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문명: 비욘드 어스>의 친화도와 도시 외관 본문
[순수한 인류, 외계 자연과의 조화, 기술적인 특이점. 세 친화도들은 도시 외관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비디오 게임 <문명: 비욘드 어스>는 세 가지 친화도들을 보여줍니다. 외계 행성을 개척하고 새로운 자연 환경에 정착하기 위해 인류 문명은 친화도를 선택해야 합니다. 순수 친화도는 외계 자연 생태계를 테라포밍하고 싶어합니다. 외계 토착 생명체들은 사라질 테고, 새로운 행성에서 지구 생명체들은 번성할 겁니다. 조화 친화도는 인간이 외계 자연 생태계에 적응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조화 친화도는 인간이 외계 유전 형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비록 더 이상 순수한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순수한 인간 형질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류 문명은 외계 자연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우월 친화도는 순수와 조화가 모두 육체에 매달린다고 비웃습니다. 우월 친화도는 육체를 버리고 기계화를 추구합니다. 인간이 첨단 기계를 만들 수 있음에도, 왜 인간이 순수한 유전 형질이나 외계 자연 생태계에 매달려야 합니까? 인간은 거추장스러운 고깃덩이에서 벗어나고 효율적인 첨단 기계가 될 수 있습니다. 조화 친화도와 우월 친화도는 모두 트랜스휴머니즘을 추구합니다. 순수 친화도는 트랜스휴머니즘이 순수한 인류를 해친다고 펄쩍 뛰겠으나, 새로운 미래를 위해 조화와 우월은 인간성이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이런 사상들은 최종 병기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모릅니다. 순수, 조화, 우월에게는 모두 결전 병기들이 있습니다. 순수에게는 공중 부양 구축함이 있습니다. 조화에게는 떡대 갯가재 괴수 제노 타이탄이 있습니다. 우월에게는 4족 보행 로봇 ANGEL이 있습니다. 제노 타이탄 및 ANGEL과 달리, 공중 부양 구축함은 다리들로 걷지 않습니다. 제노 타이탄과 ANGEL에게는 다리들이 있으나, 이름처럼 공중 부양 구축함은 둥둥 떠다닙니다. 제노 타이탄과 ANGEL은 보행 병기이나, 공중 부양 구축함은 그렇지 않아요. 어쩌면 이건 순수가 조화 및 우월에게서 거리를 둔다는 뜻인지 모릅니다.
순수는 복고적인 것을 추구하고 거대 괴수와 보행 병기를 좋아하지 않아요. 순수 역시 보행 병기와 강화복을 무시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해도 순수는 복고적인 것을 훨씬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우월 결전 병기 ANGEL은 복고적이지 않습니다. 우월 친화도는 ANGEL이 아주 효율적인 스마트 병기라고 자랑합니다. 섬세하고 각진 4족 보행 병기는 복고적인 것과 대조적입니다. 조화 떡대 괴수 제노 타이탄은 자신이 엄청난 생명체라고 온 몸으로 외치는 것 같습니다. 제노 타이탄은 인류 문명보다 외계 자연이 낳은 혐오스러운 괴물 같습니다. 순수는 스마트 보행 병기와 혐오스러운 외계 괴물을 좋아하지 않아요.
공중 부양 구축함은 성채 같습니다. 투박하고 웅장하고 굳건한 모습은 정말 성채 같습니다. 공중 부양 구축함은 깃발을 휘날리고 길다란 천을 늘어뜨립니다. 이런 모습은 고풍스러운 중세 성채와 비슷합니다. 심지어 공중 부양 구축함에는 성기사 조각상이 있습니다. 성기사 조각상은 후드를 쓰고 두 어깨 보호구를 걸치고 장검과 카이트 쉴드를 들었습니다. 순수는 정말 복고적인 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중세 성채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 위해 공중 부양 구축함은 성기사 조각상을 장식했을 겁니다. 우월 친화도는 절대 이런 짓거리를 저지르지 않을 겁니다. 조화 친화도 역시 그렇습니다.
