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마 판타지의 레인저와 공원 경비대
[게임 <길드 워>의 레인저. 이런 판타지 레인저는 멋집니다. 하지만 현실의 공원 경비대는….]
검마 판타지 창작물에서 레인저는 아주 멋지고 인상적인 인물들로 등장합니다. 레인저들의 특기는 은신과 정찰이고, 덕분에 오크나 해골 병사는 레인저를 보지 못합니다. 레인저는 울창한 나뭇가지와 덤불과 그늘 속에서 해골 병사를 추적할 수 있고, 해골 병사가 방심할 때 치명적인 화살을 날릴 수 있습니다. 혹은 덤불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오고 쌍검을 휘둘러 해골 병사의 목을 딸 수 있습니다. 레인저는 숲 속의 날렵하고 재빠른 사냥꾼이고, 표범이 불시에 사슴을 기습하는 것처럼 악당들을 기습할 수 있습니다.
즉, 레인저는 자신이 공격을 받기 전에 적을 공격합니다. 아무 피해를 받지 않고 적을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적이 무엇을 하는지 몰래 감시할 수 있습니다. 레인저의 이런 잠복과 정찰 능력 덕분에 레인저는 흔하고 흔한 전사나 마법사와 다릅니다. 전사나 마법사가 정석적으로 싸운다면, 레인저는 보다 변칙적으로 싸웁니다. 전사와 마법사가 전함이나 구축함이라면, 레인저는 잠수함에 가깝습니다. 잠수함은 정면 힘싸움에 약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상대를 감시하거나 치명적인 일격을 날릴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잠수함의 묘미이고, 그래서 <특전 유보트>나 <붉은 10월> 같은 소설은 잠수함의 은밀한 정찰 능력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레인저는 많은 인기를 끕니다. 변칙적인 싸움보다 정석적인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레인저는 전사와 마법사처럼 널리 인기를 끌지 못하지만, 그래도 레인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울창한 덤불의 그늘 속에서 못된 흡혈귀를 감시하고 치명적인 화살을 날리고 유유히 사라지는 레인저…. 멋지지 않습니까. 인터넷을 조금만 뒤적여도 이런 멋지고 인상적인 레인저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잠수함 소설이 많은 인기를 끄는 것처럼 레인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종 검마 판타지 게임들도 레인저 캐릭터를 빼놓지 않습니다.
하지만 레인저는 그저 숲 속의 정찰병이 아닙니다. 예전에 드워프 레인저를 말했을 때처럼 레인저는 숲 속에서 활약하는 캐릭터답게 자연을 아끼고 사랑합니다. 물론 이런 자연 보호 성향은 모든 레인저들의 속성이 아닙니다. 창작물마다 레인저의 속성은 다르고, 대부분 레인저들은 자연 보호 따위를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던전스 앤 드래곤스>를 비롯해 몇몇 소설이나 게임의 레인저는 숲을 지키고 동물들을 치료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줍니다. <던전스 앤 드래곤스>의 막대한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이런 자연 보호 성향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레인저는 그저 숲 속에서 잠복하고 정찰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숲을 사랑합니다.
은밀하고 치명적인 레인저가 잠수함이라면, 숲을 아끼고 동물들을 지키는 레인저는 삼림 감시원과 같습니다. 이건 그저 비유가 아닙니다. 사실 현실의 삼림 감시원이나 국립 공원 경비대는 '레인저'로 불립니다. 따라서 레인저는 그저 검마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에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실에도 숲을 아끼고 동물들을 지키는 레인저는 존재합니다. 아니, 이런 삼림 감시원이나 공원 경비대야말로 진짜 레인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밀렵꾼을 체포하고, 상아나 뿔이나 가죽을 불태우고, 하루 종일 야생을 순찰합니다. 이들은 다친 동물들을 치료하고, 떠돌이 동물들을 돌보고, 야생 동물들의 생태를 관찰합니다.
하지만 이런 국립 공원 경비대는 결코 검마 판타지의 레인저처럼 멋지거나 인상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국립 공원 경비대는 결코 검마 판타지의 레인저처럼 커다란 인기를 끌지 못합니다. 사실 현실의 레인저들은 고루하고 힘든 삶을 살아갑니다. 동남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레인저들은 쉽지 않은 문제들과 부딪힙니다. 많은 나라들이 가난하고, 따라서 국립 공원 경비대는 제대로 장비를 갖추지 못하거나 훈련을 받지 못합니다. 하다못해 제복조차 통일시키지 못합니다.
국립 공원 경비대는 구닥다리 소총을 들거나 허름한 위장복을 입거나 막무가내로 밀렵꾼을 추적합니다. 북미나 유럽의 삼림 감시원들은 비교적 넉넉할지 모르나, 개발 도상국의 공원 경비대는 그렇지 못합니다. 때때로 그들은 뇌물이나 부패의 유혹에 쉽게 빠집니다. 어쩔 수 없을 겁니다. 먹고 살기 힘들다면, 국립 공원 경비대는 야생 동물들을 팔아버릴 수 있습니다. 동물을 지켜야 하는 레인저가 오히려 동물을 팔아버릴 수 있습니다. 검마 판타지의 레인저들은 자연의 신에게 가호를 받지만, 현실의 국립 공원 경비대는 그렇지 못합니다.
이게 과연 전적으로 공원 경비대의 잘못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막강한 기득권들도 자연 환경을 위협합니다. 대기업들은 온실 가스와 미세 먼지를 뿜고, 폐기물을 땅에 묻거나 강물에 버리고, 함부로 석유와 셰일 가스를 채취합니다. 자본주의 체계의 기득권은 자연 환경을 마구잡이로 착취합니다. 국립 공원 경비대도 이런 체계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검마 판타지의 레인저는 영웅이지만, 공원 경비대는 그저 일개 직종에 불과합니다. 검마 판타지의 레인저와 달리 공원 경비대는 요정들과 우정을 나누거나 자연 신앙의 주문을 외울 수 없습니다.
공원 경비대가 진짜 자연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면, 우리가 그걸 도와야 할 겁니다. 우리부터 착취적인 자본주의 체계를 무너뜨려야 할 겁니다. 그래야 비로소 공원 경비대도 진짜 레인저로 거듭날 수 있을 겁니다. 검마 판타지의 레인저만이 아니라 이런 현실의 레인저도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군요.