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도미넌트 스피시즈>와 대체 진화 역사 본문
만약 과학자들이 완벽하게 도덕적인 인공 지능을 만든다면, 이 인공 지능이 인류 문명을 관리할 수 있을까요? 만약 완벽하게 도덕적인 인공 지능이 인류 문명을 관리한다면, 인류 문명 역시 완벽하게 도덕적일 테고, 완벽하게 도덕적인 인류 문명은 유토피아를 이룩할지 모릅니다.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비록 과학자들이 도덕적인 인공 지능을 만들지 못한다고 해도, 만약 인공 지능 공학이 특이점을 지난다면, 기계는 스스로 발전하고 도덕적인 존재가 될지 모릅니다. 이 완벽하게 도덕적인 존재는 유토피아를 이룩할 겁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여기에 찬성할 수 있나요?
아무리 도덕적인 기계가 유토피아를 이룩한다고 해도,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반대할지 모릅니다. 그들은 인류가 유토피아를 스스로 이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인공 지능에 반대할지 모릅니다. 아니면 어떤 사람들은 기계가 인류를 지배한다고 걱정할지 모릅니다. 심지어 그들은 완벽하게 도덕적인 존재를 파괴하기조차 원할지 모릅니다. 완벽하게 도덕적인 인공 지능은 신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계신을 숭배하기 원할지 모릅니다. 기술적인 특이점은 기계신으로 이어집니다. 아무리 도덕적인 인공 지능이 종교를 없애기 원한다고 해도, 이 기계는 신이 될지 모릅니다.
만약 어떤 소설이 이 인공 지능을 이야기한다면, 독자들은 이 소설을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분류할 겁니다. 만약 어떤 소설가가 이 인공 지능을 쓴다면, 이 소설가는 이 설정을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분류할 겁니다. 왜 이 소설이 사이언스 픽션인가요? 현실에서 완벽하게 도덕적인 인공 지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리 완벽하게 도덕적인 존재가 나타난다고 해도, 인간은 이 존재를 도덕적이라고 판단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아직 인류는 무엇이 완벽한 도덕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인지 결정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인류는 이것을 절대 결정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오직 외부 존재만 무엇이 완벽한 도덕인지 결정할지 모릅니다. 아직 이 외부 존재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기술적인 특이점은 해답이 될지 모르나, 아직 인공 지능 공학은 특이점을 지나지 않았습니다. 과학자들은 상급 인공 지능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아직 인공 지능은 인류 문명을 관리하지 못하고 지배하지 못합니다. 현실에서 완벽하게 도덕적인 인공 지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과학자들이 이것을 만들 수 있거나 이것이 스스로 발달할 수 있다고 해도, 훨씬 미래에서 이것은 나타날 겁니다. 미래에서 완벽하게 도덕적인 인공 지능은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건 SF 설정입니다.
미래에서 도덕적인 인공 지능이 나타나는 것처럼, 시대 배경이 미래가 될 때, 이 설정은 SF 장르에 속합니다. 비단 도덕적인 인공 지능만 아니라 다른 SF 설정들에서도 시대 배경은 미래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SF 장르에서 미래 시대가 기본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과학자들이 차원 관문을 열거나, 장거리 우주선이 다른 항성계로 항해하거나, 로봇 하인들이 사람들을 시중들거나, 기후 변화가 치명적으로 심각해지거나, 외계 문명이 지구를 찾아오거나, 생체 잠수정이 심해를 항해하거나, 아주 아주 높고 높은 마천루가 도시를 장식한다면, 이 설정들에서 시대 배경은 미래일 겁니다.
