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인티드 그레일>+<제2의 성>=<영원한 전쟁>
[보드 게임은 사상을 논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목적보다 수단입니다.]
소설가는 소설을 씁니다. 글자들이 소설을 구성하기 때문에, 이건 책(서적)입니다. 소설가는 글자들, 책을 씁니다. 소설이 책(서적)이기 때문에, 소설을 선택하기 위해 독자는 서점에 방문합니다. 서점이 오프라인 서점이든, 인터넷 서점이든, 소설을 선택하기 위해 독자는 서점에 방문합니다. 서점이 소설들을 구비하는 것처럼, 소설은 책입니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쓴다."와 "나는 책을 쓴다."는 비슷한 뜻이 될 수 있습니다. 이건 오직 소설만 책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소설 이외에, 다른 많은 것들 역시 글자들, 책입니다. 소설처럼, 철학은 책일 수 있습니다. 소설처럼, 평론은 책일 수 있습니다.
조 홀드먼은 <영원한 전쟁>을 썼습니다. 글자들이 <영원한 전쟁>을 구성하기 때문에, 이건 책입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제2의 성>을 썼습니다. <영원한 전쟁>처럼, 글자들이 <제2의 성>을 구성하기 때문에, 이건 책입니다. 테리 이글턴은 <문학 이벤트>를 썼습니다. 글자들이 <문학 이벤트>를 구성하기 때문에, <영원한 전쟁>, <제2의 성>처럼, 이건 책입니다. 아하~, <영원한 전쟁>, <제2의 성>, <문학 이벤트>에게는 커다란 교집합(책)이 있습니다. 아무리 세 책들에게 교집합이 있다고 해도, <영원한 전쟁>은 소설입니다. <제2의 성>은 철학입니다. <문학 이벤트>는 평론입니다.
소설, 철학, 평론처럼, 다른 많은 것들은 책입니다. 심지어 블로그조차 인터넷 책일 수 있습니다. <제2의 성>, <문학 이벤트>처럼, 만약 어떤 블로그들이 글자들에게 기반한다면, 만약 이 블로그들에서 글자들이 가장 커다란 부분을 차지한다면, <제2의 성>, <문학 이벤트>와 이 블로그들은 중요한 교집합(글자들)을 형성할 겁니다. <제2의 성>, <문학 이벤트>가 책이기 때문에, 이 블로그들이 <제2의 성>, <문학 이벤트>와 비슷하기 때문에, 이 블로그들은 (인터넷) 책일 수 있습니다. 이건 언제나 <제2의 성>과 블로그가 비슷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전통적으로, 책은 종이책을 뜻합니다.
어떤 독자들은 블로그가 책이라고 분류하지 않는지 모릅니다. <제2의 성>, <문학 이벤트>처럼, 어떤 독자들에게 오직 체계적인 서술만 책인지 모릅니다. 비록 블로그가 책이 아니라고 해도, 분명히, <문학 이벤트>와 블로그에게는 커다란 교집합(글자들)이 있습니다. (이 블로그, <SF 생태주의>는 다르지 않습니다. 비록 이 블로그가 책이 아니라고 해도, 이 블로그에서 글자들은 가장 커다란 부분입니다.) 글자들이 블로그를 구성하는 것처럼, 글자들은 비단 소설만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 역시 구성합니다. 이 커다란 교집합 덕분에, 소설, 철학, 평론은 가깝습니다. (흠, 소설과 블로그는 가깝습니다.)
글자들은 소설, 철학, 평론을 분류하기 위한 기준일 수 있습니다. 글자들이 구성하기 때문에, <영원한 전쟁>, <제2의 성>, <문학 이벤트>는 비슷합니다. (심지어 글자 중심적인 블로그조차 비슷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2의 성>, <문학 이벤트>보다 <영원한 전쟁>에게는 고유한 특성이 있습니다. 이 특성은 세계 창조입니다. 조 홀드먼은 소설 세계를 창조했습니다. 특히, 이 창조된 세계는 스페이스 오페라입니다. 현실에서 전투 우주선은 장거리 미사일을 날리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인류 문명은 전투 우주선을 건조하지 않습니다. 현실과 달리, <영원한 전쟁>에서 전투 우주선은 도약합니다.
