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별을 쫓는 사람들>과 비경 탐험의 로망 본문
아마 누구나 어렸을 적에 인상적으로 읽은 책들이 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책들 중 하나가 <별을 쫓는 사람들>과 <우주 소년 케무로>입니다. 이 글에서는 <별을 쫓는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싶군요. 에드워드 에반스가 쓴 소설이죠. 저는 그걸 이른바 'SF 세계 명작' 시리즈를 통해 접했습니다. 지금은 저 책들을 구하기 어렵고, 직지 프로젝트를 통해 볼 수 있죠. <별을 쫓는 사람들>은 일종의 우주 탐험 소설입니다. 청소년 소설처럼 보이고, 내용은 간단합니다. 우주 항해가 일반화된 시대, 어느 가족이 우주선을 타고 탐사를 떠납니다.
이들은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고, 그 행성에 자신들이 다녀갔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어합니다. 만약 이 가족이 행성을 탐사하고 흔적을 남기면, 정부는 그걸 인정하고 보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순조로울 것 같은 여정은 사고에 부딪히고, 이 가족은 여러 갈등과 문제에 부딪힙니다. 탐험 대장인 아버지가 위급한 지경에 처했고 나머지 가족들이 탐험 과정을 결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우주선 조종이나 탐험을 잘 모르고, 우주선을 조종할 수 있는 아이 두 명은 아직 어립니다. 어머니는 최대한 안전하게 탐사하기 원하고, 두 아이는 자신들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기 원합니다.
따라서 (위급한 아버지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 명은 이리저리 부딪힙니다. 비록 어머니는 우주선에 관해 잘 모르나, 어른다운 시선으로 사태를 주시하고 두 아이가 성급하게 결론으로 돌진하지 않도로 배려합니다.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는 각자 맡은 분야가 다르고, 그래서 몇 번 보이지 않게 다투거나 알력을 행사합니다. 특히 어머니와 두 아이가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이 소설을 이끌어나간다고 할 수 있겠죠. 그렇다고 해도 그런 갈등이 탐험 자체를 좌우하거나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뜻은 아닙니다.
청소년 소설답게 갈등은 금방 봉합되고, 가족 세 명은 새로운 탐사에 주력해요. 어쩌면 소설 원작은 더욱 많은 내용들을 담았을지 모르나, 적어도 제가 읽은 번역본은 그랬습니다. 탐험 대장이 부재한다는 사실이 내부적 갈등을 키운다면, 새로운 행성들은 외부적인 변화일 겁니다. 별을 쫓는다는 제목처럼 이 가족은 다양한 행성들을 방문합니다. 그리고 그 행성들은 다양한 생태계를 선보입니다. 어디는 지구와 비슷하고, 심지어 가족은 물고기를 낚시하고 요리합니다. 어느 행성에서는 문명의 잔재처럼 보이는 물건이 남았고 그걸 함부로 연구하기가 위험합니다.
어느 행성에는 유령처럼 생긴 생명체들이 돌아다닙니다. 부서지기 쉽기 때문에 함부로 수집하기가 어려워요. 어느 행성에는 거대한 불꽃이 살아있는 것처럼 우주선을 공격합니다. 아니, 그건 살아있는 불꽃일 겁니다. 이처럼 가족 탐사대는 여러 자연 환경들을 돌아다니고, 희한한 생명체들을 만나고, 기이한 발견물을 조사합니다. 어쩌면 원작 소설에는 더 풍부한 행성들이 등장할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우리나라 번역본만 읽어도 소설이 어떤 분위기와 감성을 추구하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그야말로 낯선 곳, 낯선 생태계, 낯선 생명체들을 향하는 동경이죠. 줄거리는 단촐하나, 이 소설은 그런 것들을 정직하게 담았고, 여러 자연 생태계들과 우주 탐사는 신비롭고 낭만적입니다. 독자는 우주선을 타거나 아니면 두 아이를 따라 온갖 장소들을 모험하고 희한한 생명체들과 조우합니다. 그런 생명체들이 동물인지 식물인지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페이지를 넘기고 새로운 장이 나올 때마다, 이번에 어떤 행성에 도착하거나 어떤 자연 환경과 만날지 기대가 넘칩니다. 살아숨쉬는 독특한 생명체들이 소설 곳곳에 퍼졌고, 미지를 향한 동경을 강하게 자극합니다.
저는 이런 탐험이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장르에 가장 충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주 항해, 새로운 외계 행성들, 다양한 생태계들과 생명체들. 이런 우주 탐험은 다른 소재들에 비해 좀 더 순수하게 사이언스 픽션에 충실합니다. 우주 탐험이 시간 여행이나 포스트 아포칼립스나 사이버펑크나 디스토피아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미지는 저 멀리에 있고, 인류가 그 미지를 찾고 싶다면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친근하고 익숙한 문명을 떠나고 낯선 세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예전에 말한 것처럼 수많은 과학자들은 극지와 사막과 고산 지대와 열대 우림을 탐험했습니다.
그 속에서 새로운 동식물들을 만나고, 진화론 같은 혁명적인 사상을 도출했죠. 이런 탐험은 분명히 SF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허버트 웰즈나 쥘 베른이 쓴 소설에는 비경 탐험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쥘 베른은 <해저 2만리>라는, 비경 탐험과 SF 소설만 아니라 소설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명작을 썼습니다. 허버트 웰즈는 각종 중편과 단편 소설들에서 열대 밀림, 이상한 생명체들, 탐험가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쥘 베른과 허버트 웰즈가 SF 장르에 끼친 영향을 고려한다면, 비경 탐험이 SF 장르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무시하지 못하겠죠. 비경 탐험은 초기 SF 소설과 동행했습니다.