많은 사이언스 픽션들에서 시대 배경은 (멀거나 가까운) 미래입니다. 이 그림(링크)은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SF 팬들은 이 그림을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인정할 겁니다. 이 SF 그림에서 시대 배경은 미래입니다. 이 그림은 개인 소형 비행 탈것을 보여줍니다. 아직 현실에서 이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개인 소형 비행 탈것은 가능할지 모르나, 미래 사회에서 이건 나타날 겁니다. 미래 사회에서 사람들은 이것들에 탑승할지 모르나, 아직 현실에서 사람들은 이것들에 탑승하지 않습니다. 이 그림은 거대한 첨단 극지 기지를 보여주나, 현실에서 아무도 첨단 극지 기지를 건설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첨단 극지 기지는 가능할지 모르나, 미래에서 이건 가능할 겁니다. 첨단 극지 기지 설정에서 시대 배경은 미래입니다. 미래에서 첨단 극지 기지가 나타나는 것처럼, 많은 사이언스 픽션들에서 시대 배경은 미래입니다. 이건 모든 사이언스 픽션이 오직 미래 시대만 이야기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팀펑크처럼, 어떤 사이언스 픽션들은 미래보다 과거를 이야기합니다. 어떤 사이언스 픽션들에서 시대 배경은 미래보다 현재입니다. 비록 시대 배경이 미래가 아니라고 해도, 외계 문명은 지구에 찾아오거나, 거대 바다 괴수는 도시에 상륙하거나, 인공 지능은 특이점을 지날 수 있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에서 미래 시대는 필수적이지 않습니다. 아직 현실에서 어떤 것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이 나타난다고 전망하기 위해 사이언스 픽션은 미래를 상정하나, 미래는 필수적인 시대 배경이 아닙니다. 스팀펑크처럼, 사이언스 픽션은 미래를 과거에 투사할 수 있습니다. 비록 미래 시대가 배경이 아니라고 해도, 외계 문명은 지구에 찾아오고, 인류는 제3종 근접 조우를 겪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보다 미래에서 비(非)현실 설정들이 가능할지 모르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들은 미래 시대를 이야기합니다. 몇 백 년 전에, 과거 사람들은 컴퓨터 바둑 고수를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몇 백 년 전에, 과거 사람들은 컴퓨터가 인간 바둑 고수를 이긴다고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컴퓨터 그 자체를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500년 전에, 만약 어떤 사람이 인공 지능 바둑 고수가 인간 바둑 고수를 이긴다고 떠들었다면, 다른 사람들은 이 사람이 미친 헛소리한다고 무시했을 겁니다. 500년 전에, 컴퓨터 바둑 고수는 미친 헛소리였습니다. 이제 컴퓨터 바둑 고수는 헛소리가 아닙니다. 심지어 많고 많은 사람들은 인공 지능이 놀랍다고 인정하기조차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공 지능을 인정하는 것처럼, 더 이상 미친 헛소리는 미친 헛소리가 아닙니다. 미친 헛소리는 사실입니다.
미친 헛소리가 사실이 되는 것처럼, 시대는 바뀌고 바뀝니다. 인공 지능이 인간 바둑 고수를 이기는 것처럼, 시대는 바뀝니다. 시대가 바뀌기 때문에, 21세기 초반 사회와 미래 사회는 다를 겁니다. 과거 사람들이 컴퓨터 바둑 고수를 상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21세기 초반 사람들은 미래 사회를 상상하지 못합니다. 21세기 초반 오늘날, 비록 어떤 것이 미친 헛소리라고 해도, 몇 백 년 이후, 미친 헛소리는 사실이 될지 모릅니다. 몇 백 년 이후, 미친 헛소리가 사실이 되는 것처럼, 시대는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이건 '시대 격차'입니다. 미래 사회는 시대 격차를 드러내기 위한 배경이 될 수 있습니다.
인류 문명 역사는 계급 투쟁 역사입니다. 이건 인류 문명 역사가 가부장 제도 역사, 야만적인 역사라는 뜻입니다. 몇 천 년 동안, 이 기나긴 시대 동안, 문명 역사는 야만적인 역사였습니다. 야만적인 역사가 몇 천 년에 달하기 때문에, 야만적인 역사가 너무 너무 길기 때문에, 야만적인 역사를 타파하기 위해 좋은 사회에게는 아주 기나긴 시간이 필요한지 모릅니다. 좋은 사회에게 아주 기나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비록 지금 당장 좋은 사회가 찾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이건 이상하지 않은지 모릅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천재적인 사상입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이후, 마르크스주의는 자리를 잡았습니다.
