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 판타지/아득한 자연

<목숨 걸고 편식>, 용각류 장난감, 먹이 그물망

OneTiger 2024. 7. 6. 09:30

[이 용각류 장난감과 버팔로 장난감은 다릅니다. 하지만….]



"세 끼 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것은 자기 몸에 대한 학대, 몸과 마음에 대한 학대라고 생각해요. 세 끼는 너무 지나친 것 같아요. 한 끼로도 충분하니까." 이태근씨는 오후 3시가 되어 김치, 청국장, 현미밥 한 그릇으로 하루치 식사를 모두 마칩니다. 그는, 지난 20년 간 매일 이렇게 먹고도 누가 보아도 도저히 신장 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라고 느껴지지 않은 탄탄한 근육질 몸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녹색 문장들은 <목숨 걸고 편식하다>(링크)입니다. 이 문장들이 설명하는 것처럼, 이태근씨는 오직 점심만 먹습니다. 다른 많은 사람들과 달리, 이 사람은 아침, 저녁을 먹지 않습니다.

 

이태근씨는 세 식사들(아침, 점심, 저녁)이 학대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 사람은 고기, 계란, 우유를 먹지 않습니다. 김치, 청국장, 현미(밥)처럼, 이태근씨는 채식주의입니다. 비록 김치가 새우 젓깔을 포함한다고 해도, 적어도, 이태근씨는 채식주의에 수렴합니다. 이 사람과 달리,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비단 점심만 아니라 아침, 저녁 역시 먹습니다. 게다가, 어떤 사람들은 채식주의에 수렴하지 않습니다. 아니, 많은 사람들은 고기, 계란, 우유를 먹습니다. 이태근씨는 일반적인 사례가 아닙니다. 비록 이 사람이 일반적인 사례가 아니라고 해도, 물질대사에서 이 사람은 벗어나지 않습니다.



비록 이태근씨가 오직 점심만 먹는다고 해도, 비록 이태근씨가 채식주의에 수렴한다고 해도, 물질대사(신진대사)에서 이 사람은 벗어나지 않습니다. 만약 이태근씨가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면, 살아가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비록 이태근씨가 오직 점심만 먹는다고 해도, 비록 이태근씨가 채식주의에 수렴한다고 해도, 분명히, 이 사람은 김치, 청국장, 현미(밥)을 먹고 영양분들을 섭취합니다. 이 과정(물질대사) 없이, 음…, 이태근씨는 살아가지 못합니다. 물질대사에서 이 사람이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벗어나지 않습니다. 영양분들을 섭취하기 위해 그들은 먹습니다.

 

분명히, 많은 사람들은 어떤 것들을 먹고 영양분들을 섭취합니다. 이 과정(물질대사) 없이, 으음…, 그들은 살아가지 못합니다. 그들이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물질대사는 본질적인 교집합이 됩니다. 비록 이태근씨가 오직 점심만 먹는다고 해도, 비록 이태근씨가 고기, 계란, 우유를 먹지 않는다고 해도, 이 사람과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물질대사는 본질적인 교집합입니다. 비단 이태근씨만 아니라 저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많은 것들을 먹지 못합니다. 세계화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경제이기 때문에, 정신적인 압박에서 벗어나기는 어렵습니다. 어휴~, 저는 이 압박에 빠집니다.



지구 가열화는 지질학적인 행성급 재앙입니다. 지구 대기 중에서 온실 가스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 재앙은 발생합니다. 만약 이 가스들이 너무 많지 않았다면, 기후 변화는 행성급 재앙이 되지 않았을 겁니다. 북한과 미국. 누가 훨씬 많은 가스들을 배출하나요? 대답은 북한보다 미국입니다. 전자(북한)보다 후자(미국)에게는 훨씬 무거운 기후 책임이 있습니다. 지구 가열화가 행성급 재앙이기 때문에, 이건 북한보다 미국이 행성급 재앙이라는 뜻입니다. 비록 미국이 행성급 재앙이라고 해도, 많은 사람들은 미국보다 북한이 나쁘다고 비난합니다. 미국이 세계화 자본주의를 주도하기 때문입니다.

