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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공룡 세계>, <Vox Machinae>, 보편적인 덕후 본문

SF & 판타지/신화적인 번성

<공룡 세계>, <Vox Machinae>, 보편적인 덕후

OneTiger 2025. 1. 15. 04:45

[비록 아즈텍 문명에서 이 서적을 출판하기가 가능하지 않다고 해도….]



"Moon river, wider than a mile. I'm crossing you in style someday. Oh, dream maker, you heart breaker. Wherever you're goin', I'm goin' that way~♬" 오드리 햅번은 노래합니다. 아니, 이 배우보다 홀리 골라이틀리는 노래합니다. 이 등장인물은 현실에 속하지 않습니다. 티파니에서 홀리 골라이틀리가 아침을 먹든, 점심을 먹든, 저녁을 먹든, 이 등장인물은 진짜 인간이 아닙니다. 홀리 골라이틀리가 풀빵을 먹든, 짜장면을 먹든, 현실에서 이 가짜 인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홀리 골라이틀리와 달리, 오드리 햅번은 현실에 속합니다. 이 배우는 가짜가 아닙니다. 오드리 햅번은 진짜입니다.

 

진짜 인간으로서, 이 배우는 현실에 속합니다. 이 관점에서 오드리 햅번과 홀리 골라이틀리는 다릅니다. 비록 양쪽이 다르다고 해도, 홀리 골라이틀리는 오직 현실만 모방합니다. 비단 이 등장인물만 아니라 다른 등장인물들 역시 똑같습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오직 현실만 모방합니다. 만약 현실에서 어떤 것들이 가능하지 않다면,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이것들은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현실에서 장대한 우주 문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직 인류 문명은 우주 문명이 아닙니다. 이 문명에서 아무도 살아가지 않습니다. 현실처럼, 홀리 골라이틀리는 이 장대한 문명에 속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우주 문명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현실처럼, 홀리 골라이틀리에게 이 문명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오드리 햅번이 현실에 속하기 때문에, 홀리 골라이틀리가 오직 현실만 모방하기 때문에, 이 관점에서 양쪽은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적어도, 양쪽은 가까운 관계가 됩니다. 오드리 햅번과 달리, 타크베르는 진짜 인간이 아닙니다. 홀리 골라이틀리처럼, 이 등장인물은 현실에 속하지 않습니다. 홀리 골라이틀리가 현실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타크베르가 현실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이 관점에서 오드리 햅번보다 홀리 골라이틀리와 타크베르는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양쪽은 가짜 인간입니다.

 

비록 홀리 골라이틀리가 진짜 인간이 아니라고 해도, 이 등장인물은 오직 현실만 모방합니다. 현실에서 장대한 우주 문명이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홀리 골라이틀리에게 이 문명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홀리 골라이틀리와 달리, 타크베르에게 이 문명은 가능합니다. 어슐라 르 귄은 <빼앗긴 자들>을 썼습니다. 이 소설은 스페이스 오페라입니다. 적어도, 사이언스 픽션(SF)으로서, <빼앗긴 자들>에서 장대한 우주 문명은 존재합니다. 타크베르는 이 소설의 등장인물입니다. 장대한 우주 문명이 존재하는 것처럼, <빼앗긴 자들>은 오직 현실만 모방하지 않습니다. 이 사이언스 픽션은 '다른 세계'입니다.



