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듄: 파트 2>, 자연보다 인간은 우월하지 않다 본문
[황량한 불모지 행성에서 살아가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인간과 공룡은 똑같은 시대에 속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어떤 문화·예술들이 원시 인간들과 공룡이 대립한다고 묘사한다고 해도, 이건 엄중한 고생물학 고증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원시 인간들과 공룡은 싸우지 않았습니다. 현실에서 이건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트라이아이스기부터 백악기까지, 공룡들이 멸종한 이후, 인간들은 나타났습니다. 인간들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공룡들은 멸종했습니다. 아, 공룡 덕후들에게 이건 너무 애석한 사건입니다. 만약 공룡 덕후들이 살아있는 아파토사우루스를 관찰한다면, 그들은 아주 행복할 겁니다. 애석하게도, 그들은 오직 화석만 관찰할 수 있습니다.
공룡 덕후들은 살아있는 아파토사우루스를 관찰하지 못합니다. 현실에서 이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공룡 덕후들은 오직 아파토사우루스 화석만 관찰할 수 있습니다. 공룡 덕후들이 살아있는 공룡을 관찰하지 못하는 것처럼, 원시 인간들과 공룡은 똑같은 시대에 속하지 않습니다. 만약 양쪽이 똑같은 시대에 속했다면, 어쩌면, 원시 인간들에게 이건 커다란 위기였을 수 있습니다. 스피노사우루스는 육식공룡입니다. 만약 원시 인간들과 스피노사우루스가 조우한다면, 이 수각류는 원시 인간들을 공격할 겁니다. 아아…, 원시 인간들에게 이 수각류는 위험한 상대입니다. 이 야수는 10m를 넘어섭니다.
스피노사우루스는 거대합니다. 이 육식공룡이 거대하기 때문에, 아…, 원시 인간들에게 이 수각류는 위험한 상대입니다. 원시 시대에서 스피노사우루스를 물리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이건 원시 인간들이 이 야수를 물리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무리 스피노사우루스가 10m를 넘어선다고 해도, 원시 인간들은 창들을 던지고 함정들을 팔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이 야수가 위험한 상대라고 해도, 원시 인간들은 이 상대를 물리쳤을 겁니다. 비단 스피노사우루스만 아니라 다른 육식공룡들 역시 비슷합니다. 아무리 수각류들이 거대하다고 해도, 오호라~, 공룡보다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습니다.
어떤 인류학 문서들은 구석기 인간들이 함정을 팠다고 설명합니다. 만약 이 설명이 틀리지 않는다면, 아무리 육식공룡이 거대하다고 해도, 구석기 인간들은 함정들을 팠고 육식공룡을 물리쳤을 겁니다. 원시 인간들이 창들을 던지고 함정들을 파는 것처럼, 오호~, 공룡보다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이성이 있기 때문에, 공룡과 달리, 인간은 문명을 건설합니다. 공룡은 문명을 건설하지 못합니다. 비단 공룡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 역시 문명을 건설하지 못합니다. 흐음, 꿀벌들은 복잡한 사회를 구성하고 둥지를 건설합니다. 그래서 꿀벌이 문명을 건설하나요? 꿀벌 둥지가 문명인가요?
많은 사람들은 고개들을 저을 겁니다. 아무리 꿀벌들이 복잡한 사회를 구성한다고 해도, 아무리 이 곤충들이 둥지를 건설한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은 이 곤충들이 문명을 건설한다고 느끼지 않을 겁니다. 문명은 진보합니다. 고대 문명과 현재 문명은 똑같지 않습니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인공 위성을 날리지 않았습니다. 고대 이집트 문명과 달리, 소비에트 연방은 스푸트니크를 날렸습니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전투기를 제작하지 않았습니다. 고대 이집트 문명과 달리, 소비에트 연방에서 리디아 리트뱌크는 야크 전투기에 탑승했습니다. 리디아 리트뱌크가 증명하는 것처럼, 문명은 진보합니다.
소비에트 붉은 군대에게 스피노사우루스는 무서운 상대가 아닐 겁니다. 전차부터 박격포까지, 소비에트 붉은 군대가 강력한 무기들을 자랑하기 때문에, 스피노사우루스는 무서운 상대가 아닐 겁니다. KV-1 전차에게 이 수각류는 무서운 상대가 아닐 겁니다. 비단 스피노사우루스만 아니라 다른 공룡들 역시 똑같습니다. 아무리 공룡들이 공격한다고 해도, 소비에트 군대는 공룡들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전차를 제작하지 않았습니다. KV-1 전차가 포탄을 날리는 것처럼, 리디아 리트뱌크가 야크 전투기에 탑승하는 것처럼, 문명은 진보합니다. 꿀벌 둥지는 진보하지 않습니다.
