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기후 변화: 다른 취미들보다 군사 취미가 우월한가 본문
[전투기보다 자연은 훨씬 원초적인 기반입니다.]
SF 우월주의. 문자 그대로, 이 단어는 사이언스 픽션(SF)이 우월하다는 뜻입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문화·예술에 속합니다. SF 우월주의, 이 단어는 다른 문화·예술들보다 사이언스 픽션이 우월하다는 뜻입니다. 어라, 이유가 무엇인가요? 왜 다른 문화·예술들보다 사이언스 픽션이 우월한가요? 대답은 기술 진보, 시대 격차인지 모릅니다. 21세기 초반 오늘날, 많은 소설 독자들에게 전자책은 낯선 것이 아닙니다. 종이책이 낯선 것이 아닌 것처럼, 21세기 초반 오늘날, 많은 소설 독자들에게 전자책은 낯선 것이 아닙니다. 이 소설 독자들과 달리, 500년 전에, 아무도 전자책을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500년 전에, 아무도 전자책을 읽지 않았습니다. 500년 전에, 전자책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21세기 초반 오늘날, 전기 기술들이 진보했기 때문에, 전자책은 가능합니다. 전기 기술들이 진보하기 전에, 전자책은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전기 기술들이 진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500년 전에, 전자책을 읽기는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16세기 사람들이 전자책을 본다면, 그들은 이게 아주 신기하다고 느낄 겁니다. 아니, 16세기 사람들은 전자책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16세기 사람들과 달리, 21세기 초반 오늘날, 많은 소설 독자들은 전자책을 신기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이건 친숙합니다.
16세기 사람들과 21세기 초반 독자들에게 전자책은 커다란 차이입니다. 16세기 사람들은 오직 종이책만 읽었습니다. 아무리 16세기 사람들이 원한다고 해도, 그들은 전자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들은 전자책을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16세기 사람들과 달리, 전기 기술들이 진보했기 때문에, 21세기 초반 오늘날, 소설 독자들은 전자책을 인식합니다. 전자책은 기술 진보가 인류 문화를 바꾼다고 증명합니다. 비단 전자책만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 역시 똑같습니다. 자동차부터 인공 위성까지, 신호등부터 탐사 로봇까지, 오~, 기술 진보는 많은 것들을 이룩합니다. 이건 인류 문명을 바꿉니다.
16세기 사람들은 화성 표면을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16세기 사람들과 달리, 21세기 초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화성 표면을 인식합니다. 탐사 로봇이 화성으로 향했기 때문입니다. 16세기 사람들이 화성 표면을 인식하지 않았던 것처럼, 21세기 초반 사람들이 화성 표면을 인식하는 것처럼, 탐사 로봇은 기술 진보가 인류 문명을 바꾼다고 증명합니다. 공학 기술들이 진보했기 때문에, 인류 문명은 바뀌었습니다. 전자책처럼, 탐사 로봇처럼, 기술 진보 덕분에, 16세기 문명과 21세기 문명은 다릅니다. 아니, 16세기 문명보다 21세기 문명은 낫습니다. 우와아~, 기술 진보는 훨씬 나은 미래입니다.
소설 독자들이 전자책을 인식하는 것처럼, 탐사 로봇이 외계 행성으로 향하는 것처럼, 16세기 문명보다 21세기 문명은 전자책, 탐사 로봇을 자랑합니다. 16세기 문명보다 21세기 문명은 비단 전자책, 탐사 로봇만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 역시 자랑합니다. 기술 진보 덕분에, 16세기 문명보다 21세기 문명은 많은 것들을 자랑합니다. 우와아~, 우리는 기술 진보가 훨씬 나은 미래라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500년 이후, 만약 향상된 첨단 기술들이 진보한다면, 16세기 문명과 21세기 문명이 다른 것처럼, 21세기 문명과 26세기 문명은 다를 겁니다. 아니, 21세기 문명보다 26세기 문명은 나을 겁니다.
