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풀 라이프>와 시민 배당, 새로운 문화 예술
"아, 만약 매월 나에게 10만 엔이 생긴다면…." 이건 만화 수필 <뷰티풀 라이프> 속의 대사입니다. 수필 주인공이자 수필 작가 다카기 나오코는 이런 대사를 읊조립니다. 대도시 삶이 너무 빡빡하기 때문입니다. 만화 수필 <뷰티풀 라이프>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빈곤입니다.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해 지방에서 도쿄로 다카기 나오코는 상경합니다. 도쿄는 대도시이고, 대도시에서 다카기 나오코는 자신이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도시 삶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순식간에 저금은 떨어지고, 집세와 식비와 다른 여러 비용들은 다카기 나오코를 압박합니다.
다카기 나오코는 여러 출판사들을 전전합니다. 하지만 일러스트 외주는 들어오지 않고, 집세와 식비와 여러 비용들은 숨통을 조입니다. 이것들은 감옥과 다르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집세와 여러 비용들은 감옥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 다카기 나오코는 아르바이트들에 매달립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 역시 쉽지 않습니다. 경쟁은 치열하고, 시급은 낮고, 업무는 너무 어렵거나 위험하고, 기간은 제한적입니다. 게다가 어느 순간 일러스트 작업보다 아르바이트들은 우선합니다.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해 다카기 나오코는 상경했으나, 이제 일러스트 작업보다 먹고 사는 문제는 훨씬 다급합니다.
일러스트 외주가 들어올 때까지, 다카기 나오코는 아르바이트를 이용해 먹고 살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일러스트 외주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점점 다카기 나오코는 아르바이트에 매달리고, 어느 순간 일러스트 작업보다 아르바이트들은 우선 순위가 됩니다. 집세가 숨통을 옥죄는 상황에서 다카기 나오코는 무엇이든 해야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 다카기 나오코는 무엇이든 해야 합니다. 일러스트 작업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해 다카기 나오코가 상경했다고 해도, 일러스트 작업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르바이트, 집세, 식비, 여러 비용들입니다.
당장 다카기 나오코는 먹고 살아야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 점차 일러스트 작업은 뒤로 밀려납니다. 평소에 다카기 나오코는 그림들을 그리고 그림 실력을 쌓기 원하나, 대도시 삶이 너무 빡빡하고 힘들고 피곤하기 때문에, 다카기 나오코는 창작 욕구를 잃습니다. 빡빡하고 힘들고 피곤한 상황에서 어떻게 좋은 그림이 나올 수 있습니까. 아무리 예술가에게 화산 같은 폭발적인 창작 욕구가 있다고 해도, 빡빡한 대도시 삶은 화산을 짓밟고 가물거리고 미약한 촛불로 바꿉니다. 다카기 나오코는 자신이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으나, 힘겨운 대도시 삶 속에서 그림 하나 그리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오직 먹고 살기 위해 하루를 보내는 동안, 다카기 나오코는 회의에 빠집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 중이지?"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해 다카기 나오코는 상경했습니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다카기 나오코는 아르바이트들에 매달려야 합니다. 일러스트 작업보다 아르바이트는 우선 사항입니다. 먹고 살기가 너무 빡빡하기 때문에, 그림 연습에 시간을 투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카기 나오코는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지 못합니다. 이제 다카기 나오코는 그저 하루를 아르바이트로 넘기는 인생을 살아갈 뿐입니다. 회의는 걷잡지 못하게 커지고, 커다란 회의는 번민으로 이어지고, 번민은 서러움으로 이어집니다.
비좁고 외로운 자취방은 눈물바다가 됩니다. 하지만 비좁고 외로운 자취방이 눈물바다가 된다고 해도, 결국 먹고 살기 위해 다카기 나오코는 다시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는 다카기 나오코를 몰아붙이고, 몰아붙이고, 몰아붙이고, 다시 몰아붙이고, 또 다시 몰아붙이고, 계속 몰아붙입니다. 어떤 독자들은 다카기 나오코가 너무 성급하게 상경했다고 지적할 겁니다. 다카기 나오코 역시 자신이 너무 성급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카기 나오코가 충분히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충동적으로 결심했고 충동적으로 상경했기 때문에, 어떤 독자들은 다카기 나오코를 동정하기보다 지적할 겁니다.