500년 전에, 많은 사람들은 전투기를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에서 리디아 리트뱌크는 야크 전투기에 탑승했습니다. 인류 문명은 진보합니다. 이 사례와 달리, 16세기 꿀벌들과 20세기 꿀벌들은 다르지 않습니다. 꿀벌 문명은 진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건 진짜 문명이 아닙니다. 아무리 꿀벌들이 문명을 이룩한다고 해도, 이건 진짜 문명이 아닙니다. 비단 꿀벌들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 역시 똑같습니다. 오직 인류 문명만 진짜 문명입니다. 오직 인류만 (진짜) 문명을 건설하기 때문에, 인간은 특별합니다. 아무리 흰긴수염고래가 거대하다고 해도, 이 고래보다 인간은 특별합니다.
아무리 흰긴수염고래가 거대하다고 해도, 흰긴수염고래는 잠수함을 물리치지 못합니다. 잠수함은 어뢰를 날리고 이 고래를 죽일 수 있습니다. 만약 인류 문명이 모든 흰긴수염고래를 죽인다고 결심한다면, 이 고래들은 멸종을 피하지 못할 겁니다. 적어도, 이 고래들은 멸종 위기에 빠질 겁니다. 이 고래들이 위기에 빠지는 것처럼, 와~, 인간은 특별합니다. 다른 동물들보다 인류(문명)는 우월합니다. 아무리 흰긴수염고래가 거대하다고 해도, 크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1998년 <갓질라>는 크기가 문제라고 홍보했습니다. 1998년 <갓질라>와 달리, 크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크기보다 이성은 중요합니다.
[흰긴수염고래보다 인간이 우월한가요? 그래서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나요?]
비록 흰긴수염고래보다 인간이 작다고 해도, 인간은 잠수함을 건조하고 이 고래를 죽일 수 있습니다. 이 고래는 무기를 제작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이 고래가 거대하다고 해도, 이 고래는 무기를 제작하지 못합니다. 잠수함이 어뢰를 날리는 것처럼, 흰긴수염고래보다 인간에게 이성이 있기 때문에, 흰긴수염고래보다 인간은 우월합니다. 크기보다 이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스피노사우루스보다 인간은 우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게 그저 인간 중심주의에 불과하다고 반대하는지 모릅니다. 흐음, 글쎄요. 이게 인간 중심주의인가요? 비록 이게 인간 중심주의라고 해도, 스피노사우루스는 전투기를 제작하지 못합니다.
분명히, 이 거대한 공룡은 전투기를 제작하지 못합니다. 이 야수와 달리, 인간은 전투기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인간 중심주의와 상관없이, 이건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비록 스피노사우루스보다 인간이 우월하지 않다고 해도, 이 공룡보다 인간은 많은 것들을 합니다. 비록 인간 중심주의가 그저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해도, 분명히, 스피노사우루스보다 인간은 많은 것들을 합니다. 이 거대한 공룡보다 인간이 많은 것들을 하기 때문에, 인간은 다른 동물들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흰긴수염고래보다 인간이 잠수함을 건조하기 때문에, 인간은 다른 동물들을 지배합니다. 인간 중심주의와 상관없이, 이건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비단 현실만 아니라 스페이스 오페라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듄: 파트 2>, 이 실사 영화는 스페이스 오페라입니다. 이 스페이스 오페라는 모래벌레를 묘사합니다. 모래벌레는 거대 괴수입니다. 이 괴수는 아주, 아주 거대합니다. 우와아~, 심지어 갓질라조차 모래벌레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아라키스 행성에서 많은 사람들은 이 거대 괴수를 두려워합니다. 아무리 스파이스 채취기가 거대하다고 해도, 모래벌레는 이것을 삼킬 수 있습니다. 거대한 모래벌레 아가리가 스파이스 채취기를 삼킬 때, 많은 사람들은 전율할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율하는 것처럼, 아…, 인간들이 이 거대 괴수를 지배하지 못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아무리 모래벌레가 거대하다고 해도, 아무리 모래벌레가 '자연의 힘'이라고 해도, 인간들은 이 거대 괴수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프레멘들은 아라키스 부족민들입니다. 그들은 인간들입니다. 프레멘들은 모래벌레에 탑승할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프레멘들이 모래벌레를 조종한다면, 이 프레멘들은 '모래 기사'들일 겁니다. 모래 기사들이 원하는 대로, 모래벌레는 움직입니다. 머나먼 사막을 가로지르기 위해 모래 기사들은 모래벌레를 조종합니다. 이 거대 괴수가 지칠 때까지, 모래 기사들은 멈추지 않습니다. 모래 기사들이 조종하기 때문에, 이 거대 괴수는 탈진합니다. 모래 기사들은 대단합니다.
