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페르노>, 사회 구조를 외면하는 음모론
※ 이 글은 댄 브라운이 쓴 소설 <인페르노>의 결말을 누설합니다.
어느 날, 서점에서 저는 댄 브라운이 쓴 <인페르노>를 뒤적거렸습니다. <인페르노>가 무슨 내용인지 몰랐기 때문에 저는 번역자 후기를 찾고 싶었습니다. 대부분 후기에서 번역자들은 소설이나 책이 무슨 내용인지 대략적으로 밝히죠. 하지만 <인페르노>에는 번역자 후기가 없었고, 그래서 저는 소설 후반부를 읽었습니다. 어떤 거대한 사건이 존재하고, 그 사건은 인류 문명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소설 주인공 랭던은 그 사건에 얽힌 실마리를 쫓고, 마침내 진실을 목도합니다. 소설 후반부에서 랭던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전말을 듣고, 그 사건이 얼마나 윤리적으로 옳은지 잠시 이야기합니다.
저는 <인페르노>가 무슨 내용인지 자세히 모릅니다. 하지만 그 부분을 읽었고, <인페르노>가 주장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했습니다. 사실 SF 소설들에 익숙한 독자는 <인페르노>가 주장하는 거대한 사건과 거대한 위협이 별로 낯설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이는 진부한 음모론이죠. <인페르노>에서 어떤 과학자는 인구 폭발이 인류 문명을 무너뜨릴지 모른다고 걱정합니다. 인류는 머릿수를 너무 많이 불렸고, 더 이상 자연 생태계는 인구를 감당하지 못해요.
그래서 그 과학자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개발합니다. 과학자는 바이러스를 널리 퍼뜨리기 원해요. 바이러스가 널리 퍼진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테고, 자연 생태계는 적절한 인구를 부양할 수 있을 겁니다. 아마 이를 신맬서스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인구 폭발을 걱정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인구 폭발이 자연 환경을 망치고 파괴하고 인류 문명조차 무너뜨릴 거라고 걱정하죠. 이는 테크노스릴러 소설에 나오는 시시껄렁한 음모론이고 동시에 꽤나 설득력이 높은 주장입니다. 그래서 여러 과학자들은 인구 폭발을 걱정해요. 생물 다양성 감소를 경고하는 생태학 서적들 역시 인구 폭발이 자연 환경을 파괴한다고 주장하죠.
하지만 저는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정말 인구 폭발이 자연 환경을 망치고 인류 문명을 쓰러뜨릴까요. 언뜻 그건 아주 논리적인 설명 같습니다. 게다가 자급자족하는 여러 부족민들은 인구를 조절합니다. 그들은 자연 생태계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인구를 너무 많이 불리지 않습니다. 종종 그런 방법은 잔혹하게 보이나,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위해 인구 조절은 필수적인 행위입니다. 현대 문명 역시 그런 인구 조절이 필요할지 몰라요.
문제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직 인구 폭발만 걱정한다는 사실입니다. 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날까요. 왜 자꾸 사람들은 머릿수를 늘릴까요. 왜 과학자들이 열심히 인구를 조절하자고 떠듬에도, 사람들은 그런 경고를 듣지 않을까요. 여기에서 한 가지 주의할 사항은 인구 폭발이 전반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느 나라는 인구 감소를 걱정하고, 어느 나라는 인구 폭발을 걱정합니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 같은 이른바 강대국들은 인구 폭발보다 인구 감소를 걱정합니다. 하지만 제3세계나 개발도상국은 인구 폭발을 걱정해요. 중국처럼 한창 성장하는 나라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전문가들은 고등 교육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생활이 안정적일 때, 인구 폭발이 멈출 거라고 예상합니다. 여자들이 고등 교육을 받거나 사회 활동에 참가한다면, 여자들이 아이보다 사회 활동이나 자아 실현에 집중할 테고, 인구는 감소할 겁니다. 인구가 늘어난다고 해도 폭발적으로 늘어나지 않겠죠. 만약 전세계에서 여자들이 고등 교육을 받거나 사회 활동에 참가할 수 있다면, 전세계적인 인구 폭발 역시 멈추겠죠. 현대 문명에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재원이 있고요.
하지만 그런 재원은 대기업들에게 쏠렸습니다. 게다가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계속 약자들을 착취하고, 약자들은 고등 교육을 받거나 사회 활동을 펼치지 못합니다. 대기업들은 숱한 토지들, 자원들, 나무들, 수원들을 빼앗고, 공기와 물을 오염시키고, 약자들을 삶터에서 내쫓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3세계 여자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거나 사회 활동에 참가할 수 있을까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만약 우리가 인구 폭발을 막고 싶다면, 우리는 자본주의를 타파해야 합니다. 하지만 <인페르노>는 그런 상황을 언급하지 않아요. 저는 <인페르노>를 자세히 읽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 소설이 자본주의를 비판하는지 저는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소설 후반부 분위기를 고려할 때, <인페르노>는 자본주의를 비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은 억압적인 사회 구조를 인정하고, 오직 인구 폭발에게 죄를 뒤집어 씌웁니다. (만약 <인페르노>가 자본주의를 제대로 비판한다면, 제가 우둔하게 헛다리를 짚었겠죠.) 비단 <인페르노>만 아니라 수많은 과학자들과 생태학 서적들 역시 인구 폭발에게 죄를 뒤집어 씌웁니다. 그들은 자본주의를 비판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들이 정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인구 폭발보다 먼저 자본주의를 주목해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