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들은 독자들을 SF 울타리로 이끈다
[2005년 영화 <킹콩>의 컨셉 아트. 공룡들은 사람들을 SF 세상으로 이끌 수 있어요.]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지점에 도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일 테고, 모든 길이 똑같지 않겠죠. 누군가는 평탄한 길을 걸을지 모르고, 누군가는 자동차를 탈지 모르고, 누군가는 울창한 숲을 통과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결국 그 세 사람들은 똑같은 목적지를 지나칠지 모릅니다. 그래서 가끔 저는 어떻게 SF 독자들이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울타리를 지나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SF 독자들이 있습니다. 왜 그들은 사이언스 픽션에 이끌리게 되었을까요.
과학적 상상력이 신기하고 재미있기 때문에? 아마 이건 가장 보편적인 대답일 겁니다. 하지만 자연 과학에는 여러 분야들이 있고, 독자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들은 각자 다를 겁니다. 누군가는 기계 공학을 좋아할 테고, 누군가는 천문학을 좋아할 테고, 누군가는 의학에 관심이 많을지 모르죠. 아니면 누군가는 장르 소설들을 전반적으로 좋아할지 모르고, 누군가는 소설 그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에 SF 소설들을 곁들이는지 모릅니다. 아마 각자 이유가 있을 겁니다. 저는 그런 이유들 중에 공룡이라는 이유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공룡이라는 존재는 꽤나 매력적입니다. (현생 조류를 제외한다면) 이 동물들은 아주 오래 전에 사라졌고, 몸집이 굉장히 크고, 독특하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공룡을 흥미롭게 바라보나, 안타깝게도 이른바 주류 소설들은 공룡을 묘사하지 못합니다. 인간이 공룡을 만나고 싶다면, 작가는 과학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주류 소설은 절대 고대 야수를 묘사하지 못해요. 그저 현생 동물들만 이야기할 뿐입니다. 예전부터 사람들은 거대한 동물들에게 고양되었고, 그래서 소설가들도 그런 동물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윌리엄 포크너는 <곰>을 썼습니다. 비교적 짧은 분량이나, 소설은 압도적인 곰과 울창한 숲을 생생하게 이야기합니다. 코맥 매카시는 이런 문체를 좋아하는 듯합니다. <모두 예쁜 말들>과 <국경을 넘어>에서 말과 늑대를 이야기할 때, 코맥 매카시는 윌리엄 포크너를 빼다박은 것 같습니다. 아무르 호랑이를 만나고 싶다면, 니콜라이 바이코프가 쓴 <위대한 왕>을 볼 수 있습니다. 김탁환이 쓴 <밀림무정>도 정말 멋진 소설이죠. 비단 육상 동물만이 아닙니다. 피터 벤츨리는 백상아리나 거대한 두족류를 이야기합니다.
허먼 멜빌은 이런 분야에서 대표자가 될 자격이 있습니다. <백경>은 향유 고래에게 바치는 찬가입니다. 뭐, 화자 이스마엘은 죽어가는 고래에게 개미 눈곱만큼도 동정을 표현하지 않으나, 이 소설은 향유 고래를 이야기하고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합니다. 허먼 멜빌은 소설을 쓰는 동시에 향유 고래에 관한 자료를 총망라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아주 괴작이 튀어나왔으나, <백경>은 어떤 동물을 집요하게 묘사하기 위한 유형을 마련했죠. 하지만 아무리 <백경>이 대단하다고 해도 결국 현생 동물을 이야기합니다. 향유 고래는 현생 동물이죠.
게다가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허먼 멜빌은 고래들을 제대로 묘사하지 못했습니다. 19세기에는 심해 잠수정이 없었고, 허먼 멜빌은 절대 바다 밑바닥에 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한적으로 향유 고래를 묘사해야 했죠. 따라서 이런 주류 소설은 고대 야수를 표현하지 못합니다. 고대 야수는 향유 고래보다 더 많은 제약이 있습니다. 그래서 작가가 공룡을 비롯해 고대 생태계를 표현하고 싶다면, 작가는 반드시 과학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심지어 학습 만화를 그리는 창작가들도 자주 이런 상상력을 발휘하죠.
만약 공룡을 좋아하는 사람이 공룡 소설을 읽고 싶다면, 그 사람은 SF 소설을 읽을 겁니다. 코난 도일을 읽든, 레이 브래드버리를 읽든, 앤 매카프리를 읽든, 그렉 이건을 읽든, 로버트 소여를 읽든 어쨌든 그 사람은 SF 소설을 읽을 겁니다. 어쩌면 이 사람은 공룡 소설 이외에 다른 소설들을 읽을지 모릅니다. SF 소설들은 기이하고 독특한 자연 생태계를 논하곤 합니다. 공룡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연 생태계에 관심이 많을 테고, 따라서 그런 소설들도 읽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여러 SF 소설들을 읽을수록 그 관심은 다른 분야로 퍼질지 모릅니다. 이 사람은 여전히 공룡을 좋아하고 공룡 소설에 제일 관심이 많으나, 다른 SF 소설들을 흥미롭게 바라볼지 모르죠. 그렇게 SF 독자 하나가 탄생할지 모르죠. 어쩌면 이 세상에 그렇게 SF 세계에 입문하는 사람이 없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공룡이 SF 독자를 이끄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동물을 만나지 못하고, SF 작가들이 매개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SF 창작물들은 (그게 학습 만화이든 하드 SF 소설이든) 우리를 공룡 시대로 안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