐험, 환경 아포칼립스, 테라포밍이 있습니다. 서구 자연 철학자들은 동남 아시아 열대 밀림을 탐사했고, 이건 비경 탐험입니다. 유로파 바다에는 생태계가 있을지 모릅니다. 인류 문명은 자연 환경을 지속적으로 바꿨고, 이건 테라포밍입니다. 과학자들은 화성 테라포밍을 진지하게 논의합니다.


애석하게도 시커먼 대기 오염, 대대적인 생물종 감소, 반영구적인 핵 폐기물, 전세계적인 생태계 교란, 기후 변화와 기후 난민은 현실입니다. 빌어처먹게도 기후 난민은 현실입니다. 아무리 보수 우파 지식인들이 씨부렁거린다고 해도, 세계화 자본주의는 기후 난민들을 양산합니다. 이렇게 현실 속에는 비경 탐험, 환경 아포칼립스, 테라포밍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이언스 픽션은 이것들을 과장할 수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이미 여러 신화들에서 거대 괴수들은 흔한 소재였고, 사이언스 픽션은 이것들을 과장할 수 있습니다. 반면, 현실 속에는 거대 생체 탈것이 없습니다. 여러 신화들에서도 이건 주요 소재가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생체 우주선들보다 기계 우주선들은 훨씬 많을 겁니다. 특히, 상대적으로 인류 문명은 생체 우주선들보다 기계 우주선들을 건조할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사이언스 픽션은 유전 공학과 생태학을 이용해 생체 우주선을 건조할 수 있습니다. 만약 생체 우주선 속에서 다른 여러 생명체들이 상호 작용한다면, 이것 역시 인공 생태계가 될 겁니다. 그래서 가끔 생체 우주선은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바이오스피어 우주선과 달리, 생체 우주선은 함선이 되고 상대 함선과 싸울 수 있습니다. 생체 우주선이 거대 생명 현상이기 때문에, 생체 우주선은 거대 괴수가 될 수 있습니다.



*거대 괴수: 만약 어떤 거대한 것이 움직인다면, 우리는 그것을 향해 감탄과 경외를 보낼 겁니다. 그 자체로서 규모는 영성, 신이 될 수 있습니다. 신, 영웅과 맞서기 위해 파괴적인 존재는 거대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규모를 숭배합니다. 우리는 비단 거창한 능력만 아니라 거대한 규모를 숭배합니다. 규모는 다양한 형태들을 갖출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은 로봇이 되고, 어떤 것은 거인이 되고, 어떤 것은 움직이는 물질이 됩니다. 이런 움직이는 규모들 중에서 거대 괴수는 거대한 동물 형태를 갖춥니다. 종종 거대 괴수는 동물보다 식물을 가리킬 수 있으나, 상대적으로 많은 거대 괴수들은 동물 형태들입니다.


거대 로봇과 거대 괴수는 비슷한 것 같으나, 거대 로봇은 기계입니다. 기계는 후천적입니다. 인간은 기계를 직접 만듭니다. 반면, 동물을 비롯해 생명체는 원초적입니다. 인류가 나타나기 전에, 이미 자연 생태계에서 수많은 동물들은 살아왔습니다. 거대 로봇과 거대 괴수가 똑같이 움직이는 규모라고 해도, 거대 괴수와 달리, 거대 로봇은 원초적인 감성을 풍기지 못합니다. 거대 초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초인은 인간입니다. 인간은 자연보다 문명에 속합니다. 문명은 후천적입니다. 아무리 초인이 생명체라고 해도, 우리는 인간보다 동물이 자연에 가깝다고 간주합니다. 거대 초인보다 거대 괴수는 원초적입니다.