현실과 달리, <영원한 전쟁>에서 전투 우주선은 미사일을 날리고 외계인 우주선을 격침합니다. 현실과 <영원한 전쟁>은 다릅니다. 양쪽이 다르기 때문에, <영원한 전쟁>은 고유한 세계를 보여줍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와 달리, 조 홀드먼은 고유한 세계를 창조했습니다. 조 홀드먼이 고유한 세계를 창조했기 때문에, 이 소설가는 세계 창조자입니다. 조 홀드먼처럼, 다른 많은 소설가들은 세계 창조자들입니다. 소설가는 소설 세계를 창조합니다. 만약 소설가가 세계를 창조하지 않는다면, 소설을 쓰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소설가가 세계를 창조하기 때문에, 오~, 이 작가는 대단한지 모릅니다.
소설가가 세계 창조자이기 때문에, 이 작가와 창조신은 비슷합니다. 창조신이 세계를 창조하는 것처럼, 소설가는 (소설) 세계를 창조합니다. 창조신은 가장 높은 위상입니다. 소설가와 창조신이 비슷하기 때문에, 창조신이 가장 높은 위상이기 때문에, 소설가는 가장 높은 위상을 향해 승화합니다. 소설가가 가장 높은 위상이 되기 때문에, 이 작가는 대단한지 모릅니다. 소설가가 대단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이 작가를 희망하는지 모릅니다. 세계 창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소설들을 쓰기 원하는지 모릅니다. 특히, <영원한 전쟁>은 스페이스 오페라입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다른 세계입니다.
현실에서 전투 우주선이 미사일을 날리지 않기 때문에, 스페이스 오페라는 현실을 넘어섭니다. 스페이스 오페라가 현실을 넘어서기 때문에, 이 세계는 다른 세계가 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사이언스 픽션(SF)에 속합니다. <영원한 전쟁>은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이 소설이 다른 세계가 되는 것처럼, SF 세계는 다른 세계입니다. 비록 현실에서 어떤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SF 세계에서 이것들은 존재하는지 모릅니다. SF 세계에서 새로운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세계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SF 세계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 때문에, 이 세계는 흥미로울 수 있습니다.
◈ 시몬 드 보부아르보다 조 홀드먼은 훨씬 고유한 세계를 창조한다.
다른 소설 세계들보다 SF 세계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 때문에, 이 세계는 훨씬 고유한 세계일 수 있습니다. 조 홀드먼이 스페이스 오페라를 썼기 때문에, 이 소설가는 훨씬 고유한 세계를 창조했습니다. SF 세계가 훨씬 고유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SF 소설가가 되기를 희망하는지 모릅니다. 훨씬 고유한 세계 창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SF 소설들을 쓰기 원하는지 모릅니다. 비단 스페이스 오페라만 아니라 서사 판타지(에픽 판타지), 던전 탐험 역시 비슷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가 다른 세계인 것처럼, 서사 판타지, 던전 탐험은 다른 세계입니다. 던전 탐험, 이 세계에서 드루이드는 커다란 표범으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이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던전 탐험과 달리, 현실에서 인간은 커다란 표범으로 변신하지 못합니다. 에이~, 심지어 현실에서 참새 변신조차 가능하지 않습니다. 현실과 던전 탐험은 다릅니다. 양쪽이 다르기 때문에, 던전 탐험은 다른 세계가 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가 사이언스 픽션에 속하는 것처럼, 던전 탐험은 판타지에 속합니다. 비록 현실에서 어떤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판타지 세계에서 이것들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판타지 세계에서 새로운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세계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판타지 세계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처럼, 판타지는 흥미롭습니다. 오호~, 다른 소설 세계들보다 이 세계는 훨씬 고유한 세계일 수 있습니다.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에게는 커다란 교집합(다른 세계)이 있습니다.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가 비슷하기 때문에, 심지어 사이언스 판타지조차 성립합니다. 이건 '절대적으로, 현실과 SF 세계(판타지 세계)는 떨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무리 현실에서 스페이스 오페라가 독립한다고 해도, 이 독립은 100% 완벽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현실과 던전 탐험이 떨어진다고 해도, 이 분리는 100% 완벽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조 홀드먼은 <영원한 전쟁>을 썼습니다. 아무리 이 소설이 다른 세계를 이야기한다고 해도, 이 세계에서 조 홀드먼은 <영원한 전쟁>을 쓰지 않았습니다. 다른 어떤 세계들보다 현실에서 조 홀드먼은 이 세계를 상상했습니다.
