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 판타지/크고 작은 괴수들

<듄>과 모래 기사, 자연 범주

OneTiger 2021. 9. 30. 20:00

※ 이 게시글은 영화 <쥬라기 공원 III>, 영화 <고지라: 킹 오브 몬스터즈>, 소설 <듄>의 내용 누설을 포함합니다.





스피노사우루스는 최대 15m에 달합니다. 스피노사우루스는 가장 거대한 지상 포식자들 중에서 하나입니다. 만약 아무 장비 없이, 인간이 스피노사우루스와 싸운다면, 인간은 스피노사우루스를 이기지 못할 겁니다. 스피노사우루스는 인간을 너무 쉽게 잡아먹을 겁니다. 아무리 인간이 돌격 소총으로 무장한다고 해도, 스피노사우루스는 인간을 너무 쉽게 잡아먹을지 모릅니다. 아무리 돌격 소총이 스피노사우루스를 쓰러뜨린다고 해도, 이 싸움은 너무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할지 모릅니다. 15m짜리 거대한 스피노사우루스가 인간을 쉽게 잡아먹기 때문에, 이 육식공룡은 압도적입니다.

 

스피노사우루스는 압도적입니다. 인간은 압도적인 스피노사우루스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누가 스피노사우루스를 만들었나요? 하늘에서 갑자기 스피노사우루스가 뚝 떨어졌나요? 그건 아닙니다. 이건 문학적인 표현이나, 자연은 스피노사우루스를 키웠습니다. 지구 생물 다양성, 생명체 진화 역사에서 스피노사우루스는 비롯했습니다. 자연이 스피노사우루스를 키웠기 때문에, 이건 자연이 압도적인 것을 키웠다는 뜻입니다. 자연이 압도적인 것을 키웠기 때문에, '자연의 힘'은 대단합니다. 인간은 자연의 힘이 대단하다고 감탄할 수 있습니다. 거대 포식자는 자연의 힘이 대단하다고 상징합니다.



15m짜리 거대한 스피노사우루스가 자연의 힘이 대단하다고 상징하는 것처럼, 거대 야수는 자연의 힘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스피노사우루스와 달리, 혹등고래는 포식자가 아닙니다. 스피노사우루스처럼, 혹등고래는 육식동물이고, 분명히 혹등고래는 물고기들을 잡아먹습니다. 심지어 혹등고래들은 거품 그물망을 형성하고 물고기들을 몰아넣습니다. 혹등고래들에게 고유한 사냥 기술이 있는 것처럼, 이 장엄한 해양 동물들은 육식동물입니다. 하지만 혹등고래가 인간을 잡아먹지 않기 때문에, 스피노사우루스와 달리, 많은 사람들은 혹등고래가 무섭고 위험한 포식자라고 분류하지 않습니다.

 

이 그림(링크)을 보세요. 만약 강물 속에서 잠수부가 이 스피노사우루스를 만난다면, 아무리 잠수부에게 작살총이 있다고 해도, 잠수부는 압도적인 두려움을 느낄지 모릅니다. 스피노사우루스가 잠수부를 잡아먹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스피노사우루스와 달리, 혹등고래는 인간을 잡아먹지 않습니다. 아무리 혹등고래들에게 고유한 사냥 기술(거품 그물망)이 있다고 해도, 사람들은 혹등고래가 무섭고 위험한 포식자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비록 혹등고래가 무서운 포식자가 아니라고 해도, 혹등고래가 수면 위로 솟구칠 때, 이른바 브릿지 장면은 아주 경이롭고, 관광객들은 크게 감탄합니다.