제노 타이탄이 온 몸으로 외계 자연을 외치기 때문에, 구태여 조화 친화도는 제노 타이탄에게 뭔가를 장식하지 않을 겁니다. 사실 제노 타이탄이 다른 세력들과 치열하게 싸워야 함에도, 제노 타이탄은 장갑판들을 걸치지 않았습니다. 공중 부양 구축함과 ANGEL이 탄탄한 금속 장갑판들을 자랑함에도, 제노 타이탄은 갑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껍질 그 자체가 든든한 장갑판이기 때문에, 제노 타이탄은 구태여 갑옷을 입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노 타이탄이 갑옷을 입지 않는다고 해도, 게임 속에서 제노 타이탄은 가장 높은 체력을 선보입니다. 제노 타이탄은 정말 살아있는 장벽입니다.
세 친화도들은 비단 결전 병기들만 아니라 도시 디자인들에 영향을 미칩니다. 인류 문명이 특정한 친화도에 치중한다면, 도시 역시 특정한 디자인으로 바뀔 겁니다. 인류 문명이 순수 친화도를 선택한다면, 도시 디자인은 직각을 중시할 겁니다. 순수 도시에는 크고 작은 직사각형들이 있습니다. 순수 도시는 기하학적인 곡선이나 비스듬한 첨탑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순수 도시는 질서 정연하고 안정적이어야 합니다. 크고 작은 직사각형들은 투박할지 모르나, 산만하거나 불안하지 않습니다. 공중 부양 구축함을 비롯해 순수 전투 유닛들이 그러는 것처럼, 순수 도시는 황토색에 붉은색 선을 덧칠합니다.
순수 도시는 첨단 과학 기술을 추구하나, 순수 도시는 사이버펑크들이 선사하는 메트로폴리스들과 다릅니다. 사이버펑크 메트로폴리스와 달리, 순수 도시는 화려하거나 번쩍거리지 않습니다. 투박한 직사각형 건물들에는 화려함이 없습니다. 성기사 조각상이 강조하는 것처럼, 순수 도시는 화려한 멋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중세 성채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중세 성채는 사이버펑크 메트로폴리스와 대조적입니다. 중세 성채는 안정적이고 든든해야 합니다. 어쩌면 공중 부양 구축함이 성기사 조각상을 장식한 것처럼, 순수 도시에는 복고적인 조각상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순수 도시와 달리, 우월 도시는 사이버펑크 메트로폴리스와 닮았습니다. 우월 도시는 기하학적입니다. 우월 도시 역시 각을 중시하나, 우월 도시에서 직선들은 날카롭고 비스듬하고 날씬합니다. 짙은 바탕에서 우월 도시는 노란 불빛들을 번쩍거립니다. 우월 도시는 단조로운 직사각형들이 아닙니다. 어쩌면 우월 건축물들은 광역 네트워크로 서로 연결했는지 모릅니다. 우월 친화도가 첨단 기계화와 네트워크를 중시하기 때문에, 우월 도시에는 그런 것들이 있을 겁니다. 흔히 사람들이 미래 도시를 머릿속에 떠올릴 때, 사람들은 첨단 기계와 광역 네트워크를 상상합니다. 우월 도시는 이런 상상력과 가장 비슷한지 모릅니다.
게임 <문명: 비욘드 어스>가 도시 풍경을 자세히 보여주거나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어는 도시 풍경을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못합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그저 대략적인 설정과 유닛들을 이용해 도시 풍경을 짐작할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순수와 조화와 우월 중에서 우월 도시는 사이버펑크 메트로폴리스와 가장 많이 닮았을 겁니다. 하지만 사이버펑크 메트로폴리스와 달리, 우월 도시는 자신이 디스토피아가 아니라고 주장할 겁니다. 사이버펑크 소설들에서 메트로폴리스들은 우울한 기운을 풍기나, 우월 도시는 자신이 디스토피아보다 기술적 특이점 유토피아에 가깝다고 주장할 겁니다. 만약 순수와 조화가 여기에 반박한다면, 우월은 보행 병기 ANGEL을 내보내고 순수와 조화를 우월하게 만들 거에요.