만약 100m짜리 바위 거인이 돌아다닌다면, 바위 거인은 감탄과 경외를 유발할 겁니다. 하지만 바위는 생명체보다 물질입니다. 바위는 살아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바위 거인이 움직인다고 해도, 바위 거인은 생태적인 감성을 풍기지 못합니다. 거대 로봇, 거대 초인, 바위 거인보다 거대 괴수는 훨씬 원초적이고 생태적입니다. 동물이 자연에 가까운 것처럼, 거대 괴수 역시 자연에 가깝습니다. 심지어 거대 괴수는 생태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생태계 핵심종이 되거나, 자체적으로 생태계를 순환시킵니다. 거대 괴수에게 규모가 특징이기 때문에, 거대 괴수는 환경 아포칼립스, 테라포밍 같은 다른 거대한 사건들을 향해 뻗을 수 있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여러 신화들이 거대 괴수들을 이야기했기 때문에, 거대 괴수는 사이언스 픽션에서 벗어나고 신화적인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거대 괴수가 사이언스 픽션보다 신화, 판타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거대 괴수가 신화적인 영역에 들어가기 때문에, 여러 생태학 SF 소재들 중에서 어머니 자연과 함께 거대 괴수는 가장 경이로운지 모릅니다. 하지만 무엇이 '거대'한가요? 4m짜리 아르켈론과 60m짜리 모스라가 똑같이 거대 괴수가 될 수 있나요? 고생물학 고증에 충실한 아르켈론 묘사와 날개 비늘 방어막을 형성하는 모스라가 똑같이 거대 괴수가 될 수 있나요? 다른 여러 소재들처럼, 거대 괴수는 고정적인 소재가 아닙니다.



*어머니 자연: 어떤 에코 페미니스트들은 여자가 생태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여자가 생명체를 직접 낳고 직접 먹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남자가 정자를 제공한다고 해도, 남자는 생명체를 직접 낳지 못하고 직접 먹이지 못합니다. 심지어 어떤 에코 페미니스트들은 이것 때문에 남자가 무기(도구)를 선호한다고 주장합니다. 남자가 뭔가를 직접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자는 무기(도구)를 이용하고 대리 만족합니다. 마리아 미스가 주장한 것처럼, 어떤 언어 문화들에서 남자 성기는 무기(도구)를 상징합니다. 하지만 정말 여자가 자연과 태생적으로 비슷한가요? 이런 주장은 지나친 생물학적 결정론, 우생학인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분명히 여자(의 몸)는 생태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자와 자연을 연결합니다. 자연 역시 여러 생명체들을 낳고 풍족하게 먹입니다. 자연이 여자이기 때문에, 자연은 어머니가 됩니다. 만약 행성이 생명의 요람이 된다면, 행성은 어머니 행성이 될 겁니다.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에게 어머니 행성은 유용한 상징입니다. 하지만 이런 개념은 여자와 육아를 억지로 연결할지 모릅니다. 서구 제국주의 속에서 비경 탐험이 식민지 수탈을 미화하는 것처럼, 가부장적인 편견 속에서 어머니 행성은 여자와 육아를 억지로 연결하고 성 차별을 미화할지 모릅니다. 어머니 행성은 심각한 성 착취가 될지 모릅니다.


만약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이 어머니 행성이라는 개념을 이용하기 원한다면,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은 가부장적인 착취 경제를 비판하고 돌봄 노동 사회화를 주장해야 할 겁니다. 만약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이 가부장 문화를 경계한다면, 어머니 행성은 유용하고 비유적인 개념이 될 겁니다. 심지어 어머니 행성은 비유적인 개념보다 설정이 됩니다. 자연 생태계는 총체적인 지성이 되고, 자연(행성)은 피조물들과 소통합니다. 이런 설정은 문자 그대로 자연의 여신입니다. 자연의 여신으로서 이런 설정에는 경이로운 영성이 있습니다. 종종 어머니 행성 설정은 가이아 이론과 만납니다.



[어머니 자연과 함께 신화적인 자연 존재로서 거대 괴수는 가장 영성이 넘치는 생태학 SF 소재입니다.]



*생태계 시뮬레이션 게임: 특이하게도 이 하위 장르 및 소재는 (비디오) 게임 매체, 형식과 떨어지지 못합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작은 신이 됩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삼림 레인저나 생명 과학자나 다른 무엇이 될 수 있으나, 전반적으로 게임 플레이어는 작은 신이 됩니다. 작은 신으로서 게임 플레이어는 새로운 생명체들을 만들고 퍼뜨립니다. 이런 게임들은 다른 과학 분야들보다 진화 생물학에 기반합니다. 상당수 게임들은 생물학, 생태학, 환경 사회학 소프트웨어가 될 수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생명체들을 직접 만들고 직접 퍼뜨리기 때문에, (비디오) 게임 이외에 다른 매체들은 여기에 부합하지 못합니다.