현실에서 우주 문명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빼앗긴 자들>에서 이 문명이 존재하기 때문에, 양쪽은 다릅니다. 현실과 <빼앗긴 자들>이 다르기 때문에, 이 소설은 '다른 세계'가 됩니다. <빼앗긴 자들>과 달리,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다른 세계가 아닙니다. 이 관점에서 타크베르보다 홀리 골라이틀리와 오드리 햅번은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적어도, 양쪽은 가까운 관계가 됩니다. 이 관계가 보여주는 것처럼, <빼앗긴 자들>은 오직 현실만 모방하지 않습니다. 비단 이 소설만 아니라 <복스 마키나에 Vox Machinae>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빼앗긴 자들>처럼, 이 비디오 게임은 다른 세계입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로서, 현실과 <복스 마키나에>는 다릅니다. 이 비디오 게임은 '다른 세계'가 됩니다. 현실에서 거대 보행 로봇들은 싸우지 않습니다. 이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현실과 달리, <복스 마키나>에서 거대 보행 로봇들은 싸웁니다. 이 스페이스 오페라와 달리, 홀리 골라이틀리에게 이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거대 보행 로봇들이 싸우는 것처럼, <복스 마키나>보다 홀리 골라이틀리와 오드리 햅번은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적어도, 양쪽은 가까운 관계가 됩니다. 이 관계가 보여주는 것처럼, <복스 마키나>는 오직 현실만 모방하지 않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로서, 현실과 이 게임은 다릅니다.



만약 <복스 마키나>가 오직 현실만 모방한다면, 우주 문명을 묘사하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비단 이 문명만 아니라 거대 보행 로봇들 역시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로서, <복스 마키나>는 오직 현실만 모방하지 않습니다. 이 관점에서 오드리 햅번, 홀리 골라이틀리와 타크베르, 거대 보행 로봇들은 비슷하지 않습니다. 양쪽이 비슷하지 않은 것처럼, 서사 판타지와 <복스 마키나>는 친숙한 짝궁이 됩니다. 현실에서 거대 보행 로봇들이 싸우지 않는 것처럼, 드워프 군대와 언데드 군대는 싸우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뱀파이어 군주는 혐오스러운 좀비 군단을 조종하지 않습니다. 절대.

 

현실에서 이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현실과 달리, 서사 판타지에서 뱀파이어 군주는 혐오스러운 좀비 군단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만약 드워프 군대가 이 언데드들을 물리치지 않는다면, 지하 왕국은 멸망할 겁니다. 언데드 군대가 드워프 왕국을 침략하는 것처럼, 현실과 서사 판타지는 다릅니다. 양쪽이 다르기 때문에, 서사 판타지는 '다른 세계'가 됩니다. 이 세계로서, <복스 마키나>와 서사 판타지는 친숙한 짝궁이 됩니다. 다른 세계는 양쪽이 비슷하다고 분류하기 위한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이건 그저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스페이스 오페라는 사이언스 픽션에 속합니다.



[오드리 햅번, 홀리 골라이틀리보다 <Vox Machinae>와 서사 판타지는 친숙한 짝궁이 됩니다.]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서사 판타지는 판타지입니다. 일반적으로, SF/판타지 소설가들, 평론가들, 독자들은 스페이스 오페라와 서사 판타지가 친숙한 짝궁이라고 인정합니다. 만약 이 관계가 그저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하다면, 어떻게 어슐라 르 귄이 <어스시의 마법사>를 쓰나요? 만약 스페이스 오페라와 서사 판타지가 친숙한 짝궁이 아니라면, 왜 어슐라 르 귄이 판타지 단편 소설들을 쓰나요? 이 소설가는 이 관계를 증명합니다. <빼앗긴 자들>, <어스시의 마법사>가 증명하는 것처럼, 다른 세계는 스페이스 오페라와 서사 판타지가 비슷하다고 분류하기 위한 기준이 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로서, <복스 마키나>와 서사 판타지는 친숙한 짝궁(적어도,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이 관계처럼, 비록 현실에서 어떤 것들이 가능하지 않다고 해도, 다른 세계에서 이것들은 가능할 수 있습니다. 비록 현실에서 거대 보행 로봇들이 싸우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세계로서, <복스 마키나>에서 이건 가능합니다. 비록 현실에서 언데드 군대가 드워프 왕국을 침략하지 않는다고 해도, 서사 판타지에서 이건 가능합니다. 비단 언데드 군대만 아니라 드래곤, 레비아탄, 크라켄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비록 현실에서 드래곤, 레비아탄, 크라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서사 판타지에서 이건 가능합니다. 레비아탄이 존재하는 것처럼, 서사 판타지는 고대 신화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서사 판타지가 나타나기 전에, 아~~~주 오래 전에, 이미 고대 신화는 레비아탄을 상상했습니다.



