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이라는 독특한 야수들과 사이언스 픽션
[이런 장면처럼, 공룡 이야기를 보기 위해, 공룡 팬들은 사이언스 픽션을 선택해야 할 겁니다.]
고생물학자 스콧 샘슨은 <공룡 오디세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서 스콧 샘슨은 공룡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크게 두 가지라고 추측합니다. 첫째, 공룡은 거대합니다. 공룡보다 현대인이 만날 수 있는 육상 동물들은 훨씬 작습니다. 마멘키사우루스처럼 아주 거대한 공룡들을 제외한다고 해도, 현대인이 만날 수 있는 홀로세 육상 동물들보다 다양한 공룡들은 훨씬 큽니다. 인간은 시각적인 동물이고, 그래서 크기는 중요한 매력 요소입니다. 인간은 거대한 동물이 걸어다니는 장면에 주목하고, 공룡에게는 주목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둘째, 공룡은 특이합니다. 예전부터 오늘날까지,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는 영원히 빛나는 인기 스타이나, 어떤 사람들은 티라노사우루스 렉스가 너무 지루한 동물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에게 별다른 장식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티-렉스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이 생물종이 아주 커다란 사냥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티-렉스보다 다른 공룡들을 좋아하는 사람들 역시 많습니다. 후아양고사우루스는 커다란 골판들을 자랑합니다. 사우로펠타는 커다란 가시들과 갑옷을 선보입니다. 람베오사우루스는 독특한 볏을 보여줍니다. 스티라코사우루스는 복잡하고 뾰족한 머리 장식들과 날카로운 뿔을 내세웁니다.
티-렉스와 달리 어떤 수각류 육식 공룡들은 독특한 장식물을 달았습니다. 스피노사우루스는 비단 아주 거대한 육식 공룡일 뿐만 아니라 커다란 돛을 등에 달았습니다. 현대인이 만날 수 있는 커다란 육상 육식 동물들은 이런 장식물들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코디악은 가장 거대한 육상 육식 동물에 속하나, 코디악에게는 독특한 장식물이 없어요. 그래서 코디악보다 아무르 표범이 훨씬 작다고 해도, 어떤 사람들은 코디악보다 아무르 표범이 아름답다고 말할 겁니다. (사실 설원을 가로지르는 아무르 표범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영양이나 물소나 코뿔소는 기묘한 뿔들을 달았으나, 그것들은 스티라코사우루스의 머리 장식들이나 사우로펠타의 커다란 가시들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문제는 왜 공룡들이 그런 장식물들을 달았는지 고생물학자들이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고생물학자들은 그저 추측할 뿐입니다. 어쩌면 복잡한 머리 장식들은 과시용이나 구애용이었는지 모릅니다. 아니면 그것들은 무기라는 역할을 겸했는지 모릅니다. 골판이나 돛은 체온을 조절했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그것들은 정말 활공 장치이거나 지느러미였는지 모릅니다. 후아양고사우루스는 골판들을 이용해 공중을 활공했을지 모릅니다! 세상에, 후아양고사우루스가 골판들을 이용해 하늘을 날았다니! 뭐, 이건 꽤나 얼빠진 소리 같아요. 하지만 고생물학자들은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이건 고생물학자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아무도 살아있는 비조류 공룡을 본 적이 없습니다. 덕분에 공룡은 상상의 영역으로 쉽게 흘러가고, 공룡은 SF 소설과 만납니다.
공룡 팬은 필연적으로 SF 소설을 읽어야 합니다. 이건 공룡 팬이 모든 SF 소설을 폭넓게 읽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이언스 픽션이 무엇인지 관심이 없는 공룡 팬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SF 소설은 공룡을 이야기할 수 있는 거의 유일무이한 문학입니다. 공룡 팬들이 <리틀 풋의 대모험>이나 <점박이: 새로운 낙원> 같은 '우화'를 제외한다면, 사이언스 픽션은 공룡 이야기를 하기 위한 거의 유일한 문학 매체일 겁니다. 만약 공룡 팬이 고생물 다큐멘터리 이외에 다른 창작물을 보고 싶다면, 사이언스 픽션은 아주 현실적인 대안일 겁니다. 19세기부터 SF 작가들은 공룡을 이야기했고, 이제 SF 세상에서 공룡은 빠지지 못하는 소재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중세 유럽 판타지들조차 공룡을 이야기합니다. 중세 판타지는 공룡이라는 멋진 소재를 오직 사이언스 픽션만 독차지하는 광경을 질투했는지 모릅니다. 고대 신화와 전설이 공룡을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세 유럽 판타지와 공룡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공룡은 고생물학에 속한 요소이고, 그래서 공룡은 SF 소설과 어울려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중세 판타지들은 재미가 장땡이라고 주장하고 과감하게 공룡을 빌려갑니다. 중세 유럽 판타지에서 공룡은 드래곤의 별종이 되거나 자신만의 생태적 위치를 찾습니다. 여전히 중세 유럽 판타지에서 공룡은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지 않으나, 점차 저변을 넓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중세 유럽 판타지들은 꾸준히 드래곤을 이야기했고, 드래곤이 거대 파충류 괴수이기 때문에, 공룡은 쉽게 드래곤의 별종이 될 수 있습니다. 공룡은 그저 거대 파충류 괴수에 불과하지 않으나, 각종 공룡 이야기들은 공룡이 파충류 괴수라고 몰아붙입니다. 각종 공룡 이야기들은 깃털들을 제대로 복원하지 않습니다. 공룡은 거대한 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데이노니쿠스는 새가 아니라 도마뱀과 가까워야 합니다. 사람들은 새가 무시무시한 괴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파충류가 흉악한 괴수라고 간주합니다.
