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로봇이 어디까지 유용할 수 있을 것인가 본문
아이작 아시모프는 <교정 보는 로봇>이라는 단편 소설을 썼습니다. 이 소설은 로봇 3원칙, 특히 인간에게 피해를 입히지 말라는 원칙을 어떻게 로봇이 해석할지 주로 이야기하죠. 이 소설을 읽었을 때 아시모프 특유의 논리적 전개와 반전에 감탄했으나, 한편으로 교정 로봇이 참 부럽더군요. 이 로봇은 제목처럼 오탈자를 고칩니다. 어려운 물리학 책을 건네도 순식간에 오탈자를 고칩니다. 아마 단편 소설 정도는 순식간에 고칠 수 있겠죠. 글을 많이 쓰는 사람이라면, 이런 로봇이 꽤나 유용할 겁니다. 성격이 덜렁거리는 글쓴이라면, 훨씬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겠죠. 개인적으로 상당히 덤벙거리는 성격이기 때문에 글을 쓸 때도 오탈자를 많이 냅니다. 이 블로그에서도 벌써 수많은 오탈자를 냈군요. 분명히 퇴고할 때는 안 보였던 오탈자가 나중에 눈에 떡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 인간 소설가들이 인공지능 소설가를 두려워한다는 말도 있지만, 이런 교정 로봇은 인간 소설가에게도 퍽 쓸모가 많겠죠. 인공지능 입장에서 양산형 소설을 쓰는 것과 문법을 교정하는 것 중에서 뭐가 더 쉬울지 잘 모르겠습니다.
뭐, 이런 것을 떠나서 인간이 인공지능 로봇을 부릴 수 있다면, 위험한 노동자들도 좀 여유가 생기겠죠. 로봇이 위험한 노동을 대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화장실 청소 로봇이 꼭 필요하겠죠. 화장실 청소는 여러 모로 고역이고, 벌칙의 대명사입니다. 사실 응가(…)도 우리 사람이 만드는데, 이걸 너무 지저분하고 천하게 취급하는 것 같습니다. <홍수>에서 정원사들은 응가가 아주 귀중한 비료라고 떠받들더군요. 그런 것까지 아니라도 우리는 응가를 더럽게 취급하고, 더불어 화장실 청소부도 천하게 취급하죠. 게다가 화장실 청소부는 깨끗하게 청소하기 위해 독한 화학 약품을 쓴다고 합니다. 당연히 병원 신세를 많이 진다고 합니다. 어디 화장실 청소뿐이겠어요. 하수구를 청소하다가 죽는 사람도 있고, 건물 위에서 작업하다가 죽는 사람도 있고…. 우리가 로봇을 부릴 수 있다면, 노동자들이 이렇게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아까운 목숨도 살릴 수 있겠죠.
물론 로봇만 등장한다고 전부가 아닙니다. 당연하지만, 기술만으로 혁신할 수 없죠. 사회 체계 또한 바뀌어야 합니다. 사람이 허드렛일을 하더라도, 그 허드렛일이 어느 정도 가치가 있다면, 그 사람은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특이점이 오기 전에 자본을 보유한 사람만 살아남는 자본주의 구조부터 바꿔야 할 겁니다. 기술과 사회 구조가 동시에 바뀔 때, 비로소 약자들도 어깨를 펼 수 있을 겁니다.
※ 이 글에는 제발 교정을 보는 로봇이 필요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