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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세상 숲>과 환경 오염 청구서로서 자본주의 본문

생태/인류세라는 착각

<세상 숲>과 환경 오염 청구서로서 자본주의

OneTiger 2020. 7. 20. 19:52

[많은 사람들은 자연과 문명이 별개라고 간주합니다. 양쪽이 정말 별개인가요? '자연'이 무엇인가요?]



서구 근대화 사회에는 여러 고정 관념들이 있습니다. 가장 심각한 고정 관념들 중에서 하나는 '자연 대 문명'일 겁니다. 환경 오염이 심각해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문명이 자연의 적이라고 말합니다. 야생 동물들이 줄어들 때, 삼림이 황폐해질 때, 쓰레기들이 널릴 때, 검은 매연이 하늘을 가릴 때, 폭우가 도시를 휩쓸 때, 전염병과 해충들이 퍼질 때, 많은 사람들은 문명이 자연을 파괴한다고 말합니다. 많은 소설들 역시 이기적인 문명과 불쌍한 자연을 대조합니다. 만화, 영화, 연극, 애니메이션, 테이블 게임, 비디오 게임 역시 이 관념을 반영합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인가요? 정말 문명과 자연이 대립하나요?


그저께 7월 18일 게시글이 설명한 것처럼, 만약 복제 공룡 사파리에서 사람들이 살아있는 스피노사우루스를 본다면, 사람들은 기나긴 진화 역사를 머릿속에 떠올릴 겁니다. 기나긴 진화 역사 속에서 스피노사우루스들은 멸종했고 호모 사피엔스들은 진화했습니다. 진화 역사 속에서 호모 사피엔스들이 비롯했기 때문에, 인류는 자연 환경, 생물 다양성에 속합니다. 스피노사우루스가 생물 다양성에 속하는 것처럼, 호모 사피엔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생물 다양성 속에서 인류는 살아가고, 자연 없이, 인류 문명은 살아가지 못합니다. 비록 이 자연이 '인간적인' 자연이라고 해도, 인류 문명에게는 자연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모든 인간이 똑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가부장 사회는 여자들을 의도적으로 비하하고 조롱합니다. 가부장 사회에서 여자들은 마녀가 됩니다. 21세기 초반 오늘날, 여전히 마녀 사냥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국내에서 메갈리아 사태는 대표적입니다. 왜 메갈리아가 심각한 사태가 되었나요? 국내에서 메갈리아보다 훨씬 다급한 문제들은 많고 많습니다. 제가 이 게시글을 쓰는 동안, 가난한 아이들은 굶주리고 병들 겁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화제가 절대 되지 못합니다. 메갈리아 사태는 엄청난 화제가 되나, 굶주리고 병드는 아이들은 화제가 절대 되지 못합니다. 이건 너무 이상합니다.


그저께 7월 18일 게시글은 비단 복제 스피노사우루스만 아니라 아이돌 가수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여러 아이돌 가수들은 화려한 화장들과 의상들을 자랑합니다. 여러 뮤직 비디오들은 엄청난 제작 비용을 퍼붓습니다. 가난한 아이들은 굶주리고 병드나, 아이돌 그룹들은 화려한 의상들을 자랑합니다. 한쪽에서 아이들은 굶주리나, 다른 한쪽에서  뮤직 비디오들은 엄청난 제작 비용을 퍼붓습니다. 이건 미친 돈지랄입니다. 아이돌 그룹들과 뮤직 비디오들은 미친 돈지랄입니다. 각종 음악 방송들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이건 아이돌 그룹들 그 자체가 미친 돈지랄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문제는 사회 구조, 시장 경제 영역입니다.



이 게시글이 아이돌 그룹들을 미친 돈지랄이라고 표현하기 때문에, 어떤 아이돌 팬들은 이 게시글에게 짱돌을 던지기 원할 겁니다. 어떤 팬들은 고지라 어스를 소환하고 하전 입자포(웅웅웅~ 지직~ 지직~ 부우웅!!)를 쏘기 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초월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아이돌 그룹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남한은 자본주의 사회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이돌 그룹들은 존재합니다. 문제는 아이돌 그룹이라는 문화 예술 그 자체가 아닙니다. 문화 예술에게는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게는 자유고 나발이고 없습니다. 오직 이윤만 축적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문제는 아이돌 그룹이라는 문화 예술 그 자체보다 자본주의입니다. 문화 예술에게는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있으나, 문화 예술이 자본주의라는 시장 경제에게 기반하기 때문에, 화려한 아이돌 그룹들과 뮤직 비디오들은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한쪽에서 가난한 아이들은 굶주리고 병드나, 다른 한쪽에서 아이돌 그룹들은 화려한 의상들을 자랑하고, 뮤직 비디오들은 엄청난 비용을 퍼붓습니다. 자본주의 때문에, 온갖 병폐들은 현실이 됩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가부장 제도입니다. 자본주의와 가부장 제도는 별개가 아닙니다. 비슷한 위상/차원에서 양쪽은 존재합니다. 남한 사회는 자본주의이고, 동시에 남한 사회는 가부장 제도입니다.