따라서 무시무시한 괴수가 되기 위해 데이노니쿠스는 새가 아니라 도마뱀이 되어야 하고, 깃털들은 없어야 합니다. 만약 깃털들이 있다고 해도, 그것들은 튀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각종 공룡 창작물들은 깃털들을 대충 묘사하거나 아예 없앱니다. <사우리안>과 <점박이: 새로운 낙원>은 드로마에사우루스 부류를 완전히 다르게 묘사합니다. <점박이: 새로운 낙원>처럼, 창작물이 육식 공룡을 무시무시한 파충류 괴수라고 간주할 때, 중세 유럽 판타지 역시 공룡을 드래곤의 별종으로 넣을 수 있습니다. 삽화 모음집 <용의 세계 L'univers des Dragons>에서 제롬 르르퀼레나 장 바티스트 몽주가 그린 드래곤들을 보세요. 이것들은 정말 공룡입니다.
아니면 비디오 게임 <몬스터 헌터 월드>에서 안쟈나프 역시 공룡을 대변할 수 있습니다. <몬스터 헌터 월드>가 판타지이고 공룡을 직접 집어넣지 못한다고 해도, <몬스터 헌터 월드>는 안쟈나프를 이용해 공룡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울창한 밀림 속에서 안쟈나프가 크와왕~ 울부짖으며 헌터를 쫓아갈 때, 게임 플레이어는 머릿속에 소설 <잃어버린 세계>를 떠올릴 겁니다. 소설 <잃어버린 세계>에서 알로사우루스가 신문 기자를 쫓았을 때, 울창한 밀림 속에서 안쟈나프가 크와왕~ 울부짖으며 헌터를 쫓아갈 때, 양쪽은 모두 비슷한 감성을 풍길 수 있습니다.
물론 삽화 모음집 <용의 세계>가 공룡 같은 드래곤을 보여준다고 해도, <용의 세계>는 진화 이론을 말하지 않습니다. 장 바티스트 몽주는 어떻게 공룡 같은 드래곤이 진화했는지 말하지 않아요. 스티븐 굴드와 리처드 도킨스는 무슨 진화 이론이 옳은지 싸울 수 있으나, 드루이드가 공룡 같은 드래곤을 조사한다고 해도, 드루이드 서클 학술 회의에서 드루이드들은 진화 이론을 논의하지 않겠죠. 게임 <몬스터 헌터 월드> 역시 진화 이론보다 신비스러운 마법이나 초자연적인 현상에 의존합니다. 티-렉스는 불을 뿜지 못해요. 어떻게 안자냐프가 불을 뿜을 수 있을까요?
중세 유럽 판타지에서 드래곤(거대 파충류 괴수)가 불을 뿜기 때문에, <몬스터 헌터 월드>에서 안자냐프(거대 파충류 괴수) 역시 불을 뿜을 수 있습니다. <몬스터 헌터 월드>는 안자냐프에게 공룡과 드래곤을 함께 집어넣었습니다. <용의 세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전형적인 드래곤과 공룡 같은 드래곤이 함께 행진할 때, 여기에서 공룡의 시각적인 측면들과 드래곤의 시각적인 측면들은 함께 뒤섞입니다. 드래곤이라는 신화가 끼어들기 때문에, <용의 세계>는 진화 이론을 말하지 못합니다. <용의 세계>가 진화 이론을 언급한다면, 19세기 유럽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 것처럼, <용의 세계>는 근대적인 진보를 가미해야 할 겁니다.
19세기 유럽 사람들이 진화 이론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것처럼, <용의 세계>는 중세 판타지가 풍기는 낭만과 야성을 깨뜨려야 합니다. <용의 세계>를 비롯해 각종 중세 판타지들은 그걸 원하지 않을 테고, 판타지들은 진화 이론을 멀리 밀어낼 겁니다. 그래서 공룡 팬들이 이런 판타지 이야기들을 읽을 때, 공룡 팬들은 한계를 느낄 겁니다. 판타지 이야기들과 달리, 사이언스 픽션들은 이런 한계를 없애고 당당하게 진화 이론을 논의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미래에 유전 공학 기술은 공룡을 복원하고, 공룡은 일상적인 야생 동물이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미래 유전 공학이 공룡을 복원한다고 해도, 공룡은 SF 소설에서 멀어지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인류가 공룡을 복원한다고 해도, 이건 인류가 중생대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류가 '진짜 중생대' 공룡을 만나고 싶다면, 인류에게는 시간 여행 기술이 필요할 겁니다. 공룡 복원이 가능하다고 해도, SF 세상에서 공룡 시대는 계속 머무를 테고, 공룡 팬들은 계속 SF 소설들을 읽어야 하겠죠. 하지만 SF 세상에는 공룡 이외에 크고 독특한 동물들이 많습니다. 스콧 샘슨이 옳게 추측했다면, 공룡 팬들은 비단 공룡만 아니라 다양한 외계 생명체들이나 개조 동물들을 좋아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그런 동물들은 진짜 존재하지 않으나, 현대인이 직접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공룡과 거대 외계 생명체는 서로 비슷할지 모릅니다.
만약 공룡 팬이 그런 외계 동물이나 개조 동물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공룡 팬은 더 많은 SF 소설들을 읽을 수 있겠고 SF 소설에 전반적으로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겠죠. 예전에 어떤 게시글이 이야기한 것처럼, 공룡은 독자를 SF 세상으로 이끄는 매개체가 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