고대 신화가 레비아탄을 상상했기 때문에, 서사 판타지는 이 거대 괴수를 묘사합니다. 드래곤, 크라켄은 다르지 않습니다. 고대 신화가 드래곤, 크라켄을 상상했기 때문에, 서사 판타지는 이 거대 괴수를 묘사합니다. 레비아탄이 보여주는 것처럼, 서사 판타지는 고대 신화에게 기반합니다. 적어도, 전자는 후자를 고려합니다. 고대 신화가 서사 판타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이건 다른 세계입니다. 현실에서 레비아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실과 달리, 신화에서 레비아탄은 존재합니다. 이 거대 괴수가 헤엄치는 것처럼, 현실과 신화는 다릅니다. 양쪽이 다르기 때문에, 신화는 '다른 세계'가 됩니다. 이건 서사 판타지와 고대 신화가 비슷하다고 분류할 수 있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와 서사 판타지가 비슷하기 때문에, 서사 판타지와 고대 신화가 비슷하기 때문에, 스페이스 오페라와 고대 신화는 비슷합니다. 적어도, 양쪽에게 다른 세계는 본질적인 교집합이 됩니다. <복스 마키나>가 스페이스 오페라이기 때문에, 이 비디오 게임과 고대 신화는 비슷합니다. 적어도, 양쪽에게 다른 세계는 본질적인 교집합이 됩니다. 이건 <복스 마키나>와 고대 신화가 100% 똑같다는 뜻이 아닙니다. 만약 향상된 첨단 기술들이 진보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거대 보행 로봇들을 제작할 수 있나요? 이 기술들이 진보하는 것처럼, <복스 마키나>는 미래 문명을 전망합니다. 이 스페이스 오페라와 달리, 문자 그대로, 고대 신화는 고대 문명에 속합니다.



향상된 첨단 기술들이 거대 보행 로봇들을 제작하는 것처럼, <복스 마키나>는 이 기술들에게 기반합니다. 21세기 초반, 비록 거대 보행 로봇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인공 위성부터 컴퓨터 단층 촬영까지, 인류 문명에서 첨단 기술들은 아주 커다란 부분입니다. 21세기 초반과 달리, 고대 문명에서 이 기술들은 진보하지 않았습니다. 인공 위성부터 컴퓨터 단층 촬영까지, 고대 문명에서 이 기술들이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스페이스 오페라를 상상하지 않았습니다. 고대 문명과 달리, 21세기 초반, 첨단 기술들은 아주 커다란 부분입니다. 이 기술들이 가능하기 때문에, 소설가들은 스페이스 오페라들을 씁니다. 이건 대중적인 문화·예술입니다.

 

스페이스 오페라가 대중적인 문화·예술이 되기 때문에, 게임 제작자들은 <복스 마키나>를 출시합니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21세기 초반, 스페이스 오페라를 좋아하기는 가능합니다. 이 시대와 달리, 고대 문명에서 스페이스 오페라를 좋아하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만약 어떤 소설 독자들이 21세기 초반에 속한다면, 이 독자들은 SF 덕후들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문학 독자들이 고대 문명에 속한다면, SF 덕후들이 되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이게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너무 애석하게도, SF 독자들은 '제한된 덕후들'입니다. 그들은 보편적인 덕후들이 되지 못합니다. 비록 이게 가능하지 않다고 해도, 이미 고대 문명은 신화를 상상했습니다.



