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움 리치>, 내부적인 세계, 외부적인 자연
[내부적인 관점에서 이 세계는 2D 픽셀 형식이 아닙니다.]
아르센 뤼팽은 주인공입니다. 모리스 르블랑은 이것을 의도했습니다. 소설 독자들은 아르센 뤼팽이 주인공이라고 해석할 겁니다. 흐음, 아르센 뤼팽처럼, 현실에서 주인공이 존재하나요? 만약 주인공이 존재한다면, 누가 현실의 주인공인가요? 마리 퀴리는 아주 유명한 과학자입니다. 마리 퀴리가 아주 유명하기 때문에, 이 과학자가 현실의 주인공인가요? 이사도라 덩컨은 아주 유명한 예술가입니다. 이 유명한 예술가가 주인공인가요? 시몬 베이유는 유명한 철학자입니다. 이 유명한 철학자가 주인공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아무리 마리 퀴리가 유명하다고 해도, 이 과학자는 주인공이 아닙니다.
아무리 이사도라 덩컨이 유명하다고 해도, 이 예술가는 주인공이 아닙니다. 시몬 베이유는 다르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이 철학자는 주인공이 아닙니다. 현실에서 아무도 주인공이 아닙니다. 이 관점에서 현실과 소설은 다릅니다. 아르센 뤼팽처럼, 소설가는 주인공을 설정합니다. 소설과 달리, 현실에서 주인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건 현실과 소설이 100% 다르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무리 아르센 뤼팽이 주인공이라고 해도, 소설 세계에서 등장인물들은 이것을 인식하지 않습니다. 가니마르 경감이 아르센 뤼팽을 주인공이라고 인식하나요? 빅투아르 유모가 이것을 인식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아무리 아르센 뤼팽이 주인공이라고 해도, 소설 세계에서 등장인물들은 이것을 인식하지 않습니다. 소설 외부에서 모리스 르블랑은 아르센 뤼팽이 주인공이라고 설정합니다. 소설 외부에서 독자들은 이것을 해석합니다. 소설 내부에서 가니마르 경감은 이 괴도가 주인공이라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빅투아르 유모는 다르지 않습니다. 이 관점에서 현실과 소설은 비슷합니다. 현실에서 마리 퀴리는 주인공이 아닙니다. 이 과학자처럼, 소설 내부에서 아르센 뤼팽은 주인공이 아닙니다. 이사도라 덩컨은 주인공이 아닙니다. 이 예술가처럼, 이 괴도는 주인공이 아닙니다. 시몬 베이유는 다르지 않습니다.
시몬 베이유는 주인공이 아닙니다. 이 철학자처럼, 아르센 뤼팽은 주인공이 아닙니다. 현실에서 아무도 주인공이 아닙니다. 아무도 현실을 창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실과 달리, 모리스 르블랑은 소설 세계를 창조합니다. 아무리 모리스 르블랑이 창조한다고 해도, 소설 내부에서 등장인물들은 이것을 인식하지 않습니다. 가니마르 경감은 모리스 르블랑이 아르센 뤼팽을 창조한다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빅투아르 유모는 이것을 인식하지 않습니다. 현실과 소설은 비슷합니다. 아무도 현실의 주인공이 아닌 것처럼, 아무도 소설 주인공이 아닙니다. 소설 내부 세계에서 주인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리 퀴리는 진짜 인간입니다. 이 과학자처럼, 이사도라 덩컨은 진짜 인간입니다. 이 예술가처럼, 시몬 베이유는 진짜 인간입니다. 이 철학자와 달리, 아르센 뤼팽은 허구적인 등장인물(캐릭터)입니다. 이 등장인물은 이것을 인식하지 않습니다. 아르센 뤼팽은 자신이 허구적인 등장인물이라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가니마르 경감은 이 괴도가 허구적인 등장인물이라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빅투아르 유모는 이것을 인식하지 않습니다. 마리 퀴리가 진짜 인간인 것처럼, 이사도라 덩컨, 시몬 베이유가 진짜 인간인 것처럼, 아르센 뤼팽은 자신이 (허구적인 등장인물보다) 진짜 인간이라고 인식합니다.
