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사회주의자들과 야생을 걷는 자들
[나뭇잎 돛처럼, '야생'을 걷는 자들에게 야생은 숲입니다. 하지만 숲은 야생의 전부가 아니겠죠.]
윌리엄 모리스가 쓴 소설 <뉴스 프롬 노웨어>는 우리나라에서 <에코토피아 뉴스>로 번역되었습니다. 아마 어떤 독자는 어니스트 칼렌바흐가 쓴 소설 <에코토피아 비긴스>와 헛갈릴지 모릅니다. 게다가 많은 창작물들이나 철학 서적들은 '에코토피아'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죠. 생태적인 낙원을 강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들을 고려한다면, 칼렌바흐가 정말 멋진 용어를 대중화한 것 같습니다.) <에코토피아 뉴스>를 번역한 박홍규 교수는 이 소설이 19세기에서 드물게 생태 철학을 강조하는 유토피아 로망스이기 때문에 일부러 저렇게 번역했다고 밝혔습니다.
확실히 19세기 이전에 흔히 알려진 유토피아 소설들은 생태 철학을 그리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자연 환경을 우선적으로 내세우지 않았죠. 하지만 <에코토피아 뉴스>는 다릅니다. 이 소설은 표지부터 각종 덩굴이나 나뭇잎 등을 보여줍니다. 윌리엄 모리스 본인이 디자이너였기 때문에 정말 실반 엘프들이 그린 것 같은 디자인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소설 속에서 사회주의자들은 숲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야생을 보존하기 원합니다. <뒤 돌아보며> 같은 소설 역시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말하지만, 숲을 전혀 언급하지 않죠. 윌리엄 모리스의 소설은 저런 <뒤 돌아보며> 같은 소설과 커다란 차이를 보여줍니다.
좀 더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요. 4X 게임 <엔들리스 레전드>에는 여러 종족들이 등장합니다. 검마 판타지 게임답게 온갖 종족들이 서로 싸우거나 교류하죠. (사실 완전한 검마 판타지는 아니고, 30% 정도는 스페이스 오페라일 겁니다. 볼터 세력은 거대 로봇들을 운영하거나 부분적인 강화복들을 이용합니다.) 여러 세력들 중에 와일드 워커라는 종족이 있습니다. '야생을 걷는 자들'이죠. 와일드 워커는 전형적인 실반 엘프와 흡사합니다. 그들은 녹색 옷을 입고 숲 속을 누빕니다. 와일드 워커는 데카리 순찰차, 아가체 주술사, 테네이 거인이라는 부대를 운용해요.
데카리 순찰자는 숲 속에서 활을 쏘는 레인저들입니다. 아가체 주술사는 동물로 변하고 아군을 보호하는 드루이드와 같습니다. 테네이 거인은 거대한 나무 인간이고, 누가 봐도 상투적인 트렌트입니다. 게다가 야생을 걷는 자들은 숲에서 여러 이득을 얻습니다. 이들은 숲에서 생산력을 늘리거나 숲 속에서 방어력이 늘어나거나 숲과 시야를 공유합니다. 이 종족을 플레이하는 유저는 야생을 걷는 자들이 숲 속에서 나오고 대륙으로 진출한다는 이야기를 읽게 됩니다. 이들은 너무 숲에 익숙하기 때문에 숲을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곡선이 두드러지는 녹색 건물들을 짓고, 이런 건물들은 숲과 아주 잘 어울리는 듯합니다.
윌리엄 모리스와 야생을 걷는 자들은 아무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그래도 두 가지를 연이어 언급한 이유는 <에코토피아 뉴스>와 야생을 걷는 자들이 양쪽 모두 '숲'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에코토피아 뉴스>에서 야생이나 생태나 자연은 숲을 가리킵니다. 소설 속에서 사회주의자들은 그들이 숲을 사랑하고 아낀다고 말합니다. 소설 주인공 역시 숲을 사랑하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정말 이 사회주의자들은 실반 엘프 같은 느낌을 풍깁니다.) <엔들리스 레전드>에서 야생을 걷는 자들은 숲에서 여러 이득을 얻습니다. 그들은 숲 속에서 싸우고, 숲 속에서 건물들을 짓고, 숲 속을 자유롭게 누빕니다. 아가체 주술사는 (설정상) 동물로 변할 수 있는 드루이드이고, 테네이 거인은 나무 거인입니다.
따라서 <에코토피아 뉴스>와 <엔들리스 레전드>에서 생태와 야생은 모두 '숲'을 가리킵니다. 사회주의자들이 말하는 생태와 자연은 숲이고, 야생을 걷는 자들이 걷는 야생은 숲입니다. 숲 이외에 다른 지리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소설과 게임 모두 동굴, 사막, 고산, 극지, 연안, 심해, 산호초 등을 전혀 말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저 생태 사회주의자들이나 야생을 걷는 자들은 (숲을 좋아하기 때문에) 산호초 역시 좋아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막이나 극지나 고산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예전에 몇 번 말한 것처럼 많은 창작물들이나 사상들은 자연과 숲을 동일하게 바라봅니다. 숲은 자연을 대표하고 상징합니다. 윌리엄 모리스 같은 선구적인 생태 사회주의자와 <엔들리스 레전드> 같은 비디오 게임 모두 숲이 자연을 대표한다고 생각합니다. 각종 생태학 서적들은 나뭇잎이나 숲을 표지 그림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지구 생태계를 살펴본다면, 숲이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어요. 사막과 극지와 동굴과 초원과 고산 역시 자연계에 속했습니다. 연안과 산호초와 심해는 훨씬 더 거대한 비중을 차지하죠. 지구가 창백한 푸른 점임을 상기한다면, 바다 생태계가 숲 생태계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엔들리스 레전드> 같은 비디오 게임뿐만 아니라 윌리엄 모리스 같은 사상가까지, 오직 숲이 자연을 대변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숲은 풍부한 생물 다양성을 자랑하고, 인류 문명에도 여러 이득들을 제공합니다. 요아킴 라트카우 같은 환경 사학자 역시 다른 지리보다 숲에 집중하고요. (저 역시 다른 지리보다 숲을 훨씬 좋아합니다.) 하지만 가끔 저는 우리 '문명인'들이 너무 숲만 바라보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만약 지구 전부를 숲으로 조성한다면, 그게 과연 이상적인지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