게다가 다카기 나오코에게는 돌아가기 위한 고향이 있습니다. 만약 다카기 나오코가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고향에서 다카기 나오코는 새로운 기회를 잡을지 모릅니다. 엄마와 아빠는 딸이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엄마와 아빠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해 구태여 도쿄로 상경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카기 나오코에게는 고향이 있습니다. 어쩌면 안락하고 든든한 고향이 있기 때문에, 다카기 나오코는 무모하게 상경했는지 모릅니다. 비록 도쿄 일러스트레이터 생활이 실패한다고 해도, 고향은 다카기 나오코를 따뜻하게 맞아줄 겁니다. 이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기반을 완전히 잃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잠시 기대기 위한 곳조차 없습니다. 적어도 이런 사람들보다 다카기 나오코는 훨씬 낫습니다. 다카기 나오코 역시 안락한 고향 때문에 자신이 충동적으로 상경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도쿄 생활이 실패한다고 해도, 다카기 나오코는 돌아갈 수 있습니다. 다카기 나오코가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도, 고향은 넉넉하고 따스할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대도시 삶은 힘겹게 사람들을 옥죄고, 비좁고 외로운 자취방은 눈물바다가 되어야 합니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인간은 인간이 되지 못합니다. 인간은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한 부품, 노예가 되어야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다카기 나오코가 누구인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다카기 나오코가 상품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다카기 나오코가 무엇을 꿈꾸든, 다카기 나오코의 성향이 무엇이든, 다카기 나오코가 누구든, 다카기 나오코는 상품이 되어야 합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중요한 것은 상품입니다. 희망, 미래, 성향보다 중요한 것은 상품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상대적인 과잉 생산, 시장 포화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상품을 팔기는 쉽지 않습니다. 자신을 팔기 위해 다카기 나오코는 훨씬 값싼 상품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훨씬, 훨씬, 훨씬 값싼 상품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참해집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비참해집니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가 삐까번쩍하고 흥청망청한다고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비참해지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사회는 빠까번쩍해질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런 비참함에서 화려함은 비롯합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화려한 이유는 자본주의가 수많은 사람들을 비참한 구렁텅이로 내몰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지치고 빡빡한 생활에서 다카기 나오코는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카기 나오코는 상상합니다. "아, 만약 매월 나에게 10만 엔이 생긴다면…." 하지만 이건 그저 잠시 동안의 공상에 불과합니다.
아니, 하지만 이게 정말 그저 공상에 불과한가요? 다카기 나오코는 '매월 10만 엔'이 공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건 공상입니다. 하지만 SF 소설에게 이건 공상이 아닙니다. 이미 19세기 후반에 <뒤돌아보며> 같은 소설은 기초적인 시민 배당을 제안했습니다. 소설 <뒤돌아보며>에서 인간은 소득을 얻습니다. 이건 상품 판매 댓가가 아닙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인간은 상품이 됩니다. 인간은 상품 판매 댓가로서 소득을 얻습니다. 임금 노동자는 상품으로서 노동력을 판매하고, 임금은 상품 판매 댓가입니다. 반면, <뒤돌아보며>에서 소득은 인간 권리입니다.
인간으로서 인간은 살아가야 하고, 이것을 위해 국가 정부는 소득을 지급합니다. 소설 <뒤돌아보며>에는 시민 배당 개념이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시민 배당 개념과 다소 다르나, 양쪽에는 근본적인 공통점이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인간이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기본적인 생존 권리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소득을 얻어야 합니다. 만약 다카기 나오코가 <뒤돌아보며>를 읽었다면, 다카기 나오코는 고개를 끄덕였을지 모릅니다. 소설 <뒤돌아보며>는 매월 다카기 나오코가 10만 엔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할 겁니다. 적어도 <뒤돌아보며>는 비슷한 시민 배당 개념을 주장할 겁니다.