기술 진보 덕분에, 16세기 문명보다 21세기 문명은 낫습니다. 이 사례처럼, 기술 진보 덕분에, 21세기 문명보다 26세기 문명은 나을 겁니다. 우리는 이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16세기 사람들에게 전자책, 자동차, 신호등, 인공 위성, 탐사 로봇은 시대 격차입니다. 전자책처럼, 만약 26세기 문명이 새로운 것들을 만든다면, 21세기 사람들에게 이것들은 시대 격차일 겁니다. 16세기 문명과 21세기 문명에게 시대 격차가 있는 것처럼, 21세기 문명과 26세기 문명에게는 시대 격차가 있을 겁니다. 우와아~, 어쩌면 26세기 문명은 외계 도시를 건설할 겁니다. 이 격차에서 스페이스 오페라는 비롯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사이언스 픽션에 속합니다. 사이언스 픽션들 중에서 스페이스 오페라는 아주 커다란 인기를 누립니다. 많은 스페이스 오페라들은 우주 문명들을 묘사합니다. 이건 스페이스 오페라가 우주 문명을 예언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첨단 기술들이 진보하기 때문에, 우리는 시대 격차를 인식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이 격차를 과장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가 이 격차를 과장하기 때문에, 이건 첨단 기술들을 강조합니다. 다른 문화·예술들보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기술 진보를 강조합니다. 기술 진보가 훨씬 나은 미래이기 때문에, 다른 문화·예술들보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우월합니다.
다른 문화·예술들은 훨씬 나은 미래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이 문화·예술들보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훨씬 나은 미래를 강조합니다. 아무리 어떤 사람들이 어떤 문화·예술들을 좋아한다고 해도, 이 사람들은 훨씬 나은 미래를 전망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보다 SF 독자들은 훨씬 나은 미래를 전망합니다. 이 사람들보다 SF 독자들은 선구적인 전망을 자랑합니다. SF 독자들이 선구적인 전망을 자랑하기 때문에, 우와아~, 그들은 우월합니다. 특히, 하드 SF 독자들은 우월합니다. 그래서, SF 우월주의, 이 단어는 나타납니다. 문제는 자본주의입니다. 선구적인 전망 덕분에, SF 독자들이 자본주의를 비판하나요?
[오오~, 스페이스 오페라는 경이롭습니다. 그래서 이게 자본주의를 비판하나요?]
2023년 오늘날, 지구 가열화는 위험한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지구 가열화 때문에, 인류 문명은 극단적인 재앙들을 목격합니다. 기록적인 폭우부터 엄청난 산불까지, 극단적인 재앙들은 많은 사람들을 습격합니다. 비단 인간들만 아니라 야생 동물들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생태학자들이 대규모 멸종을 걱정하는 것처럼, 지구 가열화는 생물 다양성을 파괴합니다. 백화 현상처럼, 이미 이 재앙은 생물 다양성을 파괴하는 중입니다. 인류 문명이 너무 많은 온실 가스들을 배출하기 때문에, 지구 대기 중에서 온실 가스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지구 가열화는 행성급 환경 재앙이 되었습니다. 특히, 나쁜 문제는 세계화 자본주의입니다.
자본주의에게 훨씬 많은 이윤들은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자본주의는 많은 이윤들, 훨씬 많은 이윤들, 훨씬 훨씬 많은 이윤들, 훨씬 훨씬 훠어어어얼씨이인 많은 이윤들을 축적하기 원합니다. 자본주의는 이것을 멈추지 못합니다. 세계화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경제이기 때문에, 인류 문명은 너무 많은 이윤들을 축적합니다. 너무 많은 이윤들을 위해 인류 문명은 너무 많은 상품들을 만듭니다. 인류 문명이 너무 많은 상품들을 만드는 동안, 이건 너무 많은 가스들을 배출합니다. 세계화 자본주의 때문에, 지구 대기 중에서 온실 가스들은 너무 많습니다. 지구 가열화, 이 전대미문의 행성급 환경 재앙은 세계화 자본주의 문제입니다.
지구 가열화가 자본주의 문제이기 때문에, SF 독자들이 자본주의를 비판하나요? 기후 변화가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기 때문에, 이 행성급 재앙이 자본주의 문제이기 때문에, SF 소설가들이 자본주의를 비판하나요? 로버트 하인라인은 이른바 SF 그랜드 마스터입니다. 이 그랜드 마스터가 자본주의를 비판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로버트 하인라인은 자본주의를 떠받듭니다. 비록 지구 가열화가 전대미문의 재앙이라고 해도, 이 소설가는 자본주의를 비판하지 않습니다. 아, 물론, 로버트 하인라인은 기후 변화 시대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 그랜드 마스터가 SF 소설들을 쓰는 동안, 지구 가열화는 커다란 화제가 아니었습니다.
비록 로버트 하인라인이 기후 변화 시대에 속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 소설가는 <우주의 개척자>를 썼습니다. <우주의 개척자>는 로버트 하인라인이 인류세를 주장한다고 암시합니다. 어떤 과학자들이 자본주의보다 인류를 비난하는 것처럼, 이 과학자들이 인류세를 운운하는 것처럼, <우주의 개척자>는 로버트 하인라인이 인류를 비난한다고 암시합니다. 비단 이 소설가만 아니라 다른 SF 소설가들 역시 비슷합니다. 인류세는 계급 차별, (여)성 차별, 인종 차별입니다. 아무리 사이언스 픽션이 우월하다고 해도, 어떤 SF 소설가들은 인류를 비난하고 계급, (여)성, 인종을 차별하는지 모릅니다. 흠, 이 차별들이 우월한가요?