이 관점에서 이사도라 덩컨과 아르센 뤼팽은 똑같습니다. 비록 아르센 뤼팽이 허구적인 등장인물이라고 해도, 이사도라 덩컨이 진짜 인간인 것처럼, 아르센 뤼팽은 자신이 진짜 인간이라고 인식합니다. 비단 이 괴도만 아니라 다른 소설 주인공들 역시 똑같습니다. 많은 소설 주인공들은 그들이 허구적인 등장인물들이라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만약 어떤 소설 주인공들이 제4의 벽을 넘어서지 않는다면, 이 주인공들은 그들이 진짜 인간들이라고 인식할 겁니다. 비단 소설만 아니라 만화, 애니메이션, 연극, 실사 영화, 뮤지컬, 보드 게임, 비디오 게임 역시 똑같습니다. 주인공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화, 애니메이션, 연극, 실사 영화, 뮤지컬, 보드 게임, 비디오 게임에서 주인공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토요일 밤의 열기>는 뮤지컬입니다. 이 뮤지컬에서 스테파니는 주인공입니다. 비록 이 주인공이 허구적인 등장인물이라고 해도, 스테파니는 이것을 인식하지 않습니다. 이 주인공은 자신이 진짜 인간이라고 인식합니다. <토요일 밤의 열기> 외부에서 극장 관객들은 스테파니가 허구적인 등장인물이라고 해석합니다. 이 관객들과 달리, <토요일 밤의 열기> 내부에서 스테파니는 자신이 진짜 인간이라고 인식합니다. 마리 퀴리처럼, <토요일 밤의 열기> 내부에서 스테파니는 진짜 인간입니다.
이사도라 덩컨, 시몬 베이유가 진짜 인간인 것처럼, <토요일 밤의 열기> 내부에서 스테파니는 진짜 인간입니다. 이 관점에서 이사도라 덩컨과 스테파니는 다르지 않습니다. 양쪽이 똑같은 것처럼, 스테파니가 진짜 인간인 것처럼, 현실과 허구적인 내부 세계는 똑같습니다. <토요일 밤의 열기>는 허구(픽션)입니다. 이건 <토요일 밤의 열기>가 현실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 뮤지컬은 가짜 세계입니다. 비록 <토요일 밤의 열기>가 가짜 세계라고 해도, 이 내부 세계에서 스테파니는 진짜 인간입니다. 스테파니처럼, 비록 어떤 세계들이 허구(픽션)들이라고 해도, 현실과 이 내부 세계들은 똑같습니다.
[이 애니메이션 내부 세계에서, 3D 그래픽으로서, 오비완 케노비가 존재하나요?]
이 장면은 <클론 워즈>의 스틸샷입니다. <클론 워즈>는 3D 애니메이션입니다. 이 스틸샷은 오비완 케노비를 보여줍니다. 3D 그래픽으로서, 이 등장인물은 존재합니다. <스타 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는 2005년 실사 영화입니다. 이 실사 영화는 오비완 케노비를 묘사합니다. <클론 워즈>와 달리, <스타 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에서 이완 맥그리거는 이 등장인물을 연기합니다. 이완 맥그리거가 연기하기 때문에, 이 실사 영화에서, 3D 그래픽으로서, 오비완 케노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클론 워즈>에서 오비완 케노비가 3D 그래픽이라고 해도, 이건 그저 애니메이션 형식에 불과합니다. 이 내부 세계에서 이 제다이 기사는 3D 그래픽이 아닙니다.
<기암성>은 소설입니다. 소설은 언어 예술입니다. 이건 글자들이 소설을 구성한다는 뜻입니다. <기암성>이 소설이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 글자들로서, 아르센 뤼팽은 존재합니다. 분명히, 아르센 뤼팽을 묘사하기 위해 모리스 르블랑은 글자들을 썼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 내부 세계에서, 글자들로서, 아르센 뤼팽이 존재하나요? 글자들이 이 등장인물을 구성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현실에서 마리 퀴리는 글자들이 아닙니다. 글자들은 이 과학자를 구성하지 않습니다. 마리 퀴리처럼, 현실에서 이사도라 덩컨은 글자들이 아닙니다. 글자들은 이 예술가를 구성하지 않습니다. 시몬 베이유는 똑같습니다. 현실은 언어 예술이 아닙니다. 글자들은 인간을 구성하지 않습니다.