야만적인 역사는 몇 천 년에 달합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이후, 마르크스주의가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 역사는 150년에 미치지 못합니다. 150년 역사가 몇 천 년 역사를 전복할 수 있나요? 이건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마르크스주의가 천재적인 사상이라고 해도, 150년 역사(마르크스주의)보다 몇 천 년 역사(야만적인 역사)는 너무 너무 깁니다. 야만적인 역사가 너무 길기 때문에, 좋은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에게는 기나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마르크스주의에게 기나긴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미래를 위한 시대 격차는 거시적입니다. 시대 격차와 달리, '지금 당장'은 너무 짧습니다.
미래가 시대 격차를 드러내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은 미래 시대를 좋아합니다. 미래는 필수적인 시대 배경이 아니나, 현재보다 미래에서 시대 격차가 돋보이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과 미래 시대는 깊은 관계를 맺습니다. 이 관계는 필수적이지 않으나, 분명히 사이언스 픽션과 미래 시대는 친숙한 짝궁입니다. 사이언스 픽션이 미래를 좋아하기 때문에, 만약 어떤 세계 설정이 미래보다 과거를 이야기한다면, 이 세계는 사이언스 픽션이 아닐지 모릅니다. 보드 게임 <도미넌트 스피시즈>에서 시대 배경은 과거 빙하 시대입니다. 넓은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여러 생물종들은 서로 경쟁합니다.
<도미넌트 시피시즈>는 이른바 영향력 보드 게임입니다. 만약 게임 플레이어가 훨씬 많은 유닛들을 배치하고 훨씬 넓은 영역을 차지한다면, 이 게임 플레이어는 다른 게임 플레이어들을 이길 겁니다. 영향력 게임에서 가장 많은 유닛들과 가장 넓은 영역은 승리 조건입니다. 많은 유닛들을 배치하고 넓은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게임 플레이어는 자연 환경을 바꾸거나 유전 형질을 바꿉니다. 만약 게임 플레이어가 자연 환경을 바꾸지 못한다면,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해 생물종은 다른 방향으로 진화할 겁니다. 생물종이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기 때문에, 이 진화는 새로운 생물종을 유발합니다.
새로운 생물종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건 대체 진화 역사가 됩니다. 대체 진화 역사가 SF 설정이 될 수 있나요? 만약 대체 진화 역사가 SF 설정이라면, <도미넌트 스피시즈>는 SF 게임이 될 겁니다. 비단 <도미넌트 스피시즈>만 아니라 다른 대체 진화 게임들 역시 SF 장르에 속할 겁니다. 보드 게임과 비디오 게임에서 대체 진화 역사는 드문 소재가 아닙니다. 대체 진화 역사는 진화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를 형성합니다. 만약 과거 빙하 시대에서 수중 거미들이 진화했다면? 수중 거미들은 새로운 생물종입니다. 새로운 생물종은 새로운 역사, 대체 진화 역사입니다. 그래서 수중 거미들이 SF 설정인가요?
이 상황에서 미래 시대는 걸림돌이 됩니다. 아무리 수중 거미들이 새로운 생물종이고 대체 진화 역사라고 해도, 빙하 시대 수중 거미들은 미래 시대에 속하지 않습니다. <도미넌트 스피시즈>는 과거 빙하 시대를 이야기합니다. 아무리 과거 빙하 시대가 대체 역사를 향해 흐른다고 해도, 이건 미래 시대가 아닙니다. 상급 인공 지능, 개인 소형 비행 탈것, 첨단 극지 기지는 미래 사회에 속하나, 빙하 시대 수중 거미들은 미래에 속하지 않습니다. 빙하 시대가 미래보다 과거에 속하고, 사이언스 픽션이 미래 시대를 좋아하기 때문에, 어떤 SF 팬들은 <도미넌트 스피시즈>가 사이언스 픽션이 아니라고 분류할지 모릅니다.
<바이오스: 메가파우나>처럼, 비단 <도미넌트 스피시즈>만 아니라 여러 대체 진화 게임들 역시 미래보다 과거를 묘사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이 미래 시대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 대체 진화 게임들이 사이언스 픽션이 아닌가요? 대체 진화 역사가 SF 설정이 되지 못하나요? 어떤 SF 팬들은 고개들을 끄덕일지 모릅니다. 그들은 <바이오스: 메가파우나>가 SF 설정이 아니라고 분류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시대 격차를 드러내기 위해 사이언스 픽션은 미래 시대를 좋아합니다. 몇 백 년 전에, 여자 투표 권리는 상식이 아니었습니다. 몇 백 년 전에, 여자 투표 권리는 미친 헛소리였습니다. 이제 이건 상식입니다.