스페이스 오페라가 우월한 것처럼, 군사 덕질은 우월할 수 있습니다. 군사 덕질은 취향(취미)에 속합니다. 다른 문화·예술들보다 스페이스 오페라가 우월한 것처럼, 다른 취향(취미)들보다 군사 덕질은 우월할 수 있습니다. 어라, 이유가 무엇인가요? 왜 다른 취향(취미)들보다 군사 덕질이 우월한가요? 전쟁은 많은 사람들을 죽입니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언제나 전쟁은 많은 사람들을 죽입니다. 인류 문명에서 전쟁은 가장 대규모 비극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에 동의할 겁니다. 적어도, 전쟁은 너무 대규모 비극입니다. 2차 세계 대전은 가장 대표적인 전쟁입니다. 아…, 이건 너무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아…, 2차 세계 대전은 너무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이 대규모 비극처럼, 전쟁이 많은 사람들을 죽이기 때문에, 전쟁이 (가장) 대규모 비극이기 때문에, 인류 문명에서 전쟁은 (가장) 중요한 화제입니다. 군사 덕질은 전쟁을 논의합니다. 많은 군사 덕후들은 2차 세계 대전을 논의합니다. 소총부터 잠수함까지, 많은 군사 덕후들은 전쟁 무기들을 중시합니다. 이 덕후들과 달리, 다른 취향(취미)들은 전쟁 무기들을 논의하지 않습니다. 바둑은 취향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들이 바둑을 좋아한다면, 이 사람들이 잠수함을 논의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최정 기사는 바둑 고수입니다. 이 고수가 잠수함을 논의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아무리 최정 기사가 바둑 고수라고 해도, 이 고수는 잠수함을 논의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바둑이 유사 전쟁이라고 해도, 최정 기사는 2차 세계 대전을 논의하지 않습니다. 비단 바둑만 아니라 다른 취향들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들이 등산을 좋아한다면, 이 사람들이 잠수함을 논의하나요? 만약 어떤 사람들이 소설을 좋아한다면, 이 사람들이 잠수함을 논의하나요? 만약 어떤 사람들이 아이돌을 좋아한다면, 이 사람들이 잠수함을 논의하나요? 만약 어떤 사람들이 우표들을 수집한다면, 이 사람들이 잠수함을 논의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이 취향들은 논의하지 않습니다.
바둑부터 아이돌까지, 아무리 어떤 사람들이 어떤 것들을 좋아한다고 해도, 이 사람들은 잠수함을 논의하지 않습니다. 이 취향들은 전쟁을 논의하지 않습니다. 이 블로그는 다르지 않습니다. 이 블로그는 <SF 생태주의>입니다. 제목이 뜻하는 것처럼, 이 블로그에서 'SF 생태학'은 핵심 주제입니다. SF 생태학이 잠수함을 논의하나요? SF 생태학에게 잠수함이 중요한가요? 흐음, 글쎄요. <문명: 비욘드 어스>는 SF 생태학에 속합니다. 이 스페이스 오페라는 생체 잠수함(?)을 묘사합니다. 아무리 <문명: 비욘드 어스>가 생체 잠수함을 묘사한다고 해도, 전반적으로, SF 생태학에서 잠수함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른 취향들보다 군사 덕질에게 이 전투기는 흥미로울 겁니다.]
SF 생태학에게 잠수함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이 블로그는 잠수함을 논의하지 않습니다. 이 블로그가 잠수함을 논의하지 않는 것처럼, 많은 취향들은 잠수함을 논의하지 않습니다. 이 취향들과 달리, 군사 덕질은 전쟁을 논의합니다. 많은 군사 덕후들은 잠수함을 중시합니다. 전차, 공격 헬리콥터, 전투기, 항공 모함처럼, 비단 잠수함만 아니라 다른 전쟁 무기들 역시 똑같습니다. 군사 덕후들은 전쟁 무기들을 중시합니다. 인류 문명에서 전쟁이 (가장) 중요한 화제이기 때문에, 다른 취향들보다 군사 덕질이 이 중요한 화제를 논의하기 때문에, 오오~, 다른 취향들보다 군사 덕질은 우월합니다.