 

세계화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경제이기 때문에, 지배적인 관념은 이 경제를 떠받듭니다. 미국이 세계화 자본주의를 주도하기 때문에, 이 경제를 떠받들기 위해 지배적인 관념은 미국보다 북한이 나쁘다고 거짓말합니다. 이 세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북한보다 미국이 기후 악당이라고 깨닫지 못합니다. 이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세계화 자본주의는 너무 악랄합니다. 이 경제가 너무 악랄하기 때문에, 제가 생태학을 고민할 때, 저는 정신적인 압박에 빠집니다. 이 압박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 압박 때문에, 제 소화 능력은 좋지 않습니다. 음…, 저는 많은 것들을 먹지 못합니다.



비록 제가 많은 것들을 먹지 못한다고 해도, 분명히, 물질대사에서 저는 벗어나지 못합니다. 만약 제가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면, 살아가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저와 달리, 어떤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먹습니다. 비록 제가 많은 것들을 먹지 못한다고 해도, 물질대사가 본질적인 교집합이기 때문에, 저와 이 사람들은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정신적인 압박에 빠지는 것처럼,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정신적인 압박에 빠지는지 모릅니다. 자본주의가 너무 악랄한 것처럼, 가부장 제도는 너무 악랄합니다. 지배적인 관념이 이 제도를 떠받들기 때문에, 음…, 정신적인 압박에서 벗어나지는 쉽지 않습니다.

 

이게 쉽지 않기 때문에,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많은 것들을 먹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비록 그들이 많은 것들을 먹지 못한다고 해도, 물질대사에서 그들은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 페미니스트들처럼, 모~~든 (살아있는) 인간에게 물질대사는 본질적인 특성입니다. 이 특성을 인식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심지어 아이들조차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문적인 지식들 없이, 이 특성을 이해하기는 가능합니다. 이 지식들처럼, 브론토사우루스는 이 특성을 인식하기 위한 필연적인 규칙이 아닙니다. 비록 이 용각류가 규칙이 아니라고 해도, 이 용각류는 이 특성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어라~,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 스페이스 오페라는 다른 세계입니다. 브론토사우루스는 다른 시대에 속합니다.]



<플래닛 프로스펙터>는 비디오 게임입니다. 이 비디오 게임은 스페이스 오페라입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로서, <플래닛 프로스펙터>는 장대한 우주 문명을 묘사합니다. 현실에서 이 문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21세기 초반, 장대한 우주 문명을 건설하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건 절대 가능하지 않습니다. 현실과 달리, <플래닛 프로스펙터>에서 장대한 우주 문명은 존재합니다. 현실과 이 스페이스 오페라는 다릅니다. 양쪽이 다르기 때문에, <플래닛 프로스펙터>는 '다른 세계'가 됩니다. 비단 이 비디오 게임만 아니라 다른 스페이스 오페라들 역시 똑같습니다. <플래닛 프로스펙터>와 달리, 어떤 스페이스 오페라들은 (비디오 게임들보다) 소설들입니다. 양쪽은 너무 다릅니다.

 

비록 컴퓨터가 진보하지 않는다고 해도, 비록 정보·통신 기술들이 진보하지 않는다고 해도, 소설을 쓰기는 가능합니다. 컴퓨터는 소설을 쓰기 위한 필연적인 기계가 아닙니다. 정보·통신 기술들은 이것을 쓰기 위한 필연적인 규칙이 아닙니다. 소설과 달리, 만약 컴퓨터가 진보하지 않는다면, 만약 정보·통신 기술들이 진보하지 않는다면, 비디오 게임을 출시하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컴퓨터는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한 필연적인 기계입니다. 정보·통신 기술들은 이 게임을 제작하기 위한 필연적인 규칙입니다. 소설과 비디오 게임은 다릅니다. <플래닛 프로스펙터>는 비디오 게임입니다. 만약 어떤 스페이스 오페라들이 소설들이라면, 이 게임과 이 소설들은 다를 겁니다.