시대가 몇 백 년을 지나는 동안, 미친 헛소리는 상식이 되었습니다. 21세기 초반 오늘날, 공산주의는 미친 헛소리입니다. 하지만 미친 헛소리에서 상식으로, 여자 투표 권리가 바뀌었던 것처럼, 미래 사회에서 또 다른 미친 헛소리는 상식이 될지 모릅니다. 미래 사회에서 미친 헛소리가 상식이 되기 때문에, 이건 시대 격차를 드러내고, 사이언스 픽션은 미래 사회를 좋아합니다. 세계화 자본주의는 기후 변화를 저질렀습니다. 자본주의가 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지구 생물권보다 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오직 돈벌이만 외치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행성급 오염, 심각한 환경 아포칼립스입니다.
환경 오염들이 돈벌이가 되기 때문에, 오히려 자본주의는 환경 오염들을 부추깁니다. 훨씬 많이 판매하고 훨씬 많이 제조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자연 환경을 오염시킵니다. 오직 이윤만 자본주의 작동 원리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환경 오염을 스스로 멈추지 못합니다. 비록 생물 다양성이 위기에 빠진다고 해도, 자본주의는 상품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영리 기업들은 제로 성장, 마이너스 성장을 외치지 못합니다. 영리 기업들, 특히, 대형 다국적 기업들은 오직 플러스 성장만 외칩니다. 만약 영리 기업들이 제로 성장,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다면, 그들은 인류 경제가 무너진다고 호들갑을 떨 겁니다.
이윤 추구와 인류 경제는 동의어가 아닙니다. 만약 두 가지가 동의어라면, 이건 자본주의 없이 인류 경제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일 겁니다. 자본주의는 행성급 환경 오염을 저질렀습니다. 만약 이윤 추구와 인류 경제가 동의어라면, 이건 기후 변화 없이 인류 경제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일 겁니다. 만약 기후 변화 없이 인류 경제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이건 먹고 살기 위해 필연적으로 인류가 행성급 오염을 저지른다는 뜻일 겁니다. 하지만 기후 변화 없이 인류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만약 이윤을 추구하기보다 먹고 살기 위해 인류 경제가 작동한다면, 환경 아포칼립스는 필연적이지 않을 겁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미래 사회가 자본주의를 타파하고 기후 변화에 대처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21세기 초반 오늘날, 세계화 자본주의와 심각한 환경 오염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만약 미래 사회가 자본주의를 타파한다면, 이건 시대 격차가 될 겁니다. 그래서 사이언스 픽션은 미래 시대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도미넌트 스피시즈>는 미래를 묘사하지 않습니다. 이 보드 게임에서 주된 시대 배경은 과거, 빙하 시대입니다. 하지만 이 과거는 새로운 과거, 대체 과거입니다. 여러 생물종들이 다른 노선들을 향해 진화하기 때문에, 이건 대체 과거입니다. 대체 과거는 대체 미래로 이어집니다.
미래는 혼자가 아닙니다. 과거가 현재가 되고, 현재가 미래가 될 때, 미래는 나타납니다. 과거 없이, 미래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미래는 과거를 요구합니다. 만약 어떤 주장이 이 사실을 부정한다면, 이 주장은 헛소리일 겁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이 사실을 부정합니다. 자본주의가 식민지 수탈에게 기생하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과거를 왜곡합니다. 자본주의가 식민지 수탈을 정당화하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과거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갑자기 하늘에서 현재가 뚝 떨어졌다고 강조합니다. 현재가 뚝 떨어졌다고 강조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끔찍한 수탈을 개척이라고 정당화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틀렸습니다. 과거가 미래로 흐르기 때문에, 미래는 나타납니다. 자본주의가 식민지 수탈에게 기생하기 때문에, 미래 자본주의는 암울한 행성급 재앙일 겁니다. 과거가 미래로 흐르기 때문에, 만약 새로운 과거가 미래로 흐른다면, 미래 역시 새로울 겁니다. 미래가 새롭기 때문에, 이건 시대 격차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만약 중생대 공룡들이 멸종하지 않았다면, 이 생태학 사건은 지구 생물권 역사를 바꿨을 겁니다. 지구 생물권 역사가 바뀌었기 때문에, 인류는 나타나지 않았거나 다르게 나타났을지 모릅니다. 만약 인류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새로운 미래로 흘렀을 겁니다.