아무리 모래벌레가 거대하다고 해도, 모래 기사들이 조종하기 때문에, 이 거대 괴수는 탈진합니다. 이 거대 괴수가 탈진하는 것처럼, 모래 기사들은 대단합니다. 모래 기사들은 인간들입니다. 아무리 모래벌레가 스파이스 채취기를 삼킨다고 해도, 모래 기사들이 이 거대 괴수를 조종하는 것처럼, 인간은 '자연의 힘'을 지배합니다. 어쩌면, <듄: 파트 2>에서 모래벌레 탑승은 가장 중요한 장면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영화 제작자들은 모래벌레 탑승이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의도했을 수 있습니다. 비록 이 장면이 가장 중요하지 않다고 해도, 영화 예고편은 이 장면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왜 영화 예고편이 모래벌레 탑승을 강조하나요?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 장면은 인간이 '자연의 힘'을 지배한다고 묘사합니다. 아무리 모래벌레가 거대하다고 해도, 프레멘이 이 거대 괴수를 조종하기 때문에, 인간은 우월합니다. 이 장면은 인간이 우월하다고 보여줍니다. 심지어 거대 괴수조차 인간을 위한 탈것이 됩니다. 심지어 모래벌레조차 그저 거대 생체 탈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영화 예고편은 모래벌레 탑승을 강조하는지 모릅니다. <듄: 파트 2>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고 묘사하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어떤 관객들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해석이 타당한가요?
비단 <듄: 파트 2>만 아니라 <듄: 어웨이크닝>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듄: 어웨이크닝>은 비디오 게임입니다. 이 게임 예고편은 모래벌레 탑승을 강조합니다. 비단 <듄: 어웨이크닝>만 아니라 <듄: 스파이스 워즈>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듄: 스파이스 워즈>는 비디오 게임입니다. 이 비디오 게임에서 프레멘들은 이 거대 괴수에 탑승할 수 있습니다. 머나먼 사막을 가로지르기 위해 프레멘들은 이 거대 괴수를 지배합니다. 인간(프레멘)에게 모래벌레는 그저 생체 탈것에 불과합니다. 프레멘들이 모래벌레를 조종하기 때문에, 어떤 게임 플레이어들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고 해석하는지 모릅니다.
흰긴수염고래가 잠수함을 물리치지 못하는 것처럼, 프레멘들이 모래벌레를 조종하는 것처럼, 인간은 자연을 지배합니다. 이 해석이 타당한가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나요? 자연이 무엇인가요? 자연이 무엇을 뜻하나요? 아무리 프레멘들이 모래벌레를 조종한다고 해도, 프레멘들은 아라키스 행성이 좋은 행성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아라키스 행성은 모래 사막 행성입니다. 이 행성은 너무 황량합니다. 이 행성이 너무 황량하기 때문에, 프레멘들은 생태계 테라포밍을 원합니다. 그들은 아라키스가 풍요로운 행성이 되기 원합니다. 생태계 테라포밍을 위해 프레멘들은 그들의 인생들을 희생합니다.
[프레멘은 모래벌레를 조종합니다. 대규모 전염병은 어떤가요?]
리에트 카인즈는 프레멘 지도자입니다. 이 등장인물은 행성 생태학자입니다. 왜 생태학자가 프레멘들을 지도하나요? 생태학자가 (문자 그대로) 생태계를 연구하기 때문입니다. 생태계 테라포밍이 풍요로운 자연을 약속하기 때문에, 풍요로운 자연을 위해 프레멘들이 그들의 인생들을 희생하기 때문에, 행성 생태학자는 프레멘 지도자가 됩니다. 리에트 카인즈는 프레멘들이 풍요로운 자연에게 의지한다고 증명합니다. 풍요로운 자연에서 프레멘들은 벗어나지 못합니다. 풍요로운 자연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아라키스 행성은 좋은 행성이 아닙니다. 그래서 <듄>은 자연에 관한 영화가 됩니다.