만약 외계인들이 침략한다면, 인류 군대는 외계인들을 물리쳐야 합니다. 외계인들을 물리치기 위해 인류 군대에게는 전쟁 무기들이 필요합니다. 소총부터 항공 모함까지, 인류 군대에게는 많은 무기들이 필요합니다. 바둑부터 아이돌까지, 다른 취향들은 이 무기들을 논의하지 않습니다. 이 취향들과 달리, 군사 덕질은 많은 무기들을 논의합니다. 비록 현실에서 외계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악당들을 물리치기 위해 군대에게는 전쟁 무기들이 필요합니다. 소총부터 항공 모함까지, 군대에게는 전쟁 무기들이 필요합니다. 바둑부터 아이돌까지, 다른 취향들은 이 무기들을 논의하지 않습니다.
이 취향들과 달리, 군사 덕질은 이 무기들을 논의합니다. 다른 취향들보다 군사 덕질이 전쟁 무기들을 논의하기 때문에, 전쟁 무기들이 악당들을 물리치기 때문에, 다른 취향들보다 군사 덕질은 우월합니다. 군사 덕질이 우월하기 때문에, 군사 덕후들이 세계화 자본주의를 비판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비록 지구 가열화가 위험한 수준을 넘어섰다고 해도, 비록 지구 가열화가 자본주의 문제라고 해도, 군사 덕후들은 이것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아니, 많은 군사 덕후들은 자본주의를 떠받듭니다. 그들이 전쟁 무기들을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인류 문명에서 미국은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합니다.
전투기부터 잠수함까지, F-22부터 니미츠 항공 모함까지, 미국은 다른 군사력들을 넘어섭니다. 만약 강력한 군사력이 기준이라면, 다른 문명들보다 미국은 우월할 겁니다. 미국이 우월하기 때문에, 많은 군사 덕후들은 미국을 떠받듭니다. 미국은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아니, 미국은 그저 자본주의 사회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이 사회는 세계화 자본주의를 주도합니다. 아무리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라고 해도, 아무리 메이드 인 차이나가 세계 시장 경제를 뒷받침한다고 해도, 중국보다 미국은 세계화 자본주의를 주도합니다. 세계화 자본주의에서 미국은 핵심입니다. 미국과 자본주의는 비슷합니다.
양쪽은 비슷한 위상입니다. 미국은 자본주의를 뜻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대표적인 자본주의를 언급할 때, 그들은 미국을 언급할 겁니다. 미국과 자본주의가 비슷한 위상이기 때문에, 군사 덕후들이 미국을 떠받들기 때문에, 그들은 자본주의를 떠받듭니다. 비록 지구 가열화가 전대미문의 행성급 재앙이라고 해도, 군사 덕후들은 자본주의를 떠받듭니다. 이게 우월한가요? 잠수함이 지구 가열화를 해결하나요? 전투기가 이 전대미문의 재앙을 해결하나요? 항공 모함이 파괴적인 기후 지옥을 해결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환경 운동은 미국 군대가 많은 가스들을 배출한다고 비판합니다.
아무리 미국 군대가 강력한 전투기들을 자랑한다고 해도, 이 전투기들은 지구 가열화를 해결하지 않습니다. 이 전투기들은 온실 가스들을 배출합니다. 재생 에너지들과 이 전투기들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비록 기록적인 폭우가 마을을 파괴한다고 해도, 이 전투기들은 홍수 난민들을 돕지 않습니다. 아무리 미국 군대가 강력한 전투기들을 자랑한다고 해도, 이 군대는 홍수 난민들을 돕지 않습니다. 이 군대는 지구 가열화를 해결하지 않습니다. 이 군대처럼, 군사 덕후들은 기후 변화를 해결하지 않습니다. 군사 덕질, 이 취향은 우월하지 않습니다. 이 취향은 위험한 함정에 빠지는지 모릅니다.
미국과 자본주의는 비슷한 위상입니다. 지구 가열화는 자본주의 문제입니다. 미국과 자본주의가 비슷하기 때문에, 지구 가열화가 자본주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건 미국 문제입니다. 기후 변화는 미국 문제입니다. 군사 덕후들은 미국을 떠받듭니다. 기후 변화가 미국 문제이기 때문에, 군사 덕후들은 기후 변화를 외면합니다. 미국 군대가 많은 가스들을 배출하기 때문에, 제3세계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기후 피해자들이 됩니다. 군사 덕후들은 이 피해자들을 외면합니다. 군사 덕후들이 이 피해자들을 외면하는 것처럼, 군사 덕후들은 위험한 함정에 빠지는지 모릅니다. 군사 덕질은 우월하지 않습니다.