경제 영역에서 가사 노동은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나, 자본주의 사회는 가사 노동을 노동이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집구석에서 여자는 애를 봐라!" 이렇게 자본주의 사회는 가사 노동을 비하하고 여자를 가사 노동에 억지로 밀어넣습니다. 아무리 여자들이 힘들게 노동한다고 해도, 가사 노동자로서 여자들은 댓가를 받지 못합니다. 1970년대 이른바 2세대 페미니즘은 가사 노동을 조명했고, 이건 2세대 페미니즘의 위대한 성과들 중에서 하나입니다. 자본주의는 가사 노동자들, 여자들을 착취합니다. 자본주의가 여자들을 착취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시장 경제와 가부장 제도는 별개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19세기 여자들과 21세기 초반 여자들이 다르기 때문에 여자 무급 노동 개념이 약해지거나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복지 국가들이 여러 육아/가사 정책들을 추진하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여자들이 정규 임금 노동자들이 되(거나 자본가들이 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여자 무급 노동 논쟁이 1970년대 '낡은' 논쟁이라고 비하합니다. 분명히 19세기 여자들과 21세기 초반 여자들은 다릅니다. 분명히 복지 국가들은 여러 육아/가사 정책들을 추진하고, 상당히 많은 여자들은 정규 임금 노동자들(이나 자본가들)이 됩니다. 그래서 이제 페미니즘이 여자 무급 노동들을 외면할 수 있나요?



하지만 2012년 세계 은행 보고서가 설명하는 것처럼, 아무리 여자 노동자들이 늘어났다고 해도, 아무리 복지 정책들이 늘어났다고 해도, 여전히 남자들보다 여자들은 육아/가사 노동들에 매달려야 합니다. 마리아 미스는 돌봄 노동 의무화를 주장합니다. 돌봄 노동 사회화는 돌봄 노동 의무화로 나가야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게 가능한가요? 아니, 심지어 복지 국가에서도 이 사례를 찾기는 어려울 겁니다. 만약 고작 육아 수당 따위가 돌봄 노동 사회화라면, 조지 워커 부시는 훌륭한 공산주의자일 겁니다.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보다 조지 워커 부시가 국유화를 훨씬 과감하게 추진했기 때문입니다.


남한 사회가 악랄한 가부장 제도이기 때문에, 남한 사회는 가난한 아이들을 떠들기보다 여자들을 조롱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가난한 아이들이 다급한 문제라고 해도, 남한 사회에서 가난한 아이들보다 메갈리아는 훨씬 시끄러운 화제가 됩니다. 아무리 쪽방에서 아이들이 굶주린다고 해도, 메갈리아와 달리, 이 아이들은 시끄러운 화제가 절대 되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스럽고 소중한 생명, 아기를 예찬합니다. 하지만 허름하고 지저분한 쪽방에서 여러 아기들은 옹알거립니다. 아무리 쪽방에서 아기들이 옹알거린다고 해도, 메갈리아와 달리, 화려한 레드 벨벳이나 블랙핑크와 달리, 쪽방 아기들은 화제가 되지 못합니다.



이렇게 가부장적인 자본주의는 심각한 착취 경제입니다. 여기에서 자연 환경 역시 자유롭지 않습니다. <자연의 죽음>에서 캐롤린 머천트는 어떻게 자본주의와 가부장 문화가 얽히고 어떻게 가부장적인 자본주의가 자연 환경을 왜곡하는지 보여줍니다. 여자 무급 노동에 기생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여자가 보조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산업 경제는 주체이고, 여자는 보조적인 외부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주체적인 산업 경제는 보조적인 외부 대상 여자를 착취합니다. 자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남자가 주체인 것처럼, 문명은 주체입니다. 자연은 보조적인 외부 대상입니다. 주체적인 문명은 외부 대상 자연을 개척합니다.


여기에서 자본주의는 단순한 이분법을 제시합니다. 자본주의는 모든 인간이 문명에 속한다고 주장합니다. 문명과 자연이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자본주의가 자연 환경을 수탈한다고 해도, 이건 문명을 위한 경제 발전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연과 문명 이분법은 아주 지배적인 사고 방식입니다. 하지만 캐롤린 머천트는 이게 그저 지배 계급 편견에 불과하다고 비판합니다. 지배적인 관념은 모든 인간이 문명에 속한다고 주장하나, 레드 벨벳 멤버들이 스테이크를 썰고 럭셔리한 먹방을 찍는 동안, 심지어 가난한 아이들은 병원조차 가지 못합니다. 심지어 애완견들조차 고기 사료를 처묵처묵하나, 이런 가난한 아이들은 먹지 못합니다.