<별을 쫓는 사람들>은 <해저 2만리>와 비슷한 분위기를 선보입니다. 두 소설은 각각 우주와 해저를 이야기하나, 전반적인 골격은 비슷합니다. 등장인물들은 탐험가들입니다. 그들은 우주선이나 잠수함을 타고, 인류의 시선이 미치지 않은 다양한 행성이나 바다를 둘러보고, 지리와 생태계를 연구합니다. 우주선은 잠수함과 그리 다르지 않고, 우주복은 잠수복과 그리 다르지 않아요. 네모 선장 일행이 바닷속에서 진귀하고 화려한 해양 생물들을 만난 것처럼 가족 탐사대 역시 외계 행성에서 기이하고 신비로운 생명체들을 만납니다.
바닷속은 외계가 아니나, 외계와 다르지 않습니다. 현대 문명인이 쉽게 그 바닷속을 생각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바닷속은 외계와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히 <해저 2만리>와 달리 <별을 쫓는 사람들>은 그리 하드하지 않습니다. 이 소설은 그리 전복적이지 않고 깊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별을 쫓는 사람들>은 초기 SF 소설들이 품은 유지를 계승합니다. 이 소설은 비경 탐험이라는 낭만을 우주로 돌렸고 독자는 우주선을 타거나 탐사대와 함께 낯선 자연 환경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탐험이라는 행위는 독자를 저 멀고 먼 우주로 데려갑니다.
좀 더 넓은 세상을 둘러보고 좀 더 다른 세상을 둘러보는 것. 그 세상은 우주가 될 수 있고, 바닷속이 될 수 있고, 열대 밀림이 될 수 있고, 극지가 될 수 있습니다. 장소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탐사대는 문명이 아직 알지 못하는 세계를 떠돌고, 탐사대와 동행하는 독자는 시야를 넓힐 수 있어요. '새로운 세계를 찾아 이동한다'는 개념은 비경 탐험에서 가장 빛을 발합니다. 시간 여행이나 포스트 아포칼립스나 사이버펑크 역시 저런 개념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시간 여행 소설에서 주인공은 인류가 본 적이 없는 공룡이나 미래 도시를 향해 떠날 수 있습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에서 주인공은 인류가 상상한 적이 없는 무너진 대도시를 떠돌지 모릅니다. 사이버펑크 소설에서 주인공은 이상한 규칙이 지배하는 가상 공간에 접속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장르들 역시 '새로운 세계를 찾아 떠나는 개념'을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비경 탐험이 제일 순수하게 공간적인 이동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합니다. 비경 탐험 소설에서 인류는 무조건 문명을 떠나야 합니다. 다른 하위 장르 소설들은 그렇지 않죠.
저는 문명을 떠난다는 특징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류는 문명과 깊은 연관을 맺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이나 개념, 사고 방식, 이기 등은 항상 문명과 맞닿았습니다. 하지만 비경 탐험 소설은 바다와 극지와 밀림과 외계 행성으로 탐사대를 밀어넣고, 문명 세계는 그들을 돕지 못합니다. <콩고>에서 마이클 크라이튼이 강조했듯 탐사대는 다양한 첨단 장비들을 이용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런 장비들을 이용한다고 해도 이 거대한 외부 세계는 (그게 바다이든 극지이든 밀림이든 외계 행성이든) 탐사대와 첨단 장비마저 압도할 수 있습니다.
거대한 외부 환경이 탐사대를 압박하지 않는다고 해도 탐사대는 (문명 세계에서 절대 볼 수 없는) 다양한 현상들이나 생명체들과 만날지 모릅니다. 그런 만남은 너무 매력적이죠. 그래서 독자는 문명 너머 더 넓은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죠. 저는 비경 탐험 소설이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시간 여행이나 포스트 아포칼립스나 사이버펑크보다 훨씬 순수한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생각해요.
흠,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죠.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크, 로버트 하인라인은 이른바 3대 SF 장인으로 불립니다. 그리고 이 양반들은 모두 우주 탐사에 주력했습니다. 이 양반들 역시 시간 여행이나 로봇이나 우주 전쟁이나 포스트 아포칼립스나 사이버펑크를 썼으나, 중후장대한 우주 탐사가 제일 공통적인 특징이죠. 이렇듯 비경 탐험 소설은 '우리가 문명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왜 문명 안에서 안주해야 할까요.
문명 밖에는 더욱 많은 생명체들과 자연 환경이 존재합니다. 시간 여행이나 포스트 아포칼립스나 사이버펑크는 문명 밖으로 떠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런 장르들은 꾸준히 문명 안에 머물려고 합니다. 무너진 대도시를 떠도는 생존자조차 여전히 문명의 잔재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경 탐험이 미지를 찾아가는, 제일 순수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허먼 멜빌이 <백경> 초기에서 언급했고, 칼 세이건이 <창백한 푸른 점>에서 인용한, "금단의 바다를 항해하는" 매력은 우리에게 문명 밖으로 나가고 다른 생명체들을 바라보라고 이야기합니다.
뭐, <별을 쫓는 사람들>이 비경 탐험이 보여주는 어마어마한 매력을 잔뜩 늘어놓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소설은 <라마와의 랑데부>가 아닙니다. <별을 쫓는 사람들>은 짧고 단순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분명히 그런 로망을 간직했고, 단순하지만 솔직하게 그 로망을 드러냅니다. 저 머나먼 자연 환경과 외계 행성. 이런 소설은 그 존재만으로 독자를 행복한 상상으로 유도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