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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소설 에서 재미있는 점은 트리피드들이 재앙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소설 제목과 달리 트리피드는 이 작품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은 일종의 장애 아포칼립스입니다. 사람들은 장애를 겪고, 그래서 문명이 붕괴하죠. 따라서 은 옥타비아 버틀러가 쓴 같은 소설과 비슷할 겁니다. 하지만 에는 식물 괴수 따위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식물 괴수가 아니라고 해도 장애는 얼마든지 사람들을 덮칠 수 있습니다. 사실 에서 식물 괴수들은 장애를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은 인공 위성 전투입니다. 적어도 소설 주인공은 인공 위성 전투라고 짐작했죠. 인공 위성이든 혜성이든, 어쨌든 트리피드와 딱히 관계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장애를 겪고 문명이 붕괴하기 전까지, 트리피드는 위협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저 ..
환경 오염은 SF 작가들에게 아주 중요한 소재들 중 하나입니다. 존 브러너, 할 클레멘트, 컷트 보네거트, 로버트 소여 등등 숱한 작가들은 환경 오염을 걱정했고 경고했죠. 고증이 엄밀하거나 느슨하거나, 좌파적이거나 우파적이거나, 수많은 SF 작가들은 환경 오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SF 작가들 중에서 킴 스탠리 로빈슨은 환경 오염에 관한 SF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 대표 주자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린 마굴리스가 어느 책에서 스티븐 호킹을 비판하고 킴 로빈슨을 호평하던 기억이 나는군요. 스티븐 호킹은 기후 변화나 환경 오염, 자원 고갈 때문에 인류가 화성이나 달로 도망쳐야 한다고 말했죠. 하지만 킴 로빈슨은 자본주의 체계를 타파하고 생태적인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본질적인 해결책임을 강조했습니다. 네, 중..
사이언스 판타지는 정치적 올바름에 휘말리기 쉬운 장르입니다. 사이언스 판타지에는 여러 종족들이 등장하고, 어떤 종족은 인종 차별이나 성 차별로 이어질지 모릅니다. 검마 판타지 역시 별로 다르지 않죠. 가령, 백인 우주 탐사대가 어떤 외계 행성을 방문했다고 가정하죠. 그 행성에는 마치 흑인 원주민처럼 생긴 외계인들이 살아가는 중이었습니다. 이 흑인 원주민처럼 생긴 외계인들은 성깔이 드럽고 못되처먹었기 때문에 선하고 정의로운 백인 탐사대를 공격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렇게 소설을 썼다면, 아마 그 소설은 정치적 올바름에 휘말릴 겁니다. 흑인 원주민을 차별하는 소설이라고 비판을 받겠죠. 그리고 정말 19세기부터 장르 소설가들은 그런 이야기를 썼습니다. 헨리 라이더 해거드부터 하워드 러브크래프트, 존 로널드 톨..
[이런 육식 파충류 괴수는 육식공룡과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음, 이런 자연관이 괜찮을지….] 소설 에서 앨런 그랜트와 팀과 렉스는 몰래 호수를 건너려고 합니다. 거대한 티라노사우루스가 호숫가 근방에서 쿨쿨 잠들었기 때문이죠. 그랜트는 조용히 보트를 띄웠으나, 렉스는 그만 재채기를 터뜨리고 맙니다. 총소리처럼 재채기는 호숫가를 시끄럽게 울렸고, 결국 티라노사우루스는 잠에서 깨고 보트를 쫓습니다. 팀은 (파충류가 다들 헤엄칠 수 있기 때문에) 티라노사우루스가 호수에 들어올 거라고 생각하고, 정말 육식공룡은 머리와 등줄기, 꼬리의 윗부분을 드러내고 악어처럼 헤엄칩니다. 그랜트는 티라노사우루스가 헤엄치는 모습이 정말 악어 같다고 생각해요. 악어처럼 티라노사우루스는 물 속으로 들어가고 갑자기 보트를 습격하죠. ..
가끔 저는 '빼앗긴 자들'이라는 소설 제목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은 사회주의 공동체(무정부적인 노동 조합주의)를 묘사하는 소설입니다. 소설 속에서 아나레스 사람들은 소유하려는 욕심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그래서 자기 중심적이라거나 소유적이라는 말은 모욕이 됩니다. 아나레스 어른들은 아이들을 가르칠 때, 자기 중심적으로 굴지 말라고 말합니다. 아나레스 사람들은 서로 욕할 때, 소유주의자라고 욕해요. 따라서 저는 이 소설에게 '빼앗긴 자들'보다 '소유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붙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훨씬 소설 내용에 어울려요. 어쨌든 아나레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소유하는 동시에 소유하지 않습니다. 서로 모든 것을 함께 소유하기 때문에 사적인 소유를 최대한 멀리할 수 있죠. 그게 과연 바..