이사도라 덩컨처럼, <기암성>에서 아르센 뤼팽은 글자들이 자신을 구성한다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글자들이 이 예술가를 구성하지 않는 것처럼, <기암성> 내부에서 글자들은 이 괴도를 구성하지 않습니다. 모리스 르블랑이 프랑스 소설가이기 때문에, 프랑스어는 <기암성>을 구성합니다. 프랑스어가 이 소설을 구성하기 때문에, 아르센 뤼팽이 프랑스어인가요? 이 글자들이 이 등장인물을 구성하나요? 만약 성귀수 번역가가 <기암성>을 번역한다면, (프랑스어보다) 한국어로서, 아르센 뤼팽이 존재하나요? 빅투아르 유모가 한국어가 이 등장인물을 구성한다고 인식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이 소설 내부에서 아르센 뤼팽은 진짜 인간입니다.
이사도라 덩컨이 진짜 인간인 것처럼, 한국어로서, 아르센 뤼팽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소설 내부에서, 진짜 인간으로서, 아르센 뤼팽은 존재합니다. 오비완 케노비는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클론 워즈>가 3D 애니메이션이라고 해도, 이건 오비완 케노비가 진짜 3D 그래픽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클론 워즈>에서 메이스 윈두는 오비완 케노비가 3D 그래픽이라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이사도라 덩컨처럼, <클론 워즈>에서, 3D 그래픽으로서, 이 제다이 기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클론 워즈> 외부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은 오비완 케노비가 3D 그래픽이라고 인식합니다. <클론 워즈> 내부 세계에서 이 제다이 기사는 3D 그래픽이 아닙니다.
이완 맥그리거가 연기했기 때문에, <시스의 복수>에서 오비완 케노비는 3D 그래픽이 아닙니다. <시스의 복수>처럼, <클론 워즈>에서 이 제다이 기사는 3D 그래픽이 아닙니다. 비단 3D 그래픽만 아니라 스페이스 오페라 역시 똑같습니다. 극장 관객들은 <시스의 복수>가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분류합니다. 현실과 스페이스 오페라는 다릅니다. 그래서 오비완 케노비가 자신이 스페이스 오페라에 속한다고 인식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이 제다이는 자신이 스페이스 오페라에 속한다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이사도라 덩컨이 스페이스 오페라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오비완 케노비에게 <시스의 복수> 내부 세계는 현실입니다.
<시스의 복수> 외부에서 극장 관객들은 이 영화가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분류합니다. 극장 관객들과 달리, <시스의 복수> 내부에서 오비완 케노비는 이 영화가 현실이라고 인식합니다. <시스의 복수> 외부에서 극장 관객들은 오비완 케노비가 가짜 인간이라고 해석합니다. <시스의 복수> 내부에서 오비완 케노비는 자신이 진짜 인간이라고 인식합니다. <클론 워즈>는 다르지 않습니다. <클론 워즈> 외부에서 이건 3D 그래픽 애니메이션입니다. <클론 워즈> 내부에서 오비완 케노비는 이게 현실이라고 인식합니다. 이사도라 덩컨이 현실에 속하는 것처럼, 오비완 케노비는 자신이 (애니메이션보다) 현실에 속한다고 인식합니다.
<스카이 포스 리로디드>는 비디오 게임입니다. 이 비디오 게임은 탑 다운 슈팅 게임입니다. <스카이 포스 리로디드> 외부에서 게임 플레이어들은 이게 탑 다운 슈팅 게임이라고 분류합니다. <스카이 포스> 내부 세계는 어떤가요? 이 세계에서 등장인물들이 <스카이 포스>를 탑 다운 슈팅 게임이라고 인식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마리 퀴리는 탑 다운 슈팅 게임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 과학자는 현실에 속합니다. 현실은 탑 다운 게임이 아닙니다. 마리 퀴리처럼, 이사도라 덩컨은 탑 다운 게임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 예술가는 현실에 속합니다. 현실은 탑 다운 슈팅 게임이 아닙니다. 시몬 베이유는 똑같습니다.