비록 양쪽이 비슷하지 않다고 해도, <플래닛 프로스펙터>가 다른 세계인 것처럼, 이 소설들은 오직 현실만 모방하지 않을 겁니다. 만약 이 소설들이 오직 현실만 모방한다면, 스페이스 오페라에 속하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비록 소설과 비디오 게임이 너무 다르다고 해도, 만약 어떤 스페이스 오페라들이 소설들이라면, <플래닛 프로스펙터>와 이 소설들은 비슷할 겁니다. 적어도, 다른 세계로서, 양쪽은 비슷합니다. 양쪽이 비슷한 것처럼, 다른 세계는 스페이스 오페라의 커다란 특성입니다. 아니, 이건 가장 중요한 특성인지 모릅니다. 이태근씨는 현실에 속합니다. 다른 세계에서 이 사람은 살아가지 않습니다. 오직 현실에서만 이태근씨는 살아갑니다.

 

비단 이태근씨만 아니라 저 역시 똑같습니다. 저는 현실에 속합니다. 다른 세계에서 저는 살아가지 않습니다. 오직 현실에서만 저는 살아갑니다. 비단 저만 아니라 페미니스트들 역시 똑같습니다. 모든 페미니스트는 현실에 속합니다. 다른 세계에서 그들은 살아가지 않습니다. 오직 현실에서만 그들은 살아갑니다. 이 페미니스트들처럼, 모~~~든 (진짜) 인간은 현실에 속합니다. 이건 절대적인 세계입니다. 아무리 현실이 절대적인 세계라고 해도, <플래닛 프로스펙터>는 오직 현실만 모방하지 않습니다. 만약 이 비디오 게임이 오직 현실만 모방한다면, 장대한 우주 문명을 묘사하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현실에서 이 문명이 절대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실이 절대적인 세계이기 때문에, <플래닛 프로스펙터>가 오직 현실만 모방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세계는 이 비디오 게임의 가장 중요한 특성입니다. 비단 <플래닛 프로스펙터>만 아니라 다른 스페이스 오페라들 역시 똑같습니다. 이 스페이스 오페라들에게 다른 세계는 가장 중요한 특성입니다. <플래닛 프로스펙터>는 사이언스 픽션(SF)에 속합니다. 적어도, 이 비디오 게임은 사이언스 판타지에 속합니다. 만약 <플래닛 프로스펙터>가 사이언스 판타지라면, 이건 스페이스 오페라와 사이언스 판타지가 비슷하다는 뜻일 겁니다. 양쪽이 비슷한 것처럼, 사이언스 판타지는 다른 세계입니다. 이건 오직 현실만 모방하지 않습니다.

 

만약 어떤 소설가들이 사이언스 판타지들을 쓴다면, 오직 현실만 모방하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만약 어떤 소설 독자들이 사이언스 판타지를 좋아한다면, 다른 세계를 싫어하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스팀펑크부터 마법 기계까지, 현실과 사이언스 판타지는 머나먼 관계입니다. 양쪽이 머나먼 관계이기 때문에, 비록 현실에서 어떤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해도, 사이언스 판타지에서 이건 가능할 수 있습니다. 비록 현실에서 장대한 우주 문명을 건설하기가 가능하지 않다고 해도, <플래닛 프로스펙터>에서 이건 가능합니다. 비록 현실에서 시간 여행 장치를 제작하기가 가능하지 않다고 해도, 사이언스 판타지에서 이건 가능합니다.