관광객들은 혹등고래가 아주 경이롭다고 크게 감탄합니다. 거대한 동물은 경이롭습니다. 누가 거대한 혹등고래를 만들었나요? 하늘에서 갑자기 이 고래가 뚝 떨어졌나요? 그건 아닙니다. 이건 문학적인 표현이나, 자연은 혹등고래를 키웠습니다. 지구 생물 다양성, 생명체 진화 역사에서 혹등고래는 비롯했습니다. 자연이 혹등고래를 키웠기 때문에, 이건 자연이 경이로운 것을 키웠다는 뜻입니다. 자연이 경이로운 것을 키웠기 때문에, '자연의 힘'은 대단합니다. 인간은 자연의 힘이 대단하다고 감탄할 수 있습니다. 스피노사우루스처럼, 거대 야수, 혹등고래는 자연의 힘이 대단하다고 상징합니다.

 

스피노사우루스와 혹등고래는 자연의 힘이 대단하다고 상징합니다. 비단 스피노사우루스와 혹등고래만 아니라 다른 여러 거대 야수들 역시 자연의 힘이 대단하다고 상징할 수 있습니다. 만약 심해에서 잠수부가 대왕 오징어를 만난다면, 잠수부는 대왕 오징어가 자연의 힘이라고 느낄지 모릅니다. 거대 야수, 대왕 오징어가 자연의 힘인 것처럼, 거대 야수는 자연의 힘일 수 있습니다. 거대 야수가 자연의 힘이기 때문에, 거대 야수는 문명의 힘을 밀어내야 합니다. 문명보다 자연은 원초적입니다. 인간은 대왕 오징어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생물 다양성, 진화 역사, 자연은 이 놀라운 두족류를 키웠습니다.



인간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자연은 대왕 오징어를 키웠습니다. 자연은 비단 대왕 오징어만 아니라 인간 역시 키웠습니다. 생물 다양성, 진화 역사, 자연에서 인간은 비롯했습니다. 인간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자연이 나타났고, 자연에서 인간이 비롯했기 때문에, 인간보다 자연은 원초적입니다. 인간보다 자연이 원초적이기 때문에, 자연에게는 영성이 있습니다. 자연에게 영성이 있기 때문에, 문명의 힘보다 자연의 힘은 초월적입니다. 자연과 문명이 대립할 때, 자연의 힘이 초월적이기 때문에, 자연은 문명을 밀어냅니다. 거대 야수가 자연의 힘이기 때문에, 거대 야수 역시 문명의 힘을 밀어내야 합니다.

 

만약 거대 야수가 문명의 힘을 밀어내지 못한다면, 만약 문명의 힘이 거대 야수를 압도한다면, 거대 야수가 자연의 힘이기 때문에, 이건 문명의 힘이 자연의 힘을 압도한다는 뜻일 겁니다. 문명의 힘이 자연의 힘을 압도하기 때문에, 자연에게는 영성이 없습니다. 문명의 힘이 자연의 힘을 압도하기 때문에, 자연의 힘은 초월적이지 않습니다. 만약 인간이 자연의 힘에게 영성이 있다고 느낀다면, 문명의 힘이 거대 야수를 압도할 때, 이 결과가 문명의 힘이 자연의 힘을 압도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인간은 이 결과가 부정적이라고 느낄지 모릅니다. 그래서 영화 <쥬라기 공원 III> 결말 장면은 부정적인지 모릅니다.



영화 <쥬라기 공원 III>에서 스피노사우루스는 주연 거대 야수입니다. 하지만 결말 장면은 무장 병력들이 스피노사우루스를 압도한다고 암시합니다. 무장 병력들이 강력한 무기들, 장비들을 자랑하기 때문에, 만약 스피노사우루스가 덤빈다면, 무장 병력들은 스피노사우루스를 너무 쉽게 쓰러뜨릴 겁니다. 스피노사우루스는 그저 갈기갈기 찢어진 육편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문명의 힘(무장 병력들)이 자연의 힘(거대 야수)을 너무 쉽게 쓰러뜨리기 때문에, 자연의 힘이 그저 갈기갈기 찢어진 육편에 불과할지 모르기 때문에, 이 결말은 부정적입니다. <쥬라기 공원 III>는 거대 야수를 무시합니다.

