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인류세라는 착각

인류가 모두 똑같이 사악하다면…

OneTiger 2017. 5. 9. 20:00

아서 클라크는 엄중한 과학 고증과 장대한 시각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아서 클라크 같은 작가도 종종 풍자 소설이나 해학 소설을 씁니다. 그리고 그런 소설은 커트 보네거트나 더글라스 아담스처럼 회의적인 분위기를 풍기곤 합니다. <더 이상 아침은 없다> 같은 소설이 그렇습니다. 이런 소설을 보면, 정말 인류 전체가 끝장이 나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아서 클라크는 정말 인류 전체가 끝장이 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더글라스 아담스도 그럴 겁니다. 커트 보네거트는…. 음, 이 사람도 그럴 겁니다. 커트 보네거트는 비관적인 이야기를 너무 자주 하지만, 설마 인류 전체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겠죠.


어쨌든 소설을 떠나서 정말 이런 극단적인 것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인류 전체가 사라져야 모든 비극이 끝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인류 전체가 사라지는 것이 가장 최상의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그 말은 어느 정도 맞을 겁니다. 인류는 완벽한 유토피아를 이룰 수 없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동물이고, 불완전한 사회를 이룹니다. 아무리 인류가 노력해도 모든 차별과 착취와 오염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누군가는 분명히 피해를 입을 겁니다. 따라서 정말 완벽한 세상을 꿈꾼다면, 인류 전체가 사라져야 합니다. 이렇게 극단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논리는 여러 모순을 저지르지만, 저는 그 중에서 한 가지 사실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결코 평등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한 평생 떵떵거리며 살지만, 누군가는 한 평생 죽도록 고생만 합니다. 이 세상의 삶은 두 사람에게 전혀 다르게 다가옵니다. 한 사람은 (겉보기에는) 화려한 천국 속에서 살아가고, 다른 한 사람은 그야말로 지옥 속에서 살아갑니다. 캐나다의 재벌 기업 회장 아들과 부르키나파소의 굶어죽는 소녀는 절대 똑같지 않습니다. 저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그 굶주리는 소녀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도대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완벽한 세상을 위해' 그 소녀가 사라져야 합니까. 어쩌면 그 굶주리는 소녀는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모욕했을지 모릅니다. 아무리 밑바닥 사람이라도 다른 약자를 괴롭힐 수 있습니다. 약자도 약자를 괴롭히곤 합니다. 게다가 그 소녀가 부귀를 얻으면, 엄청난 환경을 오염시키거나 다른 사람들을 죽도록 괴롭힐지 모릅니다. 그런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 소녀는 아주 적은 피해만 끼치거나 되도록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할지 모릅니다. 그런 가능성도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더군다나 도대체 어떤 잘못이 죽음, 그것도 대대적인 종말로 이어져야 합니까. 어떤 잘못이 종말과 동등합니까. 이 세상 사람들은 매일같이 누군가를 헐뜯거나 괴롭히거나 모욕하지만, 그런 것들이 전부 종말과 동등한 위상이 있습니까. 저 부르키나파소의 굶주리는 소녀가 과연 종말을 맞이할 만큼 잘못을 저질렀나요. 만약 저 소녀가 독재자나 대기업 총수와 함께 종말을 맞이해야 한다면, 최소한 삶의 기쁨이라도 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인류 멸종을 외치는 사람들은 이런 계급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소녀와 독재자와 대기업 총수가 모두 똑같은 인간이라고 말합니다. 독재자는 사람들을 학살하고 대기업 총수는 막대한 환경을 오염시킨다고 해도 왜 굶주리는 소녀가 그들의 대열에 끼어들어야 하나요. (게다가 모든 독재자와 대기업 총수가 그렇지도 않습니다.)


인류 멸종을 외치는 사람들은 이 세 사람이 모두 잘못을 저지르는 인간이고 모두 사라져야 하는 인간이라고 주장합니다. 그건 극단적인 주장이지만, 뭐, 그런 논리가 맞다고 가정하죠. 그렇다면 저 소녀는 종말을 맞기 전에 최소한 대기업 총수만큼 문명의 혜택을 누려야 합니다. 왜? '똑같은 인간'이잖아요. 하지만 인류 종말을 외치는 사람들은 굶주리는 소녀의 처지 따위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인간들은 모두 사악하고 탐욕적입니다. 쫄쫄 굶주리는 소녀가 탐욕적이라니, 이거야, 원.



이 세상에는 정말 계급과 차별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물론 그 사람들도 나름대로 차별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불완전한 인간은 불완전하게 행동할 겁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노력입니다. 인류 종말을 외치는 사람들은 그런 노력조차 무시합니다. 그들은 그저 모두가 죽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외칩니다. 아, 마지막으로 인류 종말은 별로 가능성이 없습니다. 인구가 줄어들지 몰라도 인류는 당분간 멸종하지 않을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가능성을 주장하지만, 글쎄요. 차라리 전세계적인 사회주의 혁명이 훨씬 논리적이고 현실적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