비록 현실에서 어떤 것(장대한 우주 문명, 시간 여행 장치)이 가능하지 않다고 해도, 스페이스 오페라(사이언스 판타지)에서 이건 가능합니다. 이게 가능한 것처럼, 스페이스 오페라와 사이언스 판타지는 비슷합니다. 다른 세계는 양쪽이 비슷하다고 분류합니다. 시간 여행 장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사이언스 판타지에서 고생물학자는 중생대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고생물학자가 중생대로 돌아가기 때문에, 살아있는 브론토사우루스를 연구하기는 가능합니다. 사이언스 판타지와 달리, 현실에서 고생물학자는 살아있는 브론토사우루스를 연구하지 못합니다. 장대한 우주 문명처럼, 이 연구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장대한 우주 문명을 건설하기가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현실에서 살아있는 브론토사우루스를 연구하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미 이 용각류가 멸종했기 때문입니다. 비단 브론토사우루스만 아니라 다른 (비조류) 공룡들 역시 똑같습니다. 현실에서 살아있는 공룡들을 연구하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게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고생물학자와 브론토사우루스는 똑같은 시대(세계)에 속하지 않습니다. 인간과 공룡은 다른 시대(세계)에 속합니다. 브론토사우루스와 달리, 인간과 버팔로는 똑같은 시대에 속합니다. 현실에서 생태학자는 이 동물을 연구할 수 있습니다. 버팔로와 브론토사우루스는 다릅니다.



[장대한 우주 문명처럼, 현실에서 시간 여행 장치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비록 현실에서 시간 여행 장치가 가능하지 않다고 해도, 버팔로를 연구하기는 가능합니다. 시간 여행 장치는 이 야생 동물을 연구하기 위한 필연적인 기계가 아닙니다. 생태학자에게 이 기계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버팔로와 브론토사우루스는 비슷하지 않습니다. 양쪽이 다른 것처럼, 선사 생태계와 현재 생태계는 다릅니다. 버팔로는 현재 생태계에 속합니다. 이 동물과 달리, 브론토사우루스는 선사 생태계에 속합니다. 비록 현실에서 시간 여행 장치가 가능하지 않다고 해도, 현재 생태계를 연구하기는 가능합니다. 시간 여행 장치는 현재 생태계를 연구하기 위한 필연적인 기계가 아닙니다.

 

생태학자에게는 이 기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현재 생태계와 달리, 이미 선사(중생대) 생태계는 사라졌습니다. 아무리 고생물학자가 이 생태계를 연구하기 원한다고 해도, 살아있는 선사 생명체들을 연구하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게 절대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현재 생태계와 선사 생태계는 다릅니다. 시간 여행 장치처럼, 사이언스 판타지는 현재 생태계와 선사 생태계가 다르다고 강조합니다. 양쪽이 다르기 때문에, 양쪽이 아무 관계가 아닌가요? 현재 생태계와 선사 생태계에게 아무 교집합이 없나요? 그건 아닙니다. 버팔로는 생명체입니다. 생명체로서, 버팔로는 생명 진화 역사에 속합니다.



버팔로처럼, 브론토사우루스는 생명체입니다. 생명체로서, 이 용각류는 생명 진화 역사에 속합니다. 만약 생물 다양성이 진화하지 않았다면, 중생대 생태계는 나타나지 않았을 겁니다. 이 생태계 없이, 브론토사우루스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이 용각류처럼, 현재 생태계 없이, 버팔로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이 우제류는 현재 생태계에 속합니다. 만약 생물 다양성이 진화하지 않았다면, 이 생태계는 나타나지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현재 생태계가 나타나기 전에, 이미 중생대 생태계는 나타났습니다. 만약 이 생태계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현재 생태계는 나타나지 않았을 겁니다. 양쪽은 연결됩니다.