서구 문명이 인디언들을 착취하고, 열대 밀림을 수탈하고, 자본주의를 만드는 동안, 서구 문명은 인디언들이 자연이라고 간주했습니다. 자유주의 철학자 존 로크의 자연 상태는 이것을 가리킵니다. 문명과 자연이 다르기 때문에, 문명이 자연을 개척해야 하기 때문에, 서구 백인들은 그들이 인디언들을 '개척'한다고 간주했습니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은 서구 문명이 대항해 시대를 열었고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표현합니다. 인디언들은 착취를 당했으나, 대'항해' 시대는 신대륙을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백인 우월주의, 유럽 중심주의에 빠지는 것처럼, 모든 인간은 똑같지 않습니다. 어떤 인간들은 '자연'이 됩니다.


어떤 인간들이 '자연'이 되기 때문에, 악랄한 착취는 프론티어, 개척 정신이 됩니다. 지배적인 관념은 악랄한 착취가 개척 정신이라고 미화합니다. 자본주의는 인디언들을 착취하지 않았습니다. 인디언들이 '자연'이기 때문에, 문명으로서 자본주의는 그저 자연(인디언들)을 개척했을 뿐입니다. 이렇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배적인 관념은 문명과 자연을 멋대로 해석합니다. 악랄한 착취를 미화하기 위해 지배적인 관념은 자연에게 임시적인 의미를 부여합니다. 문명이 자연을 개척해야 하기 때문에, 약자들은 '자연'이 되고, 문명으로서 자본가 계급은 약자들을 수탈합니다. 그래서 '문명 대 자연'은 너무 위험한 이분법입니다.



어슐라 르 귄은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을 썼습니다.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에서 삼림 행성 외계인들은 자연에 가깝습니다. 제국주의 침략자들은 문명이 자연을 개척한다고 생각하고, 삼림 행성을 수탈하고, 외계인들을 착취합니다. 자본주의 사고 방식은 자연과 문명을 분리하나, 제목이 가리키는 것처럼, <세상 숲>은 세상이 숲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자연과 문명은 융합하고, 자연과 문명 경계선은 흐릿합니다. 흐릿한 경계선에서 외계인들과 삼림들은 공존했습니다. 하지만 제국주의는 경계선을 긋고, 자연을 분리하고, 문명(제국주의)이 자연(외계인들)을 개척한다고 간주합니다.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은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자연과 문명이 절대 동떨어지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과 <자연의 죽음>은 비슷한 주제를 보여줍니다.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에서도 문명은 가부장적인 것이 되고, 가부장적인 군인이 외계인 여자를 폭행했기 때문에, 이건 커다란 갈등이 되었습니다. 단순한 이분법은 남자, 문명, 개척을 연결하나,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과 <자연의 죽음>은 이것을 비판합니다. 캐롤린 머천트가 이 소설을 읽었나요? 캐롤린 머천트가 여러 자연 문학들을 파악하는 동안, 캐롤린 머천트가 어슐라 르 귄과 <세상 숲>을 인식했나요?



어쩌면 캐롤린 머천트는 <세상 숲>을 읽었는지 모릅니다. 아니면 캐롤린 머천트는 어슐라 르 귄을 알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비록 캐롤린 머천트가 어슐라 르 귄을 알지 못한다고 해도, 현실에서 자본주의를 떠받들기 위해 지배적인 관념은 자연과 문명을 분리하고,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과 <자연의 죽음>은 이 현실을 비판합니다. 특히, <세상 숲>이 SF 소설이기 때문에, <세상 숲>은 자연을 훨씬 새롭게 조명할 수 있습니다. 사실 <자연의 죽음> 역시 어머니 자연을 분석하고 자연을 새롭게 조명합니다. 외계 삼림 행성과 어머니 자연 같은 비(非)현실 설정들은 현실을 환기합니다.


주류 문학 역시 현실을 환기하나, 주류 문학보다 SF 소설을 비롯해 사변 문학은 현실을 훨씬 환기할 수 있습니다. 뮤직 비디오 <애플>을 보세요. 여기에서 녹색 나뭇잎들은 신비의 붉은 머리카락과 강렬한 대비를 이룹니다. 녹색 나뭇잎들은 붉은 머리카락을 강조합니다. 녹색과 빨간색이 대조적이기 때문에, 녹색 나뭇잎들은 붉은 머리카락을 강조합니다. 녹색 나뭇잎들과 붉은 머리카락처럼, 비현실 설정과 현실은 대조적이고, 비현실로서 SF 소설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은 현실을 강조합니다. 현실에서 뭔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SF 장르는 비현실입니다. 현실에서 천문학자들은 외계 삼림 행성을 찾지 못했습니다.