 

<쥬라기 공원 III>는 공룡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문명의 힘이 주연 거대 야수를 너무 쉽게 쓰러뜨린다고 암시합니다. 이 영화가 문명의 힘이 거대 야수를 너무 쉽게 쓰러뜨린다고 암시하기 때문에, 이 영화는 부정적입니다. 이 영화에서 스피노사우루스가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를 처치하기 때문에, 많은 T-렉스 팬들은 이 영화를 싫어합니다. 하지만 이 싸움 결과보다 결말 장면은 훨씬 심각한 문제입니다. <쥬라기 공원 III>가 거대 야수 그 자체를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티라노사우루스 렉스가 스피노사우루스를 이긴다고 해도, 티라노사우루스는 강력한 무장 병력들을 절대 이기지 못합니다.



아무리 티라노사우루스 렉스가 거대하고 강력한 육식동물이라고 해도, 만약 무장 병력들이 화력을 퍼붓는다면, 만약 무장 병력들이 총알들과 로켓들과 포탄들을 퍼붓는다면, 티라노사우루스가 버틸 수 있나요? 이건 불가능합니다. 무장 병력들이 스피노사우루스를 너무 쉽게 쓰러뜨리는 것처럼, 티라노사우루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쥬라기 공원 III> 결말 장면은 무장 병력들이 티라노사우루스를 너무 쉽게 쓰러뜨릴 수 있다고 암시합니다. 이 영화가 거대 야수를 너무 무시하기 때문에, 이 영화는 부정적입니다. 이 영화가 부정적인 것처럼, 2019년 영화 <고지라: 괴수왕>은 부정적인지 모릅니다.

 

2019년 영화 <고지라: 괴수왕>에게 2014년 영화 <고지라>는 전편입니다. 2014년 <고지라>는 고지라가 자연의 힘이라고 설정합니다. 고지라가 자연의 힘이기 때문에, 문명의 힘은 고지라를 막지 못합니다. 거대 괴수 박사, 세리자와 박사는 문명의 힘이 고지라를 막지 못한다고 계속 강조합니다. 아무리 인간이 고지라를 도울 수 있다고 해도, 문명의 힘이 무토를 이기지 못하고, 고지라가 무토를 끝장내기 때문에, 이건 문명의 힘이 자연의 힘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세리자와 박사가 포식자, 자연의 힘을 강조하는 것처럼, 이 영화에서 자연의 힘은 핵심 주제입니다. 하지만 <괴수왕>은 어떤가요?



2014년 <고지라>와 달리, 2019년 <괴수왕>에서 옥시전 디스트로이어, 산소 파괴탄은 고지라를 죽일 수 있습니다. 적어도 산소 파괴탄은 고지라, 자연의 힘을 무력화시킵니다. 산소 파괴탄이 터지기 때문에, 고지라는 무력합니다. 만약 기도라가 위험하지 않았다면, 문명의 힘은 자연의 힘을 얼마든지 압도했을 겁니다. 만약 군대 지휘관들이 고지라를 끝장내기 원했다면, 고지라는 무력해졌을 테고, 오랜 동안, 해저 신전에서 고지라는 벗어나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해저 신전에서 고지라가 끙끙거리는 것처럼, 2019년 <괴수왕>은 자연의 힘을 숭배하지 않습니다. 문명은 고지라를 압도합니다.

 

산소 파괴탄이 고지라를 압도하기 때문에, 2014년 <고지라> 분위기와 2019년 <괴수왕> 분위기는 너무 다릅니다. 문명의 힘이 기도라를 이기지 못했고, 자연의 힘(고지라+모스라)이 기도라를 이겼기 때문에, 이건 문명의 힘이 자연의 힘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뜻일 수 있으나, 아무리 고지라+모스라가 기도라를 이겼다고 해도, 고지라가 산소 파괴탄을 뛰어넘지 못하고, 주연 거대 괴수가 모스라보다 고지라이기 때문에, 이건 문명의 힘이 주연 거대 괴수를 쓰러뜨린다는 뜻입니다. <쥬라기 공원 III>가 주연 거대 야수를 무시하는 것처럼, 문명의 힘이 고지라를 쓰러뜨리기 때문에, 이건 부정적입니다.