고대 신화와 서사 판타지는 친숙한 짝궁이 됩니다. 서사 판타지와 <복스 마키나>는 친숙한 짝궁이 됩니다. 적어도, 다른 세계로서, 세 가지들은 비슷한 위상이 됩니다. <복스 마키나>처럼, 만약 어떤 소설들이 스페이스 오페라들이라면, 이 소설들은 고대 신화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비록 SF 독자들이 제한된 덕후들이라고 해도, 이미 고대 문명은 다른 세계를 상상했습니다. 이건 훨씬 보편적인 문화·예술입니다. 비록 스페이스 오페라가 제한된 문화·예술이라고 해도, 거시적인 관점에서 다른 세계는 보편적인 문화·예술입니다. 이 특성으로서, SF 독자들은 제한된 덕후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훨씬 보편적인 덕후들이 될 수 있습니다.

 

SF 독자들이 훨씬 보편적인 덕후들이 되는 것처럼, 고생물학 덕후들은 다르지 않을 겁니다. <공룡 세계 - 우리 아이 자연 생태 관찰>은 아이들을 위한 고생물학 서적입니다. 제목이 뜻하는 것처럼, <공룡 세계  - 우리 아이 자연 생태 관찰>은 전문가들을 위한 어려운 서적이 아닙니다. 비록 <공룡 세계>가 어려운 서적이 아니라고 해도, 이 표지 그림은 스테고사우루스를 보여줍니다. 고대 문명에서 아무도 이 골판 공룡을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19세기 이후, 고생물학은 진보했습니다. 이 과학이 진보했기 때문에, 인류는 스테고사우루스를 인식했습니다. 이게 가능하기 때문에, <공룡 세계>처럼, 고생물학 서적들은 출판됩니다.



[다른 세계로서, <Vox Machinae>와 고대 신화를 연결하기는 가능할 수 있습니다.]



고대 문명에게 19세기 고생물학은 머나먼 미래입니다. 아직 이 과학이 진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대 문명에게 <공룡 세계>는 미래 서적입니다. 비록 <공룡 세계>가 전문적인 서적이 아니라고 해도, 이 표지 그림이 스테고사우루스를 보여주는 것처럼, 고대 문명에서 <공룡 세계>를 출판하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비단 이 서적만 아니라 다른 고생물학 서적들 역시 똑같습니다. 비록 어떤 고생물학 서적들이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춘다고 해도, 고대 문명에서 이 서적들을 출판하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게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고생물학 덕후들은 보편적인 덕후들보다 제한된 덕후들입니다.

 

비록 어떤 사람들이 21세기 초반에 속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은 재규어를 숭배할 수 있습니다. 아즈텍 전사들이 재규어를 모방하는 것처럼, 21세기 초반과 상관없이, 이 판테라 야수를 숭배하기는 가능합니다. 재규어와 달리, 만약 어떤 사람들이 근대 문명에 속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고생물학이 진보하지 않는다면, 스테고사우루스를 좋아하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21세기 초반에 속하기 때문에, 스테고사우루스를 좋아하기는 가능합니다. 만약 제가 아즈텍 문명에 속했다면, 으음…, 이 골판 공룡을 좋아하기는 가능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즈텍 문명에게 19세기 고생물학은 미래입니다.



고생물학 서적으로서, 아즈텍 문명에게 <공룡 세계>는 미래입니다. 비록 이 서적이 전문가들보다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춘다고 해도, 아즈텍 문명에서 이 서적을 출판하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공룡 세계>처럼, 비록 어떤 고생물학 서적들이 전문가들보다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춘다고 해도, 아즈텍 문명에서 이 서적들을 출판하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게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너무 애석하게도, 스테고사우루스 덕후들은 보편적인 덕후들보다 '제한된 덕후들'입니다. 적어도, 재규어 숭배자들보다 스테고사우루스 덕후들은 보편적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고생물학은 너무 늦은 과학입니다.