군사 덕후들이 기후 피해자들을 외면하는 것처럼, 이 덕후들이 위험한 함정에 빠지는 것처럼, 군사 덕질은 우월하지 않습니다. 자연 환경은 인류 문명을 둘러쌌습니다. 만약 자연 환경이 건강하지 않다면, 아무리 전투기가 강력하다고 해도, 이것에게는 커다란 가치가 없을 겁니다. 몇 만 년 동안, 전투기 없이, 원시 인류는 살았습니다. 전투기와 달리, 원시 인류는 풍요로운 자연에게 의지했습니다. 풍요로운 자연 없이, 원시 인류는 살아가지 못합니다. 전투기보다 생태계는 훨씬 원초적인 기반입니다. 아무리 군사 덕후들이 전투기를 논의한다고 해도, 이 덕후들은 훨씬 원초적인 기반을 무시합니다.
[자연 환경은 인류 문명을 둘러쌌습니다.]
게다가, 군사 덕후들은 전쟁을 정당화하는지 모릅니다. 2차 세계 대전은 가장 대표적인 전쟁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에 동의할 겁니다. 적어도, 이 전쟁은 아주 대표적인 전쟁입니다. 나치는 이 전쟁을 터뜨렸습니다. 나치는 파쇼주의에 속합니다. 파쇼주의는 폭력적인 자본주의 형태입니다. 비록 파쇼주의를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고 해도, 좌익 지식인들은 파쇼주의가 폭력적인 자본주의라고 동의할 겁니다. 자본주의에서 파쇼주의는 비롯합니다. 만약 자본주의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파쇼주의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윤석열 정부를 보세요. 이 정부는 양쪽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증명합니다.
윤석열 정부는 자본주의와 파쇼주의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증명합니다. 나치가 파쇼주의에 속하기 때문에, 나치가 2차 세계 대전을 저질렀기 때문에, 이건 파쇼주의가 이 전쟁을 저질렀다는 뜻입니다. 자본주의와 파쇼주의가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건 2차 세계 대전이 자본주의 문제라는 뜻입니다. 나치는 유럽에 속합니다. 20세기 중반, (미국과) 유럽은 자본주의 핵심이었습니다. 유럽이 자본주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나치는 유럽에 속합니다. 나치는 2차 세계 대전이 자본주의 문제라고 증명합니다. 아무리 이 전쟁이 자본주의 문제라고 해도, 많은 군사 덕후들은 자본주의를 떠받듭니다.
많은 군사 덕후들이 자본주의를 떠받들기 때문에, 이 덕후들은 왜 2차 세계 대전이 터졌는지 분석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이 덕후들이 분석하기 원한다고 해도, 이 덕후들은 그저 표면적인 이유들을 언급할 뿐입니다. 1차 세계 대전은 2차 세계 대전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비록 역사에게 '만약'이 없다고 해도, 만약 1차 세계 대전이 터지지 않았다면, 2차 세계 대전은 터지지 않았을 겁니다. 적어도, 만약 1차 세계 대전이 터지지 않았다면, 20세기 역사는 바뀌었을 겁니다. 1차 세계 대전은 서구 제국주의 전쟁입니다. 흠, 그래서 얼마나 많은 군사 덕후들이 서구 제국주의를 비판하나요?
이건 모~~든 군사 덕후가 자본주의를 떠받든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군사 덕후들은 미국, 자본주의, 서구 제국주의를 비판하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이 덕후들이 자본주의를 비판한다고 해도, 다른 많은 덕후들은 이것을 떠받듭니다. 많은 사례들은 군사 덕질이 자본주의를 떠받든다고 증명합니다. 이 취향이 전대미문의 기후 지옥을 떠받들기 때문에, 이 취향은 우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군사 덕질처럼, 사이언스 픽션은 우월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사이언스 픽션이 놀라운 미래를 강조한다고 해도, 로버트 하인라인이 <우주의 개척자>를 쓰는 것처럼, 이 문화·예술은 우월하지 않습니다.
※ 그림 <Landscape Illustration …> 출처: aalmeidah,
https://pixabay.com/illustrations/landscape-illustration-nature-sky-4432624/
※ 사진 <Space Travel …> 출처: Placidplace,
https://pixabay.com/illustrations/space-travel-sci-fi-spaceship-space-7093809/
※ 사진 <Aircraft, Fighter jet, …> 출처: WikiImages,
https://pixabay.com/photos/aircraft-fighter-jet-flying-flight-63032/
※ 사진 <Video of Waterfall> 출처: Los Muertos Crew,
https://www.pexels.com/video/video-of-waterfall-7206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