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관찰한다는 것> - 생태 관찰은 과학이 될 수 있는가 본문
[게임 <어몽 리플스>의 한 장면. 이런 장면, 생태 관찰이 과학이 될 수 있을까요.]
김성호가 쓴 <관찰한다는 것>은 가벼운 생물학/생태학 서적입니다. 제목처럼 <관찰한다는 것>은 어떻게 인간이 자연 생태계를 관찰할 수 있는지 이야기합니다. 아동 서적이기 때문에 내용은 별로 깊거나 풍부하거나 자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도입부는 꽤나 인상적입니다. <관찰한다는 것>에서 김성호는 몇 개월 동안 숲 속에서 자신이 움막을 짓고 물수리나 딱따구리나 여러 동물들을 관찰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원래 저자에게는 자연 생태계를 관찰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저자는 실험 생물학자였습니다. 김성호는 식물 생리학을 전공했고 생명체를 분석하고 실험하기 원했습니다. 하지만 분석 장비들은 꽤나 비쌌고, 저자가 속한 학교는 실험 장비들을 쉽게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실험 생물학자들은 엄청난 속도로 논문들을 쏟아냅니다. 심지어 생물학 교과서들은 실험 생물학자들이 발견하는 것들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죠. 그래서 김성호는 실험 생물학을 포기했고 자연 생태계를 관찰하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김성호는 자연 생태계를 관찰할 때 두 발과 두 눈과 두 귀와 열린 마음 이외에 다른 특별한 장비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비싼 장비 없이 저자는 여러 동물들을 관찰했습니다. 그런 관찰과 연구는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고요. 하지만 이게 진지한 과학 연구가 될 수 있을까요? 과학을 머릿속에 떠올릴 때, 우리는 첨단 과학을 연상합니다. 과학은 그냥 과학이 아닙니다. 과학은 첨단 과학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과학에게 첨단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원합니다. 사람들은 첨단 과학이 아닌 과학을 중세 연금술과 비슷하다고 취급합니다. 찰스 다윈은 위대한 과학자이고 여러 지렁이들이나 곤충들을 관찰했습니다. 하지만 누가 그런 연구 결과를 과학이라고 생각하겠어요? 다들 그게 19세기 구닥다리 이론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심지어 생물학과 학생들조차 그게 대단한 과학이라고 여기지 않겠죠.
김성호는 실험 장비들이 비싸기 때문에 자신이 식물 생리학을 실험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진짜 첨단 과학은 그런 것들입니다. 비싸고 고급스러운 실험 장비들, 근사하고 깔끔한 실험실들,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자들, 비싼 약재들, 대기업들이 돈줄을 대는 제약 시장들. 비단 실험 생물학만 아니라 다른 과학 분야들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21세기 현대 문명에서 과학은 첨단을 달려야 합니다. 첨단 과학은 비싸고 고급스러운 실험 장비들을 이용해야 합니다. 이런 장비들 없이 첨단 과학은 존재하지 못합니다. 구글링 이미지에서 과학(science)을 검색한다면, 우리는 그런 이미지들을 쉽게 접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두 눈과 두 발과 열린 마음이 과학이 될 수 있을까요? 숲 속에서 혼자 생태학자가 새들을 관찰하고 고생한다고 해도, 그게 과학이 될 수 있을까요? 이런 관찰은 첨단 과학과 거리가 멉니다. 여기에는 비싸고 고급스럽고 으리으리한 실험 장비들이 없습니다. 오직 구질구질한 움막 생활이 있을 뿐입니다. 숲 속에서 잠복하기 위해 동물학자들이나 사진 작가들은 온갖 고생들을 거쳐야 합니다. 사실 아무리 첨단 장비가 있다고 해도, 관찰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재규어처럼 은밀한 야생 동물을 관찰하기 위해 몇 개월 동안 동물학자들은 기다려야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재규어가 모습을 드러낸다고 해도, 그건 고작 한 순간일 뿐입니다. 동물학자들이 그 순간을 놓친다면, 그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몇 개월의 개고생은 물거품이 되겠죠. 인간들은 자연 생태계를 통제하지 못합니다. 인간들은 어느 정도 자연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으나, 자연 생태계를 전반적으로 통제하지 못합니다. 재규어를 연구하기 위해 동물학자들은 인내심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설사 그게 수포로 돌아간다고 해도, 동물학자들은 자연 생태계를 원망하지 못합니다. 이런 구질구질한 잠복 생활이 첨단 과학이 될까요? 아니, 다들 이게 멋대가리 없는 고생이라고 말할 겁니다.