 

비록 아즈텍 문명에서 <공룡 세계>를 출판하기가 가능하지 않다고 해도, 스테고사우루스는 야생 동물입니다. 이 동물로서, 스테고사우루스는 생물 다양성, 자연 생태계에 속합니다. 비록 재규어 숭배자들보다 스테고사우루스 덕후들이 보편적인 사람들이 아니라고 해도, 이 체계에서 스테고사우루스는 벗어나지 않습니다. 만약 이게 가능하다면, <공룡 세계>의 제목은 '자연 생태'가 아닐 겁니다. '자연 생태', 이 제목은 스테고사우루스가 자연 생태계에 속한다는 뜻입니다. 이 체계와 어머니 자연을 연결하기는 쉬울 겁니다. 고대 신화는 이 신격을 상상했습니다. 어머니 자연은 생태계를 비유합니다.



<공룡 세계>의 제목이 '자연 생태'인 것처럼, 스테고사우루스는 자연 생태계에 속합니다. 고대 신화는 어머니 자연을 상상했습니다. 이 신격은 자연 생태계를 비유합니다. 스테고사우루스는 이 신격에 속합니다. 만약 자연 생태계가 순환하지 않는다면, 스테고사우루스는 사라질 겁니다. 이 골판 공룡보다 이 체계는 거시적인 범주입니다. 이 관점에서 스테고사우루스 덕후들은 자연 생태계에게 관심을 기울일 수 있습니다. 어머니 자연이 이 체계를 비유하는 것처럼, 스테고사우루스 덕후들은 이 신격에게 관심을 기울일 수 있습니다. 어머니 자연은 제한된 신화보다 아~~주 보편적인 신화입니다.

 

고대 신화가 어머니 자연을 상상했던 것처럼, 이 신격은 아~~주 기나긴 역사를 자랑합니다. 북부 슬라브부터 남부 안데스까지, 여러 문명들은 어머니 자연을 상상했습니다. 모코쉬부터 파차마마까지, 이 신격은 아~~주 보편적인 신화입니다. 만약 스테고사우루스 덕후들이 어머니 자연에게 관심을 기울인다면, 그들은 제한된 덕후들보다 훨씬 보편적인 덕후들이 될 겁니다. 비록 제가 아즈텍 문명에 속한다고 해도, 비록 이 문명에서 <공룡 세계>를 출판하기가 가능하지 않다고 해도, 저는 어머니 자연을 숭배할 수 있습니다. 이 신격 숭배자로서, 저는 제한된 덕후보다 보편적인 숭배자가 됩니다.



스테고사우루스가 자연 생태계에 속하는 것처럼, 재규어는 다르지 않습니다. 비록 이 골판 공룡이 사라졌다고 해도, 여전히, 이 판테라 야수는 자연 생태계에 속합니다. 비단 재규어만 아니라 다른 판테라 동물들 역시 똑같습니다. 아무르 호랑이부터 보르네오 구름 표범까지, 판테라 동물들은 이 체계에 속합니다. 비단 구름 표범만 아니라 다른 야생 동물들 역시 똑같습니다. 비단 이 동물들만 아니라 인류 역시 똑같습니다. 21세기 초반, 인류 문명에서 농업은 아주 커다란 부분입니다. 이 시대처럼, 언제나 농업이 아주 커다란 부분이었나요? 그건 아닙니다. 원시 사회는 채집·수렵 사회였습니다.

 

만약 생물 다양성이 번성하지 않았다면, 만약 자연 생태계가 순환하지 않았다면, 열매들을 채집하고, 버섯들을 줍고, 동물들을 사냥하고, 물고기들을 낚기는 가능하지 않았을 겁니다. 생물 다양성이 번성하기 때문에, 자연 생태계가 순환하기 때문에, 원시 인간들은 먹거리들을 얻었습니다. 이게 가능했기 때문에, 구석기는 신석기로 연결되었습니다. 이게 가능했기 때문에, 인류는 농업을 시도했습니다. 농업이 부흥하기 전에, 자연은 먹거리들을 선사했습니다. 아니, 만약 생물 다양성에서 식물들이 번성하지 않았다면, 곡물들을 개량하기는 가능하지 않았을 겁니다. 생태계는 원초적인 토대입니다.