<쥬라기 공원 III>가 부정적인 것처럼, <고지라: 괴수왕>은 부정적입니다. <쥬라기 공원 III>와 <고지라: 괴수왕>처럼, 소설 <듄>은 부정적인지 모릅니다. 이 SF 소설에서 모래벌레는 거대 괴수입니다. 모래벌레는 압도적인 거대 괴수입니다. 심지어 모래벌레는 몇 백 m에 달합니다. 심지어 모래벌레는 1km를 넘어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스피노사우루스가 거대하다고 해도, 스피노사우루스는 100m를 넘어가지 않습니다. 아무리 고지라가 거대하다고 해도, 고지라는 몇 백 m에 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고지라 어스조차 마찬가지입니다.) 고지라보다 모래벌레는 훨~씬 압도적인 거대 괴수입니다.

 

모래벌레가 거대 괴수이고, <듄>에서 모래벌레가 사람들을 계속 위협하기 때문에, 이 소설은 자연의 힘이 문명의 힘을 압도한다고 묘사하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모래 기사(샌드라이더)입니다. 아라키스 행성에서 모래벌레들은 살아갑니다. 프레멘은 아라키스 부족민들입니다. 프레멘이 아라키스 부족민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아라키스 자연 생태계를 구체적으로 파악합니다. 그들은 아라키스 생태계 전문가들입니다. 프레멘이 생태계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거대한 모래벌레를 조종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모래벌레가 대단하다고 해도, 그들은 모래벌레에 탑승하고 대단한 거대 괴수를 조종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링크)은 모래 기사를 보여줍니다. 이 그림이 보여주는 것처럼, 프레멘은 모래 막대기를 박습니다. 모래 막대기는 쿵쿵거리고 진동을 퍼뜨립니다. 모래벌레는 진동을 느끼고 모래 막대기에게 다가옵니다. 프레멘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탑승하기 위해 대기합니다. 모래벌레가 솟구칠 때, 프레멘은 창조자 작살을 내밀고 모래벌레에 탑승합니다. 프레멘은 두 창조자 작살로 거대 괴수를 조종합니다. 아무리 거대한 모래벌레가 1km를 넘어간다고 해도, 프레멘들은 모래벌레에 탑승하고 거대 괴수를 조종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거대 괴수를 조종하기 때문에, 모래 기사는 부정적인지 모릅니다.

 

모래 기사는 인간이 거대 괴수를 조종한다고 뜻합니다. 모래벌레가 탈진할 때까지, 인간은 모래벌레를 얼마든지 조종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모래벌레를 얼마든지 조종하기 때문에, 이건 문명의 힘이 자연의 힘을 압도한다고 뜻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게 문명의 힘이 자연의 힘을 압도한다는 뜻이라면, 이건 부정적인지 모릅니다. 모래 기사가 거대 괴수를 얼마든지 조종하기 때문에, 모래벌레가 프레멘에게 굴복하기 때문에, 이건 문명의 힘이 자연의 힘을 압도한다는 뜻이고, 문명이 자연을 압도하기 때문에, 자연의 힘에게는 영성이 없고, 자연에게 영성이 없기 때문에, 자연의 힘은 초월적이지 않습니다.