현실에서 스페이스 오페라는 비롯합니다. 현실에서 SF 독자들은 <영원한 전쟁>을 해석합니다. 현실과 조 홀드먼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현실과 SF 독자들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스페이스 오페라가 현실을 넘어선다고 해도, 이 도약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비록 이 도약이 완벽하지 않다고 해도, 분명히, 스페이스 오페라는 고유한 세계입니다. SF 소설가로서, 조 홀드먼은 고유한 세계의 창조자입니다. <영원한 전쟁>이 고유한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에, 이 '책'은 <제2의 성>, <문학 이벤트>와 다릅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고유한 세계를 창조했나요? <제2의 성>이 고유한 세계를 보여주나요? 아니, 이 철학자는 고유한 세계를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영원한 전쟁>에서 고유한 세계는 가장 커다란 특성입니다. <영원한 전쟁>과 달리, <제2의 성>은 고유한 세계보다 현실에게 커다란 관심을 기울입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가부장적인 현실을 분석했습니다. <제2의 성>은 가부장적인 현실을 설명합니다. <문학 이벤트>는 다르지 않습니다. 테리 이글턴이 고유한 세계를 창조했나요? <문학 이벤트>가 고유한 세계를 보여주나요? 에이~, 그건 아닙니다. 테리 이글턴은 고유한 세계를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이 평론가는 문학이 무엇인지 분석합니다. <문학 이벤트>는 현실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이미 현실에서 문학이 존재하기 때문에, 테리 이글턴은 문학을 분류합니다.
<제2의 성>처럼, <문학 이벤트>는 고유한 세계보다 현실에게 커다란 관심을 기울입니다. <제2의 성>, <문학 이벤트>가 현실에게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에, <영원한 전쟁>이 고유한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에, 양쪽은 다릅니다. 만약 글자들, 책이 커다란 가치를 얻는다면, <영원한 전쟁>과 <제2의 성>, <문학 이벤트>는 비슷할 겁니다. 글자들(책)과 달리, 만약 고유한 세계가 커다란 가치를 얻는다면, <영원한 전쟁>과 <제2의 성>, <문학 이벤트>는 다를 겁니다. <영원한 전쟁>은 소설입니다. 소설이 고유한 세계이기 때문에, 소설가가 세계를 창조하기 때문에, 철학자, 평론가보다 소설가는 높은 위상으로 승화합니다.
창조신과 소설가가 비슷한 것처럼, 시몬 드 보부아르, 테리 이글턴보다 조 홀드먼은 높은 위상입니다. 철학자, 평론가보다 소설가가 높은 위상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소설가를 희망하는지 모릅니다. 이 관점에서 <영원한 전쟁>은 <테인티드 그레일>과 비슷합니다. <테인티드 그레일>은 책이 아닙니다. 이건 보드 게임입니다. 보드 게임은 책이 아닙니다. 아무도 바둑을 책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아무도 화투를 책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아무도 장기를 책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바둑, 화투, 장기가 책이 아닌 것처럼, 보드 게임은 책이 아닙니다. <영원한 전쟁>과 달리, <테인티드 그레일>은 책이 아닙니다.
비록 <테인티드 그레일>이 책이 아니라고 해도, 이 보드 게임은 고유한 세계를 보여줍니다. <테인티드 그레일>은 고대 신화 판타지, 다크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이 판타지 세계에서 멘히르는 수호 석상입니다. 수호 석상으로서, 멘히르는 방어막을 형성하고 사악한 것들을 몰아냅니다. <영원한 전쟁>이 고유한 세계를 보여주는 것처럼, <테인티드 그레일>은 다르지 않습니다. <영원한 전쟁>과 <테인티드 그레일>에게는 커다란 교집합(고유한 세계)이 있습니다. 특히, <테인티드 그레일>이 고대 신화 판타지, 다크 판타지에 가깝기 때문에, <영원한 전쟁>처럼, <테인티드 그레일>은 (현실보다) 다른 세계를 보여줍니다.
◈ <영원한 전쟁>처럼, <테인티드 그레일>은 '글자들+이야기'이다.
<영원한 전쟁>은 책입니다. <제2의 성>, <문학 이벤트>는 책입니다. 비록 <테인티드 그레일>이 책이 아니라고 해도, 만약 고유한 세계가 커다란 가치를 얻는다면, <제2의 성>, <문학 이벤트>보다 <영원한 전쟁>과 <테인티드 그레일>은 비슷할 겁니다. <제2의 성>, <문학 이벤트>와 달리, <테인티드 그레일>이 고유한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에, <제2의 성>, <문학 이벤트>보다 <영원한 전쟁>과 <테인티드 그레일>은 비슷합니다. 게다가, 이 보드 게임은 이야기책(스토리북)을 포함합니다. <테인티드 그레일>에서 이야기책은 아주 중요한(커다란) 부분입니다. 이 이야기책은 방대합니다.