(드니 빌뇌브는 <듄>이 자연에 관한 영화라고 말했습니다.) 풍요로운 자연을 위해 프레멘들이 그들의 인생들을 희생하는 것처럼, 프레멘들은 자연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연에게 의지합니다. 만약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면, 이건 자연보다 인간이 우월하다는 뜻일 겁니다. 만약 자연보다 인간이 우월하다면, 어라~, 왜 인간이 자연에게 의지하나요? 왜 우월(인간)이 열등(자연)에게 의지하나요? 이건 모순입니다. 이게 모순인 것처럼, 자연보다 인간은 우월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다른 동물들보다 인간이 우월하다고 해도, 아무리 인간이 노력한다고 해도,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스피노사우루스보다 인간은 우월합니다. 흰긴수염고래보다 인간은 우월합니다. 다른 동물들보다 인간은 우월합니다. 아무리 인간이 우월하다고 해도, 자연에서 이 동물들은 전부가 아닙니다. 이 동물들 이외에, 많은 생명체들은 자연을 구성합니다. 인간들은 이 생명체들에게 의지합니다. 만약 이 생명체들이 사라진다면, 인간들은 살아가지 못할 겁니다. 만약 모든 꿀벌이 사라진다면, 더 이상, 많은 식물들은 번성하지 못할 겁니다. 많은 식물들이 번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류는 커다란 식량 위기에 빠질 겁니다. 꿀벌들 없이, 인류는 식량 위기에 빠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위기를 예상합니다.
인류는 꿀벌들에게 의지합니다. 꿀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류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비단 꿀벌들만 아니라 다른 생명체들 역시 비슷합니다. 인류가 꿀벌들에게 의지하는 것처럼, 인류는 다른 생명체들에게 의지합니다. 이 생명체들 없이, 인류는 커다란 위기에 빠집니다. 인류가 커다란 위기에 빠지는 것처럼, 이 행성에서 인류는 혼자 살아가지 않습니다. 작은 미생물부터 높은 나무까지, 다른 생명체들과 함께, 인류는 살아갑니다. 사이버펑크는 첨단 기술들이 자연을 대신한다고 묘사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인류에게는 자연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미래를 기대하는지 모릅니다.
사이버펑크처럼, 첨단 기술들이 자연을 대신할 수 있나요? 자연 없이, 많은 생명체들 없이, 오직 향상된 첨단 기술들만으로, 인류가 살아갈 수 있나요? 이 미래가 현실이 될 수 있나요? 어쩌면 이건 가능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이건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구체적인 미래를 예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이 미래가 가능하다고 해도, 지금 당장, 첨단 기술들은 자연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지금 당장, 사이버펑크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죽은 불모지 행성에서 인류는 살아가지 못합니다. 만약 인류에게 자연이 필요하지 않다면, 화성에서 인류가 살아갈 수 있나요? 이건 죽은 행성입니다.
화성은 죽은 불모지 행성입니다. 이 행성에서 인류가 살아갈 수 있나요? 그건 아닙니다. 만약 불모지 행성에서 인류가 살아갈 수 있다면, 많은 사이언스 픽션(SF)들은 생태계 테라포밍을 묘사하지 않을 겁니다. 리에트 카인즈가 생태계 테라포밍을 연구하는 것처럼, 킴 스탠리 로빈슨부터 <언노운 플래닛>까지, 진지한 소설부터 재미있는 보드 게임까지, 많은 사이언스 픽션들은 생태계 테라포밍을 묘사합니다. 불모지 행성에서 인류가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스코치랜드>처럼, 심지어 사이언스 판타지조차 과학과 마법을 결합하고 테라포밍을 묘사합니다. 이건 생태계를 강조합니다.
아무리 인간(프레멘)이 모래벌레를 조종한다고 해도, 이건 자연보다 인간이 우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프레멘)이 생태계 테라포밍을 원하는 것처럼, 인간은 자연에게 의지합니다. 아니, 생태계 테라포밍 없이, 현실에서 우리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지 못한다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코비드-19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 대규모 전염병 사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커다란 고통에 빠졌습니다. 코비드-19처럼, 자연은 무서운 전염병들을 포함합니다. 만약 인류 문명이 야생 서식지들을 파괴한다면, 어쩌면, 또 다시, 다른 전염병은 인류 문명을 습격할 수 있습니다.