 

적어도, 양쪽에게는 본질적인 교집합이 있습니다. 만약 버팔로가 어머니 자연에 속한다면, 비단 이 우제류만 아니라 브론토사우루스 역시 이 여신에 속할 겁니다. (어머니 자연은 생물 다양성을 비유할 수 있습니다.) 지구에서 생물 다양성이 번성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이 행성이 생체 우주선이라고 느낍니다. 21세기 초반 지구처럼, 1억 5천만 년 전에, 이 행성은 생체 우주선이었습니다. 지구에서 생물 다양성이 번성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이 행성을 가이아라고 부릅니다. 21세기 초반 지구처럼, 1억 5천만 년 전에, 이 행성은 가이아였습니다. 대지 모신은 기~~~나긴 역사를 자랑합니다.



대지 모신이 현재 생태계를 비유하는 것처럼, 이 여신은 선사 생태계를 비유할 수 있습니다. 자연 생태계와 먹이 그물망은 비슷한 위상입니다. 물질대사에서 많은 생명체들이 벗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태근씨는 인간입니다. 인간은 동물입니다. 동물은 생명체입니다. 동물(생명체)로서, 이태근씨는 김치, 청국장, 현미(밥)을 먹고 영양분들을 섭취합니다. 비록 이태근씨가 오직 점심만 먹는다고 해도, 비록 이태근씨가 채식주의라고 해도, 물질대사 없이, 이 인간은 살아가지 못합니다. 이태근씨처럼, 물질대사 없이, 페미니스트들은 살아가지 못합니다. 그들은 인간들(동물들, 생명체들)입니다.

 

동물(생명체)들로서, 페미니스트들은 어떤 것들을 먹고 영양분들을 섭취합니다. 이 과정 없이, 그들은 살아가지 못합니다. (저는 다르지 않습니다. 비록 제가 많은 것들을 먹지 못한다고 해도, 비록 제가 오직 적은 것들만 먹는다고 해도, 물질대사에서 저는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태근씨와 달리, 버팔로는 인간이 아닙니다. 페미니스트들과 달리, 이 우제류는 인간이 아닙니다.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소설들을 씁니다. 버팔로는 소설을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양쪽은 너무 다릅니다. 비록 버팔로가 소설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페미니스트들이 동물들, 생명체들인 것처럼, 버팔로는 동물, 생명체입니다.



동물(생명체)로서, 버팔로는 풀들을 먹고 영양분들을 섭취합니다. 이 과정 없이, 이 우제류는 살아가지 못합니다. 비단 버팔로만 아니라 다른 많은 동물들 역시 똑같습니다. 비단 이 동물들만 아니라 브론토사우루스 역시 똑같습니다. 만약 (기름진) 대지에서 식물들이 성장하지 않는다면, 만약 브론토사우루스가 식물들을 먹지 않는다면, 살아가기는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물질대사 없이, 이 용각류는 살아가지 못합니다. 이 관점에서 버팔로와 브론토사우루스는 다르지 않습니다. 비록 버팔로와 브론토사우루스가 똑같은 시대에 속하지 않는다고 해도, 심지어 이 용각류조차 식물들을 먹습니다.

 

현실에서 생태학자는 버팔로를 연구할 수 있습니다. 이 우제류와 달리, 현실에서 고생물학자는 살아있는 브론토사우루스를 연구하지 못합니다. 사이언스 판타지처럼, 만약 인간과 공룡이 조우한다면, 이건 현실에 속하지 않을 겁니다. 사이언스 판타지가 보여주는 것처럼, 버팔로와 브론토사우루스에게는 결정적인 차이(현재 생태계, 선사 생태계)가 있습니다. 비록 양쪽에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고 해도, 현재 생태계가 먹이 그물망인 것처럼, '심지어' 선사 생태계조차 먹이 그물망입니다. 비록 현재 생태계와 선사 생태계가 너~~무 다르다고 해도, '심지어' 선사 생태계조차 먹이 그물망입니다.



[이 샐러드처럼, 식물들은 기본적인 생명체들입니다.]