"아로낙스 박사, 내 전기는 세간에서 흔히 쓰이는 전기가 아니에요.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군요." 소설 에서 네모 선장은 아로낙스 박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로낙스는 어떻게 노틸러스가 움직이느냐고 물었고, 네모는 전기로 움직인다고 대답했죠. 하지만 그게 무슨 전기인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아로낙스 역시 더 이상 캐묻지 않아요. 게다가 노틸러스를 둘러보는 아로낙스는 계속 수수께끼들에 부딪히나, 그걸 일일이 풀려고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아로낙스는 네모에게 "성과에만 주목하고 굳이 설명하려고 애쓰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아로낙스가 아예 의문을 품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로낙스는 정말 중요한 사실들을 은근슬쩍 우회한다는 느낌을 풍깁니다. 왜 그랬을까..
소설 는 인류 군대와 아라크니드 군대가 벌이는 전쟁을 이야기합니다. 뭐, 사실 인류와 아라크니드 사이의 전쟁은 둘째이고, 로버트 하인라인은 소설 주인공이 위대한 군인으로 성장하는 모습만 열심히 묘사하죠. 하인라인은 전쟁보다 위대한 군인을 보여주기 원했고, 그래서 소설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온갖 훈련소들과 병영들과 사관 학교들을 보여줍니다. 아울러 숱한 연설들을 쏟아붓고, 왜 시민이 자발적으로 공동체를 보호해야 하는지 설명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군국주의라고 오해하나, 이는 군국주의와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하인라인은 그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공동체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물론 아무리 공동체를 지키자고 말해도 계급 구조를 고려하지 않는 사고 방식은 군국주의로 이어지기 쉽고, 그래서 저..
[양쪽은 똑같은 내용을 다루나, 두 소설 표지 그림은 서로 다른 느낌을 풍깁니다.] 소설 은 의 재편입니다. 두 판역 모두 차이나 미에빌이 쓴 '첫째 바그-라그 시리즈'입니다. 하지만 출판사가 각자 다르고, 그래서 제목 역시 다른 듯하군요. 퍼디도라는 발음보다 페르디도라는 발음이 뭔가 더 스팀펑크 판타지에 어울릴 것처럼 들립니다. (개인적인 취향일 뿐입니다.) 두 소설은 표지 그림 역시 다릅니다. 은 조류 인간 가루다가 높은 건물 위에서 뉴크로부존 도시를 둘러보는 장면입니다. 음울하고 추악한 소설 내용을 반영하는 듯하군요. 반면, 은 좀 더 스팀펑크에 가깝습니다. 좀 더 밝고 따스한 느낌이에요. 지저분하고 참혹한 소설 내용과 별로 안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스팀펑크 장르가 (19세기 유럽..
소설 은 화성에서 거주지를 건설하는 과학자들을 이야기합니다. 과학자들은 각자 전공 분야가 다르고, 맡은 업무가 달라요. 그에 따라 사상이나 성향이나 철학 역시 다르죠. 과학자들 중에서 제일 폐쇄적인 인물은 아마 앤 클레이본이라는 지질학자일 겁니다. 앤은 다른 과학자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않고, 마음을 터놓지 않고, 독단적으로 업무를 결정하고, 심지어 크게 말다툼까지 벌입니다. 다른 과학자들도 독선적이거나 자신만의 주장을 강하게 펼치나, 앤만큼 두드러지는 과학자는 없는 듯합니다. 사회주의 공동체를 주장하는 아르카디나 지도자 자리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프랭크 역시 앤만큼 독보적이지 않을 겁니다. 앤이 다른 과학자들과 어울리지 않고 마음을 닫고 싸움을 벌이는 이유는 그만큼 앤이 자연 환경에 신경을 쓰기 때문일 겁..
[하얀 향유 고래 모비 딕은 거대한 야생 동물이고 동시에 19세기 거대 괴수일지 모릅니다.] 사이언스 픽션 장르에서 괴수라는 존재는 여러 종류들로 나뉩니다. 크거나 작은 괴수가 있겠고, 포악하거나 선한 괴수가 있을 겁니다. 어떤 괴수는 인간보다 약간 크나, 어떤 괴수는 집채만하고, 어떤 괴수는 초고층 건물에 이르겠죠. 어떤 괴수는 인간에게 우호적일 테고, 어떤 괴수는 신나게 도시를 파괴할 테고, 어떤 괴수는 인간 따위에게 관심조차 없을 겁니다. 육식성 괴수나 초식성 괴수가 있겠죠. 누군가는 사람들을 맛있게 집어삼킬 테고, 누군가는 풀이나 나무를 우적거릴 테고, 누군가는 기상천외한 것에서 영양분을 얻겠죠. 털가죽이 북슬거리는 포유류 괴수가 있을 테고, 우둘투둘한 비늘을 선보이는 파충류 괴수도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