비록 순수와 우월이 대조적이라고 해도, 순수 도시와 우월 도시 모두 직선들을 보여줍니다. 순수 도시와 우월 도시는 딱딱한 직선들을 보여주나, 조화 도시는 구부러진 곡선들을 보여줍니다. 조화 도시에는 직선들이 별로 없습니다. 어쩌면 조화 도시는 안토니 가우디가 이야기하는 건축 사상을 반영하는지 모릅니다. 안토니 가우디는 인간이 창조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창조하지 않습니다. 자연은 선천적으로 창조하고, 인간은 그저 자연을 빌릴 뿐입니다. 자연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창조하지 못할 겁니다. 자연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건축물을 짓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자연은 곡선입니다. 소나무와 혹등고래와 구름버섯에는 직선이 없습니다. 생명 현상에는 딱딱한 직선이 없습니다. 생명 현상에 직선이 있다고 해도, 직선보다 곡선은 훨씬 두드러집니다. 그래서 안토니 가우디는 곡선 건축물들을 만듭니다. 구엘 공원을 보세요. 구엘 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도마뱀 조각상은 정말 곡선입니다. 안토니 가우디가 자연을 중시하는 것처럼, 조화 친화도 역시 자연을 중시합니다. 물론 가우디와 조화 친화도는 '자연'을 다르게 해석합니다. 자연이라는 단어는 아주 다양한 것들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안토니 가우디와 조화 친화도는 똑같이 자연에게서 영감을 빌리고 곡선 건축물들을 만들었습니다.
[조화 도시와 조화 자주포는 비슷한 외관입니다. 하지만 제노 타이탄은 조화 도시와 닮지 않았습니다.]
공중 부양 구축함은 순수 도시와 비슷합니다. 양쪽 모두 투박한 직선들을 강조하고 황토색 배경에 붉은 선을 집어넣습니다. 보행 병기 ANGEL은 우월 도시와 비슷합니다. 양쪽 모두 스마트 분위기를 강조하고 짙은 잿빛 바탕에 노란 불빛들을 집어넣습니다. 반면, 제노 타이탄은 조화 도시와 별로 닮지 않았습니다. 조화 도시는 구부러진 녹색 곡선들을 보여주나, 제노 타이탄은 기괴한 떡대 갯가재입니다. 하지만 제노 타이탄이 기괴한 떡대 갯가재라고 해도, 다른 조화 유닛들은 조화 도시와 비슷합니다. 레비아탄 잠수함과 조화 도시는 똑같이 기이한 녹색 곡선을 자랑합니다.
사실 제노 타이탄은 개조 생명체입니다. 하지만 조화 건물들이 자연을 모방한다고 해도, 조화 건물들은 생명체가 아닐 겁니다. 그래서 제노 타이탄과 조화 건물들은 다를 겁니다. 조화 건물들이 자연을 중시한다고 해도, 완전한 생명체 제노 타이탄과 달리, 조화 건물들은 완전한 생명체가 아닐 겁니다. 조화 건물이 생체 사이보그에 가깝다고 해도, 생체 사이보그와 개조 생명체는 다를 겁니다. 속편(?) 게임 <시드 마이어의 스타쉽>에서 이런 디자인 철학은 계속 이어집니다. 순수 우주선은 순수 도시와 비슷하고, 조화 우주선은 조화 도시와 비슷하고, 우월 우주선은 우월 도시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문명: 비욘드 어스>에서 조화 세력은 제노 타이탄을 선보이나, <시드 마이어의 스타쉽>에서 조화 우주선들 중에는 제노 타이탄 같은 생체 우주선이 없습니다. 어쩌면 조화 우주선들은 생체 사이보그이고, 그래서 조화 우주선들은 스스로 회복하는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제노 타이탄 같은 완전한 생명체와 생체 사이보그는 다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