모래 기사는 자연의 힘이 초월적이지 않다고 보여줍니다. 자연이 초월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건 부정적인지 모릅니다. 만약 어떤 소설 독자들이 모래 기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자연 영성은 이유일 수 있습니다. 모래 기사가 자연에게 영성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에, 어떤 소설 독자들은 모래 기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 모릅니다. "저는 모래 기사가 실망스럽다고 느꼈어요." 언젠가 어떤 JoySF 회원은 모래 기사가 부정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모래 기사가 자연의 힘에게 영성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에, <쥬라기 공원 III>와 <괴수왕>처럼, 이 JoySF 회원은 모래 기사가 부정적이라고 느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리 프레멘 모래 기사가 압도적인 거대 괴수를 얼마든지 조종한다고 해도, 여전히 다른 관점은 자연의 힘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모래 기사는 프레멘입니다. 프레멘들은 아라키스 환경을 바꾸기 원합니다. 그들은 생태계 테라포밍을 갈구합니다. 심지어 그들에게 생태계 테라포밍은 거의 유일한 미래 희망입니다. 프레멘들은 수분을 간절히 원합니다. 그들은 수분을 너무 너무 너무 너무 간절히 원합니다. 아라키스가 사막 행성이고, 이 사막 환경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척박하기 때문에, 프레멘들은 수분을 너무 너무 너무 너무 간절히 원합니다. 프레멘들은 풍요로운 자연 환경, '자연의 힘'을 갈구합니다.





"프레멘의 육체는 개인적이나, 프레멘의 물은 부족에게 속해요." 프레멘들은 이것을 주장합니다. 수분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귀중하기 때문에, 프레멘들은 수분이 모든 것의 척도라고 느낍니다. 만약 칼라단 행성에서 프레멘들이 살아간다면, 그들은 이 문화를 버릴지 모릅니다. 칼라단 행성은 엄청난 바다를 자랑합니다. 칼라단 행성은 엄청난 수분을 자랑합니다. 칼라단 행성과 아라키스 행성은 너무 대조적입니다. 칼라단과 아라키스가 너무 대조적이기 때문에, 자연 환경은 인류 문화에게 영향을 미치고, 인류 문화는 자연 환경을 따를지 모릅니다. 칼라단에서 프레멘들은 수분을 외치지 않을 겁니다.

 

“It was quite an intense shoot — the desert is so big. It's basically mother nature engulfing you and going 'you mean nothing'...." 스티븐 콜베어와의 인터뷰에서 레베카 퍼거슨(2021년 영화 <듄> 레이디 제시카 역할)은 아주 광대한 사막이 놀라운 어머니 자연이라고 표현(링크)했습니다. 프레멘들이 풍요로운 자연 환경을 너무 간절하게 원하는 것처럼, 레베카 퍼거슨이 사막 그 자체를 아주 광대한 자연이라고 느끼는 것처럼, 자연은 인류를 둘러쌌습니다. 자연은 문명을 둘러쌉니다. 인류 문명은 자연의 힘을 뛰어넘지 못합니다. 문명이 자연을 뛰어넘지 못하기 때문에, 이건 자연에게 영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레베카 퍼거슨이 아주 광대한 사막과 너무 초라한 인간을 대조하고 어머니 자연을 외치는 것처럼, 자연은 초월적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산소 파괴탄이 고지라를 무력화시키고, 아무리 기갑 부대가 스피노사우루스를 쓰러뜨린다고 해도, 자연 법칙에서 인류 문명은 절대 자유롭지 않습니다. 신진대사, 먹거리는 이것을 아주 단적으로 증명합니다. 그저께 9월 28일 게시글이 설명했던 것처럼, 그 어떤 예외 없이, 인간은 먹습니다. 살아있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먹습니다. 신진대사가 자연 법칙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인간은 자연 법칙을 거부하지 못하고, 모든 인간에게는 먹거리가 필수적입니다.

 

아무리 프레멘이 400m짜리 모래벌레를 조종한다고 해도, 프레멘은 어떤 것을 먹어야 합니다. 아무리 산소 파괴탄이 고지라를 무력화시킨다고 해도, 공학 기술자들은 어떤 것들을 먹어야 합니다. 아무리 기갑 부대가 스피노사우루스를 쓰러뜨린다고 해도, 장갑차 병사들은 어떤 것들을 먹어야 합니다. 아니, 만약 장갑차 제작자들이 먹지 않는다면, 만약 장갑차 발명가들이 먹지 않는다면, 그들은 장갑차를 발명하지 못하고 제작하지 못할 테고, 기갑 부대는 총알들, 포탄들을 날리지 못할 겁니다. 근본적으로, 필연적으로 인간은 먹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먹거리를 얻나요? 자연은 먹거리를 선사합니다.