<영원한 전쟁>이 책이기 때문에, <테인티드 그레일>에서 이야기'책'이 아주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 '책'(글자들)이 방대하기 때문에, 아하~, <영원한 전쟁>과 <테인티드 그레일>에게 비단 고유한 세계만 아니라 글자들 역시 커다란 교집합입니다. <테인티드 그레일>처럼, 어떤 보드 게임들에서 글자들은 커다란 부분입니다. 글자들이 소설, 철학, 평론을 구성하는 것처럼, 보드 게임에서 글자들은 커다란 부분일 수 있습니다. 비단 보드 게임만 아니라 비디오 게임에서도 글자들은 커다란 부분일 수 있습니다. <네버윈터 나이츠>처럼, 어떤 비디오 게임들은 아주 많은 글자들을 자랑합니다.
"나는 소설을 쓰기 원해."와 "나는 이야기를 쓰기 원해."는 비슷한 뜻일 수 있습니다. 글자들이 소설을 구성하기 때문입니다. 소설이 이야기를 선사하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글자들+이야기'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들이 이야기를 쓰기 원한다면, 이 사람들은 소설가를 희망할 수 있습니다. 이건 오직 소설만 글자들+이야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테인티드 그레일>이 이야기책을 포함하는 것처럼, 보드 게임은 글자들+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영원한 전쟁>이 글자들과 이야기를 결합하는 것처럼, <테인티드 그레일>은 글자들과 이야기를 결합합니다. 글자들+이야기는 보드 게임을 뜻할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들이 이야기를 쓰기 원한다면, 이 사람들은 비단 소설가만 아니라 게임 작가 역시 희망할 수 있습니다. 글자들+이야기가 <테인티드 그레일>을 뜻할 수 있는 것처럼, 비단 소설만 아니라 다른 것들 역시 글자들과 이야기를 결합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테인티드 그레일>이 글자들과 이야기를 결합한다고 해도, <테인티드 그레일>은 보드 게임입니다. 아무리 <테인티드 그레일>에서 이야기책이 글자들+이야기라고 해도, 독립적으로, 이 결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야기책은 보드 게임에게 종속됩니다. 보드 게임 없이, 이야기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야기책은 소설이 아닙니다.
그 자체로서, 보드 게임의 이야기책은 존재하지 못합니다. 보드 게임을 위해 이야기책은 존재합니다. 이야기책은 목적이 아닙니다. 목적은 보드 게임입니다. 이야기책은 수단입니다. 목적(보드 게임)을 위해 수단(이야기책)은 존재합니다. <테인티드 그레일>에서 에일리(아일리, Ailei)는 약초 치유사입니다. 약초 치유사로서, 에일리는 교섭 능력을 올릴 수 있습니다. 아일리와 달리, 베오른은 골수 전사입니다. 골수 전사로서, 베오른에게 교섭 능력보다 전투 능력은 훨씬 중요합니다. 교섭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게임 플레이어는 골수 전사 베오른보다 약초 치유사 에일리를 선택해야 합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등장인물 특성을 파악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것처럼, <테인티드 그레일>은 보드 게임입니다. 아무리 이 게임에서 이야기책이 방대하다고 해도, 목적(보드 게임) 없이, 수단(이야기책)은 존재하지 못합니다. 그 자체로서, <테인티드 그레일>의 이야기책은 존재하지 못합니다. 이 이야기책과 달리, 그 자체로서, <영원한 전쟁>은 존재합니다. <테인티드 그레일>에게 글자들+이야기는 수단입니다. <영원한 전쟁>에게 글자들+이야기는 목적입니다. 에일리와 베오른을 배치하기 위해 게임 플레이어는 고민합니다. 만델라와 메리게이를 선택하기 위해 독자는 고민하지 않습니다.
<테인티드 그레일>의 이야기책이 글자들+고유한 세계인 것처럼, 만약 어떤 사람들이 고유한 세계를 쓰기 원한다면, 이 사람들은 비단 소설가만 아니라 게임 작가 역시 희망할 수 있습니다. "고유한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나는 글자들을 쓰기 원해." 이 사람은 비단 소설가만 아니라 게임 작가 역시 희망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이게 가능하다고 해도, <테인티드 그레일>에서 이야기책은 수단입니다. <영원한 전쟁>에게 글자들+이야기가 목적이기 때문에, 양쪽은 다릅니다. <영원한 전쟁>은 소설입니다. 아무리 고유한 세계+글자들이 게임을 뜻한다고 해도, 음…, 게임에게 이 결합은 수단입니다.