[녹색 나뭇잎들은 띤비씨의 붉은 머리카락을 강조합니다. 외계 삼림 행성 역시 자연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은 현실 속의 자연을 훨씬 강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숲>은 얄팍한 이분법을 훨씬 비판할 수 있습니다. <자연의 죽음>이 어머니 자연을 고찰하기 때문에, <자연의 죽음> 역시 얄팍한 이분법을 훨씬 비판할 수 있습니다. 자연과 문명은 대립하지 않습니다. 환경 사회학 서적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에서 제이슨 무어가 한탄하는 것처럼, 자연 대 문명은 너무 지배적인 사고 방식입니다. 심지어 제이슨 무어는 이 고정 관념에서 환경 운동가들조차 자유롭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자연과 문명이 별개가 아니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파괴된 환경은 별개가 아닙니다.


자연과 문명이 별개가 아니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파괴된 환경입니다. '자본주의 = 파괴된 환경' 공식은 성립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부유하다고 생각하나, 이건 너무 심각한 착각입니다. 자본주의는 그저 수두룩한 환경 오염 청구서들을 외면할 뿐입니다. 2050년 이후, 만약 기후 변화가 훨씬 심각해진다면, 우리 후손들은 산더미 같은 환경 오염 청구서들을 받을 겁니다. 이미 자본주의는 그저 빚더미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환경 운동가들조차 이것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연과 문명을 분리합니다. 그래서 자본주의와 파괴된 환경은 별개가 되고, 자본주의는 부유해집니다.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환경 운동가들조차 자본주의와 파괴된 환경을 분리하고 자본주의가 부유하다고 착각합니다. 화려한 방탄소년단은 자본주의가 되나, 파괴된 환경은 자본주의가 되지 않습니다. 이건 그저 외부 비용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엄청난 빚더미, 환경 오염 청구서라고 깨닫지 못합니다. 다른 생태 사회주의자들은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에게 여러 한계들이 있다고 지적하나, 이 책은 중요한 점을 비판합니다. '자연'은 문명이 개척하기 위한 발판이 아닙니다. '자연'은 머나먼 외부 대상이 아닙니다.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은 이 얄팍한 이분법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이건 모든 독자가 <세상 숲>을 읽고 얄팍한 이분법을 지적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SF 소설은 비판적인 문학이나, 현실에서 지배적인 관념이 작동하기 때문에, SF 소설에서 비판은 필연보다 잠재력에 가깝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문화 예술 그 자체보다 현실과 문화 예술의 관계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문화 예술이 전부라고 착각하고 문화 예술 그 자체에 매달립니다. 이건 얄팍한 해석입니다. 그 자체로서 문화 예술은 뭔가가 되지 않습니다. 그 자체로서 SF 소설은 비판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에는 비판하기 위한 잠재력이 있습니다. 분명히 SF 소설에게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에서 외계인들은 그들 자신을 삼림과 동일시합니다. 제국주의 침략자들은 삼림들을 수탈하고, 동시에 그들은 외계인들을 착취합니다. 제국주의 군인은 말합니다. "여자들에게서든, 외계인들에게서든, 분별을 찾지 말게. 열등한 종족은 문명화된 종족에게 밀리고 사라져야 해. 고릴라들 없이, 인간들이 일해야 하는 것처럼, 외계인들 없이, 우리는 일해야 해." 이 대사는 여자와 외계인과 야생 동물을 동일시합니다. 여자는 원주민이 되고, 원주민은 야생 동물이 되고, 그래서 여자는 야생 동물이 됩니다. 야생 동물이 자연에 속하기 때문에, 여자는 자연이고, 원주민은 자연입니다.


이 대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가부장적인 자본주의, 서구 제국주의가 '자연'에게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지배적인 관념 속에서 '자연'은 이윤 축적을 위한 도구로 전락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연'을 바라볼 때, 우리는 자본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자본주의에게 자연은 외부 대상이 아닙니다. 그 자체로서 파괴된 자연, 오염된 환경은 자본주의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와 가부장 제도가 별개가 아니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파괴된 자연, 오염된 환경은 가부장 제도입니다. '가부장 제도 = 오염된 환경' 공식은 성립합니다.



※ 사진 출처: zj900430,

https://pixabay.com/photos/green-dense-forest-forest-creek-4950143/


※ [Special Clips] 'Apple' M/V Shooting Behind Part.1 - GFRIEND (여자친구)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dR2KU5_Wa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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