이사도라 덩컨처럼, <스카이 포스> 내부 세계에서 등장인물들은 이 비디오 게임이 현실이라고 인식합니다. 현실이 탑 다운 게임이 아닌 것처럼, <스카이 포스>에서 등장인물들은 이 비디오 게임이 탑 다운 게임이라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아르센 뤼팽이 자신을 소설 주인공이라고 인식하지 않는 것처럼, 오비완 케노비가 자신을 3D 그래픽이라고 인식하지 않는 것처럼, <스카이 포스> 등장인물들에게 이 비디오 게임은 탑 다운 게임보다 현실입니다. 이 등장인물들과 달리, 게임 플레이어들에게 <스카이 포스>는 (현실보다) 탑 다운 게임입니다. <스카이 포스>, 이 허구적인 세계의 외부와 내부는 다릅니다.
[이 그림은 탑 다운 슈팅 게임이 아닙니다. 내부 세계는 다릅니다.]
이건 <스카이 포스> 표지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탑 다운 슈팅 게임이 아닙니다. 아무리 <스카이 포스>가 탑 다운 슈팅 게임이라고 해도, 이 그림은 훨씬 입체적인 공간, 훨씬 현실적인 전투기, 훨씬 진지한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화가는 이 그림 세계가 탑 다운 슈팅 게임이라고 의도하지 않았을 겁니다. 화가는 훨씬 입체적인 공간, 훨씬 현실적인 전투기, 훨씬 진지한 분위기를 의도했을 겁니다. 이 그림이 증명하는 것처럼, 그 자체로서, <스카이 포스> 내부 세계는 탑 다운 슈팅 게임이 아닙니다. 음…, 이건 그저 외부적인 관점에 불과합니다. 내부적인 관점에서 <스카이 포스>는 현실입니다.
<기암성>은 소설입니다. 이건 외부적인 관점입니다. <기암성> 내부에서 아르센 뤼팽은 이게 소설이라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이 등장인물은 이 소설이 현실이라고 인식합니다. 이 소설이 현실인 것처럼, (내부적인 관점에서) <스카이 포스>는 현실입니다. <토요일 밤의 열기>는 뮤지컬이 아닙니다. 스테파니는 <토요일 밤의 열기>가 뮤지컬이라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토요일 밤의 열기>처럼, <클론 워즈>는 3D 그래픽 애니메이션이 아닙니다. 오비완 케노비는 <클론 워즈>가 3D 그래픽 애니메이션이라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클론 워즈>처럼, <스카이 포스>는 탑 다운 슈팅 게임이 아닙니다.
글자들로서, 이사도라 덩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예술가처럼, 글자들로서, 아르센 뤼팽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부적인 관점에서 이 등장인물은 진짜 인간입니다. 아르센 뤼팽은 자신이 진짜 인간이라고 인식합니다. 이 등장인물처럼, <토요일 밤의 열기>에서 스테파니는 자신이 진짜 인간이라고 인식합니다. <기암성>과 <토요일 밤의 열기>는 똑같습니다. 아르센 뤼팽, 스테파니처럼, <클론 워즈>에서 오비완 케노비는 자신이 3D 그래픽이라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이 제다이 기사는 자신이 진짜 인간이라고 인식합니다. <클론 워즈>처럼, <스카이 포스>는 탑 다운 슈팅 게임이 아닙니다.
<릴리움 리치>는 비디오 게임입니다. 이 비디오 게임은 2D 픽셀 그래픽을 보여줍니다. 이 형식은 이 비디오 게임을 구성합니다. <릴리움 리치>처럼, <기암성>은 특정한 형식(글자들)으로 구성됩니다. 비록 <기암성>이 글자들이라고 해도, 아르센 뤼펭은 자신이 글자들이라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이 소설처럼, 비록 <릴리움 리치>가 2D 픽셀 그래픽 게임이라고 해도, '내부적인 관점'에서 <릴리움 리치>는 현실입니다. 만약 게임 등장인물들이 제4의 벽을 인식하지 않는다면, 이 게임은 현실이 될 겁니다. 이사도라 덩컨과 아르센 뤼팽이 똑같은 것처럼, 현실과 <릴리움 리치>는 똑같습니다.