현재 생태계는 심지어, 이 단어를 수식하지 않습니다. 이 생태계보다 선사 생태계는 심지어, 이 단어를 수식합니다. 이 생태계가 다른 시대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사이언스 판타지가 보여주는 것처럼, 만약 인간과 공룡이 조우한다면, 이건 현실에 속하지 않을 겁니다. 이게 현실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선사 생태계는 다른 생태계입니다. 비록 이게 다르다고 해도, '심지어' 이것조차 먹이 그물망입니다. 그래서 이태근씨보다 브론토사우루스는 물질대사를 강조할 수 있습니다. 선사 생태계가 먹이 그물망인 것처럼, 이건 보편적인 체계입니다. 이 체계에서 식물들은 기본적인 생명체들입니다.

 

버팔로는 식물들을 먹습니다. 이 생명체들 없이, 이 우제류는 살아가지 못합니다. 비록 브론토사우루스가 다른 시대에 속한다고 해도, '심지어' 이 용각류조차 식물들을 먹습니다. 버팔로처럼, 이 생명체들 없이, 이 용각류는 살아가지 못합니다. 브론토사우루스처럼, 이태근씨는 식물들을 먹습니다. (비록 김치가 새우 젓깔을 포함하다고 해도) 김치, 청국장, 현미(밥)은 채식주의에 수렴합니다. 이 사례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식물들은 기본적인 생명체들입니다. 이태근씨와 달리, 어떤 사람들은 고기 요리들을 좋아합니다. 아무리 이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해도, 고기는 식물에게 의지합니다.



버팔로처럼, 소는 식물들을 먹습니다. 소가 곡물들을 먹든, 건초들을 먹든, 이 동물은 식물들을 먹습니다. 만약 식물들이 사라진다면, 소는 굶주릴 겁니다. 소가 굶주리기 때문에, 고기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소가 식물들을 먹는 것처럼, 고기는 식물들에게 의지합니다. 아무리 어떤 사람들이 고기 요리들을 좋아한다고 해도, 이 사람들은 식물들에게 의지합니다. 이 생명체들은 기본적인 생명체들입니다. 그리고, (기름진) 대지에서 이 생명체들은 성장합니다. 어머니 자연은 생물 다양성을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 여신과 대지 모신은 비슷한 뜻입니다. 왜 자연과 대지가 비슷한가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자연 생태계와 먹이 그물망이 비슷한 위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체계에서 식물들이 기본적인 생명체들이기 때문입니다. (기름진) 대지에서 이 생명체들이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지는 기본적인 토대입니다. 비록 이태근씨가 오직 점심만 먹는다고 해도, 비록 이태근씨가 오직 김치, 청국장, 현미(밥)만 먹는다고 해도, 이 사람은 이 토대에게 의지합니다. 이태근씨처럼, 페미니스트들은 이 토대에게 의지합니다. 심지어 브론토사우루스조차 다르지 않습니다. 이 용각류는 대지가 기본적인 토대라고 강조합니다. 이 기본적인 토대는 사유 재산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브론토사우루스가 강조하는 것처럼, 대지는 기본적인 토대입니다. 이게 기본적인 토대이기 때문에, 이건 사유 재산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대지가 기본적인 토대라고 해도, 세계화 자본주의에서 이건 상품이 됩니다. 이 경제에서, 더 이상, 대지는 기본적인 토대가 아닙니다. 이건 그저 많은 돈들을 벌기 위한 상품에 불과합니다. 대지가 상품이 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이 기본적인 토대에게 의지하지 못합니다. 이 사람들이 의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계화 자본주의에서 기아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이 경제는 너무 커다란 문제입니다. 자본주의는 사라져야 합니다.



※ 사진 <Green Dinosaur …> 출처: juliane sanchez,
http://www.pexels.com/photo/green-dinosaur-in-grass-19873126/

※ 게임 <Planet Prospector> 스크린샷 출처:
https://store.steampowered.com/app/2822110/Planet_Prospector/

※ 사진 <Vegetable Salad …> 출처: Cook Eat,
http://www.pexels.com/photo/vegetable-salad-in-white-bowl-66718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