게임과 달리, 소설에게 고유한 세계+글자들은 목적일 수 있습니다. 이 결합(고유한 세계+글자들)이 목적이 되기 때문에, 소설은 이 결합을 대표할 수 있습니다. 소설이 고유한 세계+글자들을 대표하기 때문에, 아무리 보드 게임이 이 결합을 포함한다고 해도, 어떤 사람들은 게임 작가보다 소설가를 희망하는지 모릅니다. 특히, 소설은 책입니다. <영원한 전쟁>은 책입니다. <제2의 성>은 책입니다. <문학 이벤트>는 책입니다. <영원한 전쟁>, <제2의 성>, <문학 이벤트>는 비슷합니다. <영원한 전쟁>, 이 소설과 달리, <테인티드 그레일>과 <제2의 성>, <문학 이벤트>는 비슷하지 않습니다.
[이야기책은 게임에게 종속됩니다. 게임 없이, 이 글자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2의 성>은 철학, 사상입니다. 많은 독자들은 <제2의 성>이 철학, 사상이라고 인정할 겁니다. <문학 이벤트>가 타자성, 포스트 모더니즘을 비판하는 것처럼, 이 평론 역시 철학, 사상입니다. 적어도, <문학 이벤트>는 철학, 사상을 포함합니다. <제2의 성>, <문학 이벤트>가 철학, 사상이기 때문에, <영원한 전쟁>과 <제2의 성>, <문학 이벤트>가 비슷하기 때문에, <영원한 전쟁>은 철학, 사상입니다. <영원한 전쟁>처럼, 소설은 사상일 수 있습니다. 소설과 달리, <테인티드 그레일>과 <제2의 성>, <문학 이벤트>는 다릅니다. <테인티드 그레일>처럼, 보드 게임은 사상이 아닙니다.
소설은 철학, 사상을 담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보드 게임이 철학, 사상을 담는다고 해도, 글자들+이야기가 수단인 것처럼, 보드 게임에서 철학, 사상은 수단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보드 게임이 사상을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테인티드 그레일>처럼, 만약 어떤 보드 게임들이 글자들+이야기에게 커다란 가치를 부여한다면, 이 보드 게임들은 사상을 논의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이게 가능하다고 해도, 보드 게임은 소설에 닿지 못합니다. <영원한 전쟁>, <제2의 성>, <문학 이벤트>가 비슷한 것처럼, 소설이 철학, 사상을 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소설가를 희망하는지 모릅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개량적인 페미니즘과 전투적인 페미니즘을 구분합니다. 페미니즘이 개량적인 이념이었을 때, 시몬 드 보부아르는 사회주의를 주장했습니다. 전투적인 페미니즘이 나타났기 때문에, 시몬 드 보부아르는 독립적인 페미니즘 영역을 인정했습니다. 이 철학자가 전투적인 페미니즘을 환영했던 것처럼, 개량적인 페미니즘은 얄팍합니다. 만약 페미니즘이 자본주의와 타협한다면, 이건 그저 가짜에 불과할 겁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처럼, 소설가는 철학, 사상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소설가는 사상가일 수 있습니다. 흠, 보드 게임 제작자와 사상가가 어울리나요?
개인적으로, 저는 보드 게임 작가가 사상가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달리, 어떤 사람들은 게임 작가와 사상가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끼는지 모릅니다. 보드 게임에서 사상이 목적보다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드 게임보다 소설은 훨씬 낫습니다. 동시에, 보드 게임처럼, 소설은 고유한 세계일 수 있습니다. 이건 소설에게 두 특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제2의 성>처럼, <영원한 전쟁>은 사상을 담습니다. 동시에, <테인티드 그레일>처럼, <영원한 전쟁>은 고유한 세계를 창조합니다. 이 보드 게임이 이야기책을 자랑하는 것처럼, 이 SF 소설은 '글자들'입니다.
<영원한 전쟁>은 비단 <제2의 성>만 아니라 <테인티드 그레일>과도 비슷합니다. <영원한 전쟁>은 <제2의 성>의 특성과 <테인티드 그레일>의 특성을 결합합니다. 이 사례처럼, 소설에게는 두 특성이 있습니다. 소설에게 이 특성이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소설가를 희망하는지 모릅니다.
※ 게임 <Tainted Grail: The Fall of Avalon> 사진 출처:
http://www.kickstarter.com/projects/awakenrealms/tainted-gr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