일반적으로 생태계 시뮬레이션 게임은 SF 장르보다 시뮬레이션 게임 및 교육 소프트웨어에 속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심라이프>와 <제노블룸>과 <인텔리젠트 디자인>이 SF 장르보다 시뮬레이션 게임 및 교육 소프트웨어라고 간주할 겁니다. 많은 사람들은 <제노블룸>이 바이오펑크보다 <심사파리>, <벤처 아크틱>, <Natural Instincts> 같은 생태계 시뮬레이션 게임들에 가깝다고 간주할 겁니다. 그래서 <심라이프>와 <제노블룸>과 <인텔리젠트 디자인>이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골수 SF 독자들은 어떻게 <제노블룸>이 SF 장르에 속하는지 반박할 테고, 이런 분류는 많은 논란들을 일으킬 겁니다.


하지만 분명히 <심라이프> 같은 게임은 새로운 생명체, 새로운 진화 역사를 보여줍니다. 새로운 진화 역사는 시대 격차를 일으킵니다. 새로운 진화 역사와 시대 격차는 생태학 SF 울타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자연 생태계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심라이프>가 많은 논란들을 일으킨다고 해도, <심라이프>와 다른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들 사이에는 여러 유사성들과 비슷한 생산 조건이 있습니다.



*결론: 생태학 SF 울타리에는 비경 탐험, 환경 아포칼립스, 생태 유토피아, 바이오 돔, 초거대 고리 건축물, 테라포밍, 바이오펑크 생물상, 거대 생체 탈것, 거대 괴수, 어머니 자연, 생태계 시뮬레이션 게임이 있습니다. 물론 생태학 SF 울타리 안에는 이것들 이외에 다른 여러 소재들이 있고, 소재들을 정확하게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라마와의 랑데부>가 우주 탐사물인가요, 바이오스피어 우주선인가요, 바이오펑크 생태계인가요, 우주 고리 건축물인가요? 아니면 <라마와의 랑데부>가 이 게시글이 설명하지 않은 다른 무엇인가요? 장르가 고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 게시글은 모든 생태학 SF 장르와 소재를 폭넓게 파악하지 못합니다. 이런 분류는 훨씬 많은 분량을 요구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바이오스피어 우주선부터 거대 괴수와 어머니 행성까지, 이 게시글은 생태학 SF 울타리 안에 무엇이 있는지 어느 정도 설명합니다.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은 이런 소재들을 이용해 '자연과 문명'을 이야기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소재들 사이에 연결 고리가 없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소설 <홍수의 해>와 비디오 게임 <서브머지드>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있나요? 애니메이션 <고지라: 행성 포식자>와 보드 게임 <테라포밍 마스>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있나요? 만약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이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이라면, <심라이프> 역시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인가요? 거대 괴수를 이해하기 위해 SF 독자가 바이오스피어 우주선과 환경 아포칼립스와 테라포밍 공학을 고민해야 하나요? <다섯 번째 계절>과 <뉴욕 2140>과 <판도라: 퍼스트 콘택트>와 <소멸의 땅>이 이어질 수 있나요? 가이아 이론과 거대 괴수가 만날 수 있나요? 거대 괴수가 어머니 행성의 딸인가요? 언뜻 이런 이야기들은 이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생태학 SF 울타리 안에 함께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만약 SF 팬들이 이런 복합적인 관계들을 파악한다면, SF 팬들은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을 훨씬 풍성하고 다채롭게 바라볼 수 있을 겁니다. 사회적인 존재로서 우리 인간들이 다양한 관계들을 맺는 것처럼, 생태학 SF 소재들 역시 다양한 관계들을 맺습니다. 자연 생태계가 복합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것처럼, 생태학 사이언스 픽션은 어떤 개별적이고 고정적인 개체보다 복합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흐름과 체계입니다. 이 블로그 <SF 생태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은 이런 복합적인 흐름과 체계인지 모릅니다.


흐름과 체계를 파악하기 위해 이 블로그는 여러 사이언스 픽션들을 지속적으로 비교하고 대조합니다. 하지만 11월 9일 게시글이 지적한 것처럼, 이런 작업은 일반적인 SF 평론보다 특정한 기호학, 해석학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생태학 SF 장르를 규정하기 위해 일반적인 SF 평론보다 특정한 기호학, 해석학은 훨씬 중요한지 모릅니다. 생태학 SF 덕질은 소설 <붉은 화성>과 어슐라 르 귄과 환경 사회학과 유치뽕짝 거대 괴수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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