하지만 <뒤돌아보며>는 오직 시민 배당만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민 배당은 그저 일부에 불과합니다. <뒤돌아보며>는 자본주의 사회가 사라지고 새롭고 평등한 사회 구조가 나타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교육, 경제, 문화, 법률, 기타 등등, 수많은 것들은 바뀌어야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시민 배당은 존재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본주의는 시민 배당을 포섭하고 또 다른 상품을 만들지 모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은 상품이 되고, 시민 배당 역시 예외가 아닐 겁니다. <뒤돌아보며>는 오직 시민 배당만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시민 배당 지지자들 역시 시민 배당이 전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건 첫걸음입니다. 이건 비열하고 폭력적이고 착취적인 임금 노동 제도를 끝장내기 위한 첫 단추입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평등한 사회 구조가 찾아오지 않는다면, 시민 배당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가 찾아온다면, 이런 사회에서 예술 개념, 창작 개념 역시 바뀔지 모릅니다. 다카기 나오코는 새로운 예술 개념, 새로운 창작 개념을 받아들여야 할 겁니다. 다카기 나오코가 여기에 동의할까요? 만약 '매월 10만 엔'이 공상보다 현실이 된다면, 다카기 나오코는 좋아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매월 10만 엔'을 위해 다카기 나오코는 새로운 사회 구조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새로운 사회는 많은 것들을, 아주 많은 것들을 바꿀 겁니다.
착취 경제와 평등한 경제는 똑같지 않습니다. 시장 경제와 시민 배당 경제는 똑같지 않습니다. 경제 현상이 바뀐다면, 경제와 함께 다른 많은 것들은 바뀔 겁니다. 예술과 창작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다카기 나오코는 '매월 10만 엔'을 언급하나, 만약 시민 배당이 현실이 된다면, 다카기 나오코는 비단 시민 배당만 아니라 다른 많은 변화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카기 나오코가 그럴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요? 저는 어떨까요? 저는 생태적인 상상력들을 덕질하기 원합니다. 미궁 같은 던전 속의 드루이드와 공룡 동료부터 소행성 버블 월드 속의 광활한 야생 보호 구역까지, 저는 여러 생태적인 상상력들을 덕질하기 원합니다. 생태적인 상상력들은 창작물들입니다.
드루이드와 공룡 동료가 던전 탐험 게임이 되든, 소행성 야생 보호 구역이 하드 SF 소설이 되든, 생태적인 상상력들은 창작물입니다. 하지만 만약 시민 배당 경제가 현실이 된다면, 사회 구조는 크게 바뀔 테고, 문화 예술 역시 바뀔 테고, 각종 창작물들 역시 바뀔 겁니다. 생태적인 상상력들 역시 바뀔지 모릅니다. 이런 덕질들 역시 불가능해질지 모릅니다. 제가 이런 변화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만약 제가 시민 배당 경제를 원한다면, 저는 새로운 예술 문화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시민 배당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합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시민 배당은 혼자 존재하지 못합니다. 만약 시민 배당이 나타나야 한다면,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사라져야 합니다. 양쪽은 공존하지 못합니다.
이건 시민 배당이 나타나자마자 당장 자본주의가 사라져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본주의 체계가 너무 지배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의도적으로 자본주의를 없애기 원한다고 해도, 이건 쉽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시민 배당 경제를 위해 자본주의는 반드시 사라져야 합니다. 자본주의가 사라진다면, 사회는 수많은 것들을 바꿀 겁니다. 문화 예술 역시 바뀔 겁니다. 만약 다카기 나오코가 '매월 10만 엔'을 얻기 원한다면, 다카기 나오코는 새로운 문화 예술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매월 10만 엔'은 공상보다 현실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