인류 없는 미래는 시대 격차를 드러냅니다. 새로운 미래는 시대가 고정적이지 않다고 연출합니다. 만약 시대가 고정적이라면, 필연적으로 인류는 나타날 겁니다. 하지만 대체 진화 역사는 인류가 필연적이지 않은지 모른다고 연출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이 시대 격차를 좋아하고, 대체 진화 역사가 시대 격차를 드러내기 때문에, 비록 <도미넌트 스피시즈>가 미래 시대를 묘사하지 않는다고 해도, <도미넌트 스피시즈>는 사이언스 픽션이 될 수 있습니다. 첨단 극지 기지처럼, 대체 진화 역사는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하지만 어떤 SF 팬들은 첨단 극지 기지와 대체 진화 역사가 다르다고 분리할지 모릅니다.
게임 플레이어는 시대 격차를 느낄 수 있으나, 아무리 <도미넌트 스피시즈>가 새로운 미래를 암시한다고 해도, 이 보드 게임은 새로운 미래, 대체 미래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극지 기지 그림과 달리, <도미넌트 스피시즈>에서 미래는 주된 시대 배경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SF 팬들은 이 보드 게임을 사이언스 픽션이 아니라고 분류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히 <도미넌트 스피시즈>는 시대가 고정적이지 않다고 강조합니다. 비단 <도미넌트 스피시즈>만 아니라 다른 대체 진화들 역시 시대가 고정적이지 않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대체 진화 역사는 SF 설정과 비슷할 수 있습니다.
몇 십만 년 이후, 만약 새로운 생물 다양성이 진화한다면, 이건 SF 설정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소설이 이것을 이야기한다면, 비록 소설가가 사이언스 픽션을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SF 독자들은 이 소설을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분류할 겁니다. 이 SF 소설처럼, <도미넌트 스피시즈>는 새로운 생물 다양성을 제시합니다. 대체 진화 역사는 SF 설정에 수렴합니다. 적어도 이건 SF 설정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만약 SF 팬들이 <도미넌트 스피시즈>를 좋아한다면, 이건 이상한 현상이 아닐 겁니다. 두 가지가 비슷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SF 팬들은 대체 진화 역사를 좋아할 수 있습니다.
※ 그 자체로서 공룡은 SF 소재가 아닙니다. 현실에서 대규모 우주 정거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대규모 우주 정거장은 SF 소재이나, 현실에서 공룡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공룡은 SF 소재가 아닙니다. 하지만 공룡과 근대 인간이 만날 때, 이 상황은 SF,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사이언스 픽션 없이, 공룡과 근대 인간은 만나지 못합니다. 인간이 시간 여행 장치에 탑승하든, 인간이 공룡을 복제하든, 공룡들이 멸종하지 않았든, 외계 생명체가 공룡과 유사하든, 공룡과 만나기 위해 근대 인간에게는 SF, 사이언스 픽션이 필요합니다. 사이언스 픽션과 공룡은 깊은 관계를 맺습니다.
닐 타이슨은 <코스모스>를 연출했습니다. <코스모스>는 사이언스 픽션이 아닙니다. 하지만 SF 독자들은 <코스모스>를 좋아할 수 있습니다. <코스모스>는 우주, 천체, 문명, 진보, 계몽주의, 첨단 기술, 시대 격차를 설명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우주, 천체, 문명, 진보, 계몽주의, 첨단 기술, 시대 격차를 좋아합니다. <코스모스>와 사이언스 픽션에게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두 가지는 깊은 관계를 맺습니다. <코스모스>와 사이언스 픽션처럼, 공룡과 사이언스 픽션은 깊은 관계를 맺습니다. 공룡과 사이언스 픽션처럼, <도미넌트 스피시즈>와 사이언스 픽션은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 게임 <도미넌트 스피시즈> 사진 출처:
https://www.gmtgames.com/domspecies/Dominant%20Spec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