코비드-19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지 못한다고 증명합니다. 인류 문명은 야생 서식지들을 파괴해서는 안 됩니다. 야생 서식지들이 중요한 것처럼, 인류는 자연을 존중해야 합니다. 코비드-19는 인류가 자연을 존중해야 한다고 증명합니다. 하지만, 세계화 자본주의에서 이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에게 이윤 극대화가 가장 중요한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자본주의는 훨씬 많은 이윤들을 축적하기 원합니다. 훨씬 많은 이윤들을 위해 자본주의는 훨씬 많은 자원들을 얻기 원합니다. 훨씬 많은 자원들을 위해 자본주의는 자연을 착취합니다. 이윤 극대화에게 자연은 착취 대상입니다.
[다른 많은 생명체들과 함께, 인류는 살아갑니다.]
훨씬 많은 이윤들을 축적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많은 상품들을 판매하기 원합니다. 자본주의가 많은 상품들을 원하기 때문에, 자연은 상품이 됩니다. 비록 자연이 위험한 전염병들을 포함한다고 해도, 야생 동물들은 상품들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야생 동물들을 거래하기 때문에, 또 다시, 위험한 전염병은 인류 문명을 습격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자연을 착취하는 것처럼, 야생 동물들이 상품들이 되는 것처럼, 자본주의에서 자연을 존중하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특히, 지구 온난화는 위험한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많은 상품들을 만들기 위해 자본주의는 많은 화석 연료들을 태웁니다.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화석 연료들은 자본주의 기반이었습니다. 이것들이 자본주의 기반이기 때문에, 재생 에너지들보다 이것들은 많은 이윤들을 축적합니다. 아무리 재생 에너지들이 증가하는 중이라고 해도, 아무리 이것들이 이윤들을 축적한다고 해도, 여전히, 재생 에너지들보다 화석 연료들은 자본주의 기반입니다. 많은 화석 연료들 때문에, 지구 대기 중에서 온실 가스들은 너무 많습니다. 너무 많은 온실 가스들 때문에, 지구 온난화는 위험한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지구 온난화는 자본주의 문제입니다. 만약 자본주의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지구 온난화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핵 융합 동력이 지구 온난화를 해결한다고 기대하는지 모릅니다. 이 사람들처럼, 개인적으로, 저는 핵 융합 동력을 기대합니다. 아무리 핵 융합 동력이 좋은 대안이라고 해도, 언제 이게 가능한가요? 언제 이게 기후 위기를 해결하나요? 10년 이후, 핵 융합 동력이 가능할 수 있나요? 흐음, 과학자들은 확신하지 못합니다. 10년 이후, 아무리 핵 융합 동력이 가능하다고 해도, 이게 가능하기 전에, 기후 변화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커다란 고통에 빠질 겁니다. 지구 온난화는 자본주의 문제입니다. 자본주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커다란 고통에 빠질 겁니다. 자본주의는 위험합니다.
자본주의가 자연을 착취하기 때문에, 자연이 상품이 되기 때문에, 온실 가스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건 위험합니다. 자본주의에서 기후 정의를 실천하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기후 정의가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을 존중하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환경 운동과 자본주의는 대립합니다. 만약 환경 운동이 환경 문제들을 해결하기 원한다면, 환경 운동과 자본주의는 공존하지 못할 겁니다. 둘 중에서 하나는 사라져야 합니다. 적어도, 환경 운동은 이것을 통제해야 합니다. 만약 환경 운동이 이것을 떠받든다면, 환경 문제들을 해결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기후 변화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2022년 10월, 언론 매체들은 비단뱀이 인간을 삼켰다고 보도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인간은 비단뱀에게 먹혔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사건이 끔찍하다고 느낄 겁니다. 아무리 어떤 사람들이 야생을 중시한다고 해도, 이 사람들은 이 사건이 끔찍하다고 느낄 겁니다. (아무리 이 블로그가 생태학을 떠든다고 해도, 이 사건은 끔찍합니다.) 만약 인류가 야수들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비단뱀이 인간을 삼키는 것처럼, 인류는 끔찍한 사건들을 막지 못할 겁니다. 다행히, 인류는 야수들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인류가 야수들을 통제한다고 해도, 생태계보다 인간들은 우월하지 않습니다.
※ 사진 <4k … 1920x1080> 출처: janeb13,
https://pixabay.com/photos/blue-whale-ocean-mammal-1198719/
※ 영화 <듄: 파트 2> 스틸샷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81JOj5-xNGc
※ 사진 <Beautiful Flowers …> 출처: sharkolot,
https://pixabay.com/photos/flower-bee-honeybee-insect-7236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