[(어머니) 자연에서 이 먹거리는 비롯합니다.]



많은 먹거리 광고들은 자연을 언급합니다. 생태계가 원초적인 토대이기 때문에, 이 광고들은 자연을 빠뜨리지 않습니다. 심지어 인류조차 이 체계에 속합니다. 먹거리 광고들이 자연을 빠뜨리지 않는 것처럼, 이 토대는 훨씬 거시적인 범주입니다. 어머니 자연은 이 범주를 비유합니다. 이 신격에서 스테고사우루스는 벗어나지 않습니다. (스피노사우루스부터 브론토사우루스까지, 비단 이 골판 공룡만 아니라 다른 공룡들 역시 똑같습니다.) 오호라~, 만약 어떤 고생물학 덕후들이 스테고사우루스를 좋아한다면, 훨씬 거시적인 관점에서 그들은 어머니 자연에게 관심을 기울일 수 있습니다.

 

비록 고대 문명에서 <복스 마키나>를 제작하기가 가능하지 않다고 해도, 훨씬 거시적인 관점(다른 세계)에서 SF 독자들은 제한된 덕후들보다 보편적인 덕후들이 됩니다. 비록 고대 문명에서 <공룡 세계>를 출판하기가 가능하지 않다고 해도, 훨씬 거시적인 관점(어머니 자연)에서 스테고사우루스 덕후들은 제한된 덕후들보다 보편적인 숭배자들이 됩니다. 이게 가능한 것처럼, 어머니 자연은 원초적인 토대를 비유합니다. 아무리 이 신격이 중요하다고 해도, 21세기 초반, 지구 가열화는 위험한 수준입니다. 이 재앙은 생물 다양성을 파괴합니다. 지구 대기 중에서 온실 가스들은 너무 많습니다.



고기 산업부터 항공 산업까지, 대규모 산업들은 이 가스들을 배출합니다. 가난한 사람들보다 부유한 사람들은 이 산업들을 소유합니다. 전자보다 후자는 지배 계급에 속합니다. 적어도, 가난한 사람들보다 부유한 사람들은 지배 계급에 가깝습니다. 세계화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경제이기 때문입니다. 이 경제에게 훨씬 많은 돈들은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이 목적을 위해 세계화 자본주의는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부유한 사람들(자본가 계급)을 편듭니다. 훨씬 많은 돈들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기 때문에, 이 경제에서 부유한 사람들은 돈, 돈, 돈, 돈, 돈, 돈벌이에게 집착합니다.

 

만약 대규모 산업들이 석탄들, 석유들을 포기하고 재생 에너지들을 사용한다면, 훨씬 많은 돈들을 벌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산업 혁명 이후, 재생 에너지들보다 석탄들, 석유들은 훨씬 강력한 산업이 되었습니다. 석탄들, 석유들처럼, 만약 대규모 산업들이 동물 기반 먹거리들을 포기하고 식물 기반 먹거리들에게 초점을 맞춘다면, 훨씬 많은 돈들을 벌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일반적으로, 식물 기반 먹거리들보다 동물 기반 먹거리들은 훨씬 비싼 상품들이 됩니다. 자본주의 때문에, 대규모 산업들은 기후 변화가 됩니다. 어휴~, 이건 극단적인 기후들이 자본주의 문제라는 뜻입니다.



※ 게임 <Vox Machinae> 스크린샷 출처:
https://store.steampowered.com/app/334540/Vox_Machinae/

※ 사진 <Vegetable Salad …> 출처: Chan Walrus,
http://www.pexels.com/photo/vegetable-salad-on-plate-1059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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