많은 소설 독자들은 <기암성>이 진지한 세계라고 느낄 겁니다. <기암성>과 달리, 어떤 소설 독자들은 <릴리움 리치>가 진지한 세계라고 느끼지 않는지 모릅니다. 이 독자들은 이 비디오 게임이 그저 2D 픽셀 그래픽에 불과하다고 느끼는지 모릅니다. 이건 외부적인 관점입니다. 내부적인 관점에서 현실과 <릴리움 리치>는 똑같습니다. 양쪽이 똑같기 때문에, <릴리움 리치>는 진지한 세계입니다. <기암성>이 진지한 세계인 것처럼, <릴리움 리치>는 다르지 않습니다. 이 비디오 게임이 진지한 세계이기 때문에, 비록 이 블로그가 이 게임을 분석한다고 해도, 이 분석은 유치하지 않습니다.
비록 <릴리움 리치>가 그저 2D 픽셀 그래픽에 불과하다고 해도, <기암성>이 진지한 세계인 것처럼, 이 게임은 단순한 세계, 조잡한 세계, 유치한 세계가 아닙니다. <릴리움 리치>가 단순한 세계, 조잡한 세계, 유치한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이 블로그는 이 게임을 분석합니다. 비단 <릴리움 리치>만 아니라 다른 비디오 게임들 역시 똑같습니다. 비록 어떤 비디오 게임들이 그저 2D 픽셀 그래픽들에 불과하다고 해도, 이 게임들은 유치한 세계들이 아닙니다. <기암성>이 진지한 세계인 것처럼, 이 비디오 게임들은 진지한 세계들입니다. 그래서 이 블로그는 이 (진지한) 세계들을 논의합니다.
"어휴~, <릴리움 리치>는 그저 2D 픽셀 그래픽에 불과해. 이 비디오 게임은 진지한 세계보다 조잡한 세계야. <릴리움 리치>와 달리, <기암성>은 훨씬 진지한 세계야. 만약 소설 독자가 <기암성>을 논의한다면, 이 논의는 진지할 거야. <기암성>과 달리, 만약 게임 플레이어가 <릴리움 리치>를 논의한다면, 어휴~, 이 논의는 진지하지 않을 거야." 이 의견이 타당한가요? <릴리움 리치>가 진지한 세계보다 조잡한 세계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이건 외부적인 관점입니다. <스카이 포스> 표지 그림은 탑 다운 게임이 아닙니다. 이 그림처럼, 그 자체로서, <스카이 포스>는 탑 다운 게임이 아닙니다.
<기암성>은 소설이 아닙니다. <기암성>처럼, <토요일 밤의 열기>는 뮤지컬이 아닙니다. <토요일 밤의 열기>처럼, <클론 워즈>는 3D 애니메이션이 아닙니다. 오비완 케노비는 자신이 3D 그래픽이라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이사도라 덩컨이 진짜 인간인 것처럼, 이 제다이 기사는 자신을 진짜 인간이라고 인식합니다. <클론 워즈>처럼, <스카이 포스>는 탑 다운 게임이 아닙니다. <스카이 포스>처럼, 만약 게임 등장인물들이 제4의 벽을 인식하지 않는다면, 내부적인 관점에서 <릴리움 리치>는 현실일 겁니다. 아~, 비록 이 블로그가 이 게임을 분석한다고 해도, 이 분석은 조잡하지 않습니다.
[아, 물론, 현실에서 <릴리움 리치>는 비롯합니다.]
아, 물론, 외부적인 관점은 중요합니다. 아니, 외부적인 관점은 훨씬 본질적인 관점입니다. <기암성>에서 아르센 뤼팽은 내부적인 등장인물입니다. 이 등장인물과 달리, <기암성>에게 모리스 르블랑은 외부적인 창조자입니다. 이 소설 내부에서 아르센 뤼팽은 존재합니다. 이 소설 외부에서 모리스 르블랑은 존재합니다. 만약 이 소설가가 쓰지 않았다면, <기암성>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 소설가가 썼기 때문에, 이 소설은 존재합니다. 이 소설가보다 <기암성>은 우선하지 않습니다. 이 소설보다 모리스 르블랑은 우선합니다. 이건 소설보다 '외부적인' 소설가가 우선한다는 뜻입니다.
