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페르디도 기차역>과 <퍼디도 정거장>,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 본문
[양쪽은 똑같은 내용을 다루나, 두 소설 표지 그림은 서로 다른 느낌을 풍깁니다.]
소설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은 <퍼디도 스트리트 정거장>의 재편입니다. 두 판역 모두 차이나 미에빌이 쓴 '첫째 바그-라그 시리즈'입니다. 하지만 출판사가 각자 다르고, 그래서 제목 역시 다른 듯하군요. 퍼디도라는 발음보다 페르디도라는 발음이 뭔가 더 스팀펑크 판타지에 어울릴 것처럼 들립니다. (개인적인 취향일 뿐입니다.) 두 소설은 표지 그림 역시 다릅니다. <퍼디도 정거장>은 조류 인간 가루다가 높은 건물 위에서 뉴크로부존 도시를 둘러보는 장면입니다. 음울하고 추악한 소설 내용을 반영하는 듯하군요.
반면, <페르디도 기차역>은 좀 더 스팀펑크에 가깝습니다. 좀 더 밝고 따스한 느낌이에요. 지저분하고 참혹한 소설 내용과 별로 안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스팀펑크 장르가 (19세기 유럽 진보를 반영하기 때문에) 밝고 따스하다고 말하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우선 <타임 머신>이나 <해저 2만리> 같은 고전적인 스팀펑크 역시 상당히 어둡습니다. 네모 선장이 밝고 따스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독자는 없을 겁니다. 보다 현대적인 소설들 역시 마찬가지이고, <페르디도 기차역>은 아예 우중충하고 끔찍한 뉴 위어드 소설이죠.
<페르디도 기차역>은 화사한 동화 같은 스팀펑크가 절대 아닙니다. 그보다 로드 던새이니나 로버트 하워드나 아서 매켄이나 하워드 러브크래프트를 스팀펑크에 집어넣은 소설에 가깝죠. (아울러 우파적이거나 인종 차별적인 요소들을 싹 걷어내고, 좌파적이고 평등한 시선을 듬뿍 담아야 합니다.) 그래서 <페르디도 기차역>보다 <퍼디도 정거장>이 훨씬 어울리는 표지 그림을 골랐는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어떤 온라인 도서 사이트에서는 아예 소설 분류가 달라지더군요. <퍼디도 정거장>은 판타지 소설로 분류가 되었으나, <페르디도 기차역>은 SF 소설이 되었습니다.
똑같은 소설이나, 누군가는 이걸 판타지 소설로 봤고 누군가는 SF 소설로 봤습니다. 저는 이게 꽤나 재미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몇 번 말한 것처럼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는 아슬아슬한 경계를 유지합니다. 만약 사이언스 픽션이 스페이스 판타지에 근접한다면, 사이언스 픽션은 판타지에 무한히 수렴(?)할지 모릅니다. <아누비스의 문>처럼 사실 판타지에 속하는 스팀펑크를 제외한다고 해도 창작가들은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 사이를 슬쩍 건널 수 있습니다. 이중 국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이런 현상을 소설만 아니라 비디오 게임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어요. 예전에 그럴 듯한 사례로써 <토치라이트>를 언급했죠. 이 게임은 전형적인 중세 검마 판타지 같습니다. 검과 활과 지팡이를 든 영웅이 던전 속으로 들어가고 각종 괴물들과 유령들을 때려잡는 중세 판타지입니다. 하지만 각종 증기 기관과 오토마톤과 인공 지능과 드론들은 중세 판타지에서 보기 힘든 요소들입니다. 게임 주인공들 중 하나는 아예 기계 부대를 끌고 다니더군요. 당연히 이는 게임 제작진이 독립적으로 고안한 설정이 아닐 겁니다. 그만큼 수많은 SF 및 판타지 작가들이 서로 경계를 넘었기 때문에 가능한 설정이겠죠.
<페르디도 기차역>은 그런 경계를 이어가는 소설입니다. 그래서 온라인 도서 사이트가 똑같은 소설을 판타지와 사이언스 픽션으로 구분했겠죠. 이 소설에는 마법사들과 지옥과 다른 차원이 등장하기 때문에 분명히 판타지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소설은 개조 생명체와 증기 기관과 인공 지능을 이야기합니다. 이런 부분은 사이언스 픽션처럼 보이죠.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판타지보다 사이언스 픽션에 가까워 보이고…. 게다가 소설 주인공은 물리학자죠.
어쨌든 저는 이 소설이 사이언스 픽션보다 판타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차이나 미에빌이라는 작가를 살펴봐도 전형적인 사이언스 픽션보다 판타지를 쓰는 작가에 가까워요. 하지만 뭔가 기괴한 생명체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차이나 미에빌은 딱히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를 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중요한 점은 그거죠. 기괴한 생명체를 이용해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는 그런 상상력을 뒷받침하는 수단에 불과하고요.
물론 차이나 미에빌은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 작가인지 정확하게 인식할 겁니다. 하워드 러브크래프트 같은 작가는 그런 의식이 희박했죠. 사실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이 어떤 장르 작가인지 별로 의식하지 않았을 거에요. 하지만 차이나 미에빌은 장르 소설계를 전반적으로 파악하는 작가이고,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인식합니다. 여러 인터뷰들에서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있어요. 하지만 사이언스 픽션이든 판타지든, 무슨 소용이겠어요. 재미있는 상상력(과 풍성한 필력)이 그것보다 훨씬 중요하죠. 차이나 미에빌은 그걸 만족하는 작가이고, 그게 제일 중요하겠죠. 어서 <상처>와 <강철 의회>도 나왔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