물론 이런 야외 관찰 연구에는 첨단 장비들이 필요합니다. 좀 더 깊이 연구하고 싶다면, 과학자들은 첨단 장비들을 동원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야외 과학자들은 첨단 과학이라는 분위기를 풍기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식물학자가 열대 우림을 쏘다니고 표본들을 수집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식물학자가 그저 땀 냄새를 풍긴다고 생각할 뿐이겠죠. 소설 <공룡과 춤을>에서 어떤 지질학자는 자신이 꼬질꼬질하기 때문에 여자를 쉽게 사귀지 못한다고 투덜거립니다. 언제나 지질학자는 흙먼지를 풀풀 풍기고 다니고, 그런 모습은 별로 매력적이지 않겠죠. 동물학자들은 훨씬 더할 테고요.
게다가 동물학자들이 그렇게 개고생한다고 해도, 그들은 뭔가 비싼 결과물을 생산하지 못합니다. 실험 생물학자들은 온갖 의약품들을 만들 테고, 대기업들은 그것들을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물학자들은? 그들은 대기업들에게 숲을 밀어내지 말라고 말할 테고, 그건 첨단 과학이 되지 못하겠죠. 사람들은 첨단 과학이 가시적이고 비싼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자동차들, 컴퓨터들, 로봇들처럼. 하지만 생태학은 뭔가를 만들기보다 뭔가를 보존하죠. 그건 가시적인 성과가 아니고, 그래서 생태학은 첨단 과학이 되지 못하죠.
생태학자들이 산호초 일대를 지키자고 주장했기 때문에 산호초 일대가 자연 보호 구역이 되었다고 가정하죠. 그래서? 뭔가 비싸고 가시적인 결과물이 나타났나요? 자동차나 컴퓨터나 로봇이 나타났나요? 아닙니다. 생태학자들은 산호초 일대와 수많은 생물 다양성을 지켰으나, 그렇다고 해도 이건 첨단 기기를 생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생태학은 첨단 과학과 거리가 먼 것처럼 보입니다. 무엇보다 분석이나 제조보다 관찰은 쉬운 작업처럼 보입니다. "하루 종일 과학자가 산호초를 들여다본다? 밤새도록 과학자가 동물 무리를 지켜본다? 그게 무슨 과학이야? 나도 그런 것쯤 할 수 있어."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관찰은 그렇게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열대 우림에서 기생충에 감염되거나 질병에 걸리거나 독사에게 물린다면, 사람들은 관찰이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두 눈으로 뭔가를 보는 행위가 인간에게 너무 기초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관찰을 만만하게 대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과학자에게 오직 두 눈과 종이와 펜과 움막만 있다고 해도, 관찰하기 위해 과학자는 엄청난 끈기와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고 가능성들을 상상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태학이 가볍다고 여길지 모릅니다. 이게 비싸고 으리으리한 실험 장비들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설사 생태학자들이 비싼 장비를 사용한다고 해도, 생태학자들이 자연 생태계를 정복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이 꼬질꼬질하고 추레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생태학자들이 가시적이고 비싼 결과물을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두 눈으로 뭔가를 보는 행위가 인간에게 너무 기초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어쩌면 SF 세상에도 이런 시각이 있을지 모릅니다. SF 장르를 머릿속에 떠올릴 때, 사람들은 첨단 과학, 우주선, 인공 지능, 로봇, 보행 병기, 새로운 의약품을 연상하겠죠. 숲을 보호하고 야생 동물들을 관찰하고 먹이 그물망을 이해하는 과정은 첨단 과학이 아니고 사이언스 픽션이 되지 못하겠죠. 물론 현실은 다릅니다. SF 세상에는 생태학을 중요하게 이야기하는 숱한 소설들, 영화들, 게임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사람들은 생태 관찰을 너무 만만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