그저께 9월 28일 게시글이 우주 바이오 돔을 설명했던 것처럼, 우주 바이오 돔은 인간이 자연 법칙(신진대사)을 따르고 자연이 먹거리를 선사한다고 강조합니다. 우주 바이오 돔은 자연에게서 인간이 절대 자유롭지 않다고 강조합니다. 우주 바이오 돔이 강조하는 것처럼, 자연에게서 인간이 절대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문명의 힘은 자연의 힘을 뛰어넘지 못하고, 여전히 자연에게는 영성이 있습니다. 여전히 자연 영성은 초월적입니다. 언젠가 미래 첨단 기술들은 자연의 힘을 완전히 밀어낼지 모르나, 아무도 미래를 장담하지 못합니다. 누가 첨단 기술들이 자연의 힘을 밀어낸다고 장담하나요?

 

아무도 이 미래를 장담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미래 첨단 기술들조차 자연의 힘을 뛰어넘지 못할지 모릅니다. 적어도 21세기 초반 오늘날, 문명의 힘은 자연의 힘을 절대 뛰어넘지 못합니다. 만약 꿀벌들이 멸종한다면, 꽃들이 수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류 문명은 막대한 피해를 받을지 모릅니다. 만약 이 예측이 타당하다면, 이건 문명의 힘이 자연의 힘(꿀벌들)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뜻일 겁니다. 스피노사우루스(와 혹등고래)와 달리, 고지라와 달리, 모래벌레와 달리, 꿀벌들은 (사나운) 거대 포식자가 아닙니다. 꿀벌들이 (사나운) 거대 포식자가 아니기 때문에, 꿀벌들이 자연의 힘에 속하지 않나요?



아니, 꿀벌들 역시 자연의 힘에 속합니다. 지구 생물 다양성, 생명 진화 역사는 꿀벌들을 키웠습니다. 인간은 수분(受粉), 꿀벌-꽃송이 공진화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자연은 이 과정을 만들었습니다. 꿀벌들이 자연의 힘에 속하기 때문에, 꿀벌들은 자연의 힘이 문명의 힘을 뛰어넘는다고 보여줍니다. 비단 꿀벌들만 아니라 다른 사례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많고 많은 사례들은 자연의 힘이 문명의 힘을 둘러싼다고 증명합니다. 거대 포식자는 자연의 힘을 상징할 수 있으나, 자연의 힘에게 거대 포식자는 전부가 아닙니다. 작은 꿀벌들이 증명하는 것처럼, 먹거리는 웅장한 자연 법칙입니다.

 

살아있는 인간이 신진대사를 필연적으로 따르고, 우주 바이오 돔이 강조하는 것처럼, 자연이 먹거리를 선사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인간에게는 자연 환경이 필요합니다. 모든 살아있는 인간에게는 자연 환경이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공유지 경제, 공산주의는 타당합니다. 자연, 모성은 공유지 경제입니다. 사유 재산 제도, 자본주의는 부정적입니다. 공유지 경제, 공산주의가 타당하고, 사유 재산 제도, 자본주의가 부정적이기 때문에, 아무리 어떤 사람들이 자연, 모성을 주구장창 열심히 떠든다고 해도, 만약 그들이 자본주의를 비판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자연, 모성을 너무 얄팍하게 떠들 겁니다.



※ 게임 <듄 2000> 스크린샷 출처: EnjoythestruggleNI,
https://www.youtube.com/watch?v=w6WlSjUSWng

※ 사진 <… Honey Bee Pollen …> 출처: Kollinger,
https://pixabay.com/photos/bee-insect-honey-bee-pollen-garden-52198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