모리스 르블랑이 <기암성>을 썼기 때문에, 이 소설은 이 소설가에게 종속됩니다. <기암성>보다 '외부적인' 모리스 르블랑이 우선하는 것처럼, 이 소설이 이 '외부적인' 소설가에게 종속되는 것처럼, 내부적인 관점보다 외부적인 관점은 우선합니다. 내부적인 관점보다 외부적인 관점이 우선하기 때문에, 이 관점은 훨씬 본질적인 관점입니다. <릴리움 리치>는 다르지 않습니다. 이 비디오 게임은 외계 생태계를 보여줍니다. 현실에서 이 생태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릴리움 리치>처럼, 어떤 스페이스 오페라들은 외계 (행성) 생태계들을 보여줍니다. 현실에서 이 생태계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 <릴리움 리치>가 외계 생태계를 보여주나요? <릴리움 리치>처럼, 왜 어떤 스페이스 오페라들이 외계 (행성) 생태계들을 보여주나요? 마리 퀴리는 인간입니다. 이 인간은 지구에 속합니다. 마리 퀴리처럼, 이사도라 덩컨은 인간입니다. 이 인간은 지구에 속합니다. 이사도라 덩컨처럼, 시몬 베이유는 다르지 않습니다. 심지어 아르센 뤼팽조차 똑같습니다. 비록 아르센 뤼팽이 허구적인 등장인물이라고 해도, 이 등장인물이 진짜 인간을 모방하기 때문에, 이사도라 덩컨이 지구에 속하는 것처럼, 아르센 뤼팽은 이 행성에 속합니다. 그 어떤 예외 없이, 모~~든 진짜 인간은 이 행성에 속합니다.
지구는 풍요로운 자연을 자랑합니다. 인간이 지구에 속하기 때문에, 이 행성이 풍요로운 자연을 자랑하기 때문에, 인간이 다른 세계를 상상할 때, 풍요로운 자연은 빠지지 않습니다. 외계 행성은 다른 세계입니다. 그래서 <릴리움 리치>는 외계 생태계를 보여주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어떤 스페이스 오페라들은 외계 (행성) 생태계들을 보여주는지 모릅니다. 이건 <릴리움 리치>에게 지구 생태계가 기원, 생산 조건이라는 뜻입니다. 지구 생태계에서 이 게임 생태계는 비롯합니다. (만약 어떤 스페이스 오페라들이 외계 생태계들을 보여준다면, 이 생태계들에게 지구 생태계는 기원일 겁니다.)
지구가 풍요로운 자연이기 때문에, <릴리움 리치>는 외계 생태계를 묘사합니다. 아르센 뤼팽보다 모리스 르블랑이 우선하는 것처럼, <릴리움 리치>보다 지구 생태계는 우선합니다. 아무리 지구 생태계가 우선한다고 해도, 세계화 자본주의는 이 기원을 파괴합니다. 2023년, 스위스 사람들은 알프스 눈들이 사라졌다고 걱정했습니다. 지구 가열화 때문에, 이 눈들은 사라졌습니다. 비단 스위스 사람들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 역시 이 재앙을 걱정합니다. 생태학자들은 기후 변화가 생물 다양성을 파괴한다고 경고합니다. 왜 이 재앙이 발생했나요? 왜 인류 문명이 이 재앙을 막지 못하나요?
대답은 세계화 자본주의입니다. 이 경제가 너무 많은 온실 가스들을 배출하기 때문에, 지구 평균 기온은 상승합니다. 여전히, 이 경제에서 화석 연료 산업들은 아주 커다란 비중입니다. 아무리 재생 에너지들이 증가하는 중이라고 해도, 이미 세계화 자본주의는 너무 많은 가스들을 배출했습니다. 이 경제는 기후 악당입니다. 만약 인류 문명이 지구 가열화를 해결하기 원한다면, 세계화 자본주의는 사라져야 합니다. 적어도, 인류 문명은 이 악랄한 경제를 통제해야 합니다. 환경 운동은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기 원합니다. 자본주의가 기후 악당이기 때문에, 환경 운동과 자본주의는 대립합니다.
※ 게임 <Lilium Reach> 스크린샷 출처:
https://store.steampowered.com/app/1846660/Lilium_Reach/
※ 애니메이션 <클론 워즈> 스틸샷 출처:
http://www.youtube.com/watch?v=ZLW2jkd6E7g
※ 사진 <Forest, Jungle, …> 출처: JerzyGorecki,
https://pixabay.com/photos/forest-